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
태월도 의사긴 하지만, 김정은의 몸은 처음 대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지병에 대해서는 자세히 몰랐다.
태월보단 그의 주치의가 백배 나을 것이다.
“내 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으려나? 이봐! 내 말이 들리나?”
“......”
눈꺼풀을 들어 눈동자를 확인한 태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흠, 의식은 있는 거 같은데. 여기 주치의를 불러봐.”
“그는 조심성이 많아서 의심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상황 봐서 영혼을 새로 바꾸도록 하지.”
지금은 순리대로 풀 수 없다고 생각하는 태월이다.
비서인 줄 알았던 그녀는 간호사였다.
그녀가 밖으로 나가 주치의를 데리고 왔다.
6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자였다.
간호사에게 이야기를 들었는지 우선 김정은을 살피고는 그에게 주사를 놔준다.
“쇼크가 생겨서 그렇습니다. 금방 의식을 차릴 것입니다.”
태월이 아닌 리병혁에게 하는 말이다.
리병혁은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고 5분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가 깨어났다.
“나가 보기요! 중대한 대화를 하던 중이었소.”
“알갔습네다. 일이 생기면 곧바로 불러주시라요.”
“알갔소!”
주치의만 나가고 간호사는 남았다.
“내가 누군지 알겠어?”
“느낌으론 영혼의 주인이신 거로.”
“그래. 앞으로 개인적으로 있을 땐, 마스터라고 부르면 된다.”
“네, 마스터!”
“몸은 이제 괜찮아? 원래 있던 영혼을 내보내느라 좀 무리했어. 그 몸의 기억이 영혼에 흡수되었을 텐데. 전부 기억이 나나?”
“네, 꼭 제 몸이라고 여길 정도로 일체화되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엉망이지?”
“네, 이래서야 얼마를 버틸지 모르겠습니다.”
“정 안되면 다른 몸에 넣어줄 테니, 불안해할 건 없어. 이제 네게 해야 할 일을 지시하도록 하지.”
“네, 마스터!”
태월은 김정은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해나갔다.
그의 협조자로 리병혁을 삼도록 하고, 간호사인 그녀를 비서처럼 쓰기로 했다.
“일은 그렇게 하도록 하고, 이제부터 술과 담배를 끊어! 할 수 있겠지?”
“제가 오래 버티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운동도 병행하겠습니다.”
김정은은 알려진 대로 꼴초에 주당이었다.
심리적 압박감을 받을 때마다, 그는 담배와 술에 더욱 의존했다.
기름진 음식도 이제는 삼가야 할 몸 상태다.
태월은 비상 연락망을 위해 김정은과 간호사에게도 위성 전화를 하나씩 주었다.
위급상황에선 간호사가 전화해야 할 일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양에서의 일을 끝내고 태월은 사흘 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며칠 후 대한민국 국민은 경악 속에 시끌시끌 벅적했다.
네이처의 비공식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박태월이 노벨상 4개 부문의 후보라는 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2관왕을 차지한 후보는 있었어도, 4개 부문은 전례가 없던 일이다.
물리학상, 화학상, 평화상, 경제학상.
경제학상은 일명 노벨 기념상이라 불리며 알프레드 노벨이 유언으로 정한 상은 아니었다.
노벨상 중 가장 늦은 1969년부터 시작된 상이다.
매년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10월에 시상되지만, 노벨평화상 시상식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렸다.
그와 맞물려 언론은 일제히 박태월을 조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서울시장에 무소속으로 입후보한다는 기사까지 내놓았다.
“여야가 꽤 당황했나 봅니다. 건들지 말아야 할 집안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선거에 건들지 말아야 할 성역은 없습니다. 그리고 굳이 변명하고 싶지 않고요. 사실인 부분에 대해선 인정을 하고 넘어갑시다.”
“후보님! 그건 너무 안티가 많아집니다. 특히나 여성단체에서 들고 일어날 겁니다.”
“왜죠? 시작은 이혼한 거고, 그 후에 다른 여인과 결혼한 거잖아요? 이혼 후에 보살피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그것만이 아닙니다. 한때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고 있었잖습니까?”
“그게 뭐가 문제죠? 지금은 한국 국적이잖아요. 이중 국적이 안 된다길래 러시아 국적을 포기한 것입니다만.”
-짝짝!
