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의 재능을 삼켜라-246화 (246/250)

246화. 촛불집회

태월이 평양으로 왔을 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 굳이 김정은을 찾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 희토류 광산인 덕달광산에서 살이 쫙 빠진 김정은을 보게 된 것이다.

그것도 포클레인 기사로 변신한 그를 말이다.

“하하, 안녕하십니까?”

“허이구, 제가 꿈을 꾸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몸이 많이 달라지셨습니다?”

“담배도 끊고 술도 거의 끊었지요. 하루에 한두 잔만 하고 있습니다.”

둘이 나누는 대화가 그대로 방송을 타고 나가고 있었다.

이례적으로 언론의 접근을 막지 않는 상황이 쭉 이어지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보이는 북한 지도자의 모습은, 남북 동포들의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

가식적으로 보는 남한 사람도 많긴 했으나, 설혹 그렇다고 해도 파격적이다.

“와, 김정은을 저리 편하게 대하는 우리의 서울시장 포스 보소! 직이네!”

“근디 김정은 쟈는 약이라도 먹었나? 노동자 코스프레네. 근디 포클레인은 또 언제 배웠다냐?”

“야, 이러다 진짜 우리 통일까지 가는 거 아니가?”

“에이, 쟈덜이 필요한 게 있으니 저라는 거겠지. 설마 진심이것냐?”

“그런데 다이어트를 했나 보네? 저리 변했다고? 무슨 약일까?”

반신반의하며 북에서 넘어오는 실황을 보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이다.

남북 경협단 취재에는 외국 기자들도 섞여 있다 보니, 이 상황도 전 세계에 보도되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북한의 저의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터라, 정보계통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북한의 지하자원이 7,000조 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는데?”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북한의 지하자원의 가치가 1경 1,700조 원에 달한다고 발표했거든요.”

“보는 시각에 따라 달리 계산한 거지. 어쨌든 최소 남한 지하자원 가치의 약 24배에 이를 만큼 굉장한 수치이긴 해.”

북한엔 총 728개의 광산이 존재하고, 이들 중에는 한국이 선정한 10대 중점 확보 희귀금속인 텅스텐과 몰리브덴도 매장돼있다.

“순도는 어때?”

“채취해서 기술자들에게 건네줬어요.”

헬멧을 삐딱하게 쓰고 있던 아떼는 옷을 툭툭 털며 태월을 째려본다.

“그 눈빛은 뭐냐?”

“쉬지 않고 일을 시키니 그렇죠!”

“그럼, 너 혼자 남아서 천천히 조사할래? 우린 곧 서울 가야 하거든!”

“에이, 알았어요! 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둘은 어디 갔어요?”

“너처럼 일하고 있지. 하여간 며칠만 더 고생해.”

“어휴, 알았어요.”

그렇게 아떼와 키토 그리고 더지는 열흘 내내 북한의 땅속을 뒤지고 다녔다.

그렇게 모인 자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자원지도를 만들었다.

북한에서도 밝혀지지 않은 자원이 묻힌 곳도 7개나 포함되어 있었다.

북한에서 보름 정도를 보낸 태월과 경협단은 마지막으로 협정서를 체결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판문점을 거쳐 귀환했다.

경협에 대한 내용까지 공개된 상태였기에, 여론은 우호적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그들의 차량을 발견한 시민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를 보냈다.

대통령과 정부가 할 일을 서울시장이 해냈으니 여당 입장에서는 난감한 상황이다.

더구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줄줄이 조사받는 와중에 벌어진 일이다.

“큰일입니다. 중진의원들이 이번엔 빠져나오기 힘들 듯합니다. 검찰이 가진 자료가 너무 완벽합니다.”

“대체 그 자료는 어디서 튀어나온 겁니까? 검찰 인사에게 물으니 배달되어 온 거라고 하던데. 누군가 우릴 표적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네요. 빼돌리기도 힘들어졌어요. 언론사에도 같은 내용이 전달되었다고 합니다. 특히나 TW에 방송국이 존재하니 갑갑할 뿐이네요.”

