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새로운 보금자리
TW 종합병원도 있었으나 그곳까지 갈 시간은 없었다.
그리고 위험이 동반된 출산 상황도 아니기에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향했다.
-그래, 자연분만할 상황이라면 가까운 데서 하는 게 낫지. 멀지 않은 곳에 협력병원이 있으니 그리로 가도록 해. 거기 원장에겐 연락해둘게. 또 원하는 게 있으면 바로 말하고.
“네, 엄마.”
조민희에게도 연락하여 상황을 알렸다.
불필요한 상황을 겪고 싶지 않아서다.
육지를 넘어서자 말캉이 루루의 등으로 올라와서 합체를 해버렸다.
그러자 태월 일행은 외형적으로 헬기에 탄 상황으로 보였다.
병원 헬기장에 내려선 일행은 병원 직원들이 오기도 전에 공간 배낭에서 이송 침대를 꺼냈다.
아샤와 아진을 침대에 눕혀 놓았을 때 직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어디서 오셨습니까?”
“원장님에게 연락이 갔을 겁니다. 바쁘니 이대로 이송 바랍니다. 산모는 둘이고, 둘 다 쌍둥이입니다.”
“아, 알았습니다.”
헬기까지 동원되었고 이송 침대까지 온 걸로 보아 119인 줄 알았는데, 복장이 아니었기에 물은 것이다.
그러나 진행부터 하란 소리를 듣고, 엉겁결에 대답을 하며 지시를 따랐다.
시간이 오전 9시를 넘었기에 의료진은 충분했다.
“분만실에 두 산모가 같이 있어야 합니다.”
“네?”
태월이 입원 절차를 밟으며 꺼낸 말이다.
“비용은 분만실 두 곳으로 계산하시고, 출산은 한 방에서 이뤄지게 해주세요.”
“그게. 음. 담당 선생님이 그렇게 하실지는….”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병원 관계자는 머뭇거렸다.
“원장님과 이야길 하도록 하죠. 조 회장님이 보냈다고 하세요.”
5분도 안 걸려 뚱뚱한 체격의 금테 안경을 낀 60대 남자가 내려온다.
“아하, 연락받았습니다. 회의가 이제 끝나 좀 늦었네요.”
“분만실에 저와 여기 두 산모가 같이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 들어주라고 하더니 그런 특이점 때문이었군요. 더구나 두 쌍둥이라고 들었습니다.”
“정신적으로 서로 의지하는 둘이기에, 함께 있는 게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되거든요.”
“음, 조 회장님이 책임지신다고 했으니,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여의사들로 준비해놨습니다.”
수술이 아니기에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곳 병원은 말이 협력병원이지, 제일 큰 지분을 TW가 가지고 있기에 산하 병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원장 또한 태월을 본 적 없기에 실제 정체는 잘 모르고 있다.
그냥 인척쯤 될 거라고 본 것이다.
“특실을 하나 비워서 바로 변경하겠습니다. 금방 끝날 것입니다.”
담당할 의사의 반발이 약간 있었으나, 아주 잠시 그랬을 뿐이다.
더구나 수술도 아니고 자연분만이기에 큰 무리는 없었다.
단지 남자 하나에 산모 둘 그리고 아이 넷의 조합이 이상할 뿐이다.
그리고 불과 1시간도 되지 않아 출산이 이뤄졌다.
사전 검사에 이미 아이들 숫자가 확인되었던지라 실수는 없었다.
특이한 것은 산모 둘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다는 것과 특이한 호흡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응애! 응애!
그리고 1분 후 다시 고고성을 터트리는 둘.
젤 특이한 게 이것이었다.
넷이 태어난 순서가 거의 없었다.
2초 차이 그리고 1분 후 또 둘.
그 와중에도 태월은 눈을 감고 두 산모와 아이들의 기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어머, 아이들이 하나같이 몸이 깨끗하고 인형 같아요. 어떻게 이럴 수 있죠? 나오는 과정도 너무 순탄하더니….”
탯줄을 정리 후 아이들을 천에 감싸는 간호사들의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재단에서 내려온 VIP 고객이라는 이유에서 특실에서 진행되긴 했다.
그런데 의사나 간호사가 보기엔 아이들도 그렇지만 산모의 모습이 일반적이지 않은지라 조심스러웠다.
태월은 아이들의 눈과 일일이 시선을 맞추며 환영의 미소를 보냈다.
신생아실로 옮겨진 후에야 태월은 잠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태월이 자리를 뜨자 간호사들이 수군거렸다.
