247화. 탄핵
전화 내용이 심상치 않았던 태월은 벌떡 일어났다.
“어, 무슨 일이에요?”
아샤와 아진도 잠결에 깨어났다.
“최 교수가 교통사고로 위독하다나 봐. 바로 나가봐야겠어.”
“어머, 그 후보자 되실 분?”
“응, 다녀와서 이야기해 줄게.”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고개를 끄덕인 태월은 직접 차를 몰아 천안으로 향했다.
최 교수의 본가가 천안이었다.
주말을 맞아 자정이 다 되어 홀로 본가로 갔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비가 조금 내리긴 했는데, 덤프트럭이 자가용의 측면을 받아버린 사고였다.
에어백이 터지긴 했지만, 그거로는 부족했다.
“어서 오십시오, 총재님!”
“어떻게 되었습니까?”
“팔다리 골절이야 당연히 있긴 한데, 그것보단 5시간째 의식이 없습니다.”
“다른 장기는요?”
“운이 좋아서인지 내부는 멀쩡합니다.”
“휴, 다행이네요. 뇌출혈은요?”
“타박상이 있긴 하지만, 뇌출혈은 없답니다. 실려 올 때부터 의식이 없었는데 병원에선 기다려봐야 한다고만 합니다.”
“아, 진짜 다행이네요!”
“네? 의식불명이라니까요!”
“그거야 깨어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그거야 그렇죠. 지금까지 중환자실에 있다가 30분 전부터 특실로 옮겼습니다.”
민화당 비서실장인 고태석은 자신의 총재의 엉뚱한 화답에 황당했지만, 이유가 있을 거라 여겼다.
그가 알기로 총재는 의사 출신이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어디에 갔습니까?”
“잠시 원무과로 갔습니다.”
“그럼 병실로 안내해 주세요.”
“704호입니다. 저쪽 엘리베이터를 타시면 됩니다.”
안내하는 고태석 실장을 따라 태월은 병실로 올라갔다.
1인실이었는데 문밖에선 경찰 하나가 보초를 서고 있었다.
민화당의 요청으로 지원을 나온 경찰이다.
“아, 안녕하십니까? 총재님!”
“네, 수고하시네요. 잠시 안을 들어가 보고 싶은데.”
“원래는 가족만 되는….”
“괜찮습니다. 문제 생길 시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아, 그렇다면야. 그럼, 안으로 들어가세요.”
“실장도 여기서 기다리게. 나도 의사였지만, 잠시 살펴보기만 할 걸세.”
고 실장의 대답도 듣지 않고 태월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흠, 다행히 골절밖에 없긴 하지만, 다시 깨어날 가능성은 희박하군. 의식이 너무 깊게 가라앉아있어. 소생시키는 게 오히려 더 낫겠네.”
태월은 왼손을 내밀어 그의 머리에 대었다.
깊이 잠든 영혼이 문신 안으로 흡수되었다.
문을 잠시 열고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10분 정도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세요. 의사로서 살펴볼 게 좀 있네요. 꽤 도움이 될 겁니다. 대신 그동안 방해를 하시면 안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경찰이 고 실장을 대신해서 대답한다.
그렇게 8분 정도 지났을 때, 문신이 영혼을 토해냈다.
살아생전보다 더 밝고 활기찬 빛을 뿌리는 영혼이다.
“훗, 전보다 영혼의 순도를 이제는 더 높일 수 있게 되었군.”
태월은 그 빛나는 영혼의 구슬을 최 교수의 입에 물려주었다.
다행히 심장 박동이 크게 떨어지지 않아 들키는 일은 없었다.
영혼의 구슬을 물리자, 원래 수준의 심장 박동이 다시 그래프에 그려진다.
태월은 병실 밖으로 나와 고 실장과 아침을 먹었다.
“어떠시던가요?”
“음, 우리가 식사를 마칠 때쯤 깨어나실 겁니다.”
“네? 담당의도 언제일지 알 수가 없다고 했었는데요?”
“느낌으론 그랬습니다.”
“하하, 총재님이 농담을 다 하시고.”
“왜요? 아닐 거 같아요? 그럼, 이렇게 하죠. 식사 후에 병실로 가보는 겁니다. 어차피 가족은 만나보고 가야 되잖아요? 그때 의식을 차렸으면, 시장실의 직원들에게 고 실장이 커피를 쏘는 겁니다. 제가 지면 당사의 직원들에게 쏘고요.”
