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일본의 중의원 총선거
태월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인지 자세히 말해봐.”
“비용이 설혹 더 들더라도 시간이 더 흘러 방사능이 새어나가도 제거할 수 있습니까?”
“확산이 되어 태평양으로 퍼지게 되면 그땐 일거리가 많아지긴 해. 그렇지만 잡을 수야 있긴 하지. 그래도 너무 오래는 못 있어. 석 달 정도? 물고기나 식물에 문제가 생기거든.”
“어차피 일본 정부는 도쿄전력에 비용을 미룰 겁니다. 그러다 보면 늦장 대응으로 피해가 확산되겠죠. 그 외에 정치적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태월이 일본에 마냥 퍼줄 수는 없다.
인명 피해가 늘지만 않는다면, 일단은 도쿄전력의 대응을 지켜볼 생각이다.
“정치적?”
“정부가 제대로 대응 못 하면 저희 민진당에게는 기회가 됩니다. 과학당을 이참에 밟고 넘어서야죠.”
사토 유마의 눈이 번들거렸다.
그의 본질이 인간이 아닌지라,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지니진 못했다.
마스터인 태월이 내려준 목표가 그 어떤 것보다 우선이기 때문이다.
과학당은 과거엔 자유민주당이라는 거대한 보수 정당의 일부였다.
2009년 중의원 선거에서 참패하며 보수 본류파에게 책임을 묻던, 보수 방류파 대부분이 탈당하여 만든 강성우파 정당이다.
전 총리인 아베 신조가 이끄는 청화회, 전 총리인 아소 다로가 이끄는 빅 텐트 성향의 지공회, 전 청소년국장인 오사나 나지미가 당내 소장파들과 함께 결성한 온건 성향의 우정회.
과학당의 핵심계파는 이렇게 셋이었다.
“아, 지금 중의원 선거 시기지?”
“네, 제44회 중의원 총선거일이 3월 30일입니다. 시기를 잡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일주일이 더 지났다.
그사이 태월은 한국으로 돌아가 있었고, 오형석 지부장만 일본에 남아 있는 상태다.
그런데 방사능 유출에 대한 정보가 신문에 오르내리지 않고 있었고, 도쿄전력도 기껏 20억 엔 정도로 계약을 요구할 뿐이다.
“마스터! 저희가 먼저 터트리겠습니다. 정부가 알면서 은폐하려 합니다. 방사능을 바다로 방류할 움직임도 보였고요. 그리고 투표일이 사흘 남았습니다.”
사토 유마의 보고에 태월도 황당해졌다.
“허, 진짜 정신 나간 작자들이군. 그럼 이참에 해외언론에도 넌지시 정보를 넘겨!”
“네, 그러잖아도 같이 진행할 생각입니다. 오늘 저녁에 시작할 겁니다.”
“알았어. 실시간으로 체크를 해보도록 하지.”
그날 저녁 CNN에서 시작된 뉴스에 일본의 방사능 유출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도쿄전력의 안일함과 정보 숨기기 그리고 일본 정부의 늦장 대응과 책임 떠넘기기 등등을 적나라하게 터트린 것이다.
그러자 한국과 중국에서도 난리가 났다.
바다를 통해 인접 국가가 피해를 보게 생겼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떠들썩해지자 UN은 부랴부랴 방사능 유출 사고에 대한 진상 파악과 감시단 파견을 준비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미국과 중국, 한국 그리고 러시아가 전면에 나서며 강력하게 성토한 것이다.
더불어 일본 내부에서도 민진당이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도쿄전력과 정부 그리고 여당인 과학당이 일본 국민들의 목숨을 담보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일반 시민들도 정부청사로 몰려가 항의를 시작하는 행렬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특히나 1995년 고베 대지진 당시 태월에 의해 소생한 자들은 민진당의 열성 당원들이었다.
그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중의원 선거를 이틀 정도 남기고 시민들의 분위기가 확 바뀐 것이다.
태월도 뉴스를 통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일본의 선거 분위기가 뜨거워지는 걸 보고 있었다.
그리고 선거 당일이 되었다.
“호, 역대급으로 투표율이 높아졌는데? 시민들이 제대로 열이 뻗쳤어. 선거를 위해 방사능 유출 정보를 은폐한 것으로 결론을 내버렸군.”
