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하급 신 사냥 (1)
태월의 몸놀림도 놀라웠지만, 그보다 주방 요리사 하나를 그렇게 한 이유를 몰라 어안이 벙벙한 분위기였다.
“백작님! 그가 무슨 실수를 했나요?”
“실수이긴 했지. 자네의 이야기를 방 밖에서 들은 거 같은데, 숨소리가 아주 거칠어졌어. 게다가 심장 박동 소리도 갑자기 커졌고.”
“허, 놀라운 능력이군요. 과연 특급 사냥대장이신 백작님답습니다. 그런 이자가 2황자의 세작이었단 소리네요?”
“그거야 자백제를 써보면 될 일 아닌가?”
자백제 이야기에 그 요리사의 눈이 흔들렸다.
뭔가를 하려던 눈빛이기에 태월은 그자의 뒷목을 쳐 기절시켰다.
그리고는 그자의 입을 벌려서 무언가를 꺼낸다.
“역시, 수상한 자군.”
“허, 그거 독단이군요. 주방에까지 세작이 끼어 있었다니 아주 위험할 뻔했습니다. 휴, 이곳 주방은 아무나 들이지 않는데, 제대로 조사를 해봐야겠습니다.”
요리사가 세작이라면 굉장히 위험한 일이긴 했다.
이곳 연회실은 1황자도 종종 사용하는 곳이기에 더욱 그런 것이다.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으나, 식사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태월은 시종에게 일러 나중에 따로 연락을 취하기로 하고선 궁을 나섰다.
로빈을 찾아낸 후, 영지에서 부족한 식량과 가축들을 사 모으기로 했다.
다음 날까지 진행된 그 작업은 여유 있는 자본으로 인해, 부족한 시간을 대신하기에 충분했다.
청풍을 불러내어 로빈을 포함한 일행과 함께 영지로 떠났다.
“오셨습니까?”
“하하, 그래. 다들 잘 지냈나?”
“네, 요즘 요괴들도 여전히 조용합니다.”
“뭐, 나쁜 일은 아니군. 여기 영주관 뒤쪽으로 크게 늘어선 창고로 가지. 다 비워뒀겠지?”
“네, 영주님!”
창고 한곳에 들른 태월은 아샤와 아진의 신화급 공간 가방에 든 물자들을 일부 꺼내놨다.
가방은 마차 30대 분량씩 들어가지만, 신전에서 얻은 물건들이 있기에 꺼내 놓을 수 있는 건 50대 분량이었다.
그걸 10곳의 창고에 채우니 창고마다 가득해졌다.
그리고는 로빈만 데리고 창고 뒤쪽의 공터로 가서 팔찌에서 살아있는 가축들을 꺼냈다.
무려 3천 마리가 튀어나오자, 대도시 가축시장 분위기가 되었다.
팔찌의 공간 속은 살아 있는 생물도 가능하기에, 그곳에 가축들을 사모아 마을 내부에 입고시킨 것이다.
“뭐, 이 상황은 대충 알아서 설명해. 나 복잡한 거 싫어하는 거 알지? 행정관에게 일러 이것들을 사육할 대단위 농장을 만들라고 해.”
“알겠습니다. 영주님!”
로빈만을 남겨둔 채 태월은 영주실로 향했다. 영주 대리를 맡은 이로부터 보고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후리스 백작이란 자가 사과의 선물을 보내왔다고?”
“네, 아들이 실수에 대해 크게 뉘우치고 있다고 합니다.”
“크, 뉘우치기는 개뿔! 그냥 뻔한 소리겠지. 아직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서 우릴 도발할 자신이 없는 거지. 그런데 그 백작이 2황자 쪽이라고 했었나?”
“네, 맞습니다. 2황자비와는 친척입니다.”
“우리를 꽤 미워하겠군. 하여간 허튼짓 할 수도 있으니 그쪽을 잘 감시해. 요괴 쪽 방어는 반쯤 줄여도 돼. 1년간은 도발을 하지 못할 거야.”
“그렇긴 하겠습니다. 3급신과 절반이 넘는 요괴가 몰살된 일이니까요.”
그 외 잡다한 보고까지 듣게 된 태월은, 지루했지만 꾹 참고 견뎌냈다.
“내가 계속 외유할 일이 많으니 이대로 대리 임무를 하면 될 거야.”
“네, 알겠습니다. 마스터!”
대리 영주 역할을 하는 자는 이곳의 본토박이 자작이었다.
아카데미로 떠날 준비를 하던 시기에 그의 소식을 듣게 된 태월이다.
잠을 자다 가위에 눌려 죽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죽음이었다.