“대체 누구지? 혹시 알아?”
“누구? 나간 남자?”
“아니 저 여자분들.”
“글쎄, 처음 보는 분들인데? 영화배우인가?”
“왜 남자는 하나지? 이거 너무 이상하다.”
“쉿! 원장님 이야기 못 들었어? 신랑 하나는 외국에 있어서 못 왔다잖아.”
“그게 더 이상하지. 왜 출산하는 산모들 사이에 저 남자가 있는데?”
“VIP 일이라잖아! 아까 서약서 너도 썼지?”
“응, 수고비도 챙겨준다기에 쓰긴 했지. 입단속 서약서. 그걸 어기면 받은 수고비의 10배를 배상하는.”
그녀들은 퇴근쯤에 100만 원씩 든 봉투 하나씩을 받게 될 것이다.
“전부 건강해요. 아샤는 아들이 먼저, 아진은 딸이 먼저였어요. 그리고 아들이 2초 먼저 태어났어요. 하하, 아니에요.”
태월에겐 중요한 일이 아니지만, 조민희가 요구했던 일이기에 알려주는 것이다.
첫째와 넷째가 아들이고 둘째와 셋째가 딸이다.
첫째와 셋째를 아샤가, 둘째와 넷째를 아진이 낳은 것이다.
아이를 낳은 지 두 시간도 지나기 전에 태월의 가족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제일 먼저 온 것은 설희다.
“어머, 하나는 알겠는데 셋은 비슷해 보여.”
“설희야? 머리 색 보고 지금 구별한 거지?”
설희가 말한 하나는 금발, 나머지 셋은 흑발이었다.
“그래도 셋이 머리만 오빠를 닮아서 다행이야.”
“헐, 내가 어때서?”
“오빠야 그냥 평범하지. 그래도 언니들 닮아서 이쁜 건 좋네. 딸들이 오빠 닮았으면 좋겠어?”
“음, 애매하네?”
“뭘 애매해?”
아이를 낳고 나니 설희의 입에서 언니라는 단어가 나왔다.
홍미연이 단단히 주의를 준 것 같기도 했다.
비록 아샤가 약혼 상태긴 해도, 결혼 후에는 언니라 불러야 한다.
태월과 설희는 신생아실 밖 통창에서 아이들을 구경 중이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가족들이 전부 내려왔다.
산모와 신생아의 건강이 과하게 정상인지라, 곧바로 제일 큰 특실에서 합치게 되었다.
이 또한 원장을 통한 조민희의 조치였다.
아샤와 아진 그리고 아이들이 특실 하나를 같이 쓰게 된 것이다.
“어머머, 오늘 태어난 애들이 아닌 것 같아. 어쩜 이렇게 밝고 이쁘지?”
“그러게, 원래 신생아는 조금 살이 불고 눌리고 그런 생김새가 흔한데.”
“엄마가 좋은 기운을 가지게 되어서 아이들이 영향을 받은 거 같아요.”
설희의 말에 조민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를 안아본 거라곤 태월이 전부라서, 넷이나 되는 손주들이 신기하기만 한 조민희다.
홍미연과 조민희가 하나씩을 안고 있고, 산모 둘이 하나씩을 안은 상태였다.
원래는 첫날부터 면역력 문제로 이러면 안 되지만, 아이들의 특별함을 알기에 태월이 권한 것이다.
태월도 의사이기에 아들의 말을 믿어주는 박승철 조민희 부부다.
“낼 점심 경에 퇴원할 거예요.”
“벌써?”
“아이들과 그 섬에서 보름 정도를 보내다 올라갈게요. 기운이 아직도 넘치기에 아이들에게 좋은 일이 될 거예요.”
손주들의 몸에 좋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호적에 올리는 것과 거취 문제를 밤새 의논하기도 했다.
태월의 이름도 문중 족보에 올린 이름과 호적에 오른 이름은 달랐다.
“박영후, 박영린, 박영주, 박영진. 이렇게 정했습니다. 이제, 그만 바꿔요.”
“우린 찬성!”
“응, 나도 괜찮아 보인다. 사주에도 잘 맞고.”
“호호, 오빠 지쳐 보인다.”
세 시간이나 걸려서 합의를 본 이름이다.
박승철이 지어온 이름과 태월이 지은 이름 그리고 홍미연이 지은 이름들이 서로 달랐던 탓이다.
그래도 시댁에서 지어온 이름을 최대한 반영하려 노력한 조민희의 설득이 곁들여있었다.
