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뜻밖의 일들
루루의 등에는 태월이 아리랑을 안고 있었다.
“그 시각 빠져나간 후문 쪽 마차가 중간에 다른 마차로 갈아탔어. 괜히 첫 마차를 쫓느라 시간 낭비만 했고. 이놈들 보통 놈들이 아닌데? 크로우라고?”
태월이 얻은 정보는 몇 가지 되었다.
4명의 사내가 손님으로 왔는데, 주방장 특선을 주문했었다.
그러면서 주방장에게 특별히 잘해달라는 의미로 팁을 주겠다고 했다.
점원이 그 후한 손님을 위해 주방장 안면을 터주려고 주방장을 오게 한 것이다.
주인은 손님이 비싼 걸 시키니 감사의 표시로 인사차 온 거고.
“그런데 넷도 팔목에 표시가 있었다고 했지. 까마귀 문신이라….”
태월이 경비대장에게 알아낸 것을 공유하자, 그의 얼굴이 시커메졌다.
“그자들은 크로우입니다. 어둠 속에서 일하는 청부조직입니다.”
급해진 태월이 경비대장과 별도로 이렇게 추적하는 것이다.
늘 아샤나 아진의 품에 안겨 있는 걸 즐겼던 아리랑이, 두 번째 쫓는 마차에서 바람을 타고 흘러나오는 냄새를 확인해주었다.
“어, 맞아요. 아샤 님과 아진 님의 몸 향기네요.”
개과도 아닌 백호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중이다.
루루가 풍압을 일으키며 접근하자, 말이 놀라서 허둥대며 더 빨리 달렸다.
저러다간 사고가 날듯하여 태월은 루루의 등에서 뛰어내려 마차의 지붕에 착지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마부석과 이어진 곳에 언월도를 휘둘러 잘라냈다.
말들과 마차를 완전히 분리해 버린 것이다.
말 두 마리는 마부가 내릴 틈도 안 주고 죽어라 내달렸다.
밖의 소란에 놀란 크로우 단원 하나는 급히 문을 열다가 아리랑의 입속에 머리를 처넣게 되었다.
-빠각! 퉤!
입에 넣자마자 목을 부러뜨리고 내뱉어 버리는 아리랑이다.
“헉!”
마차 안에 있던 다른 크로우 단원은 자기의 동료 머리를 통째로 씹어버리는 백호를 보자마자 얼어버렸다.
그 사이에 태월은 마차 안으로 급히 들어왔고 그자의 목을 쳐 기절시켜 버렸다.
아샤와 아진의 상태를 체크하려던 태월은 어이가 없었다.
드레스가 가슴 위까지 올라가 있는데, 거의 벗은 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외는 특별히 부상이나 헛짓을 한 거 같진 않아 보였다.
“참나,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직도 자고 있네?”
아리랑이 백묘로 변해 태월 옆에서 이 상황이 기가 차는지 입을 벌리고 있다.
알몸이 드러나서가 아니라 천연덕스럽게 자는 게 어이없어서다.
태월이 그녀들을 깨우려고 몇 번 해봤지만, 쉽게 깨지 않았다.
옷을 제대로 정리해주고 그녀들과 크로우 단원을 포박한 후 루루를 타고 1황자 궁으로 날았다.
1황자에게는 궁에 다다르며, 텔레파시를 보냈기에 시종이 나와 있었다.
“안으로 드시랍니다. 그런데 저 사람은?”
“괜찮아. 괜히 다른 데 두었다간 증인이 죽을 수 있어.”
다시 살릴 수야 있겠지만, 괘씸해서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이것들이 내 여자를 가지고 놀아?’
이럴 때 보면 태월도 남자인 것이다.
1황자가 기다리는 곳으로 들어가자, 법술가로 보이는 자가 그 곁에 있었다.
타인도 있기에 태월은 1황자에게 공대를 했다.
“여기 이자입니다. 그런데 제 아내들이 약 기운에 깨어나지 않네요. 수면제 느낌입니다만.”
“노고 많으셨습니다. 코리아 백작님. 수도 치안이 이렇게 엉망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들을 대신하여 사과를 드립니다.”
“좋습니다. 사과는 받아들이죠. 대신 제 아내를 빨리 깨어나게 해주시면 됩니다.”
1황자가 옆에 있던 자를 돌아본다.
의미를 깨달은 그는 가방을 꺼내 그곳에서 시약병과 여러 가지를 내어놓았다.
