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넘어온 자의 단서를 찾아서
태월은 법술기기를 사용하여 기억에 있는 포란의 음성과 유사하게 냈다.
기록을 하진 않았기에 완전하지는 않다.
후드를 벗은 태월은 손에 쥔 언월도를 통해 탄월을 날렸다.
-파슈! 헉!
가까스로 태월이 날린 강기를 피하는 테이루드다.
“반, 반월의 강기! 그, 그대가 포란이로군.”
“포란? 감히? 곧 2급 신에 오를 나에게 네놈 따위가 함부로 이름을 불러?”
“죄, 죄송합니다.”
태월 일행은 셋이기에 앞에 있는 테이루드 정도는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다.
그러나 그랬다가는 안에 있는 하급신이 도망갈 기회를 줄 수 있다.
“이들은 앞으로 권속이 될 신규 3급신이다. 선배랍시고 깝죽거릴 생각은 하지 말아라.”
“네, 명심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테이루드는 기분이 상해버렸다.
‘으아, 하필이면 저 마녀가 여길 올 줄이야. 아직은 같은 3급 신이면서 너무하는 거 아니야? 내가 지 졸개야 뭐야? 그런데 저 둘의 미태도 심상찮은데, 아이고 아까워라. 그런데 저년이 여성체도 밝혔나?’
태월이 아샤와 아진의 몸을 종종 쓰다듬으면서 손맛을 즐기고 있다.
사실 갑옷을 입은 상태라 상체는 어렵고, 기껏 힙이나 쓰다듬는 정도였지만 말이다.
몰래 숨어보고 있던 하테라도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그걸 인지하고 있는 태월이기에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고.
“지나가는 길이니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어. 차 한 잔 정도만 먹고 떠날까 하는데? 부담 가나?”
“아, 아닙니다. 명성이 자자한 포란 님을 봬서 저도 영광입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태월 일행은 테이루드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긴장한 걸로 보이는 하테라가 억지로 인사를 취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포란 님을 뵙습니다.”
“둘이 작당 모의하려 모인 건 아니지?”
“아, 아닙니다. 오랜만에 친목을 다지려고 한잔하려던 참이지요.”
주위를 둘러보던 태월은 술상이 차려진 걸 보게 되었다.
“오, 술도 다양하군. 주도에 취미가 있나 봐?”
“네, 그래서 저도 여기 종종 오게 됩니다. 주당이란 소리는 들었습니다. 한잔하시겠습니까?”
태월도 모르는 말을 꺼내는 하테라다.
대답하려던 태월의 뇌에 본능적으로 경고등이 켜지고 있었다.
하테라에겐 남다른 능력이 있었다.
그가 태월을 볼 때 요괴 쪽 하급신과는 다른 미묘함을 감지했다.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뭐가 어긋나 보여? 설마?’
“글쎄, 왜 그런 엉뚱한 소문이 난 걸까? 희귀한 술을 가끔 꺼내 먹긴 하지만 말이야.”
하테라는 태월의 애매한 대답에 신경도 쓰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테이루드는 달랐다.
“오, 어떤 술인지 볼 수 있을까요?”
슬쩍 웃어준 태월은 공간 배낭에서 지구에 있는 술을 몇 병 꺼냈다.
“처음 보는 술입니다. 쓰인 글자들도 괴상하고요. 어디서 난 것입니까?”
“소문 들었을 텐데? 과거에 시공간을 넘어서 온 존재를.”
“헉! 그와 연관된 물품입니까?”
태월은 테이루드의 눈빛에 담긴 탐욕을 읽었다.
사실 태월도 지구에서의 일로 넘겨짚은 것이지, 정확히 어떤 자인지를 몰랐다.
여기서 실마리를 찾아낸다면 돌아갈 방법이 더 확실해질 것이다.
“나에게 1급신의 비기가 전해진 건 알지?”
“네,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인간에겐 상급신이지만, 이들은 1급신이라 부른다.
“그분이 남긴 물품 속에 끼어있었어. 소멸 전에 그 존재와 잠시 같이 있었던 모양이야.”
“아, 그 1급신 이름이?”
“허! 2급신도 아니고 1급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안 돼!”
태월이 지구의 하급신을 쫓다가 알게 된 내용이었는데, 이곳에서도 그러지 않을까 싶었다.
“아, 그, 그렇지요. 그때 넘어온 호키스 2급신하고는 격이 다르긴 하지요.”
‘아하, 그 공간 이동자가 호키스라는 중급신이었군.’
