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괴물의 정체
태월의 눈에 비친 것은 3m가량의 은빛의 비늘로 뒤덮인 괴생명체였다.
머리에 헬멧을 쓰고 있어서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런 놈들이 둘이나 달라붙어 잠수함의 선체를 때리고 있었다.
태월은 급히 비상벨을 누르고 함장을 불렀다.
“무, 무슨 일입니까? 잠수함이 어딘가에 부딪힌 거 같기에 조사 중입니다.”
“당장! 당장! 위로 상승해!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수의 공격이다!”
“아, 알겠습니다.”
-뿌우웅!
함장 이노스크는 곧바로 선원들에게 경보음을 울리며 최고속의 상승을 지시했다.
태월은 몸을 움직여 그 괴물체가 가격하는 부위에 에너지를 내뿜어 충격을 줄여나갔다.
태월의 중급 신격 능력이면, 잠수함 밖인 수심 250m에서 괴생명체와 자웅을 겨룰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일행들, 특히 아이들의 위험을 담보로 해야 한다.
아쿠가 있었다면 어느 정도의 안전을 모색할 수 있겠지만, 그녀는 이 잠수함에 없었다.
‘대체 이것들은 뭐지? 그동안 나타난 적이 없었나? 뭐 없었으니 조용했겠지만.’
아진은 차분히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아샤는 아이들을 단속했지만, 의외로 아이들은 침착했다.
20분간의 공격도 잦아들더니 수심 50m를 넘어서자, 외부적 충격이 더는 없었다.
그래도 태월은 명령을 내려 잠수함을 해상 위로 계속 상승시켰다.
“오늘 이 잠수함 운행은 중지입니다. 아니 확실한 결론이 나기 전까지 운행 자체를 금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BATR소속의 잠수함이므로 태월의 신분을 함장은 알고 있었다.
해상 위로 잠수함이 부상하자, 태월은 곧바로 아카에게 위성 전화를 걸었다.
“바이칼에 괴생명체가 살고 있었어? 3m쯤은 되던데? 헬멧을 쓴 거로 보면 단순한 생명체가 아니라 문명을 지닌 종족일 거야.”
‘어? 헬멧 쓴 괴생명체? 잠시만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 같아!’
“아진이 비디오를 찍었으니 그걸 전송해줄게.”
‘오! 잘했어! 곧바로 전송해줘.’
아카와의 연락을 잠시 대기 시킨 후 아쿠에게도 상황을 전했다.
그사이에 아진이 아카에게 비디오를 전송시켰다.
30분 정도가 지나자 태월의 위성 전화가 울린다.
‘그거 찾았어! 1982년에 같은 기록이 있어. 1982년에 바이칼 호수에서 군사 훈련이 계획되어 있었어. 그래서 미리 스쿠버다이버들이 주변을 확보하고자 내려갔는데, 거기서 태월이 만난 3m짜리 헬멧 쓴 생명체를 조우했다고 해. 그런데 위에 보고를 했더니 그걸 포획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었대. 그런데 그물을 던졌는데, 그 생명체가 파도와 같은 물의 파장을 날려 잠수부들을 위로 날려 버렸나 봐. 그로 인해 빠르게 수면에 도달하게 되었어.’
“헐, 그렇게 올라오면 감압병이 생겼을 건데.”
‘맞아, 그래서 3명의 잠수부는 며칠 후에 숨을 거뒀고, 나머지는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고 해.’
“그럼, 그 후 더 조사는 안 했어?”
‘군사비밀도 포함되었으니, 덮어 버렸나 봐.’
“하, 미쳤군! 장래의 생각은 안 하나? 그들이 잠정으로 내린 결론은 뭐였는데?”
‘외계인쯤? 그 당시 과학기술로는 달랑 헬멧만 차고, 수심 50m에서 잠수할 수가 없잖아. 뭐, 지금도 그렇지만. 그리고 3m 신장의 인간종족이 어딨어. 그리고 잠수함을 종종 운영했었는데, 수심 45m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았다고 해. 그래서인지 그 괴생명체랑 조우한 적이 없었다 하네.’
“그게 전부야?”
‘그리고 군 실무자들은 그들의 말이 과장되었다고 여겼대. 그냥 심해어를 그렇게 착각했을 거라고 잠정 결론 냈네. 그래서 외계인 이야기는 그냥 가십거리로만 적혀 있어.’
아샤가 보내온 러시아군 기록 자료를 봐도 아카의 말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태월에게는 심각한 일이다.
