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특별한 여우 요괴들
여우 요괴의 복장은 아샤가 말했던 게임에서 자주 등장하는 여전사의 복장과 유사했다.
짧은 치마에 허벅지가 드러나고 무릎 아래로는 각반까지 찬 모습이다.
“어머, 너무 멋있다! 100점 만점에 99점!”
두 번이나 감탄사를 흘리는 아샤다.
“네가 입으면, 너무 짧은 거 아냐? 95점.”
여우 요괴의 키는 아샤보단 조금 작고 아진과 비슷한 정도였다.
“아니야, 저 정도는 입어야 오빠가 좋아할 거야. 맞지?”
“헐, 지금 이 상황에서? 뭐 나쁘진 않네.”
아샤와 아진이 하도 벗고 다녀서인지, 치마 길이에 대해 무감각해진 태월이다.
여우 요괴는 맞닥뜨린 자들이 너무 황당했다.
자신의 복장에 대해 점수를 매기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누굴 호구로 보나!”
손톱이 솟아나며 칼날처럼 변했다.
그걸 아샤를 향해 내리긋는다.
“어머! 얘! 말을 하고 공격해!”
아샤는 몸을 뒤틀어 피해내고는 거리를 뒀다.
그 사이에 아진은 채찍을 휘둘러 도망갈 곳을 차단해버렸다.
아리랑이 요괴를 향해 몸통 공격을 감행했다.
그리고 뒤에서는 루루가 불 공격을 다시 감행했다.
태월만 가만히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가 왼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삼켜!”
-슈….
‘음, 움직이려다 마네. 아직은 안 되는 거군.’
하급신도 아니고 중급 요괴를 넷이서 합동 공격하는데, 견딜 리가 없었다.
태월은 관망만 하다가 순간의 타임을 노려 목을 쳐버렸다.
-슈칵! 컥!
요괴의 영혼이 솟아오르자 태월은 왼손을 뻗어 문신이 삼키게 했다.
“중상급이라 그런지 에너지가 꽤 늘었네. 두 마리를 더 잡으면 보람 있겠어.”
“으갸갸! 언니? 이거 언니가 입어!”
아샤는 머리가 사라진 여우 요괴의 몸에서 방어구를 벗겨내고 있었다.
피가 조금 묻긴 했지만, 천으로 닦으니 금방 지워졌다.
특별한 가공법이 적용된 방어구 같았다.
방어구를 벗겨내자 내복 같은 옷을 또 입고 있다.
아샤는 그것도 벗겨냈다.
실크 같이 부드러운 재질이라 좋아 보여서다.
“난 너무 짧아서 패스! 동생부터 입어. 다른 여우 요괴도 입었었다 하니 난 그거로 할게.”
“오호호, 언니! 땡큐!”
아샤가 장비를 바꿔 입는 사이 태월은 떨어진 머리에서 투구를 벗겨냈다.
그리고 소매로 슥슥 비벼 닦으니 이것도 잘 지워졌다.
“아샤, 이 투구가 세트야! 이거 받아.”
“오, 예!”
“그런데 남들이 널 요괴라고 오인하진 않겠지?”
“꼬리도 없고 비록 얼굴은 가려지지만, 형체가 다르잖아! 그런 바보가 있을 리가!”
태월은 조금 염려되었지만, 당사자인 아샤는 그런 걸 신경 쓰지도 않았다.
아진의 말대로 아샤의 치마 방어구는 짧았는데, 허벅지의 삼분지 이가 드러났다.
뿔 두 개를 잘라서 배낭에 넣은 태월은, 일행을 이끌고 볼 요괴 은신처로 돌아갔다.
“아직 그들은 변화가 없나?”
“수컷 요괴가 몸을 떨고 있고, 암컷은 흥분 상태야. 불 요괴들의 경계가 두 배는 강화되었어.”
“의식이라도 연결되어 있었나? 뭐 상관없겠지. 루루가 시작하도록 해. 초토화!”
예정보다 삼십 분 정도 늦게 불바다를 만드는 일이지만, 예외가 생겼기에 어쩔 수 없었다.
루루는 공중에서 본체로 돌아가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고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불덩어리 폭격은 은신처를 홀라당 태워버렸다.
-슈슈슉! 쾅쾅! 콰콰쾅!
그리고 그 불바다는 산 너머의 아군에게는 공격신호탄이 되었다.
루루의 공격에 불 요괴들은 큰 피해가 없었으나, 여우 요괴에게는 달랐다.
몸에 붙은 불을 끄며 아샤와 아진을 상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어구를 걸친 곳은 피해가 없었지만, 드러난 부위의 털에 불이 붙는 식이었다.
루루의 불은 단순한 불이 아니라 특별한 속성을 가진 불이었다.
