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섬 생활
루루가 둘인 것도 이상하지만, 그들이 본체로 돌아와 시커먼 덩치를 공격하고 있다.
“언니? 저거 혹시 고래 아냐? 10m가 넘는 바다 생물이 어딨겠어?”
“그러고 보니 사진에서만 보던 고래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다른 루루가 말캉 같은데? 루루가 둘이 될 이유가 그거밖에 없잖아.”
“고래 잡는 거 금지잖아! 쟤들 왜 저래? 우리 벌금 물고 망신당하는 거 아냐?”
아샤가 벌떡 일어나더니 2층에서 뛰어내린다.
하급신의 격을 가진 아샤에겐, 아무리 그녀가 임산부라 해도 무리가 가지 않는 행동이다.
덩달아 아진도 발코니에서 뛰어내렸다.
“야! 미친 것들아, 불쌍한 고래는 왜 공격하고 그래?”
“야! 잡아, 잡아! 빨리!”
루루가 서두르며 말캉을 독려했다.
그리고 둘의 거센 공격에 결국 고래가 배를 뒤집으며 숨을 거뒀다.
아샤와 아진이 도착하기 전에 벌인 일이다.
“야! 루루! 너 일부러 내가 오기 전에 잡아 버린 거지?”
“아니거든요?”
“그런데 왜 잡았어?”
“이놈이 내가 몸을 작게 하고 날고 있는데 물총을 쐈어요. 그래서 기우뚱하고 떨어지는데 입을 쫘악 벌렸다니까요. 날 먹이로 안 것임.”
“에이. 설마! 네가 그깟 물총 세례에 추락한다고?”
고래가 숨을 쉬느라 물을 뿜어낸 걸로 보였지만, 아샤는 쉬이 믿기지 않았다.
루루가 작게 변모해도 그 단단함은 상당했다.
“아, 몰라몰라! 하여간 날 모욕했어요.”
“너 이거 잡으면 우리가 잡혀가는데?”
“엥? 왜요? 물고기 잡으면 안 되나요?”
“어! 다른 놈은 돼도 얘는 안 돼! 개체 수가 적어졌거든!”
“얘가 날 먼저 공격했거든요? 아샤 님도 누가 공격하면 그냥 있나요? 아니죠?”
“그,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서 반격했는데, 얘가 약해서 죽은 거예요. 덩치만 크지, 이렇게 허약할 줄 몰랐다니까요.”
아샤가 보기엔 루루가 수상했지만, 먼저 공격당했다고 우기는데 밝힐 증거가 없었다.
“에이, 귀찮아. 기다려봐. 언니! 얘들 딴짓하나 그동안 감시해줘.”
아샤는 2층으로 뛰어 올라가 가방을 가지고 다시 왔다.
그리고 고래의 커다란 사채를 공간 가방 안에 넣어 버렸다.
마차 20대 분량의 신화급 공간 가방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얘! 너희 심심해서 이러는 거지? 아니면 배고파서?”
“여기엔 먹을 게 많거든요?”
“또 딴소리하네. 너 이왕 사냥하는 거, 저 멀리 가서 참치나 좀 잡아 와! 오빠 가족들하고 있는데, 뭐라도 해야 할 거 아냐?”
“한 마리밖에 못 가져올 건데요? 남는 가방 없나요?”
“빈손으로 오기만 해봐라.”
아샤는 가방에서 다른 가방 하나를 꺼내 발목에 단단히 매달아줬다.
저 가방만 해도 십여 마리 참치는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최상급 공간 가방인지라 마차 4대 분량이 들어간다.
하급신들에게서 13개의 가방을 획득한 보람이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안에 있던 것들은, 전부 아샤와 아진의 신화급 가방에 전부 넣어 버렸지만.
“가방 사용법은 알지? 굳이 싸우려 하지 말고 그냥 통째로 입고만 시켜!”
사냥하는 재미를 뺏어가려는 아샤를 보고 입을 삐죽이는 루루다.
그렇게 루루와 말캉은 섬을 벗어나 날아갔다.
“너무 야박하게 구는 거 아니야? 고래를 먹고 싶어 하던 눈치던데? 조금 잘라 주지 그랬어.”
“호호, 나도 알고 있어요. 평소에 나한테 까불기에 이럴 때 교육해보는 거죠.”
“풉, 그래도 귀엽기는 하잖아. 그런데 저 말캉은 뭘 먹고 살지?”
“에너지가 되는 건 다 가능한 거 같더라고요.”
