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신당 민화당
TV토론회 당일 저녁 지지율 조사가 이루어졌고, 기호 3번이 51%로 과반수를 넘겼다.
기호 1번이 28%를 그대로 유지했지만, 기호 2번은 20%로 곤두박질쳐졌다.
첫 TV 토론회가 지나고 다음 날 저녁 7시, 기호 1번과 2번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통합을 발표했다.
토론회에서 태월에게 통렬히 까인 기호 2번의 지지율이 급락하였고, 그에 통합의 승부를 던진 것이다.
기호 2번이 사퇴하면서 기호 1번에 지지를 호소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한국 정치사에 보기 드문 일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합의를 이룬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기호 1번 정 후보의 아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국민이 미개하다.’는 내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그의 아내는 선거법 위반과 아들 발언 옹호로 추가타를 날려버렸다.
태월의 가족은 선거 운동에 나오지 않았고, 간간이 조민희만 얼굴을 내비치고 있었다.
“지저분하게 가족 이야기를 네거티브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젠 여동생분 이야기까지 꺼냈습니다.”
“그냥 두세요. 최근엔 회사 세금 문제를 꺼내려다가 틈이 없으니 물러났잖아요?”
“국정원에서 국가보안법위반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내가 간첩도 아닌데, 해보라고 하세요. 미국과 러시아가 연관된 일이기에 함부로 경거망동 못 할 겁니다. 그 정도로 간 큰 직원은 그곳에 없잖아요?”
태월과 척을 지기엔 정부도 상당한 부담이었다.
막말로 태월의 BTR을 감당하지도 못하거니와, TW그룹 또한 정부의 입김이 들어가지도 않는 곳이다.
오히려 두 그룹으로 인해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상태에서 무리수를 둘 공직자는 없었다.
그 와중에 두 곳에서 한국을 방문했다.
“정말 한국에 디즈니랜드를 세울 예정입니까?”
“그렇습니다. 결과야 더 지켜봐야겠지만, 박태월 회장이 승리한다면 당연히 계약에 의거 합자가 진행될 것입니다.”
“이런 전례가 없었는데요. 테마파크의 양대 산맥인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디즈니와 같은 곳에 세울 생각이십니까?”
“뭐, 최초란 것은 항상 존재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또한 디즈니와 이곳에서 공존할 생각입니다.”
두 회사의 중역이 이곳에 오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RAON에서 장에 나온 두 곳의 주식을 전량 매입한 상태고, 그 후 마음만 먹으면 적대적 M&A도 하겠다는 엄포도 있어서다.
서울 시민들은 태월의 공약 중 경협이니 종전이니 하는 것은 국가적 시책으로 본다.
그러나 용산 주한미군 기지는 의미가 달랐다.
서울의 중심 위치에 죽어있던 땅을 개발하는 일이다.
그것도 지상 92만 평뿐만 아니라, 그에 3배에 해당하는 지하도시 건설 계획도 알려졌다.
총 350만 평에 해당하는 대단위 공사였다.
그 여파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는데, 그걸 연간 수억 명이 방문할 테마파크로 만든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공존시키는 것만 해도 세계의 화제가 될 것이다.
기호 1번의 공약은 그에 비하면 별거 아닌 셈이다.
“태월 이쯤에서 상장해보는 게 어떨까 해? 규모가 커질수록 태월을 향한 음모는 줄어들 거야. 너무 폐쇄적이긴 했잖아?”
아카에게 걸려온 위성을 통한 영상통화였다.
“한국의 경제가 여전히 주춤대고 있으니 도움은 되겠네. 어머니와 한번 상의해볼게.”
TW그룹도 규모가 그룹일 뿐이지 개인기업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태월이 꺼낸 의논에 조민희는 쌍수를 들어 환영을 표했다.
“아유, 그동안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여기저기 압박이 심했어. 호호, 이거 상장하면 TW만 해도 10배가량 규모가 커질 거야. 아마도 한국 내 서열 1위는 따라잡을걸?”
“제가 무심했네요. 그럼 상장하는 걸로 하죠. 세계 경제도 끌어 올리려면 TW, RAON, BATR, BTR 전부를 상장하도록 할게요.”