“나도 유물에선 자세한 내용이 없어서 몰랐는데, 그 2급신의 재능이 시공간 이동이 아닌가? 그런데 생각보단 남긴 게 별로 없더군.”
태월은 그러면서 그에게 중국 술 한 병을 꺼내 주었다.
중국 4대 명주 중 하나인 마오타이주다.
귀주성에서 생산되는 술로 알코올 도수는 약 53도다.
주원료는 수수로 7번 발효하고 10개월 동안 9번의 증류를 반복한다.
그 후 항아리에서 밀봉된 상태로 3년 이상 숙성이 되는데, 오래될수록 가격은 폭등한다.
“애호가라고 하니, 한잔 들어보게.”
“감, 감사합니다.”
태월이 개봉을 하자, 그는 자신의 잔을 가져오더니 넙죽 받는다.
향을 음미하고 있기에 태월이 한마디 건넸다.
“그 술은 음미하며 먹는 방식이 아니야. 그냥 한 번에 삼킨 후에 느끼는 것이지.”
“아!”
한 번에 들이켜더니 살짝 인상을 썼다.
그런 후 눈을 감고 음미하더니 감탄을 내뱉는다.
“오, 맑은 색에 향이 부드럽고 입안에 계속해서 감도는 명주입니다.”
“이 세상에선 하나밖에 없는 술이야!”
태월이 테이루드와 이야기하고 있지만, 신경은 하테라에게 가 있다.
태월 일행의 무력이면 이 둘을 충분히 쓰러트릴 수 있다.
그러나 테이루드에게 들어야 할 중요한 것들이 있다.
이곳의 3급신은 특별한 섭리가 작용하는지 문신도 소생시키지 못했다.
“테이루드는 어찌 그리 잘 알지? 나보다 더 잘 아네.”
“그분의 심복과 좀 압니다.”
“그 2급신은 많이 다녔을 거 같은데? 왜 안 알려졌지?”
“에이, 그분도 간단하게 다니진 못합니다. 10년에 한 번 다녀올 뿐이죠. 그러다 이번엔 위태로워진 상태서 무리하게 넘어온 거라 소멸하였잖아요.”
“그럼 나 말고도 그의 유물을 가진 사람이 또 있겠네?”
“글쎄요. 만일 있다면 그분의 심복인 라파로에게 있겠죠. 그자는 작년 3급신 회합 때 마지막으로 봤습니다.”
“혹시, 그자가 가진 것과 내가 가진 것을 서로 물물교환 가능하지 않을까? 원하는 게 다를 수도 있으니 말이야.”
태월은 테이루드에게 한 잔을 더 따라 주었다.
“이왕 딴 거니 이걸 선물로 주도록 하지. 어때? 방법이 있겠어?”
침을 꿀꺽 삼킨 테이루드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태월을 응시했다.
“3급신 회합이 한 달 후에 있잖습니까? 그럼 지금쯤이면 집에 돌아와 있을 겁니다.”
태월은 병째 그에게 밀어주며 더 말해보라는 듯 응시했다.
테이블 아래에서 작은 지도를 꺼내더니 어떤 곳에 동그라미를 쳐준다.
“이곳에 가면 붉은 5층짜리 건물이 있습니다. 오색깃발이 휘날리는 곳이니 알아보기 쉬울 겁니다. 아 그리고 혹여 모르니 제가 알려줬단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그러지! 나도 일일이 말하는 건 귀찮거든.”
태월과 테이루드의 대화를 지켜보던 하테라가 질문을 던졌다.
“포란 님은 여행 중이시라 3급신 회합 장소를 모르시나 봅니다?”
“떠돌다 보니 연락이 될 리가 있나?”
태월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하테라가 창문을 부수며 뛰쳐나갔다.
하테라의 행동과 태월의 마지막 말을 상기하던 테이루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신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어느새 아샤와 아진에 의해 길이 막혀버렸다.
“너, 너희는 누구냐?”
“그런데 우리가 왜 들통났지?”
“어이없네. 그거야 회합 장소는 백 년간 바뀌지 않았으니 그렇지!”
말을 하면서 테이루드는 전투 자세를 취했다.
셋을 동시에 감당할 자신도 없었지만, 시간을 질질 끌면서 버텨볼 생각이다.
“그런데 같이 있던 친구는 의리 없게 잘도 도망갔네? 같이 싸울 생각도 하지 않고.”