아샤와 아진은 다시 2층으로 뛰어오른 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서로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아침을 먹으라는 소리에 살며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둘이다.
식사까지 마친 태월 가족은 본격적으로 휴가를 즐겼다.
태월이 꺼내 놓은 10인승 보트로 섬 주변을 돌았으며, 설희는 보트에 로프를 이어 수상스키까지 즐긴다.
갑자기 나타난 보트와 수상스키에 의아할 만도 하지만, 신기한 일을 많이 하는 태월이기에 그러려니 하는 가족들이다.
“어? 루루는 어딜 다녀온 거야?”
점심때가 다 되어 돌아온 루루를 보고 태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엥? 다리에 왜 그 가방을 묶었지?”
“호호, 제가 참치 잡아 오라고 줬어요.”
“이 근처엔 참치가 안 잡힐 건데? 어딜 갔길래?”
“저야 모르죠. 그냥 잡아 오라고 했을 뿐인데.”
태월이 있는 곳은 남해안 쪽이다.
아열대성 어류인 참다랑어가 제주 쪽에서 잡히긴 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수온이 상승하여, 제주도에 이어 남해안에도 참치가 잡혔다.
게다가 과거 50~70cm이던 것이, 최근에는 70~150m의 크기가 어획되었다.
30년 전보다 수온이 2℃ 정도 상승했으며, 제주 근해에 난류가 강하게 형성되면서 그 영향이 남해안까지 미친 것이다.
단지 한국 사정에 어두운 태월은 그걸 몰랐다.
“루루? 이리로 와봐. 얼마나 잡았는지 봐야겠다.”
“더 넣을 수 없어서 말캉이랑 먹다가 오느라 늦었어요. 참치 떼를 만났거든요. 큰 것만 넣다 보니 많지 않아요.”
태월은 루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가방을 회수했다.
바닥에 방수포를 깔고는 위에 출고를 시켰다.
“우와, 젤 작은 게 150cm? 대부분이 2m 정도네.”
“제가 큰 놈들만 골라 담았다니까요.”
40마리 가까운 참다랑어였다.
더구나 냉동도 아니고 싱싱한 상태였다.
한 마리를 제외하곤 나머진 전부 가방에 재입고 시켰다.
수상스키 후 잠시 쉬고 있던 설희는, 밖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리에 나와보게 되었다.
“어? 웬 참치들이야? 이 많은 게 어디서 난 거야?”
“하하, 루루가 잡아 온 거지. 왜? 참치 좋아해?”
“응, 아주 좋아하지. 한국 사람치고 참치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 그런데 루루의 본체 크기야 내가 알지만, 이걸 한 번에 날랐다고?”
“아니, 공간 가방에 넣어 가져오게 했어.”
“어? 그거 오빠만 쓸 수 있는 거잖아.”
“아, 내가 말을 안 했구나. 그러잖아도 엄마와 너에게 하나 주려고 했어. 이계에서는 하급신이면 다 가지고 있더라고. 기운만 다룰 줄 알면 입고와 출고가 누구나 가능해.”
“어머! 정말?”
웬만하면 놀라지 않을 설희가 눈을 크게 뜨며 환하게 웃는다.
오빠에게 제일 부러웠던 것이 공간 가방이었기 때문이다.
“압구정 부모님은 기운을 못 다루니 줄 순 없지만, 너와 엄마는 다르잖아? 아, 맞다! 이참에 너도 혼원공을 배우도록 해.”
설희에게 가방을 주고 나서 홍미연에게 찾아가 하나를 주게 되었다.
“오, 진짜 대단하네. 이걸 내가 가지게 된다니.”
“엄마도 설희랑 같이 혼원공을 배우시죠?”
“아니, 그건 내가 배워선 안 될 거 같아. 내가 배우게 되면 결국 호족의 것이 돼 버려. 지금이야 내가 있어서 문제없지만, 훗날 호족 후손들이 너와 다툼이 될 수 있어. 차라리 너의 자손들에게만 전승되는 가전심법으로 남는 게 나을 거다.”
홍미연은 호족의 수장으로 있는 중이다.
그래서 욕심은 나지만 훗날을 위해 배우지 않기로 했다.
태월과 설희는 호족의 핏줄이긴 하지만, 직접적으로 관여하진 않고 있었다.
그 둘에겐 호족이란 것이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봤기에, 홍미연이 그 둘을 자유로이 살게 해준 것이다.
“설희가 그러는데 엄마가 참치를 아주 좋아한다고 하던데요? 그래서 그 가방에 현재는 참치가 가득합니다.”
