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맹랑발랄 아떼
유물에서도 기운이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 태월 또한 느끼고 있었지만, 안드레이의 대화에만 집중했었다.
그런데 막내아들의 말대로 기운 하나가 움직인 것이다.
“방금 게 뭔지 아나?”
“전부터 감지가 됐지만, 찾아내진 못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감정이 적대적이진 않아 보였습니다.”
“응? 왜 찾아내지 못하지?”
안드레이 정도의 요력이면 충분할 듯해서다.
“빈 공간에 들어간 거라면 잡아낼 수 있지만, 그냥 스며든 거라서 저도 어찌하지 못합니다.”
“스며들다니? 쥐라도 되나? 쥐 요괴? 더지랑 기운이 다른데.”
“하하, 아닙니다. 그런 존재였으면 제가 잡았죠. 정령 쪽입니다. 그리고 땅의 기운을 가진지라 땅에 스며듭니다.”
“아! 그래서 영진이가 제일 먼저 느낀 거네.”
영진이에 대해 말을 하는 태월의 입가에는 미소가 어린다.
같은 기운을 가진 정령체와 어울림이 있는 애들인데 유일하게 영진이만 홀로였었다.
‘훗, 그러잖아도 아쉬웠는데, 딱 나타나네?’
태월은 자신의 기운을 넓게 퍼트려 땅의 정령으로 짐작되는 존재를 탐색해 나갔다.
‘전방에서 10m 앞에서 좌측으로 25도 상부!’
태월의 기운이 사방을 훑다가 그쪽으로 모이자, 이상한 느낌을 받은 존재가 후다닥 공중으로 튀어 오른다.
그리고 장소를 옮겨 숨어들려는 순간 태월의 왼손은 이미 움직였다.
좌우로 이미 아리랑과 아루가 움직여 피할 공간은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슈악! 흐엑! 꿀꺽!
아이들은 아빠의 손에서 도깨비가 튀어나오며 반투명한 무언가를 삼키자, 다들 눈이 커진다.
한 번도 태월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다.
“와아! 아빠 그거 뭐야? 스파이더맨?”
“에이, 그거랑은 다르지, 거미줄 대신 도깨비가 튀어나왔잖아.”
영주의 말에 영진이가 나섰다.
영후와 영린이도 놀란 눈으로 아빠를 쳐다봤다.
“아빠! 그거 이제 죽은 거야?”
영린이 눈을 껌뻑거리며 태월에게 묻는다.
“아니, 죽지 않고 새롭게 변하는 거야. 정화를 거쳐 귀속시키는 과정이야. 루루도 이런 과정을 거쳤거든!”
영린은 자기 품속에 안겨있는 작게 변한 루루를 빤히 내려다본다.
“휴, 안 죽는 거구나. 다행이다.”
그런 영린과 루루를 번갈아 보던 영후가, 안심했다는 듯 기쁜 얼굴을 했다.
영후가 가진 기운이 생명과 연관된 물이라 그런지, 유난히 그런 것에 연민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도 자라나면서 어렴풋이 자신의 엄마와 아빠가 보통 사람들과 다른 면이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아빠? 왜 아직 안 나와?”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막내가 보채고 있었다.
“글쎄? 늘 같진 않아. 길어도 30분 정도면 나올 건데?”
“으아, 10분 더 있어야 되잖아.”
5분이 지났을 때부터 저러고 있는 영진이다.
‘그런데 모습이 좀 이상했었는데?’
태월은 그 정령이 삼켜질 때 순간적으로 특이한 모습이었다고 생각했다.
그 상태로 시간이 조금 지나자 문신이 꿈틀거리더니 드디어 토해냈다.
-우웩! 떼구르르.
“어? 웬 꼬마야?”
영진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5살 정도 된 여자아이였다.
그리고 헬멧을 썼고 등 뒤에는 야영에 주로 쓰는 야전삽을 메고 있다.
삽이면서 뒤쪽에 곡괭이가 장착된.
“이상하네? 보통 정령체로 다시 나오는데? 얘는 뭐지? 아루? 뭐 아는 거 없어?”
“글쎄? 정령 중에선 간혹 특이한 존재가 생기긴 해. 그리고 헬멧과 저 삽은 어디서 난 거지? 삽에서도 뭔가 느껴져.”
태월과 아루가 대화 나누는 사이에 꼬마 여자애는 사방으로 눈을 굴리고 있다.
눈앞의 상황을 이해하려 하는 중이다.
태월은 그 모습을 힐끗 보고는 가까이 다가갔다.
