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카이샤 제국 수도 몽탁
1황자라고 소개한 추타이였다.
아직 황태자 임명을 하지 않은 탓으로 그가 황태자가 되지 못했는데, 부황이 정정한 이유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성격이 편협하고 안하무인일 때가 많아서다.
그래서 타쿠하샤는 그를 황태자로 임명하지 않은 상태다.
그게 추타이의 불만이었고, 이렇게 별 의미 없는 자리에서도 어이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사냥대가 아니라 딸랑 셋이서 노는 화접대가 아닌가?”
“형님! 그게 무슨 당치도 않은 말입니까? 귀하게 모신 손님 앞에서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죠?”
“뭐? 사실을 사실이라고 하는데 누구의 눈치를 봐야 하나? 많이 컸네, 셋째?”
황제 타쿠하샤는 못 들은척하며 자신의 옆에 앉은 1황후와 담소를 나눌 뿐이다.
개차반 아들 때문이 아니라 태월 일행의 대처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2황자 샤타이는 여색을 밝히는 편이라 두 형제의 다툼엔 관심이 없고, 아샤와 아진을 힐끗거리며 눈요기 중이었다.
세 형제 전부가 20대인지라 혈기가 넘치는 중이다.
“오빠, 이거 꽤 맛있는데? 언니는 어때?”
“우리 고향의 음식과는 다른 맛이 있긴 하네. 맛도 괜찮은 거 같고. 오빠는 어때요?”
“이 소스에 찍어서 먹어봐. 소스 맛이 일품인걸.”
“어? 그 소스는 뭐예요?”
“여기 두 개 섞어 봤는데 입에 착착 감겨.”
“어머, 라온 경이라고 했나요? 그 소스 좀 나눠줄 수 있나요?”
태월이 식사 자리에서 쓰려고 한국에서 가져왔던 소스 병 몇 가지를 꺼내 놓은 것이다.
소스에 관심이 많았던 2황녀가 태월에게 말을 걸었다.
“하하, 네, 처음 맛보실 겁니다.”
태월은 두 가지의 소스를 작은 종지에 섞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스푼으로 조금 떠서 입에 넣어본다.
“와, 이거 달콤하고 새콤하네요? 어떻게 만든 거죠?”
“고향에서 가져온 것이라 저도 비법은 모릅니다. 갈 때 한 병씩 드리고 갈 테니 종종 섞어서 맛보세요.”
“어머! 고마워요.”
거슬리는 1황자의 발언에 대해 태월은 관심을 끊었다.
이곳에서 그와 다투다간 이곳 세상에서 있는 내내, 피곤한 일에 엮일 거 같아서다.
손님인 태월 일행이 자신의 도발에 걸려들지 않자, 기분이 더욱 엉망이 된 추타이다.
몇 번을 더 도발해봤지만, 태월 일행은 음식을 즐길 뿐이었다.
더구나 자신과 대화를 잘 섞지 않는 1황녀까지 그 일행과 말을 나누고 있자, 인상을 찌푸렸다.
“에이, 어디 빌어먹다 왔나? 꾸역꾸역 잘도 먹네. 같이 못 먹겠네. 폐하! 저 피곤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사석에서도 폐하라고 지칭하는 1황자다.
멀뚱히 큰아들을 잠시 쳐다보던 타쿠하샤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추타이가 나가자 옆에 앉은 1황자비도 같이 뒤따랐다.
“큰아들이 손님들 앞에서 큰 결례를 저질렀나 보군. 셋째가 얼굴이 뻘게진 걸 보면 말이야. 라온 사냥대에게 실례가 되었겠군.”
다 알고 있으면서 딴청을 해대는 황제다.
세 황자 전부 생모가 다르다 보니 서로 데면데면하던 사이다.
황녀도 둘이나 있었지만. 그 둘만 생모가 같았다.
황제에게는 4명의 부인이 있는 것이다.
1황후의 자식이 바로 그녀들이었다.
“전 아무 이야기도 못 들었는데요? 여기 음식이 맛있어서 말이죠.”
“흠흠, 그랬다면 다행이군. 아 참 그 백호 말이네만, 식사 후 만나게 하면 어떻겠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식사 후 가벼운 차를 한 잔씩 더 나눈 태월 일행과 황제 일행은 밖으로 나와 목적지로 향했다.
2황자, 3황자 그리고 두 황녀까지 따라나선 것이다.
나무에서 놀고 있던 아리랑과 루루도 태월의 뒤를 따랐다.
“어머, 이 백묘가 그 백호란 거네요? 우리 백호보다 어린 거 같은데?”