이에 몰래 가서 그를 소생시켜준 태월이다.
다시 살아난 것에 가족들은 놀랐지만, 좋은 일이 분명했기에 다들 기적으로 반겼다.
나이도 이제 사십에 불과한 그이기에 앞으로 할 일이 많을 것이다.
‘행정가로는 꽤 유능하다 했었지. 일을 시켜보니 매끈하게 잘 처리하긴 하네. 정세를 보는 안목도 상당하고.’
귀속된 자이기에 태월에 반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를 보내고 난 태월은 급박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읽지 못했던, 번역본 책자를 꺼내 살펴보았다.
‘흠, 역시 겹치기는 안 되는군. 이 안에 들어 있는 마을을 다른 곳에 설치한 후에야, 또 다른 장소를 담을 수 있네. 땅의 면적이 최대 20㎢라. 서울의 구로구나 도봉구 정도 크기군.’
태월은 읽어 내려가다가 어떤 부분에서 이마를 살짝 찡그렸다.
‘허, 이거 간단한 게 아니잖아? 쉽게 말해 빈 땅이나 폐허 위에 세워야 한다는 소리네.’
땅 위를 덮게 되면 기존의 건물들이 소멸하는 것이다.
그것 외에는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
‘척박한 곳에다 떡하니 꺼내 놓으면 최고겠군. 한국에 그런 땅이 있으려나? 아니 그런 곳보단 무인도가 좋겠어. 크, 멋지네.’
섬의 면적이 설혹 작더라도 팔찌 안에 있는 마을을 꺼낸다면, 섬 자체가 그만한 크기로 변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뜬금없이 섬이 커지고 수백 년이 넘은 듯한 건물들이 존재한다면, 그걸 설명하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거기다가 물고기나 다른 식물들은 지구에도 거의 없는 것들이다.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중에 아샤와 아진이 들어왔다.
“오빠? 여기서 혼자 뭐 해?”
“뭐, 재미난 상상 좀 했지.”
“야한?”
“헐, 그게 아니라 팔찌에 있는 마을을 어떻게 활용할까? 하는 거. 여기 번역본을 보니 가능성이 크더라.”
“어디다 해보려고?”
“한국으로 가면 이것저것 알아봐야지.”
“아, 그런데 우린 언제쯤 돌아갈 수 있을까? 여기도 좋지만 평생 여기서 살 건 아니잖아. 문화생활 할 게 너무 없어.”
아샤는 TV를 보지 못한다는 게 제일 아쉬웠다.
“그러잖아도 모레쯤 늑대 족 발타이를 만날까 해. 지금쯤 3급신 정보를 꽤 모아놨을 거야.”
태월은 다음 날 온종일 책자를 만드느라 바빴다.
인간들의 가축 사육법에 대한 책을 요괴들의 언어로 번역해 써가는 일이다.
태월이 수도에 가 있는 동안, 발타이는 늑대족의 부족장과 결투해서 목을 베어버렸고 그가 그 자리에 올랐다.
그 후 도마뱀족 수장도 조용히 처리해버렸다.
다음 날 태월 일행은 늑대족 주둔지로 향했고, 외곽에서 발타이를 만날 수 있었다.
“마스터! 오랜만입니다.”
“부족장이 된 거 축하해.”
“제게 그건 큰 의미가 되지 못하지만, 마스터가 원하는 자리까지 가기 위해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그래, 이왕이면 공존하며 평화롭게 살자고. 요괴도 가축을 기를 수 있잖아?”
“네, 최하급 요괴들을 쓰면 됩니다.”
“이 일대만이라도 가축을 공급해 줄 테니 잘 길러봐. 조금 후에 천 마리 정도를 꺼내줄게. 그리고 기르는 법이 적힌 책도 주도록 하지.”
태월의 팔찌에는 창고 뒤에서 꺼낸 3천 마리 외에도 1천 마리가 더 있는 것이다.
“몰래 잡아먹는 요괴가 있다면 목을 쳐버리겠습니다.”
“그래, 그 정도는 발타이가 알아서 하고. 3급신들의 행방은 어떻게 되었어?”
태월이 무얼 요구할지를 미리 알고 있었기에, 발타이는 품에서 책자 하나를 꺼내 태월에게 넘겼다.
“22명의 3급신 위치입니다. 제가 알아낸 그들의 이름과 장단점도 같이 기재했습니다.”
“호, 숫자는 충분하군. 수고했어.”
“아닙니다. 마스터!”
“자, 책자부터 받아. 요괴 언어로 작성한 거라서 쉽게 이해될 거야.”
“감사합니다.”
태월은 책자를 넘겨주고 나서 가축 1천 마리를 꺼냈다.