미지의 존재를 그냥 두고서는 알혼섬의 사업도 불안한 것이다.
결국 태월은 아쿠를 만나 결론 짓기로 했다.
아샤와 아진은 아이들을 데리고 알혼섬을 일주하는 열차 관광을 떠났다.
“둘이 해보자고?”
“뭐, 나야 격이 높아져서 문제는 안 되겠지만, 아쿠가 가능하겠어?”
“다른 곳에서는 어렵지만, 나는 물의 정령이야. 본체로 돌아가서 싸우게 되면 내가 당할 일은 그리 없어. 정 위험하면 내 몸 하나는 내가 빼낼 수 있어.”
“그래 둘이 해결하는 게 최선이지. 아샤와 아진도 격이 생겨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도 물속에서는 장담하긴 힘들어.”
“그런데 태월은 그들이 적이라고 단정 짓고 말하고 있네? 지적 생명체라면 대화부터 해야지 않겠어? 그동안 먼저 공격한 적도 없었다며?”
“그래도 잠수함을 공격한 거잖아.”
“그게 그들의 영역이었다면, 일종의 경고였겠지.”
“흠, 그렇게 보면 또 그렇네. 그럼, 일단은 그들과 대화부터 시도해보자고.”
태월 또한 그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도 몰랐고, 숫자가 많아 종족을 구성할 정도라면 적대시해서 좋을 일도 없었다.
다음날 태월과 아쿠는 잠수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50m에 도달했을 때, 잠수함에서 몰래 빠져나왔다.
함장이 알아서 좋을 일도 없기에 그리한 것인데, 그 일은 아쿠가 알아서 조치한 것이다.
잠수함은 50m의 수심을 유지한 채로 근처를 돌아보는 식으로 임무를 맡겼다.
이번 일엔 말캉도 참여한 상태다.
아샤가 물의 정령 본체로 돌아가자, 태월은 공간 배낭에서 변신 스카프를 꺼내 잠수복으로 변형시켰다.
신의 유물이니 이 정도의 공간에서는 버텨줄 것 같아서다.
그것도 안 되면 그냥 에너지를 두르고 나아갈 생각이었다.
“오, 생각대로 가능하네? 말캉! 수중 스쿠터로!”
태월에게 미리 작전을 들어서인지, 말캉이 수중 스쿠터로 변해버렸다.
그 위에 공기통을 하나 올려놓고는 입과 연결한다.
태월이 양손으로 스쿠터를 잡고서 아래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아쿠가 일렁이는 몸체를 유지한 채 따라오고 있다.
의도적으로 소리도 크게 내면서 스쿠터가 움직이는 중이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나아갔을 때, 잠수함에서 보았던 둘이 태월의 좌우에 나타났다.
‘내 말이 들리나?’
언어가 아닌 자신의 의지를 담은 텔레파시를 그들에게 보내는 것이다.
‘어? 대화가 가능한 인간이 다 있네? 그리고 네 뒤에 있는 건, 물의 정령이군.’
‘허, 정령도 안다고?’
‘넌 우리가 누구라고 생각해?’
‘외계인의 후손쯤 되나?’
‘뭐, 긴 세월로 따지면 아예 틀리진 않지. 그건 지구인도 알지 않나? 하여간 우린 그 외계인 따위가 아니라, 좀 다른 존재지.’
‘무슨 존재길래 우릴 위협했지?’
‘위협? 잠수함 말하는 거군. 위협이라서 다행 아닌가? 공격이었으면 침몰시킬 수도 있었어.’
‘너희 따위로?’
‘하하, 우리가 전부일 리가 없잖아. 그리고 그대는 우리보다 훨씬 강한 건 맞지만, 그건 개개인으로 따졌을 때야. 그 잠수함 속에 든 모든 인간을 보호할 수 있나? 그리고 우리의 족장만 해도 그대와 견줄 정도는 된다네. 왜 우리에게 이렇게 감정이 적대적이지?’
‘그 잠수함에는 그대 앞에 있는 사람의 아내와 아이들이 타고 있었거든.’
아쿠가 태월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태월이 조금 날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 미안하군. 가족들이 있었다면, 지금의 반응이 이해되네.’
‘그런데 왜 위협을 한 거지?’
‘이 아래로는 우리들의 영역이거든. 우리도 지상으로는 안 올라가잖나.’
‘뭐, 올라오고 싶어도 못 오는 건 아니고?’