“어머! 웬 횡재라니. 그런데 너희도 필요할 거 같은데.”
“우린 또 잡으면 돼요. 그 가방 속에서는 신선한 상태로 계속 보관될 테니 필요할 때만 한 마리씩 출고시키세요.”
“호호호, 알았어.”
홍미연에게 가방 사용법을 전수해준 태월은 루루에게 참치 떼의 뒤를 쫓게 했다.
이번엔 루루와 말캉까지 그들의 다리에 가방을 묶어주었다.
사흘간 휴가를 즐긴 부모님들은 그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원래 설희도 떠날 예정이었으나, 혼원공을 제대로 배워야 하기에 이곳에 남은 것이다.
“원래보다 기를 받아들이는 게 그전 거보다 두 배는 빠른 거 같아. 굉장해.”
“뭐, 달리 신의 유물이겠어? 수련이 깊어지면 두 배가 아니라 세 배쯤 될걸.”
“우와, 이참에 가수 그만두고 여기에 매달릴까 보다.”
“참아. 몇 년 한다고 해서 끝이 보이는 일도 아닌데.”
“사흘간 기초는 다졌으니, 이젠 홀로 해도 될 거야. 곧 헬기 올 시간이지?”
“배로 가도 되는데 괜히 작은 엄마에게 폐만 끼치네.”
“훗, 엄마도 그냥 전화로 지시한 거지, 직접 헬기 몰고 오는 것도 아니잖아. 너무 그런 걸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게 좋아.”
“응, 그래도 자주 내려올게. 두 번쯤은 더 올 수 있겠다.”
“그래, 그래도 무리하지는 말고. 계획이 많이 밀려버렸잖아.”
담소를 나누던 중에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태월은 설희와 포옹을 해준 후 그녀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태월과 그녀 둘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중간중간에 태월의 부모님이 다녀갔고, 설희가 구미호였던 성연희를 데리고 오기도 했었다.
그리고 아루와 아웬이 섬을 방문했다.
“우와! 뚱땡이들!”
이젠 성숙한 20대 중반의 모습이 된 아루가 아샤와 아진의 배를 보고 놀리고 있다.
“아루 언니! 아쿠 언니는 안 왔어?”
“호호, 아쿠가 빠지면 회사가 난리 날걸? 그래도 출산 후쯤에는 시간 낼 수 있을 거라더라.”
“안녕들 하시죠? 헤헤.”
“그래, 아루와 아웬은 오랜만에 보네. 다들 건강해 보이니 좋아.”
태월은 그 둘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아샤와 아진의 배는 전보다 더 불러와서, 조금 뒤뚱거리며 다니는 중이다.
오랜만에 아루가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도 했다.
전보다 덜렁대는 건 줄어든 듯 꽤 솜씨 좋게 만들어 내왔다.
러시아식 음식을 오랜만에 먹어보는 태월이다.
오후엔 말캉과 아웬이 급속히 친해지더니, 합체를 하고선 바다 위를 날아다녔다.
풍령인 아웬인지라 둘의 합체는 루루의 속도를 능가하고 있었다.
아리랑은 이 섬에서 특별히 할 게 없기에, 새끼와 노는 중이다.
이계에서 낳은 3마리 중 한 마리만 지구로 데리고 넘어왔었다.
“오, 쟤가 그 말캉이란 이계에서 온 생명체라 이거지? 특이하게 생겼네.”
“호호, 아루 언니? 쟤는 특이하게 생긴 게 아니라, 자유자재로 변형을 할 수 있어.”
“변신 생명체야?”
“비슷하지만 다를걸? 일단 보여줘야겠다.”
아샤는 말캉을 데리고 여러 가지를 공연했다.
의자가 되기도 하고 침대가 되기도 하고, 마지막엔 아루로 변신까지 해버렸다.
“야! 난 소중하거든? 빨리 변신 안 풀어?”
말캉이 아루로 변신하긴 했는데, 표정을 일부러 바보처럼 만든 탓이다.
그렇게 희희낙락대며 일주일을 보냈을 때, 아샤와 아진이 태월을 급히 부른다.
“오빠! 나 배 아파!”
“저, 저도요!”
아침 8시가 넘은지라, 아루가 식사 준비를 하고 있고 태월이 옆에서 돕던 시간이었다.
태월은 그녀들을 급히 살펴보고는 루루를 호출했다.
조바심이 나서 헬기를 부를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루루의 등에 태월과 아루 그리고 아진과 아샤가 탑승했다.
그리고 육지로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