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빅터셀
심각해진 태월의 얼굴을 빤히 보던 아카가 보충 설명을 해줬다.
“음, 그게 그리 간단치 않아. 예를 들면 완성차 업체들이 안전 관련 테스트를 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투입해야 해. 그뿐 아니라 배터리 제조사가 램프업, 즉 생산력 향상 과정을 거쳐야 하는 기간까지 고려하면 적어도 3년 이상이 걸릴 수 있어.”
“뭐래? 무슨 그런 엉터리가 다 있어!”
“훗, 그게 싫으면 태월이 자동차 업체를 인수해.”
“오! 멋진데?”
“어머, 그냥 해본 소린데 진짜 인수해보려고?”
“안 될 게 있나? 일단 BTR미러클에서 벌어들인 돈이야 땅을 대신 받은 게 대다수라 현금 회전이 안 되겠지만, 대출받으면 되잖아?”
“굳이? 지금 금 매입 시세가 역대 최고가인 거 몰라?”
“헐, 그랬어? 얼만데?”
“한화로 1돈당 24만 원쯤?”
“헉! 5만 원쯤 하던 때도 있었는데. 그럼 금을 팔아야겠다.”
미국 RAON이나 러시아 BATR, 한국의 TW에서도 자본금은 많았다.
그러나 대부분이 돈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회전시키는 중이다.
그리고 태월 또한 그 자본을 가져오긴 싫었다.
결국 태월은 이계에서 가져온 것과 지금까지 모아놓고 있던 것을 처리하기로 했다.
“2월 28일 전에 처분해야 해. 그때 변수가 있을 듯해.”
“뭐 아직 열흘이나 남았네. 한국서는 일부만 풀고 나머진 미국에서 처리해줘야겠어.”
“그럼, 미군 공군기지를 통해 나에게 보내줘. 시기를 점치다가 최고가 즈음에 팔아치울게.
그리고 올해 미국 시장의 M&A에서 최고로 활발한 활동은 통신과 자동차 쪽이야.”
“알았어. 오늘 내로 보낼게. 그리고 자동차 쪽의 정보를 모아줘.”
태월은 금의 10%만 TW로 보내고, 나머지 90%는 공간 가방을 이용하여 미국으로 보냈다.
2012년 2월 27일 1온스당 1,750달러에 100톤을 팔아버렸다.
1톤은 35,274온스에 해당했다.
1톤에 61,729,500달러가 되는데, 한화로 680억가량이다.
그러니 100톤은 달러로 61억7천 달러, 한화로 6조8천억에 해당했다.
한국에서도 10톤가량을 야금야금 팔았지만.
“한국의 자동차 내수시장도 필요할 거야. 르노삼성은 어때?”
“그거 르노가 지분이 대부분이지?”
“르노가 80.1%고 삼성카드가 19.9%야. 그리고 영업이익이 발생 시 삼성 브랜드 가치에 대한 로열티로 매출의 0.8%를 삼성에서 가져가. 그리고 2000년 9월에 자본금 4,400억으로 출범한 거야.”
“M&A가 가능한 거야?”
“르노와 닛산을 이끌고 있는 이가 카를로스 곤 회장이야. 유럽 쪽을 맡은 르노가 현재는 적자를 보고 있지. 그래서 르노가 삼성자동차를 인수해서 자신들 물량을 르노삼성에서 소비하려는 게 1차 목적이야. 그리고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겠어? 더구나 한국의 완성 자동차 시장은 삼성, 대우, 쌍용이 대부분인데 전부 외국계 기업이 인수했어.”
“르노삼성 그거 하나로 되나?”
“전기자동차로 가려면 한 군데 정도는 더 인수하는 게 좋지만, 일단은 첫발부터 디뎌야지.”
“르노삼성은 어떻게 하려고?”
“한국 자체에선 답이 없어. 카를로스 곤 회장을 압박해야지. 나에게 맡겨둬.”
2012년 초부터 르노삼성은 내수 및 수출이 감소하면서 판매 부진에 시달리고 있었다.
1분기 전망치가 내수 41% 감소, 수출 22% 감소라는 좋지 않은 분위기였다.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GM에 3위를 내주고 4위로 밀려났지만, 곧바로 만년 5위 쌍용에게도 잡힐 판이었다.
르노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이다.
다국적 기업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일원이자 모기업이 르노다.
아카는 프랑스의 남쪽 르가르 지방의 마르클 원자력 발전소에서, 작년 9월 12일 원전 사고가 발생한 것을 알고는 그것에 초점을 맞췄다.