루루의 불은 아군인 두 여인에겐 피해를 주지 않는다.
태월을 매개로 다 같은 종속이기 때문이었다.
아샤도 아진과 의식공유를 했었기에 그런 혜택이 주어지는 것이다.
“네년이구나! 감히 내 동생을 죽이다니!”
아샤가 가까이서 보게 된 그 여우는, 아까 잡았던 그 여우 요괴와 쌍둥이처럼 보였다.
“어머! 친자매가 한 놈을 사귄 거야? 뭔가 자극적이야! 그런데 자매가 개성이 없네? 방어구가 똑같잖아.”
“이, 이이이!”
아샤가 암여우 요괴를 상대 중이고 아진은 숫여우 요괴를 상대하고 있다.
아리랑을 타고 사방을 휘몰아치는 태월의 언월도는 불 요괴를 휩쓸고 있다.
루루가 호시탐탐 여우 요괴를 노리며 불을 쏴대기에, 두 요괴는 정신이 분산되어 아샤와 아진에게 몰리고 있었다.
루루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샤와 아진이 두 요괴를 일대일로 상대하기에 벅찼을 거다.
“원래 여우 요괴들은 전부 그런 복장을 하나?”
“네년은 알 필요 없어!”
“싸구려라서 창피해서 그러지?”
“이 장비는 고대 신전에서 획득한 거야! 딱 3벌이었다고. 어중이떠중이가 입는 건 줄 알아?”
“오, 명품이었구나. 동생이 날 줄만 했구나. 그럼, 네 것도 잘 쓰도록 할게.”
죽은 동생 이야기가 다시 나오자, 여우 요괴의 눈에 불이 붙은 듯 타오르고 있다.
아샤는 쉽게 상대를 이기지 못하자 의도적으로 흥분하게 만들려는 의도였다.
이 여우 요괴를 처치해야 아진을 도울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아샤에 대해 분노와 울화가 터져 나오며 다른 상황은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캬아악! 네년만큼은 꼭 죽이도록 하마!”
광기를 머금은 채 눈을 번들거리며 긴 손톱 칼날 10개를 만든 그녀는, 아샤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아샤는 전과 달리 그녀와 부딪치지 않고 뒤로 빠르게 빠졌다.
어깨가 살짝 칼날에 스쳤지만, 방어구 덕분에 부상은 면했다.
“광녀가 따로 없네? 아이고 무서워라.”
“도.망.가.지. 말.고. 서!”
재차 몸을 날려 아샤를 향해 공중 점프를 하는 여우 요괴다.
“헉! 혼타! 뒤! 뒤다! 몸을 틀어 피해!”
혼타를 빠르게 부르는 수컷 여우 요괴의 눈은 절망으로 가득 찼다.
그의 망막에 루루의 벌어진 부리가 보였으며, 그 부리 속으로 암컷 여우 요괴의 목이 끼이게 되었다.
아샤에게 너무 신경을 집중한 나머지 뒤에 있던 루루를 잊은 것이다.
무방비한 상태에서 루루에게 덜미를 잡혀 목이 부러져버렸다.
“이야! 루루! 나이스! 언니가 다 용서해줄게.”
“저, 수컷이거든요?”
“어? 너 암컷이었잖아.”
“이제부터 수컷 할래요.”
“얘! 너희 지금 뭐 해? 어서 돕지 않고!”
아진은 광기에 사로잡혀 버린 수컷 요괴의 폭발적 힘에 순간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아샤와 루루가 수컷 여우 요괴를 협공하기 위해 다가서자, 그 요괴는 몸을 돌려 아샤에게 돌진했다.
다른 이들보다 아샤를 복수의 타깃으로 잡은 것이다.
“음마야! 야는 왜 나를 공격해?”
“캬아악! 캬아아!”
이상한 괴음까지 내며 아샤를 향해 칼날을 그어댔다.
-카카캉! 카캉!
아샤의 방어구가 용케도 그 위협적인 요괴의 공격을 어느 정도는 막아내고 있었다.
-콰쾅! 커억!
아리랑이 어느새 측면에서 나타나 몸통 박치기로 수컷 요괴를 들이받았다.
그 충격이 얼마나 강했는지 요괴의 몸이 10m를 날아 커다란 바위에 부딪히기 직전이었다.
그 순간 루루가 발톱으로 잡아채며 공중으로 솟았다.
이미 기절을 한 상태서 그 요괴의 몸은 하늘을 높이 날았고, 그리고 루루는 그를 떨어뜨렸다.
땅으로 처박혔을 때는 목이 부러져 세상을 떠나버렸다.
“와, 루루의 잡아채는 속도가 장난 아닌데? 그런데 저 요괴 안됐다. 기절 상태서 죽은 거잖아.”
