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전기자동차 배터리
아카는 그런 태월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진짜 투명해진다는 게 아니라 의미가 그렇단 거야. 지진파가 건물 자체를 인식하지 못해버리거든. 2009년에 프랑스 에녹 박사 팀이 원형 플라스틱 고리를 이용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성공했었지. 뭐 아직 완성되지는 못했어.”
그들 외에도 같은 연구를 하는 연구팀도 있었다.
강물이 바위를 따라 돌아가는 것과 같이, 빛이 물체에 부딪히거나 흡수되지 않고 돌아나가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거라는 그들의 주장이었다.
자연에 없는 음의 굴절률을 가진 물질은 빛을 굴절시키는데 그걸 메타물질이라 부른다.
실리콘이나 유리 섬유로 만든 다양한 메타물질이 개발돼 마이크로파에서 가시광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빛을 물체 주위로 돌아나가게 했다.
영국의 푸단대 연구진도 파도가 기둥 때문에 해안에 닿지 않고 돌아나가게 한 것이다.
물론, 아카가 보기에 그들의 연구는 쓰나미의 마찰력에는 효과가 미미했다.
“태양광 집광 장치와 지진파 회피가 가능하다면 굉장하겠는데? RAON 연구소는 어때?”
“아, 또 일거리를 늘려주네. 우리야 그들보다 앞서있으니 가능은 하지. 이미 나온 방식이니 거기에 RAON의 기술과 법술이 합쳐졌을 때 1년 정도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데 돈은 있어?”
“후훗, 이계에서 가져온 귀금속이 엄청나거든. 또 더 필요하면 법술을 이용해 돈 될 만한 걸 만들면 되잖아? 예를 들면 고용량 전고체 배터리라든가.”
“아, 그거는 괜찮네. 대신 태월 쪽에서 하도록 해. 우리도 할 일이 쌓였거든?”
“음, 좋아! 그러지 뭐.”
한 달 후부터 말캉이와 로봇 두 기는 100㎢ 면적의 지하를 뚫어 나갔다.
한 달이란 시간이 소모된 이유는 지하도시의 설계도 도면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 일은 아카가 인공지능을 이용한 슈퍼컴으로 다 해준 거지만.
태월이 도면을 전해주던 날 생각지 않았던 둘을 만나게 되었다.
“아빠!”
“헉! 누, 누구야?”
문이 열리며 웬 아가씨가 뛰어 들어오더니 태월에게 아빠라고 불렀다.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키쿠리를 보고는 그제야 사태 파악이 되었다.
“마스터!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일본에 들락날락하면서도 우리를 찾지 않는다니.”
“전에 갔을 때, 폐관에 들었다길래 나오면 연락 올 거라고 본 거지.”
키쿠리는 부활과 은혜 그리고 치유의 여신이었다.
그녀가 하급신이었을 때, 중급신인 쿠사나기 노츠루기와 하급신을 흡수시켜 중급신의 격에 도달했었다.
그리고 요괴합성을 세 번 했을 때 나온 게 백마인 화이트, 땅 파는 더지, 그리고 꼬리 달린 아기 키토였다.
그때 처음 본 여성체인 키쿠리를 엄마로 불렀었고, 태월을 아빠로 불렀었다.
“그런데 키토는 완전히 다 컸네?”
“그때가 언젠데 아직도 아기겠어요?”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키토는 20살 정도의 성인으로 보였다.
태월을 여전히 빤히 바라보며 볼을 부풀리고 있는 키토다.
“그런데 얘는 왜 심통 난 것처럼 보여?”
“그거야 그 이후 한 번도 안 찾았으니 그렇죠.”
“나 거의 러시아에 가 있었거든?”
“누가 그걸 모르나요? 그만큼 관심이 없었으니 안 부른 거죠.”
조금 날이 서 있는 키쿠리의 말투다.
“에이, 그건 미안해. 키쿠리는 모르지만 난 이계로 떨어진 적도 있었어.”
“이계라뇨?”
눈을 반짝이는 키쿠리와 키토다.
그 둘에게 태월은 이계에서의 일을 꺼내 놓았다.
한참을 들은 키쿠리는 아쉬움의 입맛을 다셨다.
“거긴 요괴 천국이었군요. 몽땅 흡수할 수 있었는데.”
“하하, 요괴들이 풍족하긴 했어.”
“아빠? 나 선물 없어?”
“헉! 너 아직도 아빠라 부르냐?”
태월은 키토의 시선을 외면하고 키쿠리를 쳐다봤다.
“에휴, 이제는 진실을 알긴 해요. 그런데 그렇게 부르는 게 자신은 좋은가 봐요. 그리고 실제로 태어나게 해준 거니, 아빠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엄마라고 부르는 게 더 맞으려나?”