“아, 살아있는 것도 되네요?”
“훗, 그럼 내가 죽은 걸 줄까 봐? 하여간 잘 키워봐.”
태월은 가축 떼를 뒤로하고 요괴 주둔지를 벗어났다.
“흠, 그래도 신경 쓰느라 최대한 가까운 곳부터 정리해놨군.”
지도도 첨부된 책자이기에 한눈에 쉽게 파악이 되었다.
“가까운 데가 어디쯤인데요?”
“청풍을 타고 가면 2시간이면 가겠네.”
“바로 갈 거예요?”
“스무 마리 잡으려면 하나라도 미리 해놔야겠지. 이젠 하급신 정도는 만만하잖아?”
“그럼, 언니랑 제가 주의만 끌면 되네요?”
“응, 그래 주면 고맙고. 그런데 임산부인데?”
“어머, 지구에서는 임신으로 치지도 않을걸요? 초음파도 없는데, 착상된 걸 바로 알다니. 그리고 언니랑 제가 보통 신체인가요? 만삭이라도 멀쩡하게 움직일 건데.”
태월도 인정하는 내용이긴 하지만, 그래도 신경 쓰이긴 했다.
청풍에 올라탄 태월 일행은 동쪽으로 길을 잡아나갔다.
“저기쯤이겠군. 오늘은 일단 이놈만 잡자고!”
청풍이 공중을 한 바퀴 선회하며 하급신의 위치를 파악해갔다.
“청풍! 너무 가까이 가지 마, 잡기도 전에 알아채면 곤란하잖아. 저쪽 나무 뒤로 우릴 내려줘.”
큰 나무 가까이에서 뛰어내린 태월 일행은 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1km 정도를 걸었을 때, 태월이 목표로 한 하급신의 숙영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자신의 하급자들과 꽤 떨어진 장소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태월 일행은 변신 가면과 스카프 그리고 팔찌를 이용하여, 목 위를 늑대족으로 변형시켰다.
“누구냐?”
경계를 서고 있는 요괴 하나가 태월의 앞을 막아섰다.
“우린 늑대족의 사신이다. 부족장의 전갈을 가지고 이곳의 지배자인 포리사 3급신을 뵈러 왔다.”
“서쪽에 있던 그 늑대족? 부족장이 바뀌었다던데?”
“그래, 발타이 님이 부족장이 되셨지.”
“아, 맞다. 그 이름을 들어봤지. 안쪽으로 들어가도 된다.”
요괴 부족 간에 다툼이 없는 시대라서 의심을 하지 않는 눈치였다.
“중요한 안건이라 다른 자가 있으면 곤란한데? 혼자 계신가?”
“음, 포란 님과 같이 계시긴 한데? 그분이라면 상관없지 않나?”
태월은 머릿속에 있는 책자를 떠올리며 포란이 누구인지 체크했다.
‘어라? 이틀 거리에 있어야 할 3급신이잖아? 둘이 연인이라도 되나?’
포리사는 남성 신이고 포란은 여성 신이었다.
태월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아샤와 아진을 데리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다른 경계병은 없었기에 가는 길은 순조로웠다.
태월의 기감에 잡히는 기운 강한 곳으로 오다 보니 헤맬 이유도 없었다.
‘둘이라서 잘 될지 모르겠다. 일단 너희는 여기서 대기해.’
‘혼자서 가능할까요?’
‘지금 저 둘은 다행히 딴짓 중이야.’
‘딴짓요? 뭐 하길래요?’
‘크, 사랑 나누는 중이야.’
‘아, 그럼 통째로?’
‘우리를 눈치 못 챘으니 가능할 거 같기도 해. 그리고 만일을 대비해 변신하면 되지.’
태월은 변신 가면과 스카프를 이용하여 입구에 경계를 서던 그 요괴로 변했다.
‘보기엔 어때?’
‘점점 실력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전혀 모르겠는데요?’
‘기운을 숨기면 금방 들통나진 않을 거야. 이제 갔다 올게. 주변을 잘 살피도록 해.’
태월은 인간의 별장처럼 지어진 곳의 밖을 기웃댔다.
그런데 누군가 2층에서 환희에 젖어 교성을 내고 있었다.
태월이 거미처럼 벽을 타고 기어 올라와 보니 창문이 조금 열린 곳을 발견했다.
‘오. 아주 적나라하네? 저 올라탄 여성체가 포란인가 보군. 거의 절정으로 가는 중 같은데, 최고조에 올랐을 때 덮쳐야겠군.’
태월은 숨을 멈추고 기운을 지운 채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조금 열린 창 사이로 왼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