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모여든 용병들
태월의 입에서 험한 말이 나오기 시작한 건, 세계적인 테러 단체들이 움직였다는 소리 때문이다.
화상 속에서 아카가 분주히 손을 놀리고 있다.
“그래서 그걸 사주한 놈들이 누군데?”
“다 밝혀진 건 아니지만, 석유 시장을 잡고 있던 거대기업들도 있고.”
“그리고?”
“그들 외에 국가도 끼어있어. 특히 중동과 중국!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고 있어.”
“우리가 우스운가 보네? 각국 정보기관도 알고 있겠지?”
“재확인 차원에서 그들 정보도 내가 들여다봤지. 역시 알고 있더라고. 그리고 몇몇은 태월 가족까지 노리고 있어. 정상적 움직임은 아니야.”
“이런 개xx들이 누굴 노려?”
“진정해! 먼저 빌미를 줘선 안 돼!”
“그럼 당한 다음에 하잔 소리야? 그게 네가 할 소리야?”
“태월, 진정해.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릴렉스.”
“휴, 말해봐. 어쩌잔 거야.”
“우리 주특기 하나 있잖아. 변신! 불의 정령들을 가족들로 변신시켜! 그리고 당하는 걸 보여주는 거지. 어차피 그 정령들은 그따위 공격에 죽지 않잖아.”
“아, 괜찮군. 그럼 그 후에 제대로 보여주잔 거지?”
“그렇지, 다신 BTR을 건들지 못하게 본보기를 보이는 거야. 아예 세계가 경악하도록 박살을 내보자고. 일단 식구들은 별장으로 가는 걸로 해. 다른 가족들에게 피해가 가선 안 되잖아.”
다른 가족들이란 건 태월의 부모님과 설희를 말하는 것이다.
별장으로 가야 할 인원은 아샤와 아진 그리고 아이들 넷이다.
“그걸로 부족해. 부모님과 설희도 보호해.”
“좋아. 부모님과 설희는 내일 미 공군기지로 보내. 거기 내가 따로 준비한 장소가 있어. 딱 3일만 있어 달라고 해.”
“알았어. 그럼 아이들은?”
“아샤와 아진 그리고 아이들은 오늘 바로 미국으로 출발시켜. 특별기를 미 공군기지로 보낼게. 그리고 그 전에 가짜 여섯을 만들어내.”
루가는 키토와 더지를 데리고 해양자원 탐사를 떠난 상태다.
그리고 남은 이가 루나, 루다, 루라, 루마, 루바, 루사다.
“루가 빼고 남은 숫자가 다행히 여섯이네. 그러나 루나는 여기 상황실에 남아있어야 하니, 말캉이를 추가로 넣도록 하지.”
그 순간 태월의 머릿속으로 더 안전한 방법이 떠올랐다.
“하하, 내가 그걸 깜빡했네.”
“무슨 일인데 갑자기 안색이 밝아져?”
“여기 있잖아, 이거!”
태월이 자신의 팔목을 탁탁 치고 있다.
아공간에 마을이 담겨 있는 그 팔찌였다.
“아, 그거 공기가 통한다고 했지? 사람도 살 수가 있고.”
“그래, 그렇다니까. 하하하, 진짜 이걸 왜 생각 못 했지?”
결국 미 공군기지 계획은 전부 취소되었다.
그리고 태월의 대가족은 가상현실을 체험한다는 명목 아래, 아샤에게 설득당해 낯선 공간으로 들어왔다.
태월이 숨어있다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가족들을 입고시킨 것이다.
“어머? 여기가 어디니?”
“엄마! 우리 어디에 온 거야?”
어른들에 비해 아이들은, 놀람보다는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이리로 와 봐.”
셋째 영주가 반짝이는 나무 앞에서 손을 흔든다.
영후와 영린, 영진이 같이 나무 옆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에게 서열순서는 있지만, 자기들끼리도 그리 안 따졌다.
그저 남들이 있을 때만 언니와 오빠다.
태어난 시간의 거의 동시란 걸 아는 탓으로, 그것에 의미를 두지도 않았다.
“이거 장치도 없이 가상현실이 가능해? 요즘 가상현실이 언론에 자주 언급되긴 하더니만.”
아이들과는 별도로 어른들이 모여서 두리번거리고 있다.
그리고 흙과 식물들을 만져보며 신기해했다.
“허, 이거 유럽 아닌가? 분위기가 유럽의 한적한 시골 같은데?”
“엄마, 여기 신기한 식물들이 많네.”
