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빅터셀 하청업체
태월은 몸에 영혼 에너지를 두르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새로 나타난 셋 중에 한 놈의 존재감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그래 봤자 중급의 격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말이다.
‘호오, 진짜 족장님과 비교될 만하네. 놀라게 해서 미안하오. 난 부족장을 맡은 호까이요.’
‘난 이곳 바이칼호의 책임자 박태월이오.’
이곳 호수를 책임지는 역할을 다 가지진 못했지만, BATR에게 러시아가 권한을 준 것은 맞는 말이다.
‘권한을 가진 자를 만난 것은, 우리에겐 행운이군요. 만나서 진짜 반갑소이다.’
‘영역에 대한 것은 어찌 되었습니까?’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만 얻을 수 있다면! 인간의 영역은 수심 50m까지 그리고 우리의 영역은 수심 100m부터로 하겠소. 그리고 그 중간 지역은 특별한 일 외엔 선을 넘지 않는 걸로 하지요.”
태월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기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단서가 있었다는 생각에 눈썹을 찡그렸다.
‘어떤 조건이 또 붙은 겁니까?’
‘일종의 거래요. 인간의 활동으로 보면 무역이겠군요.’
이들이 무얼 요구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 태월이다.
‘그게 어떤 거지요?’
‘싱싱한 육류와 채소를 원하오.’
태월은 그제야 두 품목이 이해가 되었다.
광원도 없는 곳에서 살며, 필요 영양소가 유전적으로도 부족했을 것이다.
이곳에선 해물류만 먹으며 살아왔을 반요 종족이다.
‘좋습니다. 그 정도는 충분히 해드리지요. 그런데 물량이?’
‘매달 소고기 500톤 채소류 500톤.’
물량이야 채울 수 있지만 가져온다고 해도, 보관을 어찌하는지 궁금한 태월이다.
‘그걸 가져오면 제대로 보관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반요요. 보관 방식은 오히려 인간들을 넘어설 거요. 안 그럼 이런 악조건에서 어찌 살아남았겠소?’
‘그럼, 뭐로 계산을 치를 겁니까?’
‘그에 맞는 해산물을 대신 드리겠소. 아 그리고 금은보화나 골동품으로도 가능하오.’
태월이 가만 생각하니 이들에겐 그런 물건이 그리 필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 지저에는 긴 세월 지상에서 빠뜨려진 그런 물건이 상당할 듯했다.
‘해산물은 나중에 거래하기로 하고, 귀금속이나 골동품 쪽으로 값을 받기로 하죠.’
‘하하, 고맙소이다. 그럼 협상해 보실까요?’
협상 금액도 빠르게 결정되었다.
금 1kg에 소고기는 500kg으로 정했다.
다 자란 소 한 마리를 잡으면 그 정도의 고기가 나온다.
그리고 채소는 골고루 해서 금 1kg에 100kg으로 정했다.
무농약을 기준으로 요구했는데, 태월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모든 게 금을 기준으로 한 거고 다른 보석이나 은일 경우는 그에 맞는 가치로 환산하기로 합의 보았다.
금 1kg의 현 시세가 5천만 원 정도였다.
태월에겐 몇십 배는 족히 넘는 이익이 남는 거래가 되는 것이다.
거기에서 애매한 것이 골동품이었는데, 그건 태월의 양심에 맡긴다고 했다.
‘골동품에 대해선 보기만 했을 뿐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리고 잘 몰라서 저지를 일도 있는데, 양심이 불편해지긴 싫습니다.’
‘음, 그래도 우리보단 낫지 않겠소? 그럼 이렇게 합시다. 한 점당 채소 10kg요. 금괴 외에 공예품에도 금이 붙어있으니, 그건 떼지 않고 금과 보석이 붙은 부분만 계산해서 적용하겠습니다.’
‘흠, 뭐 그럼 그렇게 하죠.’
‘우리에게 금이 훗날 부족할 거라고 여기는 표정입니다?’
‘호수에 빠진 보물이 무한정일 리 없잖습니까?’
‘하하,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그건 착각입니다. 해저에 지하자원이 많다는 건 아시죠? 여기도 그렇습니다. 저희가 그동안 조사까지 끝낸 광산이 무려 열일곱입니다. 크게 쓰일 일이 없다 보니 손을 안 댄 거죠. 그런데 이젠 쓰일 일이 생겼으니 부지런히 캐야죠. 그중 금광이 두 개죠.’