아카의 인공위성 덕택에 태월은 상황실에서 일본 방송을 시청 중이다.
본질이 불의 정령들인 일곱의 직원들은 일본의 상황에 그리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에, 일본 방송에 집중하는 건 태월 혼자다.
저녁이 되어 투표도 마감이 되었고, 태월은 집에서 개표 방송을 볼 생각으로 바로 퇴근했다.
“아빠! 갈비찜 했어!”
“아이구, 우리 강아지 무거워졌네?”
셋째 영주가 제일 먼저 뛰어와서 안긴다.
“아빠! 빨리 씻고 와! 배고파!”
주방 쪽에서 넷째 영진이가 고개를 내밀고있다.
그 뒤로 첫째 영후와 둘째 영린이가 튀어나오며 손을 흔들어댔다.
오늘은 저녁을 집에서 먹기로 했기에 아내들이 직접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엄마 도와주고 있었어?”
“네! 오늘은 안 깼어요!”
이제 만 25개월이 넘은 아이들이라 엄마를 돕다가 종종 접시를 떨어뜨리기도 했었다.
특히나 불의 기운을 가진 영린이가 자주 하는 실수였다.
“오셨어요?”
“씻고 나오세요. 금방 차려 놓을게요.”
아샤와 아진이 앞치마를 두른 상태서 태월을 반겼다.
아이들과의 식사는 늘 그렇듯이 정신이 없다.
“그런데 아가씨가 뮤직비디오를 찍는데, 애들을 출연시켰으면 하던 데요?”
“그새 신곡이 나왔나 보네? 얘들에게 물어보고 하고 싶어 하면 시켜.”
“어? 고모가 뭘 찍자고는 했는데, 저도 해보고 싶어요. 다들 어때?”
“어, 우리도 할 거야!”
영후가 제일 먼저 의욕을 내보였다.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린다.
아샤가 아이들에게 뮤직비디오가 뭔지를 자세히 설명해줬다는 의미였다.
“뭐, 이미 다 하기로 하고선 나한테 말하는 거 같네? 수상한데?”
“아니에요. 오빠가 반대할 수도 있는데, 결정했을 리가 없잖아요.”
“얘들도 경험 삼아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 그나저나 난 안방에서 TV를 좀 봐야겠어. 오늘 일본 선거 집계방송이거든.”
“아, 그게 오늘이었네요. 그렇게 하세요. 얘들아, 오늘 아빠는 너희들과 TV를 같이 못 보니 떼쓰면 안 돼! 알았지?”
“네!”
“알았어요.”
거실의 대형 TV는 뉴스를 보는 거 외엔 거의 유아용 애니메이션을 보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
개표 현황을 자정까지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태월은 사토 유마에게 전화를 넣었다.
“제1당이 된 걸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마스터!’
“수성이 더 힘든 일이야. 잡음 없이 잘해나갈 거라 봐.”
‘마스터! 제 주특기가 그거지 않습니까? 어떤 당보다 더 화합된 게 저희 민진당입니다.’
사토 유마의 본질이 상대의 마음을 읽는 토리 요괴다.
거기다 태월의 도움으로 등급이 업그레이드되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도 갖추게 되었다.
사토 유마에게 다시 한번 축하해준 태월은 잠자리에 들었다.
밤사이 개표는 몇 군데 접전을 펼치던 곳도 확정이 되어 있었다.
“흠, 이번 중의원 총선거는 480석이군. 소선거구제로 300석에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180석. 480석에서 250석을 민진당이 차지했네. 2당은 과학당이고 3당은 소년동맹이군.”
“사토 유마가 제대로 일을 하고 있네요?”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이 정도만 해도 분발한 거지.”
아샤와 아진이 차려놓은 아침을 먹은 태월은 아내들과 담소 중이다.
태월은 자는 아이들의 이마에 일일이 입맞춤해주고는 출근을 했다.
요즘은 기존의 미러클을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는 태월이다.
미러클의 제조 비용을 좀 더 줄일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료도 일부 대체가 가능한 게 나왔다.
유채꽃과 해바라기의 성분에서 토양오염에 대한 단서를 찾았기 때문이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 일본에 나가 있던 오형석 지부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본 정부에서 드디어 본격적으로 BTR미러클과 제대로 된 협상을 원하고 있습니다.”
“호오, 잘된 일이군요. 사토 유마가 힘쓴 거 같은데요?”