그리고 양해를 구한 뒤 혈액을 채취 후 검사를 했다.
실력이 좋은 것인지 결과는 불과 5분 만에 나왔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예상대로입니다. 요괴를 생포할 때 쓰는 할로라 수면제입니다. 이 정도 양이면 금액만도 10골드나 드는 굉장한 고가입니다.”
“그런 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고요. 언제 깨어나죠?”
“자연적으로 일어나려면 반나절은 더 있어야 합니다.”
“인위적인 건요?”
“1급 해제 약이 있습니다. 어차피 깨어날 건데 굳이 쓸 필요는….”
“돈은 신경 쓰지 마세요.”
“아, 그것도 그렇지만, 몸에는 그리 좋지 못합니다.”
“음, 그럼 그냥 두도록 하죠.”
아샤와 아진의 몸이 그리 쉽게 상할 리 없지만, 굳이 시간 때문에 해를 줄 이유가 없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임산부에겐 진짜 좋지 않거든요!”
“잠깐, 임산부라뇨?”
“아, 모를 수도 있겠네요. 아직 착상만 된 상태라서 두 부인이 느끼지 못할 수 있지요. 이 기구가 최근에 만들어진 것인데, 임신테스터기 역할도 가능합니다. 대단하지요?”
“둘이라뇨?”
아샤는 그럴 수도 있지만, 아진은 임신할 수 없는 몸이었다.
“이 테스트기로는 두 분 다 임신한 것으로 나옵니다.”
태월은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저 법술가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진이 임신할 수 있는 몸으로 변했다는 소리다.
‘그럴 가능성이 뭐가 있었지? 이곳에 와서 특별한 일이라면…. 아, 4대 원소가 녹아있는 그 연못!’
“혹시 불임이나 임신과 4대 원소가 관련이 있나요?”
“음, 그런 학설이 과거에 있긴 했는데, 그걸 증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4대 원소를 한곳에 모으려면 혼돈이 작용해야 하거든요.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전설의 장소쯤 되는 곳이라면 몰라도요. 그것도 엄청난 양이 필요한지라, 사실 허구에 가까운 학설이라 취급되었죠.”
“그런 곳이 있다면 어찌 되는데요?”
“몸이 변하는 것이죠. 불가능한 것이 다 정상화되는 변화가 일어나죠. 그러니 불임 정도야 당연히 복구되죠. 오십여 년 전에 임신 못 하는 몸을 가진 황후 하나가, 그런 곳을 찾으러 다녔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갑자기 아빠가 된다는 상황이 생겨나자, 당황스러운 태월이다.
기쁨이야 당연하지만, 지구로 돌아가면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일부일처제인 대한민국이 아닌가.
‘하, 아진이 몸이 고쳐진 거야 좋은 일이지만, 이건 또 새로운 국면에 처하게 되네. 부모님들에겐 뭐라고 설명하지?’
아진이 태월과 암묵적 아내가 되어도 괜찮았단 건, 그녀가 임신할 수 없는 몸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런 것이 없어졌으니 난감한 일이다.
혼자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그녀들이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주변엔 태월과 아리랑 그리고 루루가 있었다.
“어? 오빠? 여긴 어디지? 난 왜 누워있는 거야?”
“둘 다 몸은 괜찮아?”
태월의 말에 아샤와 아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유랑극단 공연 본 후에 식당으로 간 건 기억나지?”
“응.”
“거기서 음식에 강력한 수면제를 탔어. 그걸 너희들이 먹게 된 거고. 그리고 바로 납치되어 수도를 벗어나게 되었지.”
“헉, 우리가 납치되었었다고?”
아샤는 벌떡 일어나 몸 여기저기를 살폈다.
“음, 별일 당하진 않았었네? 으아, 놀라라.”
아샤가 황당해하며 말을 하고 있자, 루루가 딴소릴 했다.
“별일은 아니긴 한데, 둘 다 옷이 가슴 위까지 올려져 있었어요. 뭐 거의 홀랑 벗겨지다시피 한 거죠. 나야 늘 보는 거지만.”
“헉, 진짜?”
“내가 거짓말을 해서 뭘 해요? 아리랑도 봤는걸요.”
“아리랑, 진짜?”
“음, 사실이긴 해요. 그런데 그게 중요한 일인가? 늘 벗다시피 하면서.”