“넌 내가 누군지 느껴지는 거 없어?”
“영혼이 이어져 있네요? 어떻게 된 거죠?”
“오, 꽤 목소리가 또랑또랑하네? 넌 정령이긴 한데 나로 인해 다시 태어난 격이야.”
“나 잘살고 있었는데요? 왜 그랬어요? 네? 누구 맘대로요?”
“뭐?”
“어머머, 쟤 너무 되바라진 거 아냐?”
태월은 황당해했고 아루는 어이없어했다.
“되바라지다뇨? 아줌마도 나랑 비슷한 거 같은데?”
“아줌마라니!”
“그 정도면 아줌마지 뭘 또 아니래요? 아, 나 이제 망했다.”
“그럼, 너 혼자 다시 알아서 살아!”
“이미 연결되어버렸는데 그게 될 리가 없잖아요? 너무 무책임한 어른 아니에요?”
등에 야전삽을 멘 상태로 태월을 째려보는 꼬마 숙녀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지는 태월이다.
“어휴, 알았어요. 어쩔 수 없죠. 뭐.”
버텨봤자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된 꼬마 숙녀의 한숨이다.
“그런데 넌 땅의 정령이 맞지? 그런데 그 헬멧과 야전삽을 또 뭐냐?”
“아, 이거요? 수천 년 동안 광물의 기운이 한곳에 뭉쳐 태어나고 있었는데, 그때 제가 거기서 자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도 이유는 모르지만, 그게 저와 붙어버렸어요. 뭐 저도 도구가 필요하던 참이라 인간들이 쓰는 이 형태로 만든 거고요.”
“저 봐, 쟤가 굉장히 특이한 거라니까.”
태월이 보기에도 성격이나 행동 그리고 광물의 에고인지 정령인지를 자신과 합친 것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제가 원래 개성 매력이 뿜뿜하긴 해요. 아줌마 부럽죠?”
“야! 또 아줌마라 하네?”
아루가 주먹을 내밀어 등짝을 때렸는데, 어느새 야전삽을 빼 들어 그걸 방어했다.
-탱! 아야!
손해를 본 건 오히려 아루였다.
“야! 그렇다고 삽을 휘두르면 어째?”
“저, 방어한 거거든요?”
과거 루루와 아샤의 티격태격을 보는 느낌이 드는 태월이다.
그 와중에도 막내 영진이는 눈은 맹랑한 꼬마 숙녀에게서 떨어질 줄 모르고 계속 반짝거렸다.
다른 아이들도 그 주변에서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둘의 티격태격을 지켜본다.
“이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아진이 분위기를 바꿀 요량으로 말을 꺼냈다.
“아 참, 이름을 지어줘야 하네. 뭐가 좋을까?”
“땡깡 잘 부리게 생겼는데, 땡깡이로 해!”
아루가 분한지 사심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꺼냈다.
“아줌마! 남의 생을 그따위로 망치고 싶어요?”
“이름 따위 가지고 뭘 그래? 그리고 딱 어울리잖아!”
“그러는 아줌마 이름은 뭔데요?”
“몰라도 돼!”
둘이 또 시작하는 걸 본 아진은 태월의 작명에 끼어들었다.
“오빠, 라틴어로 땅은 떼르라(terra)라고 하잖아요. 땅의 정령으로는 처음이니 ‘아떼’ 어때요?”
태월의 정령 패밀리 첫 돌림자가 ‘아’로 시작한다.
“라틴어라서 발음상 테라가 아니라 떼르라가 맞긴 하네. 그래, 그게 적당하네. 이제 너는 ‘아떼’ 라는 이름으로 존재할 거야. 아떼!”
아루와 티격태격하던 꼬마 숙녀의 몸이 순간 빛을 뿜어낸다.
아카식 레코드에 아떼의 이름이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아떼? 응, 좋아요.”
“호호, 어울리긴 하네. 아이가 떼를 잘 쓰니 아떼? 오호호!”
“뭐예요? 유치하시네!”
“자자! 둘 다 그만해! 이제 한 가족이니 서로 보듬어줘야 할 사이잖아.”
“안녕? 난 영진이라고 해.”
“응! 안녕? 난 아떼! 네 기운이 가족 중에서 젤 익숙하네?”
영진이 제일 먼저 나서서 아떼랑 정식 인사를 나눈다.
그 후에 하나하나 환영 인사를 이어갔다.
“와, 난 신수는 처음 보는데 여기 둘이나 있네? 나, 가끔 태워주면 안 될까?”
“음, 떨어지면 난 모른다?”