“그래, 우리 열심히 달려왔잖니? 나도 조금 지쳤다.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게 나을 수 있어.”
“후훗, 네 저도 종종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비밀을 요하는 기술 관련은 풀 순 없지만, 나머진 이대로 순리대로 흐르게 하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이제 핵도 사라져 불안의 시대는 아니잖아요?”
“그래, 너도 이번에 원하는 대로 잘 마무리해봐. 종전까지 끝내면 통일이 한층 더 가까이 오게 되잖니.”
조민희가 모르는 것이 북한 상황이다.
이미 태월에 의해 김정은은 통일 작업을 시작하고 있는 거와 다름없었다.
통일을 반대하는 중국도 허물어졌고, 러시아나 미국은 BATR와 RAON에서 정계에 영향을 행사할 것이다.
일본이야 여당의 총수인 사토 유마가 있으니, 반대 의견을 조용히 누를 수 있다.
그날 이후 4개의 회사에서는 비밀리에 상장을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선거 운동도 막바지에 다다랐고 갈수록 지지율은 벌어졌다.
미리 계획된 2차와 3차의 TV 토론회도 엉뚱한 핑계를 대며 거부하는 바람에 이뤄지지도 못했다.
이틀에 걸친 사전 투표도 있었는데, 기호 1번 진영은 좌절을 겪었다.
출구조사에서 75% vs 22%라는 일방적인 결과가 나온 것이다.
드디어 2014년 6월 4일, 제6차 전국 동시 지방투표가 진행되었다.
이미 기호 3번의 당선을 예상했던 일인지, 오히려 기호 1번 진영은 담담했다.
서울시장 선거를 제외하곤 박빙의 곳이 많았으나, 국민들의 관심은 서울시장 결과에 가 있었다.
당연히 될 줄은 알지만, 과연 어느 정도 표를 결집했을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하, 이거 역대 신기록을 넘어섰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전무후무한 기록일 겁니다.”
태월은 일찌감치 밤 8시가 되자 귀가했었다.
그리고 아침 8시에 선거 본부로 느긋하게 복귀했다.
선거 결과는 아샤가 알려준지라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다.
축하의 키스도 받았고, 그날따라 일찍 일어난 아이들의 뽀뽀도 선물 받았다.
“하하,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아이고, 이렇게 일방적인 선거 운동은 저희도 처음입니다. 81%라니요. 이대로 대통령에 도전하셔도 차고 넘칩니다.”
“에이, 이봐 김 사무장? 우리 시장님의 나이가 그에 모자라서, 어쩔 수 없이 시장에 도전한 거 모르고 이러나?”
“하하, 본부장님! 당연히 알지요. 농담입니다. 농담! 어쨌든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당선! 축하드립니다!”
-팡! 팡! 팡!
어디서 준비했는지 샴페인을 사방에서 따고 있었다.
커다란 축하 케이크도 들어오고 선거 본부 진영은 축제 분위기다.
태월도 나가서 당선 축하 인터뷰를 하느라 바쁜 하루가 되었다.
그리고 서울시장 당선 이후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일을 보름간 하게 되었다.
그리고 6월 20일이 되었을 때, 세계의 주식시장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7월 1일에 한국의 TW의 계열사 9곳, 미국 RAON의 계열사 11곳, 미국 BTR의 계열사 7곳, 러시아 BATR 계열사 8곳이 주식시장에 동시에 상정된 것이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RAON과 BTR 그리고 BATR의 계열사 26개가 상장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주식시장에는 TW 그룹 9개가 상장되었다.
상장하긴 했어도, 지분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는 그들이다.
그리고 주식시장에 매물이 풀렸지만, 그것은 20%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주식은, 세계 주식시장의 상승에 기폭제 역할을 해주었다.
시가 총액으로는 이미 RAON이 세계 1위를 차지하였으며, BTR이 2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BATR는 세계 9위며, TW가 15위로 올라섰다.
BTR이 2위인 것은 계열사의 숫자가 적어서 총합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발전성은 오히려 BTR이 앞서고 있다.