“그는 원래 무력이 약하다. 같이 있어 봐야 큰 도움도 되지 못하지. 다른 능력으로 3급이 된 거거든. 이곳을 벗어났으니 지원군을 데리고 올 것이다.”
“글쎄, 젤 가까이 있던 놈은 법술가루만 잔뜩 모아놨던데?”
“헛, 설마?”
“맞아. 그놈도 소멸했지. 그리고 방금 나간 그놈도 우리 일행에게 잡혔어. 몰랐나 보군? 둘이 더 있다는 걸. 죽기 전에 소원은 없나?”
하나는 월등한데 다른 둘까지 합치면 자신은 결국 소멸하게 된다.
더구나 이젠 지원군도 바랄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감응 속에서, 도망쳤던 하테라의 기운이 미약해진 걸 감지했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태월에게 받았던 술을 꺼내서 병째로 마신다.
“취해서 완전히 뻗으면 소멸시키도록 하지. 당연히 그때까지 술을 계속 주겠어! 대신 회합 장소를 알려줘.”
“조, 좋아!”
3급신들의 특징이 동료애가 그리 없다는 것이다.
인간과 달리 그들은 각기 다른 종족이나 마찬가지였다.
인간이 사라진다면 그들끼리 또 대적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소멸하는 마당에 그에게 중요한 것은, 진귀한 술을 실컷 마시는 이 순간이다.
테이루드가 지도에 추가로 장소를 그려주자, 태월은 그에게 양주 두 병을 내주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술이 세다.
‘이 자식 이거 술고래잖아? 아, 안 되겠네.’
태월은 한국에서 유행하는 폭탄주를 말아서 먹였다.
양주에 소주와 맥주 그리고 막걸리까지 섞는다.
두 시간을 그나마 버티더니 곧바로 쓰러져 잠들어버렸다.
‘미안하지만, 네가 요괴족인 게 잘못이다. 잘 가라.’
태월은 아샤와 아진을 돌아본다.
“후반부의 혼원공을 펼쳐.”
이곳에 오기 전에 잡았던 하급신을 통해 이 요령을 깨달은 것이다.
태월에게 필요한 것은 격을 더 높일 영혼 에너지였다.
육신의 기운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하급신의 격이 태월의 몸에 있는 게 아니다.
문신에게 주어진 격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격은 아샤와 아진의 몸에도 생겼다.
아샤와 아진은 격을 더 높일 이유가 없기에 육신의 기운을 키우려는 것이다.
30분 정도가 지나자, 아샤와 아진에게 하급신의 몸에 쌓였던 기운이 흡수되었다.
그 후 태월은 그자의 영혼을 거두었다.
일이 끝난 후 주변을 둘러보고 필요한 것을 챙긴 후 밖으로 나왔다.
100m 밖 루루와 아리랑의 발밑에 하테라가 숨을 거둔 채 뻗어 있었다.
태월이 같은 방법으로 아샤와 아진이 흡수하도록 시간을 줬고, 그 후에 영혼을 취했다.
“오빠? 그 라파로라는 자를 찾아가려고?”
“그래야지.”
“그냥 하급신들만 잡아도 되잖아?”
“문신이 말한 건 지구를 갈 자격이 주어진단 거였어. 물론 성공할 가능성도 크지만, 아닐 수도 있잖아. 더 확실하길 원하고 또 너희도 관련이 있어.”
“우리가 왜?”
“지금 3달 조금 더 지나면 출산이지? 여기서 애를 낳으면 어떻게 될까? 시차가 다른데. 또 아이들의 고향이 이곳이란 게 말이 돼? 우린 원래 이곳에 없던 사람이야. 인과율에 간섭이 생길 수 있어.”
“설마?”
“지구의 하급신과 달리 이곳의 하급신은 소생도 안 돼. 내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단 소리야. 어떤 사태가 생길지도 모를 위험 속에, 아이들이 태어나게 하고 싶지 않아. 주신의 간섭은 속한 세상의 존재에게 관용을 베풀지만, 다른 세상의 존재에겐 차갑거든.”
아샤와 아진이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걸 태월이 입에 올렸다.
“그걸 어떻게 확신해?”
“나도 좀 전까진 지구에 빨리 가고 싶어서 라파로를 찾으려 한 거였어. 그런데 하테라가 가진 재능과 정보가 넘어왔어.”
“그자가 가진 재능이 뭐지? 하급신인데도 무력이 약하다 하긴 했는데.”
“위험하게도, 이 세상의 구성원이 아닌 걸 그에게 들켰어!”
“헉! 그걸 어떻게?”
“어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