“박 시장이 그랬겠죠. 민한당을 걸고넘어졌다는 것에 반격한 거로 보이는데, 우리에게 타격이 너무 큽니다. 이번엔 우리가 미숙했고요.”

“이러다 보궐선거를 치를 수도 있습니다.”

국회의원이라도 실형을 확정받을 시 보궐선거를 시행한다. (공직선거법 제200조 1항)

다만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궐원 통지를 받은 후 10일 이내에 소속 당의 순위에 따라 승계가 된다.

“구제가 어려운 의원들 명단을 작성해주세요. 이번에 우리 당이 살아남으려면 그들에게 탈당을 권유해야 합니다.”

부동산 비리 혐의로 60명에 가까운 국회의원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자진 탈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여당 의원 숫자가 123명이었는데, 35명이 빠져버린 것이다.

민화당 90명 의원보다 숫자가 더 적어져, 의결권으로는 민화당이 제1당이 돼버린 황당한 사태가 벌어졌다.

“우리가 2표가 더 많아졌네요. 헌정사상 특이한 일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될 거 같습니다. 다행히 그들에 비해 우리 의원은 증거가 미비하여 빠져나왔을 뿐입니다. 허나, 앞으론 이와 같은 일은 없어야 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다들 자중시키겠습니다.”

시간이 지나 태월이 서울시장이 된 지 15개월 만에 새로운 사건이 생기려 했다.

“총재님! 대통령을 저대로 둬도 괜찮겠습니까? 비선 실세에 국정 개입이라니! 세월호 사건도 제대로 반성하지 못하고 있고요.”

“언론에서 뭔가 터트릴 분위기입니다. 굳이 우리가 나서서, 국민에게 정권 대립처럼 보이게 해선 안 됩니다.”

대통령에 관해 언론에서 기묘한 움직임이 있었다.

이것은 태월이 의도한 바가 아닌 사건의 흐름일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10월이 되자, 언론에서 민간인의 국정 개입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에 따라 증거물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으며, 눈치를 보던 다른 언론에서도 포격을 가했다.

이미 여당도 힘을 잃어 제1당에서 후퇴한 상태니 더는 겁먹지 않은 것이다.

국민들의 분노는 점점 거세지며 이들을 광화문 광장으로 불러들였다.

이에 민화당에서도 제일 먼저 팔을 걷어붙이며 시민들과 같은 촛불을 들었다.

간간이 방송 카메라가 태월을 비췄지만, 연단에 서서 시민들을 선동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묵묵히 민화당은 촛불만 들 뿐이다.

12월이 되자 그 불길은 꺼지지 않고 더욱 거세졌다.

100만이 넘는 촛불이 대한민국을 뜨겁게 태우고 있었다.

전국으로는 200만 명이 넘는 대인원이었다.

결국 민화당을 중심으로 야당이 결집하고, 11월 24일에 탄핵안 발의를 논했다.

그리고 12월이 되자 표결까지 들어갔으며, 이미 과반수 의석을 넘어선 상황이라 그게 그대로 통과되었다.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이 소리만 귀에 울리네요.”

“국민의 81%가 탄핵에 찬성하는 상황이니, 결과는 나온 겁니다.”

12월 17일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판 준비에 들어갔으나 여전히 촛불집회는 열렸다.

그래도 촛불 숫자가 점점 줄어드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국민들이 기다리고 있어서다.

“거의 3달은 예상해야 할 겁니다.”

“문건만 10만여 장이라니, 빨리 끝날 일은 아니죠. 그런데 그쪽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들었습니다만.”

“탄핵 이후 19대 대통령 보궐선거 때 우리 당을 밀어주겠다는 소리를 하더군요.”

“미쳤군요. 같이 망하자는 소리도 아니고.”

“만날 이유가 없다고 거절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참에 썩은 고목들은 정리해야지요.”

“탄핵이 결정되고 나면 보궐선거를 하게 될 건데, 저희 쪽은 안 나섭니까?”

“추천할만한 인사가 있습니까? 거론되는 분들이 있다면 제게 정리해서 올려주세요.”

“네, 이틀 내로 작성하겠습니다.”