“잠시, 우리가 지금 중요한 걸 잊고 있습니다. 공격하고픈 건 하라고 하는 게 맞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공약대로라면 잠재적 전쟁위험이 사라지고 국민의 질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그 이슈가 그 어떤 것보다, 더 서울 시민에게 다가올 겁니다. 모든 표를 다 얻을 생각이 아니라면, 우리의 장점만 부각시키면 되는 일입니다. 더구나 노벨상 4개 부문입니다. 사실 대통령 공약에 걸맞은 거지만, 아쉽게도 서울시장 공약에 쓰고 있는 셈이지만요.”
선거본부장을 맡은 최태화가 손뼉을 치며 주위를 상기시켰다.
“내 생각도 선거본부장과 같습니다. 우리는 공약을 실천할 수 있다는 걸 증명만 해주면 됩니다. 다들 그렇게 알고 전략을 짜보세요.”
투표 한 달을 남긴 서울시장 여론조사에 의하면, 3명의 유력 후보 중 태월은 1위를 달리고 있었다.
부동층이던 2030에선 태월에게 몰표를 던졌으며, 4050에선 2위를 60대 이상에서는 3위다.
태월은 35%에 달하는 아슬아슬한 1위다.
2위가 33%, 3위가 28%였다.
2위와 3위가 합쳐지기도 어려운 것이, 둘은 서로 경쟁하는 여당과 제1야당이었다.
그렇게 다들 예상했다.
그리고 후보 등록이 끝났고 태월은 기호 3번이 되었다.
첫 서울시장 후보 TV토론회가 있었다.
식당에서는 반주를 걸치면서, 오랜만에 만난 30대 동창생 몇몇이 그걸 보고 있다.
“서울시장 TV토론이 공략 이야길 하다 말고 네거티브전이 돼버렸네.”
“처음엔 둘이 싸우더니 중반부터는 기호 3번 공격에 집중하네.”
이들이 박 후보라고 칭하지 못하는 것은, 후보 둘이나 박씨 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참, 전부 한심한 놈들이네.”
“야,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하자. 기호 3번은 비난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사실인 건 사실이라 하잖아. 저런 정치인이 언제 있어는 봤냐?”
“그런데 부인이 둘이잖아!”
“하나는 전처고! 전처 책임지는 거에 굳이 우리가 왈가왈부할 거나 있냐? 그리고 설혹 둘이면 어때서? 자기 돈 가지고 저러는 건데.”
“너 사진도 봤지? 이야, 세계 미스월드는 상대도 안 되겠더라. 그런 여자를 둘이나?”
“하하, 이 자식 인제 보니 질투구나! 에이, 그런 건 우리가 질투 안 해도 여성단체서는 난리잖아.”
“그런데 진짜 기호 3번 공약이 사실로 되려나? 미군기지야 뭐, 돈으로 가능하니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남북경협을 서울시장이 할 수 있다고? 더구나 정전협정? 60년간 대통령과 정부가 덤벼도 안 되고, 나아가 UN과 미국이 압박해도 안 되는데? 서울시장이 4년 임기 동안 가능해? 난 저건 좀 황당하더라. 나이가 젊어서 의욕만 넘쳐 그런가?”
“맞아! 정전협정? 그거만 돼도 대한민국의 국위가 확 상승할 거야. 외국 투자와 관광객도 확 늘 거고.”
“그거뿐이겠어? 국방비 지출이 줄 테니 그것만 해도 얼마냐? 더구나 노벨상 4개 후보야. 세계의 역사적 인물로 남지 않겠어?”
“어? 그런데 저 기호 3번 뭘 하는 거지? 자기 대변 시간에 웬 대형 모니터야?”
이동식 초대형 모니터가 들어서고 있었다.
이 정도 큰 사이즈는 현재 생산이 되지 않고 있다.
150인치짜리 초대형 모니터였다.
태월이 모니터로 화면을 켜자,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등장했다.
사방에서 헛숨을 들이켰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안녕하십니까? 남조선 여러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리병혁 경협단장입니다. 이 방송은 RAON의 위성을 통한 실시간 중계입니다. 오늘 이렇게 얼굴을 비춘 것은, 러시아 BATR와의 자원 공동개발이 BTR로 이전되었음을 알려드리기 위해섭니다. 또한 이를 통해 서울과 평양 간의 경협이 진행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놀라셨지요? 제, 서울 말씨가 어떻습니까? 뒤에서 위대하신 분이 째려보는 관계로 뒤로 빠지겠습니다.”