“음, 백묘일 때만 어려 보일 뿐 실제는 나이가 많습니다.”
“아. 그렇게도 되나요? 그리고 저희 백호는 500살도 넘었는데.”
“한참 아기네요. 아리랑은 1,500살은 가뿐히 넘습니다.”
“헉!”
1황녀가 꽤 놀랐는지 헛숨을 내뱉었다.
1,300년간 잠들었다가 깨어났기에 세월로는 그렇게 되긴 했다.
수호 동물에게 나이란 것은 영력이 그만큼 쌓였다는 의미다.
아니나 다를까 아리랑을 마주한 황제의 수호 동물은 보자마자 설설 기고 있었다.
혹여 다툼이 있을까 봐 염려를 했던 황제는 어이가 없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허, 마카이가 납작 엎드렸네. 세상에 무서운 것 없다고 큰소리치더니…. 황당하군.”
“둘을 사흘간 합방시키죠. 그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3황자의 말에 황제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의 수호 동물이 빌빌대고 있는 게 보기 싫었는지, 황녀들만 데리고 자리를 떴다.
태월도 의기양양한 아리랑을 잠시 보다가 3황자와 함께 숙소로 돌아왔다.
2황자가 눈치 없이 따라붙으려 했지만, 2황자비가 손을 잡아채자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따라가게 되었다.
2황자비의 뒷배경이 필요한 그인지라, 아직까지는 성격을 죽이고 사는 샤타이였다.
“아유, 1황자보다 더하네. 찝찝했는데 가서 다행이야.”
“풉, 아샤답지 않게 웬일이래?”
“집요하게 살피니까 그렇지. 언니는 괜찮았나 봐?”
“없는 사람 취급하니 안 보이던데?”
“흠, 나도 그래야겠네. 그런데 오빠? 오늘 오후엔 어딜 갈 거야?”
“제국에 왔는데 수도 구경을 좀 해야지 않겠어? 오후는 관광하는 거로 하자.”
“오예! 신문물 접하는 건 언제나 즐거워.”
휴식을 겸한 단잠을 한 번 더 잔 태월 일행은 점심을 간단히 챙겨 먹은 후에 궁을 나섰다.
3황자는 해야 할 일이 많은지, 태월 일행에게 가이드를 붙여줬다.
3황자의 개인 사병이나 같은 기사 로빈이었다.
“여기가 수도 몽탁의 제일 번화가입니다. 고급 상점들이 포진해 있죠.”
로빈의 말대로 화려한 상점들이 밀집되어 있었다.
아샤와 아진의 외모가 너무 눈에 띄어서 제일 가까운 곳의 옷가게부터 들렀다.
지구의 패션부터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최근에 유행하는 옷으로 추천해주시겠어요?”
태월의 말을 여점원은 듣지 못했는지, 아샤와 아진의 옷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다.
“이봐요! 아가씨!”
“아, 네. 네!”
“이곳에 유행하는 옷을 보여달라니까요?”
“저, 그런데 저 옷은 어디 건가요? 참신하면서도 파격적이네요. 와, 그리고 두 분은 엄청나시네요? 어느 법술가에게 고친 건가요?”
“라도르라는 브랜드로 타라한 왕국 제품입니다만. 지금 그게 중요한가요?”
사실 한국의 옷이지만 어차피 라도르란 이름으로 제작될 예정이기에 말해준 것이다.
“아, 라도르! 아쉽네요. 이곳 카이샤 제국에서 만들지 못했다니. 아휴, 아깝다.”
손님인 태월을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지 혼자 중얼거리는 여자였다.
“그럼 법술가는요? 소개 좀 해주세요.”
“둘 다 자연산입니다. 진짜 궁금해서 묻는데, 법술로 이 정도가 가능한가요?”
“그, 글쎄요. 미용 관련 법술가 수십 명이 모이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천문학적인 돈이 들겠지만요.”
‘이곳엔 법술가가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군. 하하 성형 의사라니.’
아샤와 아진은 점원의 안내 없이도 매장을 둘러보고 있다가 모자 두 개를 꺼내 가져왔다.
“오빠! 이 모자가 적당한 것 같아. 쓰고 다니면 얼굴 대부분이 가려지겠는데? 모양도 고상하고 말이야.”
“어머, 그거 어제 출시된 페도라인데 한눈에 알아보시네요?”
“얼마인데요? 여기 붙어 있는 가격표가 정가인가요?”
“호호, 그럼요. 저희는 정찰제입니다. 딱 받을 만큼만 받는 신뢰의 상점이지요.”
태월이 가격표란 걸 자세히 보니 10실버였다.
