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의 재능을 삼켜라-189화 (189/250)

189화. 지하실의 사연

에도르도 몰랐던 사항인지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쓰레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 이것들이 여기에 사나 보네요?”

“이것들이 뭔데요?”

“전 주인이 그래도 인정이 있어서 떠돌던 외지 가족들을 이 집에 고용했었습니다. 그러다 놀음에 미쳐서 재산을 다 날렸지요. 그 후 이 사람들이 안 나가려고 버티다가 강제로 퇴출당했는데, 이곳 지하에 몰래 살고 있었네요.”

“에, 그럼 이 물건들이 가재도구입니까?”

“뭐, 기존의 이 건물에 속해 있던 물건은 다 그 전 주인의 것이니 손도 못 대지요. 아마 그래서 남들이 버린 걸 주워 온 듯합니다.”

“이 사람들은 어디 있는데요?”

“글쎄요. 저도 상행 다니느라 이 건물을 자세히 살피진 못했습니다. 일용직이라도 나간 게 아닐까요?”

태월 일행이 지하를 자세히 살펴보니, 음식 재료 일부와 옷가지들도 보였다.

“여기 식구들이 어떻게 되길래요?”

“40대 부부와 17살 큰딸, 그리고 9살 둘째 딸이 있습니다. 둘째는 학교를 다니는 것 같았고요.”

“셋이 돈을 버는가 보네요? 그런데도 집을 못 구하나요?”

“여긴 성의 내부입니다. 집값이 굉장히 비싸고, 임대로 내놓은 곳도 드뭅니다. 안 가보셨겠지만, 북쪽과 서쪽으로 가면 성 외부의 주민들 거주지가 있습니다. 거긴 텃세가 엄청나지요. 외지인이 쉽게 적응할 곳은 아닙니다.”

“남쪽은요?”

동쪽은 태월이 있던 개척마을 방향이었다.

“거긴 성 내부보단 못하지만, 중산층이 많이 살고 있지요. 아 그리고 이 식구는 이 집에 온 지 겨우 일 년밖에 안 되었네요. 집을 구할 정도로 모았을 리 없지요.”

“전 주인이 있을 때, 집안 관리는 잘했나요?”

“네, 성실했다고 들었습니다. 왜요? 고용하시게요?”

“새로운 사람보단 원래 있던 이들이 나을 거 같아서요. 또 딱해 보이잖아요?”

“맞아! 나도 오빠 생각에 찬성!”

일단 태월 일행은 1층으로 올라와 그들이 돌아올 때를 기다렸다.

제일 먼저 모습을 보인 건 여자아이였다.

지하실 문을 열려던 아이는 1층서 내려오는 에도르를 발견하고는 눈이 커졌다.

그리고는 도망가려는 낌새를 보이자, 급히 에도르가 소리쳤다.

“얘! 너 거기서! 너희를 도와줄 고용인이 생겼어. 이제 안 도망가도 돼! 너, 내가 누군지는 알지?”

겁을 먹은 듯한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에게 농담 같은 걸 할 사람이 아니란 것도 알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는 어린 소녀다.

“나오셔도 됩니다!”

1층 현관문을 향해 에도르가 태월 일행을 불렀다.

그 어린 소녀는 1층의 문이 열리며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보고는 잠시 멍해 있다.

“저분들이 이 집을 샀어. 그리고 너희 가족을 고용할 생각이야. 어때? 나쁘지 않지?”

아이가 대답하지 못하는 것은 에도르의 말을 못 들어서다.

작은 소녀 엘리는 태어난 이후로,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들을 처음 본 것이다.

자신이 꿈속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볼을 꼬집어 보고 있었다.

“아, 아파!”

“너 갑자기 뭘 하는 거냐?”

에도르가 엘리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이게 꿈은 아니죠?”

“하하, 꼬마 숙녀가 가족들이 다시 고용된다니 꿈만 같았나 보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저기 언니들이 사람인 건 맞나요?”

“왜? 엘프보다 더 이뻐서 안 믿겨져?”

“어? 엘프도 아니라고요?”