프랑스는 방사능에 대한 엄격하고 비타협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고가 난 3일 뒤 방사능 누출이 있었을 가능성을 인정했었다.
그리고 르노삼성 자동차의 상황을 심각하게 직시하도록 만들었다.
프랑스 정부와 닛산이 동률인 15%의 지분을 가지고 있으나, 차등의결권에 의해 프랑스 정부의 입김이 더 강했다.
“카를로스 곤 회장! 한국의 르노삼성이 현재 꼴찌로 추락하는 분위기더군요. 반등의 여지가 있습니까?”
“판로를 새로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곧 떨치고 일어날 거라 봅니다.”
“무슨 근거로 그리 오만하죠? 제가 알아본 정보에 의하면 신차 계획도 없고 주요 대리점 매각까지 염두에 뒀다던데? 사실을 은폐하려 하나요?”
“은폐를 한 적은 없습니다.”
“제 정보는 프랑스 정보국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럼 프랑스 정부를 무시하는 것인가요?”
카를로스 곤은 임시주주총회에 불려 나와 지금 호되게 당하고 있었다.
프랑스 정부에서는 아카의 제안으로 이렇게 그를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르노삼성이 곤경에 처한 것도 사실이기에 응한 것이지만.
BTR미러클이 프랑스 정부에 한 제안은 다름 아닌 유럽 두 번째 지사를 프랑스에 두겠다는 것이었다.
영국에 자존심이 상했던 프랑스로서는 마르쿨 원자력 발전소의 주변을 되살리고 싶어 했다.
비록 방사능 유출은 없었지만, 안전 확보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전기 부족 현상으로 국민에게 부과될 전기료 인상이 코앞으로 닥친 상황이다.
“흑자가 없기에 실제로 이자 압박은 받고 있지 않습니다.”
“흑자가 날 것도 당장 없지 않나요?”
“그, 그거야….”
“괜히 르노의 이름을 더럽히지 맙시다.”
결국 카를로스 곤은 2시간 동안의 질책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보다 더딘 르노삼성의 회복에 마음이 흔들리던 참이었다.
르노삼성의 80.1%의 지분이 7,000억에 BTR에 넘어왔다.
삼성은 거기에 대해 항의를 하였으나 한국 정부는 오히려 반겼다.
BTR미러클이 다국적 기업이긴 하지만, 한국의 자본인 TW그룹이 40%를 가진 1대 주주였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에 이어 삼성자동차까지 한국기업의 소유가 된 것에 긍정적 반응이었다.
이에 BTR미러클은 BTR자동차라는 이름으로 사명을 변경해버렸다.
태월은 삼성의 이름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탓이다.
이에 화가 난 2대 주주인 삼성카드에서, 주식시장에 주식을 투하하려 했다.
결국은 국내시장의 불협화음을 꺼린 정부가 둘의 중재에 나섰다.
서로 윈윈하자는 내용이었다.
화해의 제스처로 BTR에서 현시세보다 20%를 더 쳐준 값으로 남은 주식 19.9%를 매입하게 되었다.
그래서 BTR자동차는 순수 100%의 자본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수 시 노조와의 갈등은 최소화했으며, 복직을 원하는 직원들도 전부 받아들였다.
1년 내 소유 공장의 조립 라인 중 40%를, 전기자동차 라인으로 만들겠다는 황당한 발표를 하기에 이른다.
“전기차를 생산하신다면 저희 삼성 배터리를 쓰시면 어떻습니까? 이만한 대안은 없을 텐데요. 인연도 있고 하니 만족하는 계약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하하, 저희도 준비된 게 있어서요.”
르노삼성일 때부터 일했던 윤형준 부장은, 오랜만에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사주에게 배터리 자회사를 만들 예정이고, 그 시작이 전고체 배터리란 말을 들었을 땐 거의 기절할 뻔했었다.
그래서 오늘은 삼성의 임원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당당하게 거절까지 하게 되었다.
어쩌면 삼성 핸드폰에 전고체 배터리가 쓰이게 될 거라는, 묘한 흥분감이 드는 윤형준이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BTR테크라는 이름으로 자회사를 만드는 태월이다.
더불어 전고체 배터리도 발표했다.
이 당시 전고체 배터리를 생산하는 기업은 세계 최초다.