‘아하, 그렇게도 되겠네요.’
‘이제 거래 생각만 하시면 됩니다. 그럼 이 장소를 무역거래소로 삼읍시다. 거래 몇 번 더하고 나면 그땐 우리 마을로 초대하겠소이다. 그런데 어느 민족 출신이시오?’
나라를 묻는 게 아니라 민족을 묻고 있다.
‘한민족입니다만?’
‘조선을 뜻합니까?’
‘조선은 사라졌고 그 후대가 대한민국입니다.’
‘이 근처 소수민족 중에 그와 연관된 곳이 있긴 했죠. 에벤키족과 부랴트족.’
부랴트족이야 태월에겐 익숙했지만, 에벤키족은 생소했다.
‘우리 종족 중에 언어를 연구하는 별종이 있었죠. 그가 해준 말이 문득 생각납니다. 한민족 민요 중에 아리랑과 쓰리랑이란 말이 있지요?’
‘네, 민요 중에 있긴 하죠.’
‘에벤키족의 장례식에 그 단어가 쓰이고 있죠.’
‘장례식요? 어떤 걸로 쓰이는데요?’
‘아리랑은 ‘맞이하다’란 뜻이고 쓰리랑은 ‘느껴서 알다’란 뜻입니다. ‘영혼을 맞이하고 이별의 슬픔을 참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죠.’
‘흠, 몰랐던 내용이네요. 그런데 그런 건 왜 연구했다던가요?’
‘몰랐습니까? 바이칼호를 한민족의 기원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잖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반인반요 아닙니까? 인간 쪽으로 보면 바이칼호와 연관된 민족의 뿌리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관심 가지고 연구를 한 거지요.’
태월은 눈앞의 이들이 인간과는 체격이나 외형이 매우 달랐지만, 생각하는 것이 요괴와는 다르면서 인간과 오히려 유사해 보였다.
‘앞으로 거래는 여기 있는 물의 정령이 담당할 겁니다.’
‘안녕하세요. 아쿠라고 합니다.’
‘그대는 정령이면서 인간화되어있군요. 요괴의 기운도 좀 보이고요. 세 종족의 합일이라, 아주 특이하군요. 호까이라고 합니다.’
아쿠가 인간체를 완벽하게 가질 수 있는 것도 요괴의 재능 덕분이다.
그러니 그에겐 아쿠가 그리 느껴질 수도 있었다.
‘그럼, 인간의 시간 기준으로 매달 15일에 거래하는 거로 하겠습니다.’
‘벌써 그날이 기다려지는군요. 이건 우리의 아군을 뜻하는 증패입니다. 혹여 우리 종족을 보게 될 때 이걸 보이시면 됩니다.’
호까이는 패를 하나 꺼내 태월에게 전했다.
그걸 그들이 보는 앞에서 아쿠에게 줬고.
그렇게 그들과의 거래를 확정 짓고는 태월은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넘어왔다.
“아빠! 어디 갔었어?”
영주가 빠르게 뛰어 들어와 안긴다.
“응, 그 괴물들 타이르러 다녀왔지.”
“으악! 그 반짝이!”
“대화가 돼요?”
“텔레파시!”
“아, 그럼 되긴 하겠네요. 그런데 어떤 종족이래요? 유사 인종인가?”
태월은 다들 궁금해하는 눈치기에 그동안 있었던 일을 풀어서 알려주었다.
“어머, 오히려 거래까지 하게 되었네요? 반요라니 생각도 못 했어요.”
“그럼 이제 위험은 없어졌네요. 다행이에요.”
“그럼, 아빠! 내일부터 다시 같이 다니는 거야?”
“그럼! 이제 함께해야지.”
그렇게 가족과 함께한 일주일을 더 보내고 나서야, 태월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삼성과 엘지는 태월과의 면담이 이루어지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거기다가 한술 더 떠 중국과 일본의 관련 업체에서도 달려들고 있기에 몸이 달아있었다.
“아니, 오 지부장? 얼굴이 왜 그래요?”
“아, 대표님! 제가 왜 그러겠습니까? 일주일만 보내고 오신다더니 한참이나 더 지났잖습니까?”
오형석의 눈은 판다곰이 되어 있고, 소화기에 문제가 생기고 피곤이 겹쳐 피부가 푸석해 보였다.