설희의 말에 홍미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둘러보기 바쁘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술적인 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우리 여기서 일주일간 지내보는 거예요.”
“헉! 일주일씩이나?”
아샤의 말에 조민희가 놀란다.
“에이, 여기 3일이면 현실에선 하루 정도예요.”
“아, 그럼 다행이고!”
이건 아샤가 하는 선의의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였다.
“여긴 아직 야생동물이나 위협적인 게 전혀 없어요. 그러니 안심하고 새로운 세상의 여행을 즐겨요!”
“호호, 아들 덕분에 별 이상한 여행도 다 해보네. 이거 진짜 실감 나네. 혹시 이거 꿈은 아니지? 꽃향기까지 살아있어.”
공간 팔찌 안에서 벌어지는 일과는 별개로 태월은 바빴다.
남해 쪽에 있는 별장에 변신한 말캉과 불의 정령들을 데려다주고는, 곧바로 서울로 돌아온 거로 돼 있다.
그 와중에 아카에게서 급히 위성 전화가 걸려왔다.
“휴. 정말 잘했어. 미 공군기지로 갔으면 더 위험할 뻔했네.”
“아니, 왜?”
“미국의 석유 재벌들이 야합하여 정치권을 움직였어!”
“이런, 엎친 데 덮친 격이군. 진짜 막 나가길 원하나?”
“이참에 그걸 실현해보는 건 어때? 우리의 피해도 적진 않겠지만 말이야.”
아카의 말에 태월의 표정이 살짝 굳는다.
“전에 말한 최악이 최선이라는 그거?”
“응, 그거.’
아카는 오히려 담담했다.
최악이 최선이라는 계획은 태월이 그냥 농담 삼아 했던 말이었다.
미러클을 개발하면서 핵무기를 사라지게 하자는 농담을 던졌었다.
태월이 원하는 청정지구에는 부합하지만, 핵무기로 인해 비균형적이긴 해도 질서란 게 존재했었다.
그런데 핵무기가 사라진다면?
당장 무질서의 세계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모두가 우리를 타겟으로 할 수도 있어.”
“이렇게 하는 건 어때? 지금 테러 조직이 가족을 납치하려고 하는 거잖아. 그들을 소생시켜 대량의 미러클R을 탈취하게 하는 거야.”
“어? 그래서?”
“뒤를 봐주는 국가들에게도 이건 좋은 기회거든! 상대 국가의 핵무기를 없애는 일이니.”
“그럼 성능이 더 좋은 걸 써야겠네? 이번에 개량된 미러클XR.”
“때마침 잘된 일이지.”
미러클XR은 미러클R 제품의 20배의 효능을 가지고 있는 신개발품이다.
현재는 올 하반기부터 사용하려고 생산만 하는 상태였다.
원가는 두 배에 해당하지만, 효능은 엄청난 차이였다.
어차피 완제품을 팔지 않고 있기에 외국에서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다음 날 새벽 별장에 6명이 들이닥치다가 아샤로 변한 말캉에게 떡이 되었다.
아샤와 아진은 무술이 능한 것으로 알려졌기에 다들 조심을 하는 중에, 주제 파악을 못 한 여섯이 먼저 덤벼든 것이다.
그걸 기회로 십여 명이 담을 타 넘었으나, 태월의 변신 가족들은 적절히 거리를 두면서 지하로 피신해버렸다.
“울프팀은 어쩔 거요?”
“뭐, 우리가 먼저 들어가도록 하죠. 어차피 여기까지가 공조 아닙니까?”
“무운을 빕니다. 대신 약속대로 2명은 넘겨주시오.”
“알겠소이다.”
총 3개 팀이 태월의 직계가족을 납치하러 온 것이다.
서로 의뢰한 자들이 다르지만, 굳이 그들끼리 상잔할 필요가 없기에 서로 일부분 양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울프팀이 들어간 지 한 시간이 지났지만, 소식이 없었다.
“무슨 일이지? 왜 이렇게 조용해? 설마 데리고 튄 건 아니겠지?”
“그렇게 쉽게 우리 이목을 벗어나리라고는 보지 않아. 고스트? 어찌할 거요?”
“순서대로면 우리 차례니, 조심해서 처리해 보겠소.”
“자! 고스트 나를 따른다!”
고스트 팀원 8명이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30분 후에 다시 조용해졌다.
“아. 대체 무슨 일이야?”
“영 기분이 안 좋은데요?”
“성인 여자 둘에 5살 아이들 넷이야. 이거 우리가 긴장해야 할 거 맞아?”
