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몽탁의 아카데미로
아진이 오히려 후리스 백작의 아들에게 도발하고 있었다.
레이디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경우는 이 세계에선 없었다.
후리스 백작의 아들 벤자크 후리스는 태월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갖고 있지 않았다.
만일 수호 동물을 둘이나 거느린 사냥대장인 걸 알았다면 결투 따윈 신청할 리 없었다.
연회에 참석한 귀족 중에 그 사실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기에 이런 착각을 한 것이다.
태월을 단순히 뒷배경이 좋아 영주가 된 걸로 아는 것이다.
“부인! 물러서시오! 별거 아닌 일로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어요.”
태월이 아진을 저지하자 그녀는 한발 물러섰다.
“좋아! 결투를 받아들이지. 곧바로 하면 되나?”
“대리자를 보내겠소이다.”
“난 내가 직접 하도록 하지. 대신 바쁘니까 바로 하자고! 본인이 나설 것도 아니니 상관없잖아?”
“10분 후에 이곳에서 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여준 태월은 집무실을 다녀온다며 자리를 비웠다.
공간 배낭에서 언월도를 꺼내든 태월은 그 자리로 돌아왔다.
“허, 수행 기사가 대리전도 치르다니. 이 동네는 참 뻔뻔해.”
“참관인인 오라트 자작입니다.”
“어제 본 그 자작이시군. 좋군요. 이제 시작합시다.”
수행 기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예를 표하더니 대련 자세를 취했다.
태월은 이곳 세상에 와서 기사와 대련하는 게 처음이 아니다.
로빈과 두 번 자유대련을 했었고, 태월이 딴청을 할 정도로 손쉬웠다.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수행 기사는 로빈보다도 약해 보였다.
기운을 파악할 수 있는 태월이기에, 그런 걸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퍼억! 퍽!
참관인인 오라트 자작의 신호가 끝나자마자, 태월은 상대편에게 다가가 언월도로 후려쳤다.
수호 기사가 눈 깜빡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가가 언월도를 휘두른 것이다.
죽일 생각이 없었기에 칼등으로 내려쳤다.
태월은 행동은 너무나 빨랐다.
제자리로 돌아오고 나서야 그 기사는 바닥에 쓰러지며 기절해버렸다.
태월의 중복 재능이 기사의 시각 반응보다 빨랐던 것이다.
‘무슨 개폼을 잡고 있어! 딱 한 방 감이군.’
대리전을 치르려 준비 중이던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귀족과 지역유지들도 지켜보던 중이었기에 그 후폭풍은 컸다.
이곳에 있는 자들 중 누구도 태월의 움직임을 제대로 본 자가 없었다.
기사단장까지 대동한 귀족도 있었지만, 입을 쩍 벌린 기사단장의 행동으로 코리아 백작의 무력은 입증된 것이다.
그중 후리스 백작의 아들 벤자크는 몸이 경직되었다.
태월이 무형의 기운을 움직여 벤자크의 몸에 집중시켰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게 바지가 축축해졌다.
“어머, 후리스 공자가 오줌을 지렸어.”
“백작 부인에게 망신당하고 연이어 저런 모양새를 보이다니….”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벤자크는 거기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다리에 힘이 빠지며 풀썩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그때 하우징 자작의 기사단장 쿠사크가 앞으로 나섰다.
“백작님! 이제 그만하셔도 됩니다. 다들 보았고 누구의 잘못인지 인지하고 있습니다.”
기사단장은 이대로 두면 벤자크의 정신이 붕괴될 소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곳에 모인 사람 중에 태월 다음으로 무력을 갖춘 자이기에,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것이다.
“흠흠, 주인의 자격으로 소란함을 정리하려 했을 뿐이오. 거기 대리전도 빨리 끝을 내길 바라오! 대단한 결투도 아닐 거 같은데 뭘 그리 뜸을 들이시오?”
“백작님 감사합니다.”
“나야 손에 사정을 둔 것이지만, 내 아내들이었다면 걸어 나가지도 못했을 것이오!”