“헐! 참아줘. 그래도 내가 미안한 게 있긴 있으니 뭘 선물로 줄까.”
태월은 가만히 생각하다 공간 배낭에서 가방 하나를 꺼냈다.
“이게 적당할 거 같네.”
“웬 핸드백이죠? 브랜드가 뭐예요? 새로 나온 명품인가요?”
“하하, 명품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내가 특별히 만든 거야.”
“가방을 만들어요?”
“이건 공간 확장 가방이야. 컨테이너 한 대 정도의 물량이 이 안에 들어가지.”
태월이 이계의 법술 아카데미를 졸업할 즈음에 연습 삼아 만들어본 것이다.
“우와! 이거 어떻게 쓰는 거예요?”
“간단해 넣을 땐 가방 속을 연상하고 의지를 집중해. 그리고 꺼낼 땐 꺼낼 물건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되고. 몇 번 연습하다 보면 될 거야.”
“와! 아빠! 고마워요! 쪽쪽!”
선물이 마음에 들었는지, 텐션이 급히 올라간 키토는 태월의 뺨이 입을 맞춰댔다.
연습을 한다고 이것저것을 꺼내 들고는 집중에 들어갔다.
그사이 샐쭉해 있는 키쿠리를 옆방으로 데려갔다.
“하하, 이건 키쿠리 선물이야.”
새로운 가방 하나를 배낭에서 꺼내 주었다.
“어? 이것도 만든 건가요? 디자인이 다른데요.”
“이건, 이계 하급신이 가지고 있던 거야. 컨테이너 두 개 분량이 들어가지. 내가 가진 배낭 용량과 비슷해.”
“헛, 이런 걸 제게 줘도 되나요?”
“괜찮아. 이제 서운한 거 많이 줄어들었지?”
“호호, 네. 감사해요.”
키쿠리가 활짝 웃는 모습으로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최근에 오형석 지부장은 서울로 돌아갔으며, 일본 지사장인 호스케 유카이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20㎢의 대평원에 인부들을 고용해서 농사를 지으려는지 땅을 고르고 있었다.
“호스케 지사장님? 여기서 뭘 하는 겁니까?”
“저희 대표님이 시키신 일이거든요? 청정 지구를 만들겠다는 것이죠! 척 보면 모릅니까?”
대단한 사명감을 가진 눈빛으로, 중앙에서 나온 공무원을 오히려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일본 정부에서는 BTR에서 하는 일이 어이가 없었지만, 지하 공사를 계속하고 있기에 뭐라 할 말은 없었다.
청정 지역으로 만들겠다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태월은 전고체 배터리를 연구하는 중에도 일본으로 종종 건너와 사고를 치고 갔다.
3달에 한 번씩 슬쩍 넘어와 팔찌에 담긴 지역을 이동시킨 후 다시 회수하는 방식을 썼다.
그럴 때마다 20㎢의 평야가 생겨났다.
물론 그 시간엔 아카의 업그레이드된 강력한 인공위성이, 경로를 거치는 위성들에게 방해전파를 날렸다.
다음 날 발견되는 대평원에 각국의 정보기관이 신경을 곤두섰지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BTR미러클의 지사들은 활황이었다.
그중 다수의 국가가 방사능 오염 지역의 절반에 해당하는 땅으로, BTR과 계약을 맺기도 했다.
BTR이 일본에서 하는 일을 보면, 청정 지역을 만들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리튬 자원이야 전 세계적으로 풍부하지만, 훗날 그걸 또 자원 무기로 쓰는 나라가 나올 거야. 그러려면 간섭이 덜한 바다에 묻힌 걸 찾는 게 낫겠지? 잠수함도 두 대나 있으니 그걸 활용해야겠네.”
러시아에서 넘어온 잠수함은 대형급이 아니었다.
그래도 탐사용으로 쓰기엔 과한 면도 있었으나, 태월은 상관없다 여겼다.
떡하니 BTR미러클의 자회사로 BTR자원개발을 만들더니, 상황실을 책임진 루가에게 그 회사를 맡겼다.
일곱 중에 아카에게 경영수업을 받은 이는 루가뿐이다.
“저기, 전 불의 정령인데. 물이나 땅의 정령도 아니고요. 바닷속에선 맥을 못 춥니다.”
“누가 바다를 헤엄치래? 더지와 키토가 내일 한국으로 올 거야.”
“아, 저번에 말한 그 요괴들요?”
“면전에서 그딴 단어 쓰면 아마 공격하려 들걸? 그러니 말조심해. 이제 다 같은 패밀리잖아.”
“네, 실수했습니다.”
키쿠리에게 들은 키토의 재능은 다양했다.
아이일 때는 그게 드러나지 않다가 성장하면서 생겨났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제일 큰 재능이 대상의 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일에 동참시킨 것이다.
