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의 재능을 삼켜라-235화 (235/250)

235화. 알혼섬 가족 여행

홍주철은 CCTV의 창리를 잠시 쳐다보더니 마이크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저를 긴장하게 만드는 분이군요. 미국 RAON과 러시아의 BATR가 BTR의 지분 60%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 기업을 CCTV에서는 아주 만만히 보는 것 같습니다. 자! 다음은 체크 재킷에 양손 들고 흔드시는 분!”

“교토통신의 이츠카입니다. 오늘의 설명회와 조금 다른 질문입니다만 양해 바랍니다. 후쿠시마의 방사능이 거의 제거된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일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거기에 사용된 자이언트 로봇은 RAON에서 생산할 생각입니까? 아니면 BTR에서 진행하는 겁니까?”

로봇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덕후 느낌을 주는 일본 기자였다.

사실 그 로봇에 대해 세계 각국에서 많이 궁금해했으나, RAON에서 일체의 대응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음, 이건 내부기밀에 속하는 일이지만, 이곳에 들어올 때 엠바고가 풀렸습니다. 그 로봇의 제품명은 ROBO-1입니다. RAON에서 개발한 것은 맞으나, 그 원천 기술의 절반은 BTR에서 가지고 있습니다.”

갑자기 회장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단순히 오염방제 회사로 알고 있고 이번에 전고체 배터리를 성공시킨 2차 전지의 선구자로 인식했을 뿐이다.

그런데 최첨단 미래 기술이 적용된, 세계를 경악에 빠지게 한 그 로봇의 원천 기술을 가진, 거대 글로벌 회사의 모양새를 보여준 것이다.

그에 비해 자동차는 그 놀라운 로봇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에도 끼지 못했다.

“그럼, 그 로봇에도 빅터셀이 사용되었습니까?”

“현재의 빅터셀은 아닙니다. 다만 초기 버전쯤 되는 거로 인식하시면 되겠습니다. 2개월 후 그 로봇의 엔진에 빅터셀이 장착됩니다.”

사실 엔진 구동 원리는 비슷했으나 똑같은 건 아니었다.

로봇에 사용된 전지는 빅터셀보다 오히려 완성도나 효율이 떨어진다.

아카가 대형크기로 밀어 넣은 반고체 배터리라고 보는 게 옳았다.

빅터셀이 출시되면 그 로봇에도 주문 제작 방식의 배터리가 장착될 예정이었다.

결국 빅터셀이 현재 가동 중인 최첨단 로봇에 사용된다는 것은, 이미 안전성이나 성능에서 자체 증명이 되었다는 걸 시사했다.

그 후 프랑스, 영국, 러시아, 한국, 네덜란드 등등의 언론에서도 질문을 해왔고 그에 대해 홍주철은 차분하고 성실하게 답변에 임했다.

그렇게 두 시간의 제품 설명회를 겸한 회견이 끝난 직후 이 소식은 전 세계로 송출되었다.

전기차 시장을 예상보다 10년 이상 빠르게 만들어버렸고, 그 분위기는 쓰나미였다.

특히나 삼성은 팔아버린 르노삼성 지분을 통한의 결정으로 생각했다.

삼성 계열사 중 하나인 삼성SDI는 2000년부터 리튬이온 2차 전지 사업으로 진출한 곳이다.

2008년에는 독일 보쉬사와 합작해 SB리모티브를 세우고, 울산에 전기자동차 전용 배터리 공장을 만들었다.

당장은 생산라인이 멈추진 않겠지만, 이것도 시한부나 마찬가지였다.

휘청이는 분위기 속에 삼성그룹의 임원 회의가 열렸다.

“삼성카드는 너무 이른 판단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버텼다면 빅터셀에 한발 걸칠 수 있었을 겁니다.”

“아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그 주식을 팔라고 종용한 게 누구인데 이러십니까?”

“허허, 지금 두 분이 다툴 일이 아닙니다. 당장 SDI의 존폐위기가 생겼습니다. 빅터셀은 전기자동차뿐만 아니라 우리의 핸드폰에도 사용될 겁니다. 그게 지금 현실입니다.”

“장 이사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더구나 지금 엘지에서도 BTR에 접촉을 시도하려고 합니다. 그것마저 기회를 잃는다면, SDI에서만 문제 되는 게 아닙니다.”

“기회는 아직 있습니다. 배터리 생산 시설이란 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진 못합니다. 더구나 BTR테크는 그 모든 걸 해결할 인력풀이 모자랍니다.”