“안되기는요? 제일 많이 약 올렸으면서.”
“얘! 난 저기 언니 요괴 하나만 약 올린 거야. 나머진 저놈이 오버한 거지.”
“어? 오빠도 거의 끝나가네?”
아진의 말에 그제야 태월의 상황을 보게 된 아샤는 채찍을 감아쥐고 그리로 뛰었다.
태월에게 그리 급박한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이럴 때 동작이 빠른 아샤다.
아리랑은 아진을 태우고 그리로 달렸고, 루루도 쏘아져 갔다.
그리고 5분 후 전투는 끝이 났다.
태월은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영혼을 흡수하느라 바빴다.
아진과 아샤는 두 여우 요괴에게서 방어구를 벗겨내고 있다.
“루루가 머리를 쓴 건가? 바위에 부딪혔으면 방어구가 손상이 갔을 건데. 에이 설마 순간 그런 생각을 했을 리가. 새 머리잖아!”
아샤가 아진을 쳐다보며 추측을 풀어놓고 있었다.
“왜요? 새대가리라고 하죠? 그러고 제가 신조예요! 그 정도로 순간 예측을 못 할까 봐요? 마스터가 입을 옷인데 흠집이 나면 곤란하죠. 에헤헴!”
어느새 나타났는지 아샤의 머리 위쪽에서 루루의 말이 흘러나왔다.
“어머, 낮말을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더니 딱 맞네.”
“전 밤에도 잘 듣거든요?”
“혹시 본질이 박쥐 아니야? 새도 되고 쥐도 되잖아.”
“흥, 흐응~”
아샤의 악담에 루루가 반격을 했다.
“야! 너 그 소리를 왜 내?”
“누가 즐거울 때 내더라고요.”
둘이 하도 투덕거리며 지내는지라, 이젠 다들 둘 간의 이야길 무시하는 일행이다.
태월은 둥근 구슬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엄지손톱만 한 불의 구슬이다.
“속성이 있는 요괴들을 잡으니 영혼 외에도 이게 형성되네. 80마리 정도를 잡으니 이만한 구슬이 생겼어. 도시로 돌아가면 루루가 흡수해봐.”
“오빠! 여기 이 방어구 입어보세요.”
“오! 꽤 세련되어 보이네? 그런데 여우 요괴는 황금을 좋아하나? 왜 전부 금색이야?”
“그게 아니라 고대 신전에서 발굴했대요. 아까 그 언니 요괴가 아샤에게 흥분해서 말해주더라고요.”
“어? 그런 곳이 있었나? 던전도 아니고 고대 신전?”
태월은 아진이 내미는 방어구를 살펴보다가 마음에 들었는지, 기존 것을 벗고 입어보았다.
“와, 이거 체형도 알아서 맞춰 주는데? 이 정도면 자가 복구 기능도 있는 거 아닐까?”
“어? 진짜! 맞아요! 지금 보니 제 갑옷에 난 흠집들이 다 사라졌어요. 일부 찌그러져 있었는데 그것도 펴졌고요.”
아샤가 어느새 다가와서 태월의 궁금증을 해소해 준다.
“흠, 그럼 이것들도 신의 유물일까?”
“언니도 입어 봐!”
아진도 입은 두 사람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도 혼자서 갈아입었다.
타인이 도와주지 않아도 입고 벗는 게 수월하게 제작된 방어구다.
“호호, 인제 보니 그 치마도 짧네. 체형에 따라 길이가 조절되나 봐. 그리고 내피도 입고 방어구를 걸쳐야 더 좋더라. 굉장히 얇은데도 충격을 흡수하더라니까! 온도조절도 되는 거 같더라. 땀도 금방 흡수하고.”
태월은 남이 입던 내복 같아서 찜찜했지만, 기능이 그만큼 좋다기에 집어 들었다.
“어? 땀 냄새가 하나도 안 나는데? 새 옷 느낌이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태월을 보며 아진도 요괴에게서 내복을 벗겨냈다.
내복이라기보단 내피에 가까웠다.
벗은 옷들은 전부 배낭에 넣고는 셋이서 포즈도 취해 사진도 찍었다.
현상할 곳은 당장 없지만, 지구에 가면 추억이 될 장면이다.
“우리 늑대 요괴들 잡으러 가자! 이참에 이 지역이 평화로우면 좋잖아. 돈도 벌고 말이야!”
“오빠! 고고!”
아리랑의 등에 세 사람이 탔고, 루루는 공중에 솟아올라 일행을 목적지로 이끌었다.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리자 원하는 곳이 나타났다.
“자! 격파하자! 돌격!”
태월이 아리랑의 등을 손으로 후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