접촉한 인간의 몸속뿐만 아니라 물질계에도 통한다고 했다.
매개체만 존재한다면 그 깊이는 한계가 없었다.
수륙양용인 더지가 땅을 파서 깊이 들어갈 때 금속 줄을 가지고 들어갈 예정이다.
그러면 금속 줄의 반대쪽만 손에 잡고 있으면, 닿는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다음 날 태월을 찾아온 더지는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20살 동양인의 모습이었다.
그 옆에 있는 키토만 성장한 듯했다.
“키토야 옷 좀 걸쳐라. 여긴 아직 바다가 아니잖아! 그리고 잠수복을 입어야지 웬 수영복이야?”
키토는 원피스 수영복만 입고 있었다.
“뭐, 어때요? 아빠는 다 그런 건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원래 아빠는 딸의 복장에 대해 잔소리를 자주 한다고 하던데요?”
“별 이상한 소릴 다 하네. 더지? 쟤 원래 저러니?”
“네, 원래 저래요.”
“아빠! 좋은 거 많이 찾아낼게요.”
“그, 그래.”
태월이 볼 때 더지도 이상한 놈이긴 하다.
탐사선 2척과 잠수함 1척 그리고 보트 2대. 20명의 선원과 3명의 연구원 그리고 1명의 정령과 2명의 요괴가 탐사대의 전부다.
그렇게 그들은 떠나갔다.
일단은 한국 영해를 탐사할 목적이었다.
그 후엔 공해상으로 나갈 계획이다.
“음, 전고체 배터리를 완성하긴 했는데, 성능은 기대에 차지 못하네.”
전해질 리튬 배터리는 충격에 의한 화재나 폭발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다.
그래서 태월은 처음부터 차세대 유형인 전고체 배터리를 연구하고 있던 것이다.
전고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건 아니다.
음극과 양극의 재료도 같고 고체인 것도 같다.
다만 기존의 리튬 배터리는 전해질이 액체고, 전고체 배터리는 전해질이 고체라는 차이다.
그로 인해 전고체 배터리는 안정성에 장점을 가지게 되지만, 제조원가가 상당히 비싸진다.
다른 단점도 존재하지만, 안정성이라는 위험에 비하면 양호한 것이다.
“전해질 재료로 황화물, 산화물, 폴리머밖에 없으려나? 쩝! 미러클에 비하면 실용화가 낮겠네. 어? 미러클? 그 생각을 왜 못했지? 내가 가진 걸 잊고 있었네.”
태월은 미러클에 들어간 인조 법술 가루로 실험하는 한편, 다른 법술 가루를 혼합해보며 며칠을 집중했다.
미러클에 들어간 인조 법술 가루 자체로는 별다른 효과를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그걸 전부 포기하고 음극과 양극 사이를 법술 가루를 이용한 기판 형식으로 제작하자 효율이 달라졌다.
기운을 가지게 된 기판이 음극과 양극에서 최대치의 효율을 조율하고 더불어 고밀도를 유도했다.
1,000회 충전 후 99%, 2만 회 충전 후에는 95%, 5만 회 충전에서는 93%의 초기 배터리 용량을 유지했다.
게다가 초고밀도가 가능해졌다.
그러자 배터리 용량은 같은 크기에 비해 두 배나 커졌다.
또한 80% 충전 시간도 가정용 전기 대비 1시간 정도로 짧았다.
급속충전이 가능하다면 그 시간은 20분 남짓이다.
“하하! 바로 이거지! 인조 법술 가루라서 비용도 절약될 거고!”
전해액인 리튬염에 비해서도 비싸지 않았다.
미러클은 비용을 낮추는 대신 최대한 안정성과 고효율을 높이는 데에 집중했었다.
그에 반해 전고체 배터리는 그 자체가 안정성이라, 수명과 사용 시간 그리고 제조 단가에만 신경 썼다.
7개월의 연구 끝에 얻은 결과물이다.
“하하, 아카! 나 전고체 배터리 제대로 만들었어!”
“어? 진짜? 우리보다 빠르네. 성능이 어떤데?”
“5만 회 충전에 93% 유지! 지속시간 2배! 가격은 기존 리튬 배터리와 시간 대비 동일! 충전은 1시간!”
전기차로 따지면 전고체 배터리 하나를 사용했을 때 200km를 달릴 비용의 두 배로 400km의 거리를 간다는 의미다.
“와! 대단한데?”
“이제 제대로 생산하면 되는 건가? 전기자동차의 배터리는 어떨까?”
“그건 최소 3년 이상은 있어야 팔 수 있을걸?”
“헉, 무슨 소리야?”
전기자동차 배터리에 중점을 두고 연구했던 태월의 인상이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