이 사건을 계기로 훗날 또 도발하는 자가 생길 것을 염려한 태월은, 아샤와 아진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대리전 끝난 후에 내 아내들이 여흥을 위해, 특급 사냥대의 위력이 둘만 합쳐도 어떤지를 직접 견학시켜 주겠소! 이는 경거망동을 막고자 하는 내 경고요. 또한 내가 이곳에 부임하게 된 경력도 3급 신에 해당하는 특급을 처치했었기 때문이오. 또한 이곳에 와서도 3급 신 둘을 한 번에 잡아 소멸시켰소!”
태월이 던진 여흥이라는 내용 때문에, 졸지에 시시한 대리전 모양새가 되었다.
몇 번의 부딪힘에 이어 넘어진 자가 패한 것으로 얼렁뚱땅 결론을 내버렸다.
그들의 결투가 끝이 나자 아샤와 아진이 서로를 마주 보며 채찍을 들었다.
기사 로빈은 앞으로 나서서 참관자들을 뒤로 10m 이상을 물렸다.
영문을 몰랐지만, 이곳 주인의 성향을 인지하게 된 그들은 불만을 죽이며 순순히 따랐다.
그리고 시작된 백작 부인들의 대결!
-콰콰쾅! 콰쾅!
-파지직! 파작! 파파팍!
-파파팡! 쿠콰쾅!
채찍이 5m 이상으로 늘어나며, 사방으로 휘둘러지는 파괴력에 마당 자체가 파괴되고 석상 일부도 폭파되어 나갔다.
급급해진 기사 로빈은 더욱 참관자들을 뒤로 물렸다.
사대 원소의 연못에서 얻은 기운으로 더욱 강력해진 그녀들이었고, 기운을 합쳐서 내려칠 땐 번개까지도 동반되었다.
사실 태월도 이렇게까지 사태가 커질 줄은 몰랐다.
‘허어, 내 생각보다 더 강해졌구나. 괜히 대련을 시켰어. 쩝, 복구 비용도 꽤 들겠네.’
그런데 그게 흥이 되었는지 지켜보던 루루가 나섰다.
시끄러운 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나타난 아리랑까지 껴들었다.
루루가 본체로 돌아가자, 아리랑도 원래의 몸으로 바꿔 합세했다.
흥이 돋았는지 사람 2명과 동물 2마리가 마당 자체를 완전히 파괴해버렸다.
-콰콰콰콰쾅! 콰콰쾅!
-콰지직! 파파파팡! 퐝퐝퐝퐝!
“그, 그만! 동작 그만! 영주관도 무너뜨릴 셈이야?”
마당 자체가 거의 사라졌고, 땅 아래로는 심한 곳은 5m 깊이로 파여 나가 있었다.
태월의 고함에 흥에 빠져있던 아샤와 아진 그리고 두 동물이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 현장을 확인한 넷은 슬그머니 태월의 뒤쪽으로 몸을 빼냈다.
자신들이 봐도 너무 과했기 때문이다.
“자! 시연회는 끝났소이다. 여흥은 연회장에서만 즐겨주시기를 바라오!”
“자 여기는 붕괴 위험이 있으니 저를 따라 연회장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태월의 말에 이어 기사 로빈이 나서서 귀빈들을 이동시켰다.
그들은 침묵에 빠진 상태로 연회장으로 갈 뿐이고, 그때까지도 입을 여는 자는 없었다.
연회장으로 들어서고 나서야 여기저기서 숨을 내뱉는 소리가 나왔다.
“쿠사크 기사단장! 수도에서의 소식을 제대로 전해 듣지 못해 잘은 모르지만, 저 정도의 실력이 원래 특급 사냥대요?”
“음, 특급 사냥대 한 곳을 알긴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원만 200명이 넘습니다. 그리고 각 개인이 2급 기사 수준입니다. 그런데 코리아 백작님은 말한 것도 없고, 아내분들의 무력이 제가 함부로 판단할 경지를 이미 넘어섰습니다.”
“음….”
“더구나 3급 신도 쉬이 처치할 정도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최소수의 최정예 스페셜 특급입니다. 더구나 수호 동물만 해도 둘입니다. 그것도 백호까지 포함된 무력이지요. 대륙에는 없던 강력한 사냥대입니다. 그래서 황제께서 세습 백작위를 선뜻 내어준 듯합니다.”
“그, 그렇구려.”
