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새로운 축기법
비밀 금고란 소리에 아샤가 양손을 번쩍 든다.
“와! 만세! 또 보물 탐험이야?”
“크, 탐험까지는 아니고 은밀히 뭔가 숨겨둔 거 같았어. 사실 보물이 아닐 수도 있지만.”
“호호, 그래도 그게 어디야. 보물이 나오면 아리랑도 챙겨줄게.”
“난, 조금 전 얻은 것으로도 충분해요.”
아깐 그렇게 열심이더니, 인간과 달리 과한 물욕은 없는 아리랑이다.
그래도 호기심은 있는지 어슬렁어슬렁 뒤따라온다.
태월이 벽면을 주먹으로 몇 번 쳤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다.
내려선 줄 하나를 찾아내서 당겨보았지만 요지부동이다.
“벽을 여는 어떤 장치가 있는 거 같은데 말이야. 불타서 문제가 생긴 거 같아. 강제로 열어야겠네.”
입고해둔 포란의 칼날 하나를 출고시킨다.
그 칼날로 두 번 비스듬히 그어대자, 어렵지 않게 벽 속이 드러났다.
“오, 철문이 숨겨져 있어.”
“그 칼 무시무시하네.”
“흐, 내가 말했잖아! 대단한 무기라고.”
태월은 철문에 붙은 자물통도 한 방에 잘라냈다.
“이제 들어가 볼까?”
-끼이익!
철문이 비명을 지르며 입구를 드러냈다.
일행은 숨겨진 공간 속으로 발을 내딛는데, 통로라 할 것도 없이 바로 앞에 늘어선 궤짝들이 전부였다.
“에이, 시시해!”
“함정도 없고 좋기만 한데? 자, 이 하급신의 전리품은 과연 무엇일까나.”
태월은 첫 번째 궤짝을 열었는데 얼굴에 실망이 가득하다.
“에이, 이거 그냥 금괴잖아? 쯔쯔, 하급신 이름이 아깝다.”
태월에게 젤 시시한 품목이었다.
그런데 그 실망은 계속되었다.
금괴, 금괴, 보석, 보석으로 이어졌다.
결국 마지막 궤짝만 남은 셈이다.
“호호, 그래도 보석들은 이쁘다.”
아샤만 신이 났을 뿐이다.
태월은 마지막 궤짝의 뚜껑을 무성의하게 발로 차서 열었다.
-퍽!
“어? 이게 뭐야? 딸랑 책 한 권이잖아? 참나, 이 하급신 진짜 진상이네.”
뚜껑이 날아가 버린 궤짝엔 책이 하나 들어 있을 뿐이다.
그래도 뭔가 있기에 뒀을 거라고 보고, 돌아가는 길에 심심할 때 읽어볼 생각이었다.
“그만 가자! 보석은 두 상자니까, 아샤와 아진이 하나씩 챙겨.”
“호호, 알았어요.”
둘에게 공평하게 나눠주고는 태월은 금괴만 입고했다.
요괴 본거지를 떠난 태월은 다음 장소를 향해 이동했다.
해가 질 무렵 태월은 이동을 멈추고 거대한 나무 위에 내려섰다.
“이곳에서 야영하면 안전하겠어. 세상에 이렇게 큰 나무도 있었군. 그런 나무가 여긴 몇 그루나 되네. 참, 신기한 세상이야.”
1m 굵기의 가지들 3개가 얽혀있는 위치였고, 그 면적만 사방 7m는 되었다.
“오빠, 여기 괜찮네. 바닥만 평평하게 깔면 충분히 잘 수 있겠어.”
아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태월은 공간 배낭에서 필요한 것들을 꺼냈다.
식사도 해야 했기에 야영 도구들을 전부 출고했다.
태월이 텐트를 치는 동안 아샤와 아진은 저녁 준비를 했다.
물과 식자재는 넉넉했기에 크게 부족한 건 없었다.
“음, 역시 음식 솜씨는 대단해. 오랜만에 먹어보는 한국 음식이네.”
“풉! 오빠! 너무 오버 아냐? 이거 라면 끓인 거잖아.”
“흠흠, 물 조절과 불 조절을 잘했단 소리야.”
일행이 정말 오랜만에 먹어보는 라면이었다.
셋 다 직접 해 먹는 요리만 주로 즐기다 보니, 라면 같은 인스턴트식품은 잘 먹지 않았다.
“오늘은 이 라면 진짜 맛있네. 세 개 더 끓여야겠어!”
