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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재능을 삼켜라-232화 (232/250)

232화. 후쿠시마에 생긴 대평원

머리를 긁적인 태월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 이건 도저히 안 되겠네. 돈이 깨지더라도 해체해야지. 어차피 연료봉은 회수했고, 방사능도 없으니 해체기술이 필요하진 않잖아! 해체? 이거 아주 껌이잖아!”

절반은 성공했다는 생각에 뿌듯한 태월이다.

그리고 팔찌를 다시 가동하여 새로운 땅을 입고시켜버렸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사태에 직면했다.

“헉! 이거 평지잖아?”

끝이 안 보이는 엄청난 면적의 평지가 태월의 눈앞에 펼쳐졌다.

원자로가 지하 깊이로 엄청나게 파고 들어갔을 터인데, 그런 것까지도 사라진 완전한 평지였다.

이계에서 1황자가 준 해석본에는 건물이 겹쳐지며 새로운 땅만 남는다고 써놨을 뿐이다.

이렇게 재입고시킬 경우에 대한 내용은 적혀 있지 않았다.

평지화된 땅 앞으로 다가간 태월은, 흙을 만져보며 갸웃거렸다.

“완전히 눌려 평지화된 거로 알았더니 그건 또 아니네? 흙이 다른데?”

태월이 보기엔 순수한 흙처럼 보였다.

“말캉아? 너 흙 다루는 요괴로 변신할 수 있지? 되면 땅을 100m만 파고 들어가서 몇 군데 샘플을 채취해봐. 아 그리고 내려간 김에 땅속 지도도 그려보고. 지하수나 광석이 묻힌 곳을 표기해놔.”

“네! 할 수 있어요.”

신나게 대답한 말캉이 땅으로 스며들듯 들어가 버렸다.

말캉이 나타난 것은 무려 두 시간 후였고, 동이 터오는 시간이었다.

“현장 사무실로 이동하자.”

“네, 마스터!”

현장 사무실에 도착한 말캉은 사람으로 변신한다.

그리고 머릿속에 그려놓은 땅속 지도를 도면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놈, 진짜 가면 갈수록 놀라운 놈이네. 상급 신이 욕심낼만했어.’

현실 적응력과 학습 능력이, 태월의 패밀리 중 최고인 아카와 비등할 정도에 변신 만능 키트다.

-띠리링! 띠리링!

현장 사무실의 전화벨 소리가 급히 울린다.

오늘은 이곳 사무실엔 관리인이 없었다.

혹시나 몰라 태월이 휴가를 줘버렸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엇! 대표님 거기 계셨군요. 전화기가 꺼져있어서요.”

“아, 깜빡했네.”

자정부터 서두르느라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된 것을 모르고 있었다.

“다른 현장 사무소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갑자기 발전소뿐만 아니라, 모든 지형이 사라지고 평야가 나타났습니다. 대표님이 그리로 가신 후에 벌어진 일이라던데요?”

“다들 입막음하세요. 나도 상황 파악 중이니, 이 일이 밖으로 당분간 새어 나가선 안 됩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태월이 그렇다는데 오형석 지부장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흠, 현장 사무실의 사람들이 더 필요했었나? 고베 대지진 때 소생한 사람 중에서 고른 건데, 수가 부족하네.’

소생자는 많았지만, 그들 중 대다수는 다른 직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태월에게 속해서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에, 이나마 보안이 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때 쓰나미에 의한 익사자도 1만5천 명 가까이 되었는데, 그게 아쉽네.’

실제로 지진에 의한 사망자는 많지 않았고 대다수가 익사자였다.

그런데 태월이 그곳에 갔을 때는 시신들이 쓸려나가서 이제야 수색하는 분위기였다.

몇 사람 정도야 소생시킬 수 있었지만, 그가 본 시신들은 휩쓸려 나간 상태서 목이 꺾어지거나 장기가 파열되었다.

지진만 났다면 그 근처에 시신이 남아 있었을 테지만, 태풍이나 파도에 의해 시신이 휩쓸려 나갔을 때는 수십 킬로 밖에서도 발견되기도 한다.

“아카? 인공위성에서도 너무 표가 나지?”

‘맞아, 일단 시선을 좀 돌릴 필요가 있어. 전에 법술 원리로 움직이는 골렘 형태의 로봇 말이야. 그거 시제품이 두 기가 있어. 그걸 급히 보내줄게.’

태월이 이계에 다녀온 뒤, 여러 가지 법술을 아카에게 전해줬었다.

