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수호 동물과 펫
에니다는 주방에서 아샤와 아진을 보며 당혹해한다.
“아, 제가 다 할 수 있는데요?”
“호호, 그냥 이건 우리 취미예요. 우리가 바쁠 때 대신해주면 돼요. 대신 청소는 자신이 없으니 잘 부탁합니다.”
“저, 말을 편히 하시면 안 될까요? 듣는 저희가 너무 불편해요.”
제국의 황녀보다도 더 아름다울듯한 그녀가 존대를 계속해주자, 오히려 안절부절못하는 에디나였다.
이곳 세상에선 집안 식솔에게 존대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꼭 그래야 하나요?”
“그 배려로 인해 저희 평판이 나빠지게 되거든요. 은둔의 가문에서 지내셨다 하니 이해가 되긴 하지만, 지금 세상에 맞게 행동하시는 게 서로를 위한 게 아닐까 합니다.”
논리적인 에디나의 말에 아샤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당장은 습관이 안 되었으니 필요에 따라 반존대 정도만 하죠. 그런데 언행을 가만히 보면 단순한 평민은 아니었을 듯한데?”
“10년 전 고향이 요괴들의 공격에 파괴가 되었어요. 그리고 그곳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물어 해임과 동시에 추방되었거든요.”
“저런, 안타깝네요.”
“그래서 조국을 떠나 이렇게 방랑자가 되었답니다. 누구의 탓도 아니고요. 운이 없었다고 할 수밖에 없죠. 다시 기억을 꺼내고 싶진 않아요.”
책임을 운운하는 것을 보면, 어떤 지역을 다스리던 귀족이었단 소리였다.
그리고 더는 물을 수 없을 듯해서 아샤는 화제를 돌렸다.
“지금 우리가 만드는 음식은 생소할 거예요. 일단 그렇게 아시고 이곳의 알려진 요리법은 나중에 보고 배울 수 있게 해줘요.”
“네, 자신 있는 것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에디나는 아샤와 아진이 하는 요리를 옆에서 보조하며, 그녀들이 만들어내는 특이한 방식에 고개를 갸웃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요리들이다.
전기가 없는 세상이라 석탄이나 숯을 이용하여 요리하는 세상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금방 익숙함을 보여주는 아샤와 아진이다.
“우와, 이거 너무 맛있어요. 이 음식들 이름이 뭐예요?”
원래는 식솔들과 함께 식사하지 않는 이곳이지만, 태월의 고집에 의해 마틴 가족도 이 자리에 있었다.
9살 난 엘리가 제일 신이 나 있었다.
“호호, 이건 피자와 양념치킨이야. 필요한 재료를 제대로 구하지 못해 흉내만 낸 거야. 그래도 맛있다니 다행이네.”
밀가루 전분 치즈 꿀 닭고기 같은 건 이 세상에도 있었기에, 아샤가 시험 삼아 만들어 본 것이다.
태월도 오랜만에 맛보는 지구의 음식이기에 흡족한 상태다.
엘리를 제외한 마틴의 가족들도 이런 분위기가 어색한지 눈치를 보며 먹고 있었다.
그래도 치킨이 맛은 있었는지, 간간이 손가락까지 빨면서 묻은 양념을 핥고 있다.
그러면서도 번갈아 가면서 피자도 먹느라, 손이 바쁜 식사 시간이었다.
빵이 있는 세상에서 피자가 없는 게 신기했지만, 세상이 전부 같을 순 없는 법이다.
“집 뒤 터에 이두 마차가 한 대 있던데, 수리하면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말이야 관리가 필요했던지라, 팔 수밖에 없었죠.”
“마차는 왜 안 팔았는데요?”
“이 저택의 권리를 가지게 된 곳에서 그런 세세한 것까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아마 몇 년 이대로 지났으면, 눈비를 맞아 그 마차도 폐품이 되었을 겁니다.”
“그럼, 말 두 마리를 사 와야겠네요. 그리고 수리도 맡기세요.”
“네, 오늘 내로 처리하겠습니다.”
“일단 우리는 등록청과 법술가 아카데미를 둘러보고 올 예정이니, 점심 준비는 따로 하지 않아도 됩니다.”
태월이 에디나를 보며 하는 말이다.
“그리고 집이 커서 하녀 둘은 더 필요할 거 같은데?”
