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후쿠시마의 100㎢
태월은 각료의 말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보호복 세트 정도야 몇 벌을 선물로 준다고 해도 방사능 제거 비용에 비하면 하찮은 금액이었다.
5벌 해봤자 원가도 아닌 판매가가 1,500만 원 정도일 뿐이다.
“흠, 그럼 선물로 드리도록 하죠. 대신 사용하고 나서 제품의 우수성에 대해 홍보를 많이 해주시라고 드리는 겁니다.”
뇌물로 오인당하기 싫어서 정부 각료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다.
오랜 세월 묵은 공무원답게 그 진의를 금방 파악하는 당사자다.
“하하! 당연히 홍보를 제대로 해드려야죠. 더구나 일본에서 만든 제품 아닙니까?”
미국과 한국의 합작 제품이지만, 생산지가 일본인 것은 맞긴 하다.
“지금 공급이 이제 시작된지라, 여유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다섯 세트 정도는 뺄 수 있을 겁니다.”
“아,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오후에 유엔 조사단과 그린피스에서 함께 들어온다는데, 이참에 제대로 된 조사가 있어야 국제사회의 의혹이 줄어들 겁니다.”
“음, 어쩔 수 없지요.”
오후에 입국한 그들은 이틀간에 걸쳐 조사하였고, 태월이 내민 조사보고서와 예측에 동의했다.
더 오래 걸려야 할 조사였지만, 자신들보다 더 세밀하게 작성된 보고서에 결국 그들은 힘을 실어주었다.
시간을 허비하여 방사능 사태가 확산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만 손해 보는 게 그들에게는 효율적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일본 정부가 말한 것과 전혀 다른 피해 규모에 일본 국민들은 경악을 하였다.
그리고 시작된 협상에서는 태월이 원하던 금액 가까이 합의할 수 있었다.
제시했던 2조 금액의 90%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1조8천억 엔. 한화로 18조쯤이다.
사실 태월 입장에선 생산비와 인력을 합해도 한화로 2천억 정도만 들 뿐이다.
토양과 해양 그리고 대기층까지 완료하려면 1년 정도는 걸리는 작업이다.
그러나 무려 90배의 이익을 보는 사업이다.
그리고 방재 비용으로 보면 1조8천억 엔이지만, 긴 세월 복구가 완전히 안 되는 걸로 따지면 일본 정부 자체에서도 이득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체르노빌요?”
“네! 거기서는 체르노빌 주변 피해 지역의 절반으로 대금 상환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받은 면적의 규모 자체가 다르지 않나요? 저희가 대금으로 받은 게 프리피야트시를 포함한 300만 ha의 면적이었잖아요.”
서울시의 50배 면적이었다.
“그렇지만, 체르노빌은 방사성 원소가 안전해지려면 900년이나 걸릴 장소였잖습니까? 저희야 초기에 잡을 수 있으니 비교할 수가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금액에 합의를 보시고선 갑자기 그 말을 왜 하시는지?”
“정부가 당장 그만한 금액을 빼기가 힘듭니다. 경제에 큰 장애가 될 수가 있거든요. 지불하려면 채권을 발행해야 하는데 그것도 만만치 않습니다. 장기할부라면 몰라도요.”
“그래서요?”
“저희도 체르노빌처럼 정산하면 안 되는가 하고요.”
“국민들 자체가 후쿠시마 원전을 다시 살리고 싶지 않은 거로 압니다만? 설마 다시 원상복구 하려는 건 아니시죠?”
“그건 아닙니다.”
“지금 제염면적만 하더라도 총 840㎢에 해당합니다.”
면적 840㎢면 평으로 따지면 무려 2억5천 평이 넘는다.
서울시가 총면적 605㎢며 그곳보다 큰 것이다.
후쿠시마현은 홋카이도, 이와테현에 이어 전국 3위의 아주 큰 면적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후쿠시마현 중 6개 마을은 귀환 곤란 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면적만 337㎢다.
지역을 복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고, 원전을 다시 세울 수도 없는 여론이다.
그 비용 또한 천문학적이기에 애매한 상황에 놓인 일본 정부다.
“폐허가 된 유령마을을 재건하는 비용만 해도 상상을 초월할 건데, 그 땅을 일개 회사인 BTR에서 다시 일구라고요?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체르노빌도 같지 않나요?”