“하하, 괜히 이 핑계 대시고 당사 직원들에게 쏘고 싶으신 거군요. 제가 이길 수밖에 없는 내기이니 좋습니다.”
“후훗, 글쎄요. 사람 일이란 게 예측대로만 흘러가는 게 아니라서요.”
한 시간 후 고태석의 입은 벌어졌고, 그의 월급 중 30% 가까이가 커피값으로 나가게 돼버렸다.
“잠시, 할 이야기가 있으니 가족분은 자릴 비워줄 수 있겠습니까? 정치 이야기라서 듣기 불편할 겁니다.”
“호호, 이렇게 깨어난 것도 총재님의 방문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밖에서 기다릴게요.”
“하하, 제가 한 것은 없습니다. 깨어나시라고 손을 한 번 잡은 게 전부죠. 어쨌든 감사합니다.”
“아, 기도를 해주셨군요. 고맙습니다.”
최 교수의 아내와 고 실장이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던 의사가 최 교수의 아내에 의해 제지당했다.
“어? 깨나시긴 했지만, 검사는 다시 받아봐야 합니다.”
“그건 좀 안정을 취한 다음에 하도록 하죠. 그리고 안에 손님이 와 계셔서 소란 피우시면 안 됩니다.”
“아니, 손님이라뇨?”
“어쨌든 제가 보호자니까 해달란 대로 해주세요. 이런 일로 제가 원장님을 만나야 할까요?”
병원 원장이 앞에 있는 보호자에게 예의를 갖추던 모습을 봤었다.
자신이 억지를 부려본다고 먹힐 사람이 아니다.
“그럼, 30분 후 다시 오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태월이 기다리는 동안 최 교수가 눈을 떴다.
다른 이와 다르지 않게, 소생자인 최 교수는 그가 영혼의 주인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있을 땐, 최 교수님이나 최 후보자님이라고 하겠네. 이것도 조금 불편하군. 그냥 반존대 정도로 하지.”
“알겠습니다. 마스터!”
“몸은 전보다 건강해진 듯하네.”
“기억에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힘이 넘치는 건 사실입니다. 몸뿐만 아니라 정신도 좋아진 것 같습니다. 의욕이 샘솟는데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거니,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세상의 중심이 될 대한민국을 만들어 봅시다.”
“꼭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고 날 때의 기억은 돌아왔는가?”
“음, 똑똑히 기억합니다. 그 순간 비릿하게 웃고 있더라고요.”
“실수로 인한 게 아니라 의도적 사고였군. 누군가 후보가 되는 걸 방해하려는 거겠지. 자세히 조사해봐야겠군.”
-똑똑!
“흠, 담당의가 온 것 같네요. 나중에 시간 내서 따로 보기로 하고, 오늘 이만 가지.”
“네, 다음에 뵙겠습니다.”
최 교수를 그전에 몇 번 봤던 태월이지만, 그때처럼 존대하기는 어려웠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싸가지 없다 할 수 있으나, 영혼의 귀속이란 게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때처럼 계속 존대하다가는 그 영혼이 흔들리게 된다.
다만 정해진 상황에서의 존대는 이미 인지한 내용이라 가능했지만, 말하는 태월도 존대와 반말이 뒤섞이며 애매했다.
그렇게 최 교수와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범인은 그 자리에서 잡힌 거지요?”
“네, 자수 형식으로 도망도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자를 만나볼 수 있겠습니까?”
“총재님이 직접요?”
“아니요. 우리 쪽 정신과 의사를 하나 보내겠습니다. 정신적 문제가 있는지 알아야 해서요.”
“그럼, 손을 한번 써보겠습니다.”
그다음 날 묘한 의사 하나가 경찰서에 들렀다.
그리고 면회 신청이 이뤄졌고, 한 시간 후 그는 돌아갔다.
“저 자식 왜 저래요?”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거 아닐까?”
“꼭 딴 놈이 된 것 같잖아요. 더구나 변호사까지 바꿨고요.”
“혹시 몰라 거짓말탐지기까지 썼잖아?”
“그러니 이상하죠. 왜 거대 로펌의 변호사를 거절하고 국선변호사를 요구했을까요.”
“의뢰를 받아서 죽이려고 했다는데, 이거 정치권과 연결된 것 같단 말이지. 골치 아프네.”