‘모자 하나가 100만 원짜리라고? 명품이라도 되나?’
“흠, 뭐 모자는 그렇게 하고 적당한 옷부터 찾아봐.”
태월이 아샤와 아진에게 그렇게 말을 하자, 옆에 있던 여점원이 눈에 쌍심지를 켠다.
“적당한 모자와 옷이라뇨? 저희 가게는 적당한 물건은 없어요. 전부 고급이거든요?”
파는 물건에 대해 자부심이 있었는지 ‘적당한’이란 단어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하하, 실례했습니다. 라도르 브랜드를 주로 입었기에 다른 브랜드는 아직 생소해서요. ‘적당한’을 ‘마음에 드는’으로 정정하겠습니다.”
첫날 관광부터 불쾌해지기 싫어 한발 양보하는 태월이다.
아샤와 아진이 고른 옷은 말 그대로 고급스럽긴 하지만 디자인이 무난한 옷이었다.
챙이 넓은 페도라까지 쓰고 나니 대부분이 가려져 자태가 좋은 귀족가의 여인처럼 보였다.
더구나 페도라의 앞부분의 망사가 달려있어서 늘어뜨리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옷값까지 치르고 나니 2골드 가까이 들어갔다.
“이 집 옷값이 상당하네. 이곳에선 명품인가 봐요. 아님, 우리가 호구든가요.”
아샤의 말에 로빈은 생각 난 것이 있다는 듯 말을 꺼냈다.
“아까 둘러보던 중에 초상화 하나가 있었잖습니까? 그곳의 주인이던데 여점원과 성이 같았습니다. 이목구비도 조금 닮은 것이 가족 같았습니다.”
옷가게 여점원의 가슴 쪽에 명찰이 있긴 했는데, 태월은 유심히 보지 않았다.
괜히 가슴 쳐다본다는 오해를 받기 싫어서였다.
로빈의 안내를 받으며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중에 눈이 가는 곳이 있었다.
기운이 서려 있는 장소였다.
“저곳은 뭐죠?”
“아, 법술가 코벡의 상점입니다. 최강국인 카이샤 아닙니까? 그래서 진귀한 것이 많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아직 들어가 보진 않았습니다.”
법술가 상점은 태월도 처음 보기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기사인 로빈이 가보지 못했다는 건 흔한 물건을 취급하는 곳이 아니란 의미기도 했다.
-딸랑!
“어서 오십시오. 코벡의 법술 상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0대 후반은 되어 보이는 여점원이 상냥하게 웃으며 친절을 표했다.
꽤 미인에 속했지만 아샤와 아진에 비해서는 한참 격이 떨어졌다.
그걸 느꼈는지 뒷말 끝에 힘이 없었다.
그래도 눈이 빛나는 걸 보니 돈 냄새를 맡은 듯했다.
“좀 둘러봐도 될까요?”
“네, 당연한 말씀입니다. 천천히 살펴보세요. 가리키는 제품에 대해선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태월은 다른 물건들을 살피다가 유난히 강한 기운이 나는 곳 앞에서 발을 멈췄다.
“호호, 안목이 상당하시네요. 이건 펫이나 수호 동물을 한층 더 성장시키는 성장의 구슬입니다.”
“성장의 구슬이 뭐로 만든 거죠?”
“속성의 기운을 모아서 결정화시킨 건데, 단 한 번만 효능을 가집니다. 그래도 만드는 데는 많은 노동과 시간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가격도 아주 고가랍니다.”
태월은 몇 개의 구슬 중에서 물과 불의 기운이 집약된 구슬을 바라봤다.
‘아루와 루루 그리고 아쿠에게 필요하겠군.’
“여기 있는 구슬이 전부인가요?”
“현재는요. 성장의 구슬은 만드는 조건이 까다로워서, 하나의 완성품만 해도 10년이 걸립니다. 저희 가게라서 그나마 여러 개가 있는 것이죠. 다른 나라에서 제작된 것까지 이곳에서 주로 위탁하거든요.”
자신의 상점에서 제일 비싼 물건 앞에 서 있는 태월에게 열심히 설명 중인 여점원 코니다.
“그런데 이곳 상점들은 전부 이렇게 가격표를 붙여놨네요?”
“호구 잡혔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예요. 과거엔 그런 일이 흔해서 최근엔 웬만한 명품가게들은 다 정찰제입니다.”
태월이 작게 숫자가 쓰인 가격표를 자세히 보다가 놀랐다.
“허, 이거 하나에 무려 1만 골드네요?”
한국 돈으로 하면 1천억짜리 물건이었다.
하급신 하나를 잡아야 나올 포상금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