“쥴리와 제가 있으니 구할 필요는 없는데요?”
“3층과 지하실도 종종 청소해놔야 하니 둘이선 벅찰 겁니다. 제 말대로 2명을 구하세요.”
태월은 지하실을 연구실로 쓸 생각이다.
법술을 연구하고 시험까지 하려면 3층보단 지하실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층당 평수만 70평이 넘었기에, 둘 정도는 더 있어야 했다.
“네, 그럼 성실한 사람으로 알아보겠습니다.”
태월은 그들에게 일을 맡기고는 아샤와 아진을 데리고 등록청으로 갔다.
아지트 신고는 집을 사면서 에도르가 대행해줬기에 문제는 없지만, 이곳에 다시 온 건 수호 동물 때문이다.
수호 동물은 특별해서 등록청 담당이 확인해야 하는 일인데, 그 당시엔 출장 중이라 자리에 없었다.
“라온 사냥대입니다. 수호 동물 등록 때문에 왔습니다. 오늘 돌아온다기에 온 것인데. 담당자가 자리에 있는 건가요?”
“잘 오셨네요. 조금 늦었으면 또 자릴 비울 뻔했습니다.”
“관리할 수호 동물이 많은 건가요? 듣기론 거의 없다고 하던데.”
“에이, 당연히 한 마리도 없죠. 왕국에도 한 마리가 전부잖아요. 그가 바쁜 건 수호 동물 때문이 아니라 펫 때문입니다. 요즘 군부대에 있는 펫 중에서 사고가 생겨서요.”
“아, 그 펫과 수호 동물 담당자가 같은 분이었군요. 저희도 펫이 있긴 하죠.”
루루도 등록을 해야 사냥 나갈 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야생 동물이나 요괴로 오인되어 공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루루도 수호 동물로 등록하려 했지만, 그랬다간 그 파장이 너무 클 것 같아서 펫으로만 신고하려는 것이다.
사냥대에 수호 동물이 둘씩이나 있는 경우가 없었다는 소릴 들었다.
“오, 펫까지! 대단하시네요. 저기 우측 접견실에서 기다리세요. 거기서 확인 과정을 거칠 겁니다.”
태월은 고개를 끄덕인 후,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을 데리고, 안내 담당이 가리키는 곳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철창 하나가 벽 쪽에 세워져 있는 그런 실내구조였다.
아리랑과 루루는 방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드는지 심드렁했다.
30분 정도 기다리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문이 열렸다.
4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안경 낀 남자였다.
“아, 이야긴 들었습니다. 하하, 제가 이 일을 맡은 이후로 수호 동물은 처음 맞이하게 되네요. 둘 중에 어느 쪽이죠?”
“백묘요. 본체는 백호입니다.”
“헉, 진, 진짭니까?”
제국에 하나 있다는 그 백호가 또 있다는 것에 놀란 것이다.
처음 등록청에 들렀을 땐, 관련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기에 자세한 설명을 하진 않았었다.
그냥 사냥대 등록만 하고 나왔었다.
태월은 이 담당자와 오래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여기서 보여드리면 되나요?”
“저, 저기 철창 안에서 하셔야 합니다. 가끔 펫도 적대적인 경우가 있었거든요.”
담당자 입장에선 펫도 그런데 수호 동물이니 오죽하겠는가 싶었다.
태월이 아리랑과 루루에게 텔레파시를 보내니, 투덜거리면서도 철창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리랑만 한 바퀴 돌더니 본체인 백호로 돌아왔다.
“헉! 진, 진짜였네요. 제국에 있다는 백호보다 흰빛이 더 선명한 것 같은데요?”
“그런 건 어떻게 아나요? 본 적도 없으신 거 같던데.”
“등록청은 그와 관련된 자료가 공유됩니다. 국가 간의 협조 사항이거든요. 펫이야 흔하니 별 문제 안 되지만, 수호 동물에 대해선 엄격합니다. 사진이 첨부됩니다.”
“어? 사진요?”
태월은 이 세상에 사진이란 게 있다는 게 황당했다.
그런데 담당자가 두툼한 서류철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여주는데, 지구의 사진보다는 어설펐지만, 사진이긴 했다.
“이런 사진은 어떻게 찍나요?”