태월은 이미 보궐선거를 예상하기에, 다음 대 대통령을 맡을 몇몇 인물을 머릿속에 그려놨다.

그리고 아카의 도움까지도 받으며 그들을 재검증하였다.

“55세 최상국이라….”

“재야의 인사이긴 한데, 정치 쪽으로는 과거에 국회의원을 한 적이 있어. 썩은 내가 진동한다고 개탄하면서 탈당을 했지. 그리고 그다음 선거에는 나서지 않고, 후학을 양성하며 지내고 있어. 곧기만 하진 않고 자신을 굽힐 줄 아는 성격이라. 나쁘진 않을 거야.”

“흠, 한번 만나봐야겠군.”

아카와의 대화가 끝난 이틀 후 태월에게 보고서가 넘어왔다.

정확히 조사해서 올린 거라기보단, 다양한 인물에 대해 수집해 온 형식이었다.

‘훗, 마지막 장에 최상국이 들어있긴 하네. 마음의 부담을 덜었군.’

태월은 다음 날 가면을 이용하여 용모를 바꾼 후, 최상국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곳인가?”

대학의 교정을 가로질러 그가 있다는 강의실로 향했다.

20대 중반의 복학생 복장으로 변한 태월이다.

정치학 강의를 들으려고 모인 학생들 사이에 태월이 슬쩍 앉았다.

50대 중반의 교수가 등장하자, 다들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는 분위기다.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는 편이군. 그리고 영혼도 나름 밝은 편이고.’

정치학 개론을 강의하던 중에 학생 하나가 대통령 탄핵과 보궐선거에 대해 질문을 한다.

그리고 선거의 부조리에 대해서도 의견을 묻고 있었다.

“선거는 과연 공정한가? 에 대해 일주일 후 리포트를 제시하기를 바랍니다.”

“교수님! 너무해요. 리포트라니.”

“뽑아줘도 다 헛짓만 하던데, 기권도 자기 권리 아닐까요?”

과제를 받게 되었다는 소리에 학생들이 성토를 했다.

그 와중에 학생 하나가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단테의 말이 생각나는 의견이군. 기권은 중립이 아니다. 바로 암묵적 동조다! 무관심은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뽑을 사람이 없는데도요?”

“이번엔 두 사람의 말이 떠오르는군요. 나쁜 관료들은 투표하지 않는 좋은 시민에 의해 선출된다. 조지 네이선의 말이죠.”

“아, 그럼 다른 하나는요?”

“선거란 누구를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를 뽑지 않기 위해 투표하는 것이다. 프랭클린 P.애덤스의 말이죠. 최악일 바엔 차악이라도 뽑아야겠죠?”

태월은 최상국이라는 교수가 학생들과 나누는 대화나 사고관이 꽤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한 달 후 민화당의 원외 대표는 최상국 교수와의 면담을 몇 번 가졌다.

대통령 퇴진을 바라는 국민의 열망이 점점 강해지자, 헌법재판소도 시간을 질질 끌 수 없게 되었다.

탄핵이 될 분위기가 돼버리자, 여당 중진들 몇몇이 모였다.

“이거 방법이 없겠습니다. 헌법재판관들도 이미 우리에게 등을 돌렸다고 봐야 합니다.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겠죠.”

“이거 우리 당이 사라질 위기입니다. 같은 당이니 우리 또한 민심에서 지워질 겁니다.”

“이게 다 민화당 때문입니다. 젊은것들이 정치를 제대로 몰라서 밀어붙이기만 하니, 나라를 망치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과거에 우리 당에 손가락질하며 탈당했던 최상국에게 민화당이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허, 엎친 데 덮친 격이군.”

“손을 써야지 않겠습니까? 전에는 했던 일입니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익명으로 진행하는 일입니다. 공사하는 놈도 우리가 누군지 모르게 됩니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죠. 또한 흔한 교통사고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음모가 꾸며지고, 보름 후 어느 비 오는 날이었다.

-끼이익! 쾅!

빗속에서 대형트럭이 미끄러지며, 흰색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띠리링! 띠리링!

잠결에 태월은 쉬지 않고 울리는 전화를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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