“야! 그거랑 다른 거잖아. 으아 이걸 어째? 그놈들 어딨어!”
태월은 임신 문제로 어찌 말해야 하는지 고민 중인데, 루루가 입방아를 떠는 바람에 분위기만 어수선해졌다.
루루를 혼내려 했지만, 그렇다고 있던 일이 없던 걸로 되지 않기에 그냥 넘어가 주었다.
아진의 표정은 담담하지만 아샤는 흥분상태다.
“한 놈은 그 자리에서 죽었고, 다른 놈은 증인으로 잡아 왔지.”
“다른 짓은 안 했다는 거 확실해?”
“응, 그렇다고 하더라.”
태월도 사실 이것까진 정확히는 모른다.
그렇게 안심을 시켜주는 게 그가 해줄 일이었다.
태월이 봐도 그녀들의 몸에 뭔가를 했던 흔적은 특별히 없었다.
“에고, 개망신이야. 하필 수면제라니.”
태월은 이참에 말하는 게 나을 듯하여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야. 수면제 때문에 혈액검사를 했는데 임신을 했다고 나오더라.”
“어머, 임신?”
“아샤, 축하해. 드디어 아기가 생기는구나.”
아진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호호, 언니 고마워요.”
“아진아? 그게 끝이 아니야. 너도 임신이래.”
“네?”
“어머! 언니!”
생각지 못한 아진의 임신 소식에, 아진 본인도 놀라고 아샤도 놀랐다.
“저, 아기 못 낳는 몸인데요? 모스크바에서도 두 번이나 재차 확인했었잖아요.”
“이곳 세상으로 오면서 바뀌었어. 아, 정확히 말하면 그 4대 원소의 기운을 흡수하면서야.”
태월은 1황자의 예하에 있던 법술가가 해준 말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과거의 기록까지 말해주면서.
“어머, 세상에 그게 그렇게 된 거구나. 언니! 언니도 축하해!”
“고,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어? 나한테 왜 미안해?”
“한국에 가면 그게 복잡해지잖아.”
“아, 그런가?”
잠시 생각에 잠겨보던 아샤가 피식 웃는다.
“난 상관없어. 언니나 나나 영혼의 동반자 아냐. 설혹 내가 정식 부인이 되지 못한다 해도 난 충분히 만족해.”
“그건 웬 엉뚱한 소리니? 약혼까지 한 아샤가 당연히 정식 부인이어야지. 그리고 나야말로 그 전부터 당연히 수용했던 일이잖아. 괜한 소리 해서 어른들 힘들게 하지 말자.”
“잉, 난 진짜 괜찮은데.”
“그렇게 하는 게 언니를 진짜 위하는 일이야. 나 복잡해지는 거 싫어하는 거 알지?”
“휴, 알았어.”
그녀들끼리 알아서 정리해버리자, 태월은 그나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꼬르륵!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샤의 배꼽시계가 알람 소리를 냈다.
“풉, 다들 식사하러 가자. 그러고 보니 나도 두 끼나 굶었네.”
“우린 먹다 말았는데, 으아 또 그놈 생각이 나네.”
“잊도록 해. 그 점원은 이미 죽었어.”
“아, 죽은 놈이 그놈이었구나. 잡아서 매달아 두려 했는데.”
태월 일행이 방 밖으로 나오자, 시종 하나가 쪼르르 달려온다.
“식사할 생각인데 가능하겠지?”
“네,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시종을 따라 들어간 곳은, 작은 연회실 같은 곳이었다.
그 위에는 상당한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고, 따뜻하게 나와야 할 요리들만 주방에서 대기 중이었다.
태월이 자리를 잡자 그 요리들 마무리로 주방이 바빴다.
“1황자님은 어디 가신 게요?”
“그 범인에게 자백제를 먹여 증거를 확보했다고 합니다. 그걸 토대로 관련자들을 조용히 잡아들이고 있고요. 비밀스럽게 진행되기에 외부인들은 모르는 상황입니다.”
단순한 시종은 아니었는지, 현재 상황을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태월이 손을 들어 그를 잠시 제지한다.
“그 일을 이곳 주방에서도 아나?”
“아닙니다. 아는 자가 있을 리 없죠.”
“그래?”
태월은 번개같이 움직여 방 밖에서 요리를 들고 대기하던 자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떨어지는 요리를 잡아채, 바닥으로 떨어지는 불상사를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