“법술가가 만든 사진기가 있습니다. 한 장 찍는 데에도 가격이 비싸서 이 용도 외엔 쓰지 못하지만요.”
“그럼 이 사진은 원본이 아니란 소리네요?”
“네, 복사하는 기계도 있는데, 그건 그나마 저렴하거든요. 저희가 가진 것도 복사본이죠.”
이들이 말한 사진기란 게 지구의 폴라로이드 카메라 같았다.
구동 방법이 법술에 있다는 게 다른 방식이긴 하겠지만.
“얼마기에 비싸단 건가요?”
“사진 한 장에 1골드입니다. 그리고 복사는 장당 1실버고요.”
‘헐, 천만 원 정도나 한다고? 미쳤구나.’
“설마, 사냥대에서 부담하는 식인가요?”
“아, 그건 국가의 명예에 도움 되는 일이라서, 전액 저희가 부담합니다.”
담당자는 조심스레 사각 상자를 꺼내서 아리랑을 찍었다.
루루는 굳이 찍을 필요가 없기에 한 번 살펴보는 것이 전부였다.
“이 백호의 주특기는 무엇인가요?”
“글쎄요. 딱히 한 가지에 있진 않고 두루두루 잘합니다.”
사실 태월도 아이랑의 주특기라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냥 호랑이 아닌가?’
두루뭉술한 말로 넘어가는 태월을 보며, 담당자는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뭐, 그런 정보를 숨기는 분들도 있긴 하죠. 금패를 가지고 있으시죠? 앞면에 기표를 추가해야 합니다.”
태월은 품에서 사냥대 대장을 증명하는 금패를 꺼내 그에게 넘겼다.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선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리고 한 시간이나, 기다리게 한 후에야 그가 돌아왔다.
“아 생각보다 오래 기다리게 했네요. 청장님이 부르셔서 그렇게 된 것이니 이해 바랍니다.”
그리고는 태월의 금패를 다시 내밀었다.
금패의 앞면에 새겨진 라온 사냥대란 글자 아래로 새로운 게 추가되어 있었다.
수호 동물 (백호), 펫 (적조)라고 새롭게 적혀있었다.
그런데 수호 동물의 글자 앞에 보석 하나가 박혀있는 게 특이했다.
“이 보석은 왜?”
“사냥대에 수호 동물이 있다는 걸 쉽게 확인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일종의 명예라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청장님을 뵙고 가는 건 어떻습니까?”
태월이 궁금한 건 더 있었지만, 이곳에 오래 있어 봤자 피곤해질 듯해서 말을 줄였다.
“제가 선약이 있는지라, 바로 나가봐야 합니다. 다음에 기회 되면 다시 들르겠습니다.”
“네, 뭐….”
아쉬워하는 담당자를 뒤로하고 태월은 아카데미로 향했다.
에도르가 보내준 일일 대여 마차가 있어서 헤매지 않아 다행인 태월 일행이다.
30여 분을 지나자 한적한 곳이 나타났고, 거기서 10분 정도를 더 가자 산기슭에 위치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손님! 저기가 그 유명한 쿠자하의 자랑 쿠자하 법술 아카데미입니다.”
“음, 생각보단 규모가 크네요. 그런데 큰 도시마다 이 아카데미가 있지 않나요? 쿠자하의 자랑이라고 하기엔.”
“하하, 맞습니다. 이곳만의 특별한 아카데미는 아니지요. 다만 학장이 1급 법술가입니다. 1급 정도 되는 분은 이 왕국에서도 5명뿐이잖습니까? 그만큼 대단한 분이지요. 돈보다는 후학을 기른다는 명예를 택한 분이지요.”
법술가에 등급이 있다는 것도 처음 듣는 태월이다.
마부가 아는 것을 상인인 에도르가 모를 리 없는데, 기초만 배우는 아카데미에서 교수가 아닌 학장의 능력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 에도르였다.
마차는 아카데미의 정문 앞에 멈춰 섰고, 태월 일행은 마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을 마칠 때까지 마차 대기실에 있도록 하겠습니다. 정문 좌측에 마차들이 서 있는 곳 보이시죠? 그곳입니다.”
“네, 일 마치는 대로 그리로 가겠습니다.”
태월이 일행과 함께 정문으로 들어서려 하자, 경비가 나와서 앞을 막았다.
“멈추세요! 이대로는 통과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