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봉작
아샤와 아진의 구속 팔찌는 이미 해제되어 팔목에 붙어 있기만 한 상태였다.
“아샤! 너무 박력 넘치는 거 아냐?”
“언니, 나도 참으려 했는데, 년이란 욕을 두 번씩이나 하잖아. 발이 먼저 나가더라.”
“전 문밖에서 경계를 서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해.”
“네, 마스터!”
혹시 모를 방문객이 있을 수 있기에 프락이 문밖 경계를 자청한 것이다.
아샤와 아진은 잠시 시간이 나기에 방 안을 살피고 있었다.
“이 호색한이 장신구를 많이 가지고 있네? 모으는 게 취미인가? 몇 개 가져가야겠다.”
“호호, 하긴 저놈이 깨어나도 새 영혼으로 알 테니 아까워하진 않겠네.”
“언니도 좀 챙겨놔! 이쁜 게 많잖아.”
두 여자가 액세서리에 관심을 가지는 동안 태월은 다른 걸 보고 있었다.
그것도 겉모양으로만 보면 어른 주먹만 한 구슬이었다.
“이게 뭐지? 기운 같은 게 들어 있네.”
각자 다른 것에 호기심을 가지는 동안 문신이 둘을 토해냈다.
-우웩! 툭! 툭!
태월은 천천히 걸어와 함께 뱉어진 영혼 구슬 두 개를 각자의 입에 물려놓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들이 깨어나자, 또 한 번의 구라를 쳤다.
그들의 영혼이 새 생명을 얻었다고 여겼는지 눈들이 반짝인다.
“그만 깜빡대고 이게 뭔지 알아?”
“그거 펫의 봉인구입니다.”
“펫? 펫은 그냥 애완동물이잖아.”
“그리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투를 돕는 펫은 의미가 다르거든요. 희귀한 속성 동물을 발견했을 때, 그걸 포획하여 그 속에 잠들게 만듭니다.”
“응? 그럼 이 속은 공간이 확장된 거야?”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공기가 통해야 하거든요.”
“이런 게 흔해?”
“일반 펫을 그런 데 가두진 않습니다. 특별한 속성 펫만 그렇게 하지요. 물론 주인이 정해지고 나면 그냥 펫의 아공간 숙소로 쓰일 뿐이죠.”
태월은 이곳의 펫을 본 적이 없었다.
단순하게 지구에서의 반려동물 개념으로 생각했을 뿐이다.
“이 구슬엔 어떤 펫이 있는데?”
“바람의 속성을 지닌 이동용 풍조입니다.”
“풍조? 혹시 3황자가 우릴 태우고 왔던 그 커다란 새?”
“네, 비슷합니다. 그 새들하고 다른 건 이놈은 속성이 있다는 것이죠. 바로 바람 속성이죠. 3황자에겐 풍조가 없습니다. 그냥 타고 다니는 새일 뿐이고, 교배해서 기른 것들입니다. 가격으로 따지면 100배쯤 이게 더 비싸죠.”
“왜 이걸 종속시키지 않았는데?”
“이 몸이 고소공포증이 있습니다. 그래서….”
태월은 그를 빤히 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럼, 넌 이게 필요 없으니 내가 가져가면 되겠네.”
“뭐, 영혼이 달라졌으니 그게 없어졌을지는 몰라도, 마스터께서 원하신다면 당연히 드려야죠. 원래 제 것도 아니잖습니까?”
별로 아까워하지 않는 표정을 짓는 추타이다.
“이제 3황자랑 미워하지 말고 친하게 지내도록 해. 황제가 되더라도 다른 나라 침범할 생각도 말고.”
“이 몸과 저는 엄연히 다릅니다. 제가 그런 헛된 망종을 부릴 이유가 없죠.”
“저기 내 아내들이 장신구 좀 챙겼는데, 상관없지?”
“하하, 그럼요. 저런 게 무슨 소용입니까?”
“어쨌든 우리가 또 만나게 되면, 남의 이목이 있으니 존대는 해줄게. 괜히 여럿 있는 데서 마스터라고 날 호칭하면 큰일 나! 우리끼리의 비밀이야 알았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스터!”
“그럼, 뒷일은 잘 알아서 하고, 다음에 기회되면 또 보자고. 우린 먼저 간다!”
“네! 다음에 뵙겠습니다.”
옆에 있던 심복도 덩달아 고개를 숙이고 있다.