장천식 이사는 BTR테크의 단점을 바로 짚어내고 있었다.

태월도 그걸 염려해서 로봇으로 생산라인을 만들려 했으나 아직은 무리였다.

단지 미러클의 라인처럼 원천 기술을 담는 부분만 로봇 자동화 생산라인으로 돌릴 생각이다.

삼성그룹이 임원 회의를 하는 동안 엘지 역시 같은 이유로 회의가 열렸다.

1997년 엘지화학 연구진은 시험용 2차 전지 생산에 처음으로 성공한다.

이에 힘입어 2000년에는 미국에도 연구법인을 세우고 세계 최초로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에 착수했다.

2009년에는 세계 최초로 리튬이온 기반 양산형 전기차(GM Volt)용 배터리 공급 업체로 선정된다.

그런 그들이 BTR의 쓰나미에 같이 휩쓸려 나가게 생긴 것이다.

엘지에서도 회의 결과는 삼성과 비슷했다.

삼성과 엘지가 BTR테크를 방문했지만, 홍보이사 외에는 만날 수 없었다.

태월은 그 시간 가족과 휴가를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바빴기에 시간을 내어 러시아로 넘어온 것이다.

“호호, 어서들 오세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쿠, 안녕?”

“어서 와, 설희!”

“아쿠 언니!”

“어머, 아진과 아샤도 반가워. 애를 낳았는데도 오히려 미모가 더 살아있네.”

“이모! 안녕하세요?”

“호호호, 아기 때 잠깐 본 게 다지만 진짜 인형들 같다. 오느라 힘들었지?”

“아니요! 재밌었어요!”

“아쿠는 여전히 아름답네. 그동안 잘 지냈지?”

“호호, 그럼요. 그런데 잘 지냈다기보단, 바빠서 정신없게 지냈어요.”

조민희의 말에 대답은 하면서도 시선은 태월에게 가 있다.

정신없어진 이유가 태월에게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들 때문인가 보네? 마음 넓은 아카가 이해하렴. 태월이 원래 좀 사고뭉치였잖니.”

“호호, 어머님을 봐서라도 당연히 이해해야죠. 자 다들 식사하러 가셔야죠? 아루 언니가 오늘 음식 준비하느라 바쁘거든요.”

홍미연의 말에도 넙죽넙죽 대답을 잘하는 아쿠다.

“아하, 어쩐지 아루가 안 보인다 했네.”

태월의 말에 아쿠가 짧게 웃어주고는 일행들을 안내했다.

이곳은 알혼섬 내에 있는 태월 패밀리를 위한 3층짜리 별장이었다.

이제는 섬 반대편 가까운 곳에 공항까지 생겼기에 오갈 때 편리한 곳이다.

그리고 섬 자체도 내륙과 이어지는 다리가 생겨, 러시아 시민들뿐만 아니라 해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 되었다.

알혼섬은 5월만 해도 눈발이 날리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6월 중순경이라 시베리아에선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시기다.

“아들? 딸? 이곳이 바로 샤먼의 호수 바이칼이란다. 어때? 굉장히 넓지?”

“네! 좋은 기운이 넘쳐 보여요.”

첫째인 영후의 목소리가 제일 컸다.

물의 기운을 가진 아이라서 기운을 바로 느낀 것 같았다.

“그런데 샤먼이 뭐예요?”

셋째 영주가 태월을 빤히 쳐다보며 묻는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사람? 신을 모시거나 신과 사람을 잇는 역할? 하여간 그런 거란다. 한국의 무당과 유사한 면도 있고.”

“아하, 그런 거구나!”

아이들에게 말을 해주다 보니 처음 이곳에 왔던 때가 떠오르는 태월이다.

그로 인해 아샤와 아쿠를 만났던 일까지 기억이 새로웠다.

아이들이 기운 때문인지, 영후는 아쿠랑 자주 대화를 하고 영린이는 아루랑 대화를 많이 한다.

영주는 루루를 데리고 놀 때가 많았고.

‘그러고 보니 땅의 정령이 없었네? 비슷한 두더지 요괴는 있었지만.’

그런데 묘한 것은 아이들이 자기 엄마가 누군지를 구별하지 못했다.

아샤와 아진이 영혼의 공유란 것을 두 번이나 해서인지, 본능적으로 동질감을 가지는 것이다.

그걸 굳이 묻는 아이들도 없었는데, 단지 셋째 영주만 외형 때문에 표가 났다.

머리 색과 아샤를 닮은 이목구비.