이들 계열사들은 적게는 9배에서 많게는 15배로 자산 규모가 커져 버렸다.
RAON의 상장으로 세계 1위 다국적 기업으로 우뚝 서자, 미국에 끼치는 영향력은 대단해졌다.
곧바로 태월의 공약이던 용산 주한미군 기지에 영향을 미쳤다.
“시장님! 주한미군 사령부에서 전문이 왔습니다. 1천억의 토지 정화 비용을 내며 완전 이전 기간을 반년 내로 줄이겠다고 합니다.”
“뭘 착각하는 듯하네요! 이제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할 시점입니다. 원래 주한 미군의 주둔 이유가, 그들의 의정 보고서에도 나왔듯이 중국의 견제였습니다. 이제 중국은 그럴 힘도 없잖아요? 그리고 핵무기도 사라진 상황에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없습니다. 경기지사와 식사 약속을 잡으세요. 평택도 아깝습니다.”
“아, 그,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해보겠습니다.”
핵무기가 사라졌고 중국이 유명무실해졌는데도, 정부에서는 그걸 제대로 바라볼 줄 아는 이가 드물었다.
너무 긴 시간 외세에 의존했던 탓이다.
“대한민국 스스로 자신들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군! 이 정도로 우리가 받쳐줬으면 정부는 치고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아, 답답하네.”
서울시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태월은 그날 저녁 경기지사를 만나 현재 국제 상황을 정확히 지적해나갔다.
“우리 전부가 우물 안 개구리였군요.”
“지금 여야 따위로 파벌싸움이나 할 때가 아닙니다. 한 민족이 도약해야 할 시기입니다. 이를 놓치면 역사책에 멍청했던 정치가들로 기록될 것입니다. 미국, 러시아, 일본이 우리를 압박하지 못하는 시기입니다.”
“미국과 러시아는 박 시장님과 연관이 있지만, 일본은 왜?”
“오래전부터 지금의 여당 총재인 사토 유마를 밀어주고 있었습니다.”
“아, 그래서 그가 친한파의 수장인 것이군요.”
“평택에서의 주한미군 기지 건설도 백지화해야 합니다. 그들이 그곳에 있을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고 보니 그렇게 되네요. 과거의 협약은 현재 무의미하네요. 우리가 참 안일했네요.”
“미 의회를 움직일 테니, 남 지사님은 민족을 생각하는 제대로 된 정치가를 모아주세요. 제가 종전협약을 끌어낼 테니, 통일의 시작점을 같이 만들어 봅시다.”
“아, 역시! 글로벌 회사의 총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군요. 우리 민족의 염원인 통일! 그 이야길 들으니 힘이 불끈 솟습니다. 불도저 같은 박 시장님의 곁에서 그 염원을 이뤄보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같이 나아가 봅시다!”
경기지사가 움직이고 태월의 AI 슈퍼컴퓨터가 적합 정치인들을 솎아내기 시작했다.
당파를 떠나서 마음이 움직인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 일로 여야가 술렁이고 있다.
자신들의 계파에서 젊은 사십 대에서 오십 초반 세력들이 대거 이탈하는 것이다.
“기존의 정치세력으로는 민족의 화합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가 있는 것이고요. 투표 결과 당명은 민화당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민주 화합당이 아닌 민족 화합당이다.
“총재는 박 시장님으로 결정되었고, 제가 준비 위원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당사는 TW 회장님의 개인소유 건물 중 하나를 4년간 무료 임대로 쓰게 되었습니다. 이에 TW 그룹 회장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하하, 당 준비가 이렇게 착착 진행되니 힘이 더욱 나는데요?”
“하하하, 우리 제대로 해서 역사에 부끄러운 인물은 되지 맙시다!”
당원들이 된 여야의 소장파 의원들과 지자체장들이 모여 창당에 대해 결의를 하고 있었다.
태월은 그 자리에 없고 다른 일을 보는 중이었다.
사흘 후 정식적으로 신당이 설립되자, 언론이 들끓었다.
그리고 기존의 여야에선 긴급회의까지 열리며 정계를 바짝 긴장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