황제가 그 정도로 신임한다는 의미는 동북 방향의 변경백이며, 주변 일대를 이끄는 대영주로 여긴다는 의미다.
더구나 후리스 백작 후계자의 실체를 직접 경험하게 된 지금, 미래를 생각하는 그들이라면 기존과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무력으로만 따져도 동북 방면에서 코리아 백작을 넘어설 영주가 없었다.
전체 병력도 기존 후작가 병력의 70%가 남아 있었다.
그 정도면 웬만한 백작가의 두 배 병력이다.
단지 태월이 직접 움직이기보다는 기존 지휘관들을 전부 연임하는 식으로 둬버렸다.
큰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굳이 바꿀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언제 이곳을 떠날지 모를 처지인지라, 굳이 가신을 꾸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부터는 백작 부인에게 함부로 춤 신청을 하는 자가 없었다.
축제가 끝나고 이틀 후 태월 일행은 로빈과 에도르를 데리고 수도로 올라갔다.
업그레이드된 청풍을 타고 날아오르니 불과 6시간 만에 수도에 도달하게 된 일행이다.
“우웩! 우웁!”
도착 후 에도르가 멀미로 인해, 구토하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말이다.
“이곳이 백작님께서 맡기신 돈으로 3황자님이 구해준 저택입니다.”
“흠, 꽤 좋은 곳 같은데? 어?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집사와 하녀들입니다. 아마 1황자 쪽에서 보낸 듯합니다.”
이미 귀속이 된 1황자가 3황자보다 더 편해진 건 사실이다.
태월은 굳이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 일찍 아카데미로 가는 걸로 하지. 에도르 씨도 하루는 여기서 쉬도록 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백작님!”
로빈이 먼저 저택으로 들어가 집사와 하녀들 그리고 주방장을 전부 집합시켰다.
태월 일행에게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날 저녁 풍성한 식사 시간도 보냈다.
아침 일찍 일어난 태월 일행은 로빈의 안내를 받으며 아카데미로 향했다.
이미 연락을 받은 것인지 학장이 직접 나와 일행을 맞이했다.
“명성이 자자한 코리아 백작을 봬서 반갑습니다.”
“하하, 그냥 편하게 대하세요. 백작이긴 해도 이제부터 학생 아닙니까?”
“후계자들이야 그렇게 해도 되지만, 엄연히 현직에 있는 변경백 사령관에게는 그럴 수 없지요. 그건 황법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법이 그렇다는데 태월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샤와 아진도 함께 인사를 나눴고, 학장의 감탄사만 덧붙여졌을 뿐이다.
“1황자님과 3황자님이 잘 부탁한다며 다녀가셨습니다.”
“꽤 할 일이 없는 두 분이군요.”
“백작님의 일도 있고 또 가족이 한 명 여기에 입학하지 않습니까? 학생으로요.”
“아, 그래요? 누군데요?”
“5황녀이신 유리에 님입니다.”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군요. 그런데 그 황녀분은 1황자나 3황자와 직접 관련이 있나 봅니다?”
“네, 1황자님의 막내가 되지요.”
태월은 그녀를 본 적이 없기에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집중 교육을 받고 싶습니다. 교칙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요. 알다시피 제가 2년씩이나 다닐 입장이 되지 못해서요.”
“네, 연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졸업 심사를 통과하면 되는 일이니까요. 개인교수를 따로 두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개인교수라는 의미는?”
“이곳을 여러 가지 이유로 퇴임하신 분 중에 부수적으로 하시는 분도 있거든요.”
“아하, 그럼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이미 황자에게 언질을 받은 게 있었는지, 서랍에서 미리 준비한 추천장을 태월에게 건넸다.
내용을 보니 꽤 고심한 흔적이 보였다.
입학 관련 서류에 태월 일행은 돌아가며 직접 사인을 했고, 아카데미를 둘러보는 일로 오전이 마무리되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바로 소개해준 곳으로 가볼까?”
“네, 그게 좋겠어요. 빨리 배워야 빨리 끝나죠.”
태월이 추천장을 로빈에게 보여주니, 하단에 쓰인 주소를 바로 확인하고는 앞장을 섰다.
아카데미와는 도보로 20분 거리였다.
“흠, 그런데 저들은 뭘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