다만 일본 도요타가 2010년 황화물 전해질을 사용한 전고체 배터리 시제품을 공개한 뒤로 연구가 눈에 띄게 늘었을 뿐이다.
이 당시 삼성은 완성 자동차 사업 대신, 전기자동차에 사용될 리튬 배터리 사업에 매진하던 때였다.
각계의 시선이 오늘 기자회견에 쏠려 있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해외 기자들도 자리를 잡느라 어수선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발표를 맡은 BTR테크의 홍주철 홍보이사입니다.”
개발이사가 아닌 홍보이사가 나선 이유는 개발 주체가 태월이기 때문이다.
“먼저 이 전고체 배터리는 기존의 단점을 완전 보완한 최고성능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제품명은 빅터셀(victorcell)입니다.
5만 회 충전에 93% 유지! 지속시간 2배! 가격은 기존 리튬 배터리와 시간 대비 동일! 충전은 1시간! 부피도 절반! 무게도 절반입니다.”
시골 5일 장의 만병통치약을 파는 약장수 같은 멘트였다.
그런데 그 약 효과가 과했는지, 기자들이 놀라움을 넘어 의심하는 상황도 생겼다.
브리핑 식으로 결과에 대한 정보를 송출하고 있지만, 경제 판도를 뒤집어버릴 내용이라 웅성거림만 커졌다.
홍주철도 이들의 반응을 예상했던 터라 별다른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BTR테크에서 만든 빅터셀에 궁금한 점이 많으리라 봅니다. 그렇다고 모든 질문에 답을 할 수는 없습니다. 선착순 딱 열 분의 질문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사방에서 동시에 손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거기 회색 페도라에 검은 테 안경 쓰신 분!”
“앗, 감사합니다. CNN의 토마스 기자입니다. BTR에서 자동차산업에 뛰어듦과 동시에 이 놀라운 배터리를 내놓았습니다. 또한 생산라인 일부를 전기자동차로 배정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르노삼성을 인수한 것이 빅터셀 판매를 위한 교두보입니까?”
“질문이 하나가 아닌 듯한데, 처음이시니 넘어가겠습니다. 맞습니다! 빅터셀을 먼저 만들었고, 그 놀라운 배터리를 시장에 내놓으려면 중간에 거쳐야 하는 입증 시간이 과했습니다. 지금까지 없던 제품이니 이해는 합니다만, 그래서 싫었답니다. 아 물론 제가 아니고 저의 사주께서 싫어한 거죠. 이제 친환경 전기차 시대를 여는 선구자로 BTR이 여러분께 다가설 겁니다. 다음 분?”
두리뭉실한 말이지만 의미는 다 설명한 거와 같았다.
“BBC의 로라입니다. 빅터셀의 입증 기간을 거치지 않고 바로 BTR차량에 장착하실 생각입니까?”
“시뮬레이션 작업은 다 끝났습니다. 실제 테스트 또한 거칠 것입니다. 단! 3개월의 테스트만 하겠습니다! 교차증명을 위해 1천 대의 차량이 동원됩니다. 단순한 증명도 아니고 악천후 속에서 진행할 생각입니다. 테스트 현장은 실시간으로 언제든 보실 수 있도록 인터넷에 공개합니다. 다음은 저기 손수건을 들고 흔드는 분! 갑자기 제가 연인이 된 기분입니다.”
여기저기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 고맙습니다. 포브스의 미셀입니다. 빅터셀의 내부 구성을 보면, 기존에 전고체를 연구하는 방향과 전혀 다른 방식이 도입된 거로 보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미러클의 원리가 이번 빅터셀에도 도입되었습니다. 그게 기존의 전고체 배터리 연구 방향을 뒤집어, 이런 혁명적 제품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다음은 시계를 팔목에 두 개나 차고 흔드시는 분!”
수많은 기업에서 미러클의 기술을 파고들었으나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단순히 디자인 특허만 획득했을 뿐, 기술을 설명할 특허는 신청조차도 하지 않고 있다.
“음, CCTV의 창리요! 중국에 배터리 공장을 세우실 의향은 없으신가요?”
중국 중앙방송의 기자가 너무 앞서 나가는 질문을 했다.
“그 문제는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서 패스하겠습니다. 자, 다음은….”
“이렇게 입증도 안 된 허술한 배터리를 보완해줄 곳은 중국뿐이오! 잘 생각해보길 바라오!”
무슨 중국 정부에서 나온 듯한 건방진 말투와 제품을 깎아내리려는 발언에, 회장 분위기가 경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