태월이 예전에 그걸 지나가는 말로 물은 적이 있는데, 아이들의 대답은 ‘우린 엄마가 둘인데?’ 였다.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아이들은 그게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태월이 일본에 있을 때도 아이들은 뒤섞여 잔다.

종종 아샤와 아진의 옆에서 잘 때도 있었는데, 고정적이지 않았다.

“와! 여기가 칭기즈칸 무덤이에요? 아빠가 발굴했다 이거죠?”

“흠흠, 탐험대 대장이랄까?”

“얘! 난 부대장이었어!”

아루가 나서며 둘째 영린이를 안아 들었다.

칭기즈칸 박물관의 관장을 맡고 있는 라리사는, 밑의 직원에게 관광객 안내를 맡기고는 태월의 옆에 딱 붙어 서 있다.

라리사의 입장에선 자신의 주인을 오랜만에 보는 것이다.

주인의 아이들로 보이는 넷은 그녀가 봐도 정말 귀엽고 이뻤다.

직접 박물관 내부를 설명하며 아이들과도 친교를 다졌다.

“와, 좀 전에 봤던 언니의 오빠가 이 아저씨라고요?”

“큼큼, 나도 아저씨는 아닌데?”

“척 보니 아저씬데 왜 그래요? 저도 알 거 알거든요?”

안드레이는 셋째 영주의 팩트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둘째 아가씨랑 너무 닮았네요?”

“하하, 좀 그렇긴 하지?”

태월과 결혼했어도 안드레이와 라리사는 아진을 첫째 아가씨, 아샤를 둘째 아가씨라 부른다.

안드레이가 관장으로 있는 곳은 이름을 바꾼 알혼 박물관이다.

과거 안드레이가 늑대 족으로 지내면서 유럽정벌의 군대에 끼어 몰래 획득한 유물들을 모아놨던 걸 이곳에 진열해 놓은 것이다.

또한 한국에서 보내온 유물들도 함께 전시해 놓았다.

칭기즈칸 박물관과 함께 알혼의 2대 박물관으로 관광객이 항상 넘치는 곳이다.

“어? 과거보다 공간이 늘어났는데?”

“네! 기억을 더듬어 유실된 유물들을 찾아왔습니다.”

“유실? 그럼 적법한 소유권을 가진 국가가 있단 소리잖아.”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의 나치가 무너지면서 미국과 소련의 문화재 부대가 들이닥쳤습니다.”

“문화재 부대가 뭐지? 문화재 보존을 시키나?”

“정반대입니다. 전쟁 중 적국의 문화재를 접수하는 부대입니다.”

“하하, 그래서?”

“미국의 모뉴멘츠맨과 러시아의 고스폰드가 경쟁했는데, 고스폰드가 한발 빨리 쓸어갔습니다. 독일 고고학자의 도움을 받은 것이죠. 그리고 그걸 러시아로 옮겨버렸습니다. 그리고 소련은 이목이 두려워 숨기고 있다가, 1991년 소련이 무너지면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래? 그런데 그게 왜 여기 있어?”

“실제로 독일에서 러시아로 넘어간 건 절반뿐입니다. 그 당시엔 미군보다 서두르기 위해 문화재 목록 작성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옮기던 소련군 책임자 하나가 딴마음을 먹은 거죠. 그래서 절반의 물건이 다른 곳에서 누락되었습니다. 폭격을 맞아 사라진 것처럼요.”

“그 소련군 책임자가 다시 찾아갔을 거 아냐?”

“그자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 자기의 심복인 부관을 죽이려다가 서로 상잔하게 되었습니다. 그자는 즉사했고 부관은 중상을 입었죠. 한 농가에서 치료를 받던 부관도 결국은 세상을 떠났고요. 그때 떠돌던 제가 그 마을에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농가의 농민이 마을 사람들을 구성해서 그곳에 갔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 그럼 그 부관이 거짓말을?”

“하하, 그건 아니고요. 제가 늑대로 화해서 그들보다 일찍 도착했거든요. 싹 빼돌렸죠. 뭐.”

태월이 알기론 안드레이는 물욕이 그리 없었다.

“왜 그랬는데?”

“아마 마을 사람들이 찾아냈으면, 비밀은 지켜지지 않았을 겁니다. 마을 전체가 소련군에 의해 몰살을 당했을걸요.”

태월은 충분히 안드레이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아빠! 저기 이상한 게 지나갔어!”

넷째 영진이가 갑자기 태월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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