“응, 찹쌀떡처럼 딱 달라붙어 있을게.”
루루의 본체가 크다는 걸 느낌으로 아는 것인지, 작은 몸체의 붉은 새에게 말을 거는 아떼다.
루루의 본질이 불의 신수다.
그러나 새의 몸체이다 보니, 두 번의 진화로 인해 바람의 기운까지도 가지게 되었다.
순수한 바람의 기운을 가진 풍조인 청풍과는 다른 의미다.
그리고 바람의 정령으론 풍혈에서 태어난 아웬이 있긴 하다.
“그런데 넌 정령체인데 어떻게 몸이 실체화되어있지?”
“저 아줌마도 같은 거 아냐?”
“그건 요괴의 재능을 부여받아 변신술이 가능해져서야.”
“아, 걔들? 자기들끼리 싸우길래 숨어서 구경했는데, 하나만 겨우 살아남았더라고! 그래서 땅으로 끌고 들어갔어.”
“그럼, 그 요괴를 먹은 거야?”
“먹다니? 아 끔찍하게 그놈을 왜 먹어? 그냥 죽고 나니 기운이 빠져나오길래 흡수했을 뿐이야.”
“그놈 것만?”
“아니. 땅 위에 있던 것도 다 흡수했지. 그냥 놔두면 사라지잖아? 아깝게 왜 그래.”
“흡수하는 법은 어디서 배웠어?”
“살아남으려고 애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되던데?”
태월은 루루와 대화를 나누는 아떼를 보며, 애가 참 독특하다고 여겼다.
러시아에서 꽃제비로 살아가는 고아들을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당시 꽃제비들은 지금 이곳 알혼섬에서 성인 1명 이상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육체적 기술과 학문적 교육도 받으며, BATR의 젊은 피 역할을 하고 있다.
박물관에 추가된 유물들을 함께 구경한 일행은 바이칼 호수 체험을 시작했다.
수중 관람용으로 개조된 러시아 잠수함을 타고 바이칼을 누볐다.
“와, 물속이 원래 이렇게 깨끗해요?”
“원래는 다 이래야 하는데, 다른 곳이 안 그럴 뿐이지. 그래서 아빠가 이렇게 되게끔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거든.”
“아, 그 미러클요?”
“뭐, 그거도 그중 하나지.”
“그런데 여기 수심이 엄청 깊은 거 같아요.”
“바이칼호는 세상에서 가장 깊은 호수야. 평균수심이 774m고 최고수심이 1,673m지. 해수면으로 계산해도 1,285m나 되는걸.”
“이 잠수함으로는요?”
“조사단이 들어간 건 500m 정도지만, 이건 관람용이니 무리할 필요가 없지. 최대 300m까지만 운항하도록 했단다. 그리고 지금은 250m 운항 중이고.”
“아빠! 여기 온천은 언제 가요?”
“낼 가는 거로 하자.”
바이칼호 주변엔 의외로 온천이 많이 발견되었다.
빙하기에 혹독한 추위와 싸워야 했던 초기 도래인에게는 좋은 안식처였을 거라 봤다.
“어? 저거 바다표범 아니에요? 여기 민물이잖아요.”
“호호, 저게 세계 유일의 민물 바다표범이란다. 이곳 호수에만 서식하지. 그 외 철갑상어, 오믈, 하리우스 등 2,500여 종이 넘쳐난단다.”
“호수 바닥에는 보물들도 아마 꽤 있을걸?”
“보물요? 왜 이곳에 있는데요?”
“러시아 내전 당시 1920년 1~2월 동안 블라디미르 카펠이 이끄는 백군이 바이칼호를 건너 후퇴한 사건을 시베리아 얼음 행군이라 부르지. 그 당시 갑자기 추위가 거세지며 얼음 위를 지나던 수많은 사람이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고 해. 그때 백군 3만 명을 따라온 식솔들이 지닌 러시아제국 금은보화가 얼음이 녹으면서 같이 물아래로 사라진 거지.”
“우와! 보물이래!”
영주가 신이나 양손을 휘저으며 팔짝팔짝 뛴다.
“호호, 저럴 때 보면 진짜 아샤 어릴 때랑 판박이네.”
아루가 아샤와 영주를 번갈아 보며 키득거리고 있다.
아샤는 겸연쩍은지, 못 들은 척 호수의 물고기 떼를 구경하고 있었다.
-쿵! 쿵쿵!
“오, 오빠! 저게 뭐야?”
잠수함이 부딪치는 두 번의 충격과 아샤의 외침이 거의 동시였다.
태월의 고개가 휙 하고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