태월은 그곳을 빠져나와 20분 거리의 3황자 궁으로 향했다.
궁 앞에는 로빈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녀오셨습니까?”
“오래 기다렸지? 깔끔히 처리하려다 보니 시간이 좀 지났네.”
“괜찮습니다. 아 그리고 3황자님이 식사를 같이하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 바로 안내해줘.”
태월뿐만 아니라 아샤와 아진도 시장하던 참이었다.
식사를 하던 중에 3황자가 새로운 제안을 하였다.
“아카데미를 이곳에서 다니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 작은 왕국의 도시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흠, 크고 작고는 우리에겐 중요하지 않고요. 주변에 요괴들이 많은 곳이 더 중요합니다.”
“당연히 제국의 땅도 크기에 그 변방보단 훨씬 많고 또 강대한 놈들도 있죠.”
하루빨리 도깨비를 배부르게 하기 위해선 요괴의 수도 중요하지만, 하급신이나 중급신 격을 흡수하는 것도 필요했다.
그게 태월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런데 이미 그곳에 입학 신청 허가까지 다 받은 상태인데….”
“그건 이쪽에서 원만히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우리 저택도 있고 집사와 그의 가족도 있습니다.”
“그거 정도는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 굳이 우리가 이곳에 있을 이유가?”
“국격이지 않습니까? 백호 두 마리가 버티는 카이샤의 위명은 다른 곳의 도발을 억제하는 수단으로도 될 겁니다. 그럼으로써 요괴들에게만 집중할 수도 있고요. 또 1황자의 일방적 만행을 견제하는 역할도 됩니다. 음흉한 2황자도 좀 심적으로 걸리고요. 사실 저에게 더 도움이 되는 부분이긴 합니다.”
꽤 솔직한 3황자의 성격이었다.
아니면 세력이 제일 약하다 보니 안전장치가 필요해서였을지도 모른다.
“흠, 그건 조금 있다가 대답 드리도록 하죠. 아내들과 의견도 나눠야 하고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더 있습니다. 백호의 건도 있고 하니, 아바마마께 상신 드리겠습니다. 세습이 가능한 작위와 봉토를 드릴 수 있습니다. 어차피 사냥대를 이끌면 귀족의 반열에 들긴 하지만, 봉작과는 격차가 아주 큽니다. 타인들이 함부로 시비를 걸지도 못하죠.”
“네, 그것도 함께 상의하도록 하죠.”
식사를 마친 후 태월은 숙소로 돌아와서 아샤와 아진에게 의견을 물었다.
“어찌 생각해?”
“음, 우리가 이곳에 아는 지인도 없긴 하잖아요. 어디든 상관은 없는 것 같아요.”
“저도 아샤의 말에 동의해요. 그리고 우리도 지구에 빨리 가려면, 요괴가 많이 있는 곳이 좋잖아요. 3황자의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다고 봐요.”
“그럼, 그쪽 타라한 왕국에 있는 저택은 에도르에게 맡기자고. 집사 마틴의 가족도 이리로 불러들이고.”
3황자의 제안을 다음 날 아침에 승낙하고, 로빈의 안내를 받아 수도와 멀지 않은 요괴 접경지를 돌아다녔다.
사흘이 지난 후 태월은 황제가 주관하는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일부 대신들은 태월의 존재를 알긴 했지만, 그 외는 그의 등장에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황제가 있는 자리에서 수군대다간 뒷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그냥 우두커니 앉아 있긴 했지만, 끝날 때쯤에 태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하여 라온 경을 세습 자작에 봉하고 봉토를 내리려 하는데 경들도 의견을 말해보시오!”
“수호 동물 중 최상위인 백호 건도 있고 하니 그 정도는 타당하다고 하겠습니다.”
3황자의 몇 안 되는 세력 중 하나인 크논 자작이 황제의 의견에 찬성을 표했다.
“허, 아무리 그 수호 동물이 백호라 하지만, 봉작은 과한 줄로 아룁니다.”
2황자의 세력에 속한 포메티 백작이 나서서 재고를 청했다.
1황자 쪽에선 어떤 언질도 없었기에 그 세력의 대신들은 어정쩡하게 있을 뿐이다.
3황자는 2황자의 반대 의견 정도는 문제가 아니었다.
혹시나 해 1황자 세력의 반대가 나온다면, 세습 자작은 힘들었다. 그러나 말단인 세습 남작만 되어도 괜찮다고, 3황자 호타이는 생각했다.