“그거야 저희가 받게 되는 땅 단위 자체가 다르고, 쓰나미로 인해 건물이 파괴된 곳은 아니지요.”
체르노빌도 사실 25년이나 방치된 유령도시이기에, 관리가 되지 않아 건물들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불리한 사실을 굳이 꺼낼 필요가 없는 태월이다.
오히려 무너진 곳이 재건 비용이 덜 들어가는 것이다.
“땅의 가치가 그곳과는 전혀 다르잖습니까?”
“그래서 정부에서 정한 한도는 어디까지입니까? 질질 끌어서 서로 좋을 일도 없잖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비용이 점점 늘 테니, 내부 한도 선을 말씀드리죠. 이건 극비입니다.”
어차피 말할 거면서 극비라고 하니 태월은 웃음이 나왔다.
“원자력 발전소 지역을 중심으로 100㎢입니다.”
서울시 면적의 1/6에 해당하는 것이다.
체르노빌과는 가치 자체가 다른 땅이다.
발전소의 부지를 제외하면, 나머지 땅의 개인 소유 부동산을 정산하는 데는 정부도 유리했다.
방사능으로 인해 부동산 권리를 행사할 수도 없는 그런 땅이지 않은가?
교환 방식으로 국유지를 그들에게 대신 내줄 생각이다.
후쿠시마 제1 원전 지역은 정부도 손대기 껄끄러웠다.
한국 정부에 파는 땅이 아니라, 다국적 기업에 파는 것이니 국민 정서상 부담이 덜 되기도 했다.
“개인 땅도 꽤 많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건 정부가 알아서 할 겁니다.”
후쿠시마 제1 원전의 부지 면적은 350만㎡다.
즉 3.5㎢인데 주변 지역 96.5㎢를 퍼주겠다고 하는 것이니, 태월이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체르노빌이야 25년간 방치되었으니 가능했던 것이다.
‘이 부분은 사토 유마에게 알아봐야겠군.’
태월은 30분 후에 계약서를 완성하기로 하고 사토 유마에게 전화를 넣었다.
“그건 원전 반대가 심하고 그곳을 복구할 예산이 끝없습니다. 그리고 저희 민진당이 교묘히 총리와 각료들에게 개인적인 손해배상 책임을 물으려 하니 급해진 것이죠. 당연히 도쿄전력도 책임을 묻는 중이고요.”
“그래서 그 땅을 우리에게 준다고?”
“지금 정부는 시기를 앞당겨, 이번 주 후쿠시마현의 오염 지역 92㎢를 죽음의 땅으로 선포할 것입니다. 그건 UN조사단과 그린피스에서도 인정한 부분이잖습니까? 후쿠시마현의 면적은 13,783㎢이니, 7.3%의 땅을 정화대금으로 주고 92.7%를 살릴 수 있다면 싸다고 여기는 거죠. 특히 미국 RAON의 자본이 들어간 BTR 아닙니까? 미국 쪽에서의 압력도 있었고요.”
사토 유마마저 긍정적으로 말을 하니 태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지막 계약서에 서명하며 줄다리기를 끝냈다.
토양과 해양 그리고 대기의 방사능 수치를 사고 전의 수치까지 낮춰야 하는 조건이고, 그 기간도 5년으로 잡은 계약이다.
그 기간 내에 해결하지 못하면 전부 BTR에서 대금 대신 받은 토지를 다 토해내는 조건이다.
“이놈들이 우리의 기술력을 얕보는군. 체르노빌이야 더는 인명피해가 없어, 급하게 처리할 이유도 없기에 인력 자체 투입이 적은 것인데.”
“뭐, 잘된 것이지 않습니까?”
“일단 바다 쪽부터 막으면서 올라오도록 해요. 태평양으로 나가는 걸 막는 게 우선이죠. 인력은 한국, 중국, 일본의 기술자들을 전부 투입하는 걸로 합시다. 바다는 급하게 처리해야 하니, 관련 해외 방재기업도 참여시키세요. 그들에게 우리의 미러클을 직접 경험하게 해줄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우선은 이쪽 인력으로 2시간 후부터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한국과 중국 쪽 인력은 이틀 내로 투입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외 쪽은 일주일 정도는 걸릴 것입니다.”
후쿠시마 제1 원전 쪽 태평양 앞바다에 대형 방재선 십여 척이 떠올라있다.