아카데미에서 배운 것 외에도 다양한 활용 서적이 아카에게 넘어갔던 것이다.

그중에는 대요괴전에 사용된 다양한 기물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골렘 형태의 무인 로봇이 있었다.

태월이 비록 그걸 활용하여 요괴들과 싸운 적은 없지만, 법술을 이용한 제작법이 기록된 서적도 존재했었다.

이 시대에도 로봇 공학이 존재하지만, 이계의 방식은 현재의 과학 수준으로는 따라올 수가 없었다.

“아카가 인공지능을 이용해 다양한 실험을 하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언제 그걸 다 만들었대?”

‘나야 로봇 정도는 원래 만들 수 있었어. 다만 원료 소비가 너무 컸고, 또 자연스럽게 움직이지 못해서 고민하던 차였지. 말 그대로 실용성이 형편없었어. 그런데 태월의 법술이 그걸 메꿔 준 거야. 이계에서 만들어봤다던 그 법술로 제작한 그 엔진! 그 공로가 제일 컸어.’

“현대 로봇 공학과 법술의 합작. 나도 바빠서 요즘 거기까진 생각 못 했어. 어쨌든 미래의 최첨단 기술을 슬쩍 선보여서, 물을 흐리는 건 좋은 생각이야.”

‘BTR미러클 일본지사로 임대하는 걸로 할게. 요코다 공군기지로 보낼게. 그동안 그곳을 도는 위성들의 관찰은 최대한 방해해야겠지만.’

“좋았어!”

주일 미군 사령부는 도쿄도(東京都)에 위치한 요코다(橫田) 공군기지에 있다.

역대 주일 미군 사령관은 제5공군 사령관이 겸임하는 것이 상례였다.

아카의 인맥이 그 정도는 통했기에, 다음 날 새벽 요코다 공군기지로 대형 컨테이너들이 도착했다.

사실 대형 컨테이너는 눈속임이었고, 그 안에는 달랑 하나의 가방만 있을 뿐이다.

바로 공간 가방이었다.

로봇을 분해해서 보내야 하는데, 이곳 일본에서는 그걸 조립할 시설도 없었기에 택한 방법이다.

곧바로 후쿠시마로 넘어간 태월은 그곳에 두 대의 7m 신장을 가진 대형로봇을 출고시켰다.

아카가 제작한 이 시제품은 1976년 한국에서 제작된, 극장 애니메이션 영화 시리즈인 로보트 태권V와 유사했다.

이 시각 아카의 인공위성의 방해전파는 해제되었다.

“아니 저게 뭐야?”

“로봇?”

미국, 러시아, 중국, 그리고 유럽에서는 화면에 송출되는 장면에 어안이 벙벙했다.

아카가 자진 신고하는 방식으로 각국의 언론에 선수 쳐 버린 것이다.

위성의 수상함에 파고들려는 순간 그 실체를 보란 듯이 밝혀버렸다.

제일 시끄러워진 곳은 다름 아닌 일본이다.

“이런 게 일본에 왜 있습니까?”

“보시다시피 방사능이 유출된 후쿠시마 지역입니다. 사람보다는 비생명체가 먼저 들어가 작업하는 게 순서 아니겠습니까?”

“그건 맞는데 그 질문이 아니라 언제 저런 로봇이 제작된 건가요?”

“그래서요? 투입될 물자에 대한 기업의 정보까지 제공해야 했나요? 미국 RAON 그룹이 10년간 준비한 로봇 공학의 성과입니다.”

실제로 RAON은 미래형 신기술 연구를 다양하게 하는 기업이긴 했다.

그래도 로봇을 만든다는 건 처음 알게 된 일본 정부다.

“저 로봇들은 언제 일본에 온 것입니까?”

“그게 중요한가요? 급한지라 가져오는 건 요코다 공군기지를 통해서 들여왔습니다. 다 이곳 방사능 때문에,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서 가져온 것입니다.”

“흠흠, 굳이 기업의 정보까지 일본 정부가 일일이 파악해야 할 필요는 없지요. 저기 그런데 어마어마한 평야가 생겼던데, 저 로봇들이 짧은 시간에 그렇게 하는 게 가능한가요?”

“기업 기술 노출이 될 걸 피하고자 일단 지상을 덮었고, 지하층에서 지금 작업이 재개되었습니다. 방사능 제거 작업이 다 끝나고 나면, 이곳에 농작물이라도 심을 생각입니다만?”