“하하, 미안합니다. 아이들과 오랜만에 같이 있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그래서 어찌 되었습니까?”
“네? 어찌 되다뇨? 면담 자체가 없었는데 진행될 거나 있습니까?”
뻔뻔하게 말하는 태월을 보며 오형석은 속이 탔다.
“오늘도 방금까지 있다가 갔습니다. 어제는 저희 집도 찾아왔었다니까요!”
“고생 많으시네요. 그럼 내일 점심을 같이하자고 전하세요. 두 곳을 같이 보도록 하죠.”
“휴, 이제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오형석이 감사할 일은 아니지만, 그동안의 고생이 그만큼 힘들었던 탓이다.
그날은 태월도 여행의 여독을 푸느라 집으로 일찍 퇴근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태월은 본사 근처의 한정식집에서 그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삼성 SDI 전무이사 최병규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엘지화학의 부사장 황호진입니다.”
각 회사의 서열 2위들의 등장이었다.
그들도 간을 보는 시기는 지났다는 걸 알기에, 자존심을 굽힌 것이다.
“네, BTR 박태월입니다. 일단 식사부터 하지요. 아침을 안 먹었더니 출출합니다.”
BTR테크라고 하지 않고 BTR이라고 한 건, 이미 BTR 자체가 그룹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내부에서도 그룹으로 이미 인지하고 있어서 그게 더 자연스러웠다.
좌불안석의 식사를 하는 두 회사의 임원과는 달리, 태월은 정말로 열심히 먹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아샤와 아진이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원을 갔다고 했다.
그래서 간단히라도 먹던 아침 식사를 건너뛰게 된 것이다.
“두 분 식사는 별로 안 드셨네요?”
“요즘 속이 안 좋아서요.”
“혹시 저 때문은 아니시죠?”
“하, 하하. 그, 그럴 리가요.”
더듬는 걸 보면 맞다는 소리였다.
“오 지부장을 통해 제의는 충분히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드리죠.”
“......”
“네...”
두 사람의 몸은 긴장감에 휩싸였다.
회사의 사활이 지금, 이 순간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BTR테크는 의도적으로 생산공장을 따로 확장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BTR미러클 공장에 와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네, 한번 가봤습니다.”
“저는 두 번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오각형의 타워가 될 것입니다. 센터와 오각 중 하나는 BTR의 자리입니다. 공장은 보안이 필요하기에 새로 지어야 합니다만, 생산시설은 기존의 것을 떼어오셔도 됩니다.”
“그, 그럼. 그게?”
“두 회사에 BTR테크의 빅터셀 생산하청을 맡기겠습니다. 두 회사에서 조정해서 가능하면 한 지역에서 생산했으면 합니다. 지역은 하나지만 공장은 두 곳이 되겠죠. 진행되면 세계 각국에서 압박과 도발 및 스파이가 날뛰기 시작할 겁니다. 그래서 뭉쳐있어야 합니다. 이해하시죠?”
“맞, 맞습니다!”
“삼성과 협의해서 최선의 방안을 모색하겠습니다. 다른 일을 제쳐두고라도 부지확보부터 하겠습니다.”
“뭐, 빨리할수록 두 회사에도 좋은 일이겠죠. 자세한 서류는 오 지부장에게 맡겼으니 확인해보시고 사인하시면 됩니다.”
“제대로 해 보이겠습니다.”
“박 회장님! 감사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빠르게 결정돼버릴 줄은 생각도 못 했었다.
두 회사 중 하나와 손을 잡거나 외국에 공장을 설립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생산량 전부를 한국의 두 기업에게 맡긴다니 심장이 떨려올 정도였다.
특히 삼성 SDI는 중환자에게서 산소마스크를 떼어야 할 상황도 올 수 있었다.
그들이 돌아간 후 태월은 혼자서 킬킬대고 있다.
‘내가 삼성과 엘지를 하청업체로 두다니, 박태월! 성공했구나.’
성공은 예전에 했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다음 날 오형석 지부장이 삼성과 엘지의 사장단과 함께, 협약식을 겸한 기자회견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 오형석은 BTR미러클 소속이지만, 임시로 BTR테크의 이사로 있는 상태다.
그리고 태월의 대리인으로 협약식에 갔다.
그런데 그날 밤 아카에게서 위성 전화가 걸려왔다.
“뭐? 이런 미친놈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