“민진당 사토 총재에게서 전날 연락을 받았습니다.”
관련 전문가들까지 동원하여 방사능에 의한 전방위적인 향후 피해 추정비를 계산했다고 한다.
사토 유마가 태월에게 받은 서류를 근간으로 전문가들에게 전해줬고, 그걸 토대로 역조사를 했을 뿐이다.
인공지능 슈퍼컴퓨터가 작성한 것보다 더 세밀한 조사법은 없기에 전문가들이 오히려 배워야 할 처지였다.
“고맙다고 전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아직 태월과 사토 유마의 관계를 제대로 모르는 오형석 지부장이다.
태월 또한 그런 부분까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기에, 개인적 친분이 굳건하다고만 설명했었다.
그리고 UN 조사단까지 파견될 시각이 다가오자, 일본 정부는 서둘러 BTR미러클과 계약을 위해 움직였다.
외부적 압박도 있었지만, 일본 내부에서도 압박이 거칠어만 갔다.
특히나 이젠 여당이 되어버린 민진당의 공세는 거침이 없었다.
관련자뿐만 아니라 늦장 대응한 정부 각료들까지 감사를 시행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태월은 보고를 받고는 있었으나, 현지로 직접 날아왔다.
해양뿐만 아니라 토양 및 대기권에 대해서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해서다.
“방사능 유출된 지 45일 만에 제거 작업이 시작되는군. 오염수 상태는 어떤가요?”
“원자로 냉각수와 지하수가 섞이면서 매일 오염수가 약 400톤씩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후쿠시마 제1 원전 내 지하 저수조와 탱크에 있는 오염수는 36만 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BTR미러클 일본 지사장이 된 호스케 유카이가 보고하고 있었다.
그는 고베 대지진 때 태월에 의해 소생된 자였다.
일본 지사는 오사카 이쿠노구에 설립된 상태다.
“쯔쯔, 이런 상황인데도 숨기려 들었군.”
태월이 일본말로 혀를 차면서 속내를 드러내자, 동반한 일본 각료의 얼굴이 붉어졌다.
일본 방사능 관련 전문가들도 이 정도까지였는지를 몰랐던지 수군거리고 있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멜트 다운이 아니라 멜트 쓰루 단계입니다.”
멜트 다운은 냉각수 부재로 스스로 열을 내는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멜트 쓰루는 초고온이 된 핵연료가 압력용기와 격납용기를 뚫고 나와 지표면과 접촉해 계속 녹아내리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현상은 지하수와 만나 급격한 폭발을 일으키거나 수돗물 오염을 일으키게 된다.
“흠흠, 우리 시간도 없으니 이만 나가서 마지막 협상을 마무리 짓도록 합시다.”
일본 각료는 이 자리가 불편한지 자리를 뜨고 싶어 했다.
방사능으로 인해 보호복을 입고 있지만, 그것마저도 불안해하는 그다.
계약을 마치게 되면 바로 투입될 일본 지사의 인력이 나와 있었다.
그들의 수중 작업복은 태월이 의뢰한 RAON의 연구소에서 개발해냈다.
그걸 고베 대지진 때 소생한 자중 특수 의류회사의 오너가 있었다.
그에게 OEM 방식으로 제작하게 했다.
작업복은 특수 합성고무 형태로 탄소섬유를 사용하여, 인체에 해로운 방사선의 일조인 베타선을 차단한다.
그리고 속옷은 베타선보다 투과력이 강한 감마선을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소재다.
흔히 납으로 만들어야 했지만, 무게에 대한 단점이 지적되어 태월의 법술 원리가 적용된 신소재가 쓰이게 된 것이다.
작업복과 속옷을 세트로 착용 시 총 무게가 3.3kg이다.
한화로 세트로 하면 300만 원 선이었다.
정부 각료가 그 작업복을 보더니 태월을 돌아본다.
“저 작업복에 대한 이야긴 들었는데, 나에게 몇 벌 줄 수 있습니까?”
“물량이 부족합니다만, 어디에 쓰시려고요? 직접 사용하실 거 같진 않은데?”
“쓰나미에 의해 이 주변에서 배가 침몰했습니다. 그래서 유족이 시신이라도 건지길 원해서요.”
‘어? 수상한데. 영혼의 색을 봐도 이 사람이 그런 좋은 일을 할 사람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