‘외국에서 주로 나가 살 건데, 외국 이름이야 따로 정하면 되겠지. 아들들이야 괜찮은데 딸들 이름이 저게 뭐야?’
좀 구식인 이름인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아샤가 낳은 애들의 이름 끝 자가 후와 주고 아진이 낳은 애들은 린과 진이었다.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 섬으로 전부 함께 향했고, 그곳에서 하루를 더 보낸 가족들은 서울로 돌아갔다.
태월은 그곳에 남은 물의 기운을 끌어모아, 아샤와 아진 그리고 갓난아기 넷의 몸에 녹아들도록 최대한 돕고 있었다.
그렇게 보름 정도가 흘렀을 때, 그 섬은 보통 섬의 기운 수준으로 돌아갔다.
“지금쯤이면 우리가 돌아갈 집도 인테리어가 다 끝났을 거야.”
“오늘 우리가 가는 거 알고 있는데 기다리란 말이 없었으니 그럴 거 같아요.”
서울로 올라온 일행이 찾아간 곳은 압구정동 쪽이었다.
“하하, 주소가 눈에 익다고 했더니 여기네요?”
“호호, 집이 더 커졌지?”
“결국 옆의 건물을 다 사버렸네요?”
“호호, 그 정도는 되어야 우리 전체가 여유 있게 살 수 있잖니. 아이들도 넷이나 되는데.”
옆의 건물들의 벽을 허물고 그걸 하나로 이은 특이한 리모델링이 되어있다.
태월이 어릴 때 귀신 소동으로 헐값에 샀던 그 집이기도 했다.
건곤암 노스님이 스님들을 불러 천도재 흉내를 냈던 곳 말이다.
도산공원이 전면에 펼쳐져 있으니, 아이들에게도 나쁘지 않은 곳이다.
“그 집을 중심으로 양쪽을 허문 거네요. 그럼 우린 어디에 살죠?”
“우린 양쪽에서 살 거니까 너희가 가운데지. 딱 젊은 취향으로 싹 바꿔놨어.”
겉으로 봤을 땐 과거 그 집인지 전혀 몰랐던 태월이다.
그만큼 많이 바뀐 탓이다.
그것도 나쁘지 않을 듯해서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어머, 너무 세련되었어요.”
“호호호, 리모델링에 이탈리아 장인을 좀 썼지. 멋지지?”
“진짜요?”
“뭘 대놓고 묻니?”
“호호, 작은 엄마가 이탈리아에서 이름을 날리는 사람을 쓴 건 맞아. 다만 한국인인 거지.”
태월이 3층까지 올라가 봤는데, 과거의 흔적은 전혀 찾지 못했다.
주소만 같은 전혀 다른 주택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세 건물이 이어진 곳을 확인했을 땐, 겉에서 본 것과 다른 걸 알았다.
“인제 보니 뒷집도 사들였었네요?”
“흠흠, 사실 네 엄마가 뒤편까지 산 건, 여기에 문화센터를 지으려 했었거든. 그러다 이렇게 방향을 바꾼 거지.”
“우린 이렇게 안 커도 되는데? 이 뒤 공터는 어쩌려고요?”
“유럽의 저택 크기에 비할 순 없지만, 승마가 가능할 거 같아서.”
그러고 보니 태월에게 단순한 백마는 아니었지만 말이 있긴 했다.
요괴 합성으로 생겨난 화이트란 백마가.
뒤 공터만 해도 5백 평은 넘어 보이기에 그런 생각을 했을 터였다.
“압구정에서 승마라니? 네 엄마 참 특이하지?”
“뭐, 승마가 별로면 골프 연습장으로 써도 되고, 아니면 수영장이라도 파면 돼.”
과거보단 생각의 여유가 넘쳐흐르는 조 여사다.
같이 붙은 박승철 조민희의 집도 방문하고, 홍미연과 홍설희가 살 집도 들어가 봤다.
“이게 다 해서 몇 평이에요?”
“2천 평 정도? 왜? 마음에 안 드니?”
“꽤, 크긴 하네요. 아뇨. 아주 마음에 들어요. 특히 앞 공원과 뒤 공터가 좋네요.”
태월은 다음 날부터 필요한 가구와 시설을 채우기 시작했다.
배송 차량과 가구점 차량이 줄을 잇는다.
주변에선 누가 이사 온 것인가 하고 구경들을 나오기도 했다.
“어? 혹시 태월이 아니야?”
누군가 태월을 알아보는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