북한군 소장의 계급장이야 알아볼 사람이 흔치 않았지만, 갑자기 북한군이 등장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말의 끝에 위대하신이란 칭호까지 사용되었다.
그리고 누군가 단상으로 나오는데 보는 모든 이들이 경악에 찬 단말마를 질러댔다.
“반갑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력 최고사령관 김정은이오. BTR과 BATR 그리고 RAON에서 손길을 내밀어준 것, 잊지 않겠소이다. 이번 평양 서울 간 경협과 원조가 언약 그대로 진행된다면, 나 또한 한민족의 숙원의 첫발인 정전협정에 응할 의도가 있음을 선언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좋은 낯으로 다시 볼 것을 기대해봅니다.”
그리고 화면이 꺼졌다.
오랫동안 아나운서를 맡아왔던 사회자도 당황스러운 표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미국의 RAON이나 러시아의 BATR 회장이 나와서, 이번 경협공약을 이룰 수 있다고 언급해주는 정도일 거로 봤었다.
“잠, 잠깐요. 이거 적대국 내통죄 아닙니까? 국가보안법 위반이고요!”
기호 2번인 박 후보가 태월을 향해 따지고 들었다.
“러시아 BATR가 계약한 걸 BTR가 맡은 것입니다. 개성공단에 들어가는 기업들도 다 내통죄입니까?”
“그건 북한에서 그곳을 개방했고 국가 간에 협약에 따랐기에 허용된 것입니다.”
“북한에서 방금 허용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개성공단의 경협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 참고로 BTR의 본사는 한국이 아닙니다. 정확히 아시지도 못하면서 일단 물어뜯고 보는 게 지금까지 배우신 정치입니까? 아직도 과거의 고지식한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십니까? 그 막힌 사고로 세계를 아우를 허브 서울을 만들겠다고요? 지하철 차량을 바꾸고 숫자만 있는 주택을 잔뜩 건설해서 말이죠? 그래서 뭐가 얼마나 바뀝니까?”
“이, 이이….”
“서울 시민 여러분! 지루하지 않습니까? 설혹 이 두 후보자분이 공약을 절반쯤 이룬다고 해도, 여러분들에게는 와닿는 것이 별로 없을 겁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이뤄내고 민족의 화합을 이끌 정도는 돼야, 살맛이 나는 서울이 되지 않을까요? 적의 공격 한 방에 이곳이 날아갈 수 있던 땅입니다. 그런데 저의 공약의 반만 된다고 해도, 서울이란 곳이 얼마나 평화롭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욕심이 큽니다. 반이 아니라 90% 이상은 이룰 생각입니다.”
발언 시간이 초과하였음에도 태월의 말은 방송되었다.
그것은 태월의 영혼 에너지가 끊긴 곳을 이었기 때문이다.
불과 30초 정도의 발언이었지만, 그 반향은 대단했다.
기호 1번은 입만 껌뻑일 뿐, 항의도 하지 못했다.
기호 2번 같은 구시대 인물로 비치기 싫었던 이유도 있었다.
“방송상 실수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발언 시간에서 30초를 더 넘겼습니다. 다음 발언에서 그만큼 시간을 빼겠습니다.”
사회자의 발언에도 두 후보는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김정은의 등장이 너무 파격적이라, 자신들의 공약이 태양과 반딧불 차이로 여겨져서다.
“우와! 나 지렸어! 기호 3번 스케일 봐라! 김정은이 왜 나와!”
“진짜, 미친 거 아냐? 서울시장 뽑는데, 정전협정이 진짜 이뤄질 수도 있단 거잖아?”
“우와, 나 북한 미녀들과 결혼해?”
“에라이! 지금 이 와중에 노총각 티 내냐?”
“나 오늘부터 기호 3번 찐팬이야! 이대로 대통령도 가자!”
“대통령은 40살이 넘어야 하거든?”
“이런, 쉬팔! 그거야 법을 뜯어고치면 되는 거지! 선거권 나이도 고친 마당에 그게 대수야?”
“그런데 김정은 저누마, 살이 좀 빠진 거 같지 않냐?”
“몰라! 내가 원래 몸매도 모르는데 그런 그거까지 어찌 아냐? 그런데 저렇게 서울말 비스무리한 말투를 써도 되나? 그것도 최고 통치자가?”
“쟈는 원래 유학파라서 전부터 북한 사투리 그리 안 썼잖아.”
그날은 온 국민의 대화 소재가 김정은과 정전 이야기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의외의 상황이 생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