아샤도 입맛이 끌렸는지, 추가를 외쳤다.
식사가 마무리되자, 아진이 후식을 만드는 동안 태월은 궤짝에서 꺼낸 책자를 집어 들었다.
책의 저자가 있나 싶어서 맨 뒤를 넘겨보았는데, 그곳엔 편지 같은 것이 끼어 있다.
“어라? 이 책이 포리사가 가지고 있던 것의 후편이네?”
그곳에 쓰인 글은 일종의 고백 글이다.
포리사와 포란은 하급신으로 올라섰을 때, 신의 재단에서 서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둘은 다른 신들의 눈을 피해 금역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다 우연히 발을 헛디뎌 숨겨진 공간에 떨어졌는데, 그곳에서 상급신의 유물을 발견한 것이다.
그 당시는 포리사의 무력이 더 강했기에, 연인이 된 포란에게 칼날들과 전반부 책자를 넘겼었다.
후반부의 기운 축기법이 없다면, 제대로 된 능력을 갖출 수 없었다.
그렇게 분배하는 것이 공평했다고 여긴 것이다.
칼날도 그냥 질 좋은 무기로만 여긴 것이다.
그 당시는 그 책자를 제대로 볼 시간도 없는 급박한 분위기여서 그 내용을 제대로 숙지 못했다.
금역에 경고음이 울리며 비상이 걸렸기에, 둘은 추적대를 피해 빠르게 빠져나와야 했다.
“훗, 그래서 들키지 않으려 각자 흩어진 거네. 그 당시 신의 재단에는 하급신이 꽤 많았나 보군.”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였다.
포리사는 후반부로는 무언가를 할 수가 없었는데, 포란은 달랐다.
축기법이 없어도 자신이 가진 기운으로 어느 정도는 다룰 줄 알게 된 것이다.
세월이 흘러 두 번째 만나게 되었을 때, 포리사는 덜컥 겁이 났다.
그녀가 중급신에 빠르게 도달하는 진척을 보이고 있었다.
격이 달라지면 포란이 자신을 버릴 것으로 생각했다.
그때도 포란이 온갖 애교를 떨며 후반부를 요구했었다.
그래서 떨어져 도망치던 당시에 그 후반부 책자를 잃어버린 것처럼 굴었다.
실망한 포란이 돌아갔고, 다시 몇 년이 흘러 그녀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결국 포란이 다시 온 건 믿지 않아서네. 훨씬 강해진 후에 나타난 걸 보면 말이야.”
태월의 추측대로 그녀는 포리사의 힘을 뺏어 그 책자의 행방을 알려 했다.
다만, 태월 일행이 의도치 않게 나타나는 바람에 모든 게 엉망이 된 것이다.
그 편지에는 그녀에 대한 원망과 아쉬움이 일기 형식으로 쓰여 있었다.
그녀에게 당할 수도 있고 이 책도 발견될 수 있다는 걸 안 것이다.
버림받는 것이 두려워서 숨겼다는, 그녀에게 보내는 안타까운 고백이었다.
“이 자식은 금괴 따위나 보관해놓더니, 역시 하는 짓도 지질했네.”
태월은 그 편지를 차 끓이려 불붙인, 부탄 가스레인지에 넣어 태워버렸다.
두 번 읽다간 속 터질 거 같아서다.
후반부 책자의 서둘러 읽어본 태월은, 러시아에 있는 볼코프 늑대족 자매에게서 얻은 호흡법보다 효능의 격이 다름을 느꼈다.
“역시 상급신의 능력을 배우게 되는 끝장 호흡법이라 이거네.”
“오빠?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예요? 상급신이 왜요?”
“아, 맞다. 너희도 이 축기법 같이 배우자!”
“축기? 호흡법요? 그거 우리 배운 거잖아요.”
“에이, 요괴들이 가진 호흡법과 상급신이 가진 호흡법이 같겠어?”
“헛, 아까 발견한 그 책자가 상급신의 그거라고요?”
아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묻는다.
“뭐 인간 종족의 상급신은 아니지만, 어차피 우리가 배운 것도 지구의 요괴족 거잖아? 내가 포란에게서 얻은 책자 이야기했지? 그게 전반부고 이 책이 후반부였어. 둘이 발견해서 나눠 가졌대.”
태월은 포리사와 포란 간에 있었던 일을, 아샤와 아진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어머, 불쌍하네. 그런 편지까지 남겨 놓다니.”
“불쌍은 무슨? 지질한 거지.”
“하여간 우리가 배울 수 있다는 거죠?”