“서장님께서 하신 말 못 들으셨어요? 자신이 책임질 테니 제대로 된 수사를 하라 하셨잖아요.”
“그러게, 늘 몸을 사리던 우리 서장님답지 않단 말이지.”
서장은 다친 최 교수의 뒷배를 알고 있었다.
그가 생각해도 민한당의 상승세를 누를 정치세력은 현재 없었다.
그쪽에 잘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청탁이 들어온 곳이 있었으나, 과감히 거부해버렸다.
이빨 빠진 늙은 호랑이보다는, 떠오르는 젊은 호랑이의 그늘이 좋은 것이다.
“최상국 교수의 교통사고가 살인미수였단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다행히 범인에게는 그자들과 통화한 음성파일이 있었습니다.”
“그럼 그자들은 잡았습니까?”
“현장에는 범인 외에 관련자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진행 과정을 감시하는 역할로 파악된 상태고요.”
태월은 아카에게 부탁해 그 시각 사고지점과 제일 근접하게 촬영했을 인공위성을 찾아내게 하였다.
그리고 그걸 통해 주변에 또 다른 자가 있었음을 밝혀낸 것이다.
그 이후 그자를 인공지능 슈퍼컴을 통해 인적 사항 조회까지 마쳤다.
그 자료들이 경찰서에 배달된 것이다.
그에 경찰들은 그의 집을 덮친 후, 그곳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된 단서도 찾아냈다.
“이유가 뭐랍니까?”
“정치권의 사주입니다. 참고로 최상국 교수는 탄핵이 결정될 경우에 등장할, 민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내정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당에서 그런 일을 사주한 것입니까?”
“그것에 대해서는 지금 함부로 말할 사안이 아닙니다. 이만 회견을 마칩니다.”
이 회견으로 대한민국은 뜨거워졌다.
그리고 최상국 교수에 대해서는 일반인들도 알게 될 계기를 마련해줬다.
“시장님! 북한에서 물건들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관련 업체에 연락해서 배정받은 대로 물량을 가져가라고 하세요.”
“가격 면에서 굉장히 경쟁력을 가진지라 다들 더 달라고 아우성칩니다.”
남북 경협을 통해 지하자원이 공동 개발되고, 그 광물들은 북한 자체에서 금속 및 비금속 제조업체를 통해 제조하거나 주조하였다.
그럼으로써 북한 경제에도 큰 도움을 주고, 남한에는 원가 절감이라는 경제적 이익을 부여해주고 있다.
“주한미군 용산기지도 잘 진행되고 있다고 하던데? 안전이 우선이라는 걸 항시 주지시키세요.”
“안전 감시원이 많아서 소홀한 업체는 이제 없습니다.”
태월이 내건 두 가지 주요 공약이 착착 잘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해를 넘겨 2017년이 3월 10일이 되자, 지루했던 탄핵 심판이 결정되었다.
8명의 재판관 전원 일치로 탄핵이 결정되었고, 이에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그리고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잡혔고 5월 9일로 정해졌다.
이에 정식 선거 운동은 4월 17일부터 투표일 전날까지가 되었다.
국회의원 의석 수에 따라 기호가 정해지기에, 민화당의 대통령 후보인 최상국이 기호 1번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작년에 있었던 최상국 교수의 살인 미수사건이 다시 조명을 받았다.
경찰과 마찬가지로 검찰에서도 민화당과 척을 지고 싶진 않았다.
2차 자료가 검찰에 도착했고, 그 안에는 관련 증거들이 펼쳐져 있었다.
검찰총장도 공정한 수사를 원했기에 정치권과 엮이지 않은 자들로 선별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TW 방송국에서 대대적인 포격을 가했다.
눈치를 보던 다른 언론들도 뒤늦게 그에 합류하였다.
“이제 어쩔 겁니까?”
“제가 물러나겠습니다.”
“혼자 물러난다고 다 해결됩니까? 그들이 가진 증거가 어느 선까지 나온 겁니까?”
-똑똑!
사무처 직원 하나가 헐떡이며 노크를 한 후에 바로 문을 연다.
“크, 큰일 났습니다. 검찰에서 당사 출입문을 차단했습니다.”
“뭐예요? 이것들이 감히!”
“그 뒤에 기자들까지 몰려와 있습니다.”
“무슨 일이라고 합니까?”
“얼핏 들으니 살인 교사라고 하던데요?”
벌떡 일어섰던 의원 하나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