정부에서 나온 자의 말에는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태월이다.

“며칠 만에 저렇게 덮었다고요? 흙은 어디서 퍼온 거죠?”

“어디서 났긴요? 지하의 흙을 지상 위로 내보낸 거죠. 이곳으로 오는 수천 대의 트럭이라도 있었나요? 당연히 아래위만 바꾼 거잖아요.”

정부가 궁금해하는 걸 오히려 꺼내는 뻔뻔한 태월이다.

“그게 가능합니까?”

“그럼 저렇게 평야가 된 건 어찌 설명하실래요?”

“우리가 그걸 왜 설명합니까? 오히려 BTR에서 설명해줘야죠.”

“그것에 대한 기술 지원은 RAON에서 했습니다. 사실 저희도 놀랍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자세한 것은 그곳에 의뢰하시면 됩니다.”

“아니, 뭐….”

미국의 RAON 그룹과 일본 정부는 별다른 접점이 없었다.

그래서 미국 정부를 통해 그 내용을 알려고 했지만, 미국 정부도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사실 자신들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말이 안 되는 일을 저지르고도 뻔뻔한 태월로 인해, 아카가 한 달 가까이 고생하게 되었다.

“지하에서 작업한다고 했으니, 뭔가 하긴 해야 하겠는데.”

“태월인 너무 즉흥적인 거 같아.”

한국으로 잠시 넘어온 태월은 상황실에서 아카와 영상 통화 중이다.

“설명하기 난해했어. 그래도 얼렁뚱땅 반은 먹혀들었잖아. 지하에 뭘 하지?”

“에구, 말해 뭣하리. 뭘 하긴 뭘 뭐 해? 그곳 후쿠시마는 쓰나미 피해가 잦잖아. 지하에 도시를 건설하면 되겠네.”

“오! 굿 아이디어인데? 지금 건설된 지하도시가 있나?”

“최근의 예를 들면 캐나다 몬트리올의 언더그라운드 시티가 있긴 해.”

언더그라운드 시티는 몬트리올 시내의 쇼핑지구다.

우리나라 여의도 면적의 1.5배에 해당하는 크기로, 시내의 주요 쇼핑몰과 호텔이 연결되어 있다.

이 지하도시엔 1,600개의 상점이 있다.

“흠, 지하가 사실 지상보단 살기 좋을 리가 없잖아. 태양광과 환기도 문제고 말이야. 특히나 일본은 지진이 자주 나니 지하가 더 위험할 수도 있잖아?”

“환기는 현실적으로 얼마든 가능해. 다만 태양광과 지진파를 해결해야 인간이 살아가는 데 불편함이 없을 거야. 핵전쟁 때는 방공호의 역할도 하고 말이지.”

“음, 태양광과 지진파라...”

“태양광은 가능하긴 해. 뉴욕 맨해튼에서도 시도하고 있거든.”

“거기서 왜?”

“맨해튼 지하에는 1948년에 전차 운행이 중단된 이후 방치된 지하 공간이 있었어. 2009년에 제임스 램지라는 라드 스튜디오 대표가, 그걸 공원화시키려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지. 그곳에 로라인 랩이라는 자연 채광 시스템을 설치하려 해. 그래서 식물이 정상적으로 자라게 만들려는 거고.”

“아, 어떤 식인데?”

“지상에 자연 태양광을 모으는 집광 장치를 설치해 고밀도의 태양광을 실내 및 지하로 전달하는 기술이야. 태양광 집진 시설의 관로가 광터널이 되는 거고, 이계의 법술을 이용하면 길이 제한 없이 자유롭게도 가능할 거야.”

“지진파는? 방법이 없어?”

“지진파에 대처하는 방식은 최대한 튼튼하게 지어 견디는 내진(耐震), 충격을 상쇄하는 제진(制震), 지진파를 피하는 면진(免震) 방식 세 가지야. 내진설계란 단어는 알 거고, 제진은 세계 고층건물들이 주로 도입하고 있어. 그리고 면진은 1994년에 증명된 바 있었지.”

1994년 미국 노스리지에서 발생한 규모 6.7의 지진으로 주변 병원들이 대부분 파손되었다.

그러나 면진 베어링이 설치된 서던캘리포니아 대학병원은 무사했다.

“그럼 면진이 제일 나을 수 있네?”

“좋게 말하면 지진 앞에 투명해지는 거나 같아.”

“헐, 투명해진다고?”

태월의 눈동자가 갑자기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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