“응, 전반부부터 순서대로 익히면 문제가 전혀 없을 거야.”
태월이 전반부를 꺼내 내용을 살피며 둘에게 하는 말이다.
전반부는 그 칼날에 기운을 실어 쏘아내는 방법과 혼돈에 관한 축기법의 기초가 적혀 있다.
그래서 기초의 원리를 몰랐던 포리사는, 그걸 배울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어머! 여기서 혼돈이 또 나오네?”
“그러게, 이 세상에서는 카오스의 힘이 가장 강한가 보네. 하긴 4대 원소를 결합한 게 혼돈이었으니, 모든 걸 포용하고 아우를 수 있는 상위급 기운인 거잖아.”
“책엔 이 축기법의 이름이 없어?”
“특별히 없던데? 우리가 짓지 뭐. 혼돈신공!”
“언니가 지어봐! 오빠에게 맡겼다간 저렇게 얼렁뚱땅일 거야.”
“응, 그래야지.”
“에고, 너희 맘대로 해라!”
아진은 한참 아샤와 의논하더니 이름을 정해서 알려준다.
“카오스 브레싱.”
“에이 그건 영어잖아? 너희가 전반부를 안 읽어봐서 그래. 이건 단순한 호흡법이 아니라 축기야.”
“그럼, 한문으로 혼원공! 혼원신공은 너무 거창한 거 같아요. 그리고 혼돈 혼에 으뜸 원을 써서 혼원공. 으뜸이니 상급신 아니겠어요? 그리고 혼원은 천지나 우주를 뜻하기도 해요.”
결국 태월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름은 혼원공으로 정해졌다.
그날 밤 태월과 아샤 그리고 아진은, 전반부에 나온 기초 축기법 즉 상위 호흡법에 입문하게 되었다.
일정과는 다르게 사흘을, 그 나무 위에서 기초의 틀을 세우는 데 시간을 보냈다.
혼원공의 모든 걸 아우르는 효능 때문인지, 태월 일행이 늑대족의 호흡법으로 쌓아 놓은 기운도 받아들였다.
덕분에 태월 일행의 현재 기운은 과거보단 두 배는 강해졌다.
기운이 새로 생겨서가 아니라, 몸 여기저기에 용해되지 못했던 것들마저 혼원공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흡수율도 높아질 테니, 아주 좋은 일이야.”
“호호, 기초만 해도 이 정도인데, 진짜 격이 다른 거 같아요.”
당분간은 전반부에 숙련을 거쳐야 하고, 그게 자연스러워지면 그때 후반부를 익히기로 했다.
태월은 그곳에서 제일 가까운 반나절 거리의 하급신 하나를 또 삼켜버렸다.
전엔 둘을 상대했던 일행인지라, 더욱 강해진 지금이야 하나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다.
아쉬운 건 그 하급신은 숨겨둔 게 없었다.
또한 주변에 요괴들도 없이 혼자 은둔하던 존재였다.
“으악! 거지 하급신이야!”
“크크, 그러게. 가져갈 것도 없네.”
“그래도 잘 죽였어. 이놈이 인간의 몸을 연구하고 있었다니, 기분이 엄청나게 나빠져.”
“그래도 악질은 아닐 거야. 무덤에서 파온 시체들이야. 뭐, 유족들에겐 악당이겠지.”
아샤의 말에 아진이 말을 덧붙여줬다.
주변에 시체 썩는 냄새가 너무 나서 태월은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그리고 열흘이 지나자, 그동안 두 명의 하급신을 더 없앨 수 있었다.
태월은 새로운 언월도의 성능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었다.
탄월이 하급신에게도 날아가 박히기 시작할 정도로 기술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보름의 시간이 더 지났을 때는, 하나를 겨우 찾아 처치할 수 있었다.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지로 돌아온 태월은 업무 보고를 받으며 이틀을 보냈다.
“방학 동안 여섯을 흡수했네. 졸업 후에나 나머질 채워야겠어.”
“그래요, 이제 겨우 일주일 남았어요. 이제 수도로 올라가야죠.”
“그럼 내일 올라가는 걸로 하고, 오늘은 후반부를 배우자.”
“야호! 이제 진짜를 배우는구나.”
태월이 후반부의 책을 꺼내 아샤와 아진을 가르치며 자신도 익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오빠? 우리는 안 되는데?”
“흠, 아진도 안 되는 거야?”
“네, 저도 되진 않네요.”
아샤와 아진의 말에 난감해진 태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