잠수함도 두 척이 보였다.
러시아 BATR에서 매입하여 보내온 러시아제 잠수함이다.
이때가 일본 정부와 계약을 끝낸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저희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역시 미러클이네요.”
“협조가 잘 이루어져서 저희도 감사드립니다. 일찍 끝낼 수 있던 것도, 두 회사의 지원이 큰 덕택이었습니다.”
“미러클 생산이 여유가 생기면 저희에게도 꼭 공급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수중 방호복도 부탁드립니다.”
“그럼요! 도와준 만큼 우선 배정을 해드려야죠.”
해외 기업 두 곳의 기술 이사들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그곳을 떠났다.
“펜스는 전부 쳤겠지요?”
“바다에서 진행하는 동안 내륙에서도 빠른 대처가 있었습니다. 어제 일자로 완료가 되었습니다.”
펜스를 치는 인원만 3천 명이 동원된 것이다.
“대기 정화부터 시행합니다. 준비된 헬기는?”
“공중 투하 작전을 위해, 1시간 후 80대의 헬기가 날아오를 것입니다.”
일본의 해상자위대가 가지고 있던 헬기를 유상으로 임대받은 것이다.
무상으로 지원받았다가는 특혜시비에 휘말릴 여지를 줄 수 있기에 거절한 상태다.
완벽하게 처리가 된다면 일본 정부도 곤욕을 치러야 한다.
그들이 보기엔 방사능이 손쉽게 처리된 걸로 보일 수 있는데, 그걸 위해 무려 100㎢의 땅을 일개 기업에 줬으니 뒷말이 나오게 될 것이다.
그걸 막기 위해 일본 정부와 제1당이 된 민진당이 BTR미러클의 특허 신기술을 언론에 소개하느라 바쁘다.
다른 해외 기업은 불가능하지만, BTR미러클이라서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덕분에 기업의 입지력이 팍팍 오르는 중이다.
그리고 다시 두 달 후 원전 쪽으로 사람의 투입이 결정되었다.
“현재의 원전 해체기술로는 문제가 많은데….”
기술의 발전은 원전 해체기술이 시공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중이다.
그만큼 격차가 컸기에 비용은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방법밖에 없으려나?”
태월의 BTR에서는 원전 해체기술이 없다.
그래도 그 해체기술기업을 협력사로 데려오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이계에서 얻은 이 팔찌로 가능은 한데, 그 후엔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지?”
발전소를 포함한 주변 지역을 전부 덮을 생각을 했었다.
팔찌 안에 들어 있는 이계 지역의 면적이 최대 20㎢다.
“대기 방사능은 일단 잡았으니 된 거고, 발전소 격납 용기 쪽이 문제네. 이걸 해체한다고? 어느 세월에?”
태월은 일단 격납 용기 안으로 미러클을 밀어 넣었다.
이 일은 말캉이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안에서 감지되는 방사능이 사라지고 나자, 말캉은 안으로 진입하여 연료봉을 분리해냈다.
냉각수 쪽의 방사능도 사라진 상태다.
태월은 연료봉 전부를 밀랍 용기에 한 번 더 재포장시켰고, 사용하지 않고 있던 공간 가방 하나에 입고시켰다.
그리고 밖으로 빠져나온 태월과 말캉은, 제1 원전이 포함된 면적 20㎢로 거리를 벌렸다.
제2 원전 쪽으론 경계를 잡기 위해 펜스를 쳐놨기에 그곳을 벗어나진 않을 거라 봤다.
물론 그건 태월의 상상력이 얼마나 세밀하냐에 따라 결정될 일이지만.
“새벽 시간이니 눈에는 덜 띄겠지.”
태월이 영혼 에너지까지 써가며 팔찌를 움직였다.
“아, 괜히 떨리네. 감당 못 할 정도면 다시 입고시키지 뭐.”
참, 편하게 생각하는 태월이다.
태월의 전방으로 20㎢ 공간이 일렁거렸다.
그리고 기존의 지형과 건물들 위로 새로운 땅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점점 색이 진해지더니 새로운 땅만 그곳에 남겨졌다.
특이하게도 소음은 없었다.
그런데 막상 새로운 땅이 눈앞에 펼쳐지자, 태월은 당황스러웠다.
너무나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