“아, 쪽팔리니까 그만 떠들고 들어갑시다. 뭔가 우리가 모르는 함정이 있는 거겠죠. 함정쯤이야 제가 있잖습니까?”
“앞에 팀들 사라진 거 몰라?”
“그들은 단순한 전투팀일 뿐, 함정 전문가가 없었잖습니까? 겁나면 맨 뒤에 오시면 됩니다.”
“뭐야, 이 새끼!”
“조용히들 안 해? 여기가 술주정판인 줄 알아? 조셉이 앞장서고 내가 두 번째 선다!”
세 번째가 데블 팀이었다.
이들은 중국에 임시로 고용된 300만 달러짜리 용병팀이다.
성격은 거칠지만 막상 전투에 들어가면 합이 잘 맞는 7년 이상 된 베테랑들이었다.
데블팀의 팀장인 프랭크는 앞서가는 조셉의 뒤를 따르며 주변을 살펴나갔다.
지하엔 철문이 두 개밖에 없었으며 한 군데는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조셉이 뒤돌아서며 현재까지 아무 이상이 없음을 신호했다.
‘뭐지? 그럼, 저기 철문 하나가 문제였단 소린가?’
그런데 문이 살짝 열리면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프랭크? 한발 늦었네?”
“어? 우라티? 사고가 생긴 게 아니었어?”
우라티는 제일 먼저 이곳에 들어온 울프팀의 팀장이었다.
“다 정리하고 연락하려는데 고스트 팀이 들어오더라고. 괜히 시비를 걸기에 날려버렸지. 아, 오해하진 말게 그냥 기절만 시킨 거야. 선빵의 위력이지!”
‘이놈들이 이렇게 강했었나? 고스트만 해도 우리와 비등한데.’
“덤빈 대가로 그들에게는 볼모를 나눠주지 않을 생각이야.”
“우리는?”
“에이, 약속은 내가 지키지. 둘만 데려가면 돼! 일단 다 묶어뒀으니, 목이나 축이자고!”
우라티라는 자가 프랭크 눈앞에서 술병을 흔들고 있다.
일도 다 끝났기에 회포나 풀자는 의미로 해석했다.
괜히 울프팀과 드잡이질할 마음이 없었던 프랭크는 고개를 끄덕여 팀원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문안에는 우라티의 말대로 고스트 팀들은 무기를 뺏긴 채 누워있었고, 여자 둘과 아이들은 묶여 있었다.
그제야 안심을 한 프랭크는 팀원들에게 휴식을 취했다.
그러면서도 무기를 손에서 놓지 않는 이들이다.
“어? 저기 안쪽에 있는 문은 뭐지?”
“그쪽에 냉장고와 술 창고가 있더라고. 시원한 음료를 마시려면 거기서 꺼내오면 돼.”
그제야 이들이 지하에 와서 술을 마실 수 있는 이유를 알았다.
데블의 팀원 하나가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5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자키는 뭐 하는 데 안 나오는 거야?”
“하하, 좋은 걸 먼저 마시고 있나 보네? 데블팀은 궁했나 보군.”
조셉은 울프의 팀원이 놀리는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고는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그마저 나오지 않는다.
프랭크는 지금 눈에 보이는 인원 외엔 다른 자가 있을 리 없다 여겼다.
고개를 갸웃거린 그가 그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는, 이상한 공간에 자신이 있는 걸 알아차렸다.
“헉! 이게 뭐야? 여긴 뭐 하는 곳이지? 어? 조셉! 여기서 뭐 해?”
바닥에 쓰러져 있던 조셉을 뒤집어 본 프랭크는 함정에 빠진 걸 알아차렸다.
이미 조셉이 숨을 쉬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고 있을 사이도 없이 숨이 막혀왔다.
“헉, 이, 이게 무슨 일이지? 조셉이 질식….”
벌떡 일어난 프랭크는 밖으로 나가려고 문을 찾아보았으나, 자신이 열었던 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게 뭐야! 이럴 제기랄! 우라티 개자식! 나가면 죽여….”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프랭크의 몸은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그리고 몇 번 헐떡이더니 숨을 거두었다.
그 시간 5명밖에 남지 않았던 데블팀은 팀장이 들어간 문을 쳐다보다가 뒤에서 덮친 자들에 의해 잠이 들어버렸다.
강력한 마취액을 부은 손수건의 위력이었다.
“마스터! 이제 나오셔도 됩니다!”
방문이 열리며 싸늘한 미소를 짓는 태월이 등장하였다.
그리고 한편의 단막극 드라마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