백호와 루루를 거느린 라온 사냥대의 전력이 상당하다고 들었다.
요괴와의 전투에서 크게 승리할 것이고, 그때마다 승작 건의를 할 수 있다.
지금은 말단이라도 세습 작위를 받는 게 태월에게 필요하다 여겼다.
세습 남작은 작위만 있는 백작도 쉽게 건드리지 못한다.
‘추타이 쪽은 왜 조용하지? 이상하네.’
괜히 조용하니 더 불안한 호타이였다.
1황자의 주변 대신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요 며칠 이상하게 조용한 추타이의 모습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러다 그가 입을 열었다.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어째 조용하다 싶었다. 말해보아라.”
황제 타쿠하샤가 승낙하자 추타이가 일어섰다.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입을 연다.
“라온 경에게는 수호 동물이 하나가 아닙니다. 루루라는 불새가 있습니다. 백호 하나만 해도 다른 제국에 가면 최소 세습 자작은 따고도 남습니다. 아니 오히려 경쟁 제국에선 백작도 가능하지요. 안 그렇습니까?”
1황자가 꺼낸 말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발언이었다.
앞뒤 안 따지고 까 내려갈 것이라고 본 것인데, 오히려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었다.
황제가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다.
“라온 경의 수호 동물들은 국가의 격을 한층 더 높일 것입니다. 국가에 도움이 되는 것은 내부 세력 간 다툼의 대상물이 될 수 없습니다. 어느 무엇보다도 국익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허, 과연 내가 아는 1황자가 맞는지 헷갈리는군. 그래서 어찌하잔 것이냐?”
“백호 하나만으로도 자작 정도는 부족합니다. 하물며 그와 동급인 피닉도 있습니다. 후작이나 공작은 황실의 혈연과 관련 있는지라 어렵기에 당장은 힘듭니다. 그러니 최소 백작의 작위는 되어야 타국에서 비아냥거리지 않을 겁니다. 이게 소자의 의견입니다.”
“허, 진짜 이거 기가 차군. 원래 첫째가 이렇게 말을 잘했었나? 들어보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야. 제국의 체면이 걸린 일이 되었어. 다른 의견은 없나?”
3황자 쪽이야 오히려 결과가 더 나았으니 별말이 없었고, 2황자 쪽도 대처할 방법이 없어서 난감해 있었다.
오늘은 무슨 일인지 2황자 자신은 참석하지 않은 상태다.
원래 황자는 대신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다.
1황자를 신뢰할 수 없어 훗날을 위해, 황자들도 국정을 느껴보게 하려는 황제의 의도였다.
2황자 측 못지않게 황당해하는 건 1황자 진영이다.
‘아니, 1황자가 왜 갑자기? 3황자랑 무슨 일이 있었나? 약점이라도? 아니 그전에 왜 저리 침착하게 말을 잘하지?’
1황자 측인 카도라 공작은 1황자의 장인이었다.
황제가 될 확률이 그나마 있고 다루기 쉽다는 판단에 따라 그에게 둘째 딸을 준 것이다.
‘황제가 1황자의 판단을 다시 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똑똑해지는 건 좀 그런데?’
카도라 공작이 나서서 그 어느 쪽도 편을 들지도 못 하는 상황이 왔다.
2황자 쪽의 포메티 백작도 카도라 공작의 침묵에 홀로 나서긴 곤란했다.
반대 의견을 내세우면 편협한 행동으로 황제에게 비칠 일이다.
“흠! 다들 침묵한다는 것은 1황자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는 가는 것이겠지. 오랜만에 만장일치의 결과가 나와서 짐은 기분이 좋구먼. 좋아! 라온 경을 백작의 작위에 임명하지!”
이때 나선 것은 2황자 진영의 포메티 백작이었다.
“폐하! 라온 백작의 사냥대가 특급 요괴마저 처치할 정도라고 하니 그를 요괴의 최접경 지대로 봉토를 하사하시면 어떨는지요?”
중앙 수도에 세습 백작이 새로 생겨나고 그곳에 봉토까지 주어졌다면, 2황자 세력이 역전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폐하! 그건 좌천이나 마찬가지 옵니다!”
3황자가 급히 나서서 반대하였다.
그런데 뒤에 있던 태월이 앞으로 나선다.
“폐하! 전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태월의 말에 3황자 진영의 분위기가 굳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