‘태월! 그만해! 그러려고 온 게 아니잖아.’
아쿠가 다시 끼어들며 태월을 나무랐다.
‘음, 그래 알았어. 정식으로 인사하지. 난 이곳 바이칼호의 사용 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BATR 그룹의 책임자 박태월이야.’
‘난 외곽 경계를 맡은 순찰대 소속 팀장이야. 로꾸이라고 해.’
‘우리가 인간인 거야 너희가 알 것이고, 너희는 그럼 누구지?’
‘우리도 절반은 인간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그럼 절반은 외계인인가?’
‘그렇게 말하는 건 좀 애매하고. 우린 반요야. 요괴와 인간의 혼혈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네.’
태월도 요괴만큼은 많이 접해왔기에 놀랍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혼혈은 처음 보는 것이다.
‘다 외형이 같은 종족인가?’
‘처음엔 다른 형태도 있었지만, 이곳에서 세월이 많이 흐르니 단순해지더군.’
‘세월? 얼마나 있었길래?’
‘지구의 시간으로 따지면 마지막 빙하기인 2만5천 년 전쯤이지. 그때 혹독한 추위를 피해 이곳 바이칼로 인류가 모였었지. 당시 그들에겐 이곳이 오아시스였거든. 그리고 요괴들도 이 주변에 살고 있었어.’
‘꽤 오래전이군.’
‘흠, 그렇게 지내다 보니 혼혈도 생기게 되었는데, 요괴나 인간 두 군데에서 혼혈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해. 인간 쪽에선 두려워하고 요괴 쪽에선 혐오했다고 전해져. 그래서 혼혈을 이끌고 바이칼 아래에 자리 잡게 되었어.’
‘그 당시에 벌써 여길 견딜 정도의 능력이 되었다고?’
‘여기 여건은 겉으로 보기엔 험악하지만, 아래는 오히려 그렇지 않았어. 처음엔 절반 가까이 진입이 힘들어 목숨을 잃긴 했지. 그러나 적응 후에는 심해까지도 오갈 수 있었어. 이곳은 우리에겐 적당한 곳이었어. 아래쪽에 온천이 솟는 건 알고 있지? 그리고 해산물이 풍부하잖아. 그것뿐이 아니야. 여긴 기운이 가득한 신령스러운 호수야.’
‘아래엔 종족이 얼마나 살고 있길래?’
‘음, 그건 밝힐 수 없어. 우린 이제 통성명 한 사이일 뿐이야.’
‘그렇긴 하지. 그럼 이 정도의 수심이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 한계선인가?’
‘그래, 그렇게 지켜줬으면 해.’
‘우리가 50m만 내려올 테니, 너희가 여기선 보이지 않게 해줘.’
‘음, 그럼 우리가 더 내려가야 하잖아. 곤란한데.’
‘뭘 곤란해? 어차피 본인이 결정할 것도 아니면서. 그리고 우리 잠수함 봤지? 500m까지도 쉽게 내려갈 수 있어. 그걸 자제한다는데, 겨우 일이십 미터를 양보 못 해?’
‘음, 잠시 기다려. 내가 바로 보고하고 올게.’
‘보고 하고 대답 들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로 보이네.’
‘인간의 시간으로 세 시간 정도면 될 거야.’
‘그럼 우린 잠수함에 있다가 다시 나올게, 그때 다시 보자고.’
‘알았어. 세 시간 후에 이 자리!’
반요 로꾸이는 자신의 깃발이 달린 창을 그 자리에 꽂았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일행과 함께 사라졌다.
태월 또한 신호를 보내 잠수함을 호출했다.
“아니, 그 장비로 혼자 이곳에 있었습니까?”
“이상하게 생각할 건 없어요. 더 깊은 곳까지 다녀온 경험이 많기에 이 정도는 별거 아닙니다.”
“아, 진짜 대단하시네요.”
함장은 태월만 잠수함 외부로 나간 줄 아는 상태다.
아쿠가 정령체로 몰래 돌아왔기에 그거까진 알지 못했다.
“두 시간 반 후에 점검차 다시 나가봐야 하니, 그렇게 알고 있으세요.”
“심해어가 큰 놈인가 보네요? 하여간 몸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태월은 시간을 보내다, 아쿠와 함께 잠수함 밖으로 다시 나가게 되었다.
‘뭐지? 왜 인원이 늘었어?’
‘글쎄. 위협은 보이지 않는데?’
깃발이 날리는 곳에는 셋이 늘어난 반요 다섯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