“넌 엘프를 본 적이 없나 보네. 아저씨는 봤는데, 저 두 분 레이디가 더 이쁘단다.”

“정말요?”

눈을 깜빡이며 현실 상황은 날려 보내고, 천진난만한 소리를 하는 엘리다.

“풉! 언니랑 인사할까? 난 아나스타샤! 아샤 언니라고 부르면 된단다. 그리고 이쪽은 아진 언니야. 그리고 저쪽은 태월 오빠인데, 우리가 아내란다.”

“안녕!”

“반갑다. 꼬마 숙녀!”

아진에 이어 태월까지 엘리에게 손을 흔들어 준다.

“아, 안녕하세요. 엘리라고 합니다. 가족의 막내예요.”

어디서 배웠는지 치마 한쪽을 잡고 예절 인사를 하고 있다.

-꼬르륵!

“어머, 너 배고프구나?”

인사를 마치고 고개를 들던 엘리는 너무 창피했다.

자신의 배가 주책맞게도 소리를 낸 것이다.

“오빠! 빵하고 우유 하나 줘봐.”

태월은 등에 멘 배낭에서, 이 도시에서 처음 산 빵과 우유 한 통을 꺼내 아샤에게 건네줬다.

직접 줄 수도 있으나, 현재는 아샤가 소통 중이니 그녀에게 주는 게 자연스럽다.

“자, 이거 먹어볼래? 언니랑 반씩 먹자!”

아샤는 허리를 굽혀 엘리와 눈높이를 같게 한 후에, 빵의 절반을 잘라 아이에게 내민다.

머뭇거리는 아이를 보며, 아샤가 절반의 빵을 뜯어 조금 맛본다.

“어머, 이거 맛있네? 엘리도 먹어봐.”

조금 뜯어서 아이의 입에 넣어주니.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입에 들어온 빵을 씹고 있다.

“어머, 엘리 이쁘게도 먹네. 우유도 마셔보자.”

아샤가 우유통을 따서 조금 마신 후, 아이에게 내밀었다.

이미 배 속에 들어온 빵 맛으로 인해, 엘리는 자신도 모르게 우유를 받아 한 모금 했다.

“저, 정말 맛있어요!”

이곳은 육류가 귀하기에 가축도 귀한 것이다.

원래는 성 밖 마을에서 가축들을 길렀지만, 요괴들의 침범이 있을 때마다 가축이 제일 먼저 사라졌다.

요괴들도 육류를 즐기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소를 기르는 집이 줄어들어, 우유는 귀한 음식이 되었다.

엘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아샤는 남은 빵을 작은 손에 쥐여주었다.

그런데 먹지를 않고 꼼지락댄다.

“어? 너 왜 안 먹니? 배고플 텐데.”

“언, 언니 오면 같이 먹으려고요.”

자신의 언니 쥬리아에게 이 빵과 우유를 주고 싶은 엘리다.

“오빠! 빵하고 우유 하다 더 줘! 아니다 세 개씩 줘. 또 ‘엄마 아빠 오면 먹으려고요’라고 할 것 같아.”

결국 엘리의 품엔 빵과 우유가 한가득하다.

그제야 자신의 손에 있는 남은 빵과 우유를 조금씩 맛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되는 엘리다.

“엄마, 아빠는 언제 오시니?”

“음, 음, 아, 아옵 시요.”

입에 빵을 넣고 말하니 발음이 어눌해진 꼬마 숙녀 엘리다.

일곱 시쯤이 되자 첫째 쥬리아가 등장했는데, 자신의 동생이 누군가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다 뒤를 돌아본 엘리의 환한 미소를 보고는 조금 안심을 했다.

“언니!”

“응, 엘, 엘리 괜찮니?”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사람이 있었는데, 근처에 큰 상점을 가지고 있는 에도르였다.

“쥴리? 이 아저씨 알지?”

“네, 에도르 아저씨. 안녕하세요?”

“여기 이분들은 이 집의 새로운 주인이란다. 그리고 너의 가족을 다시 고용할 생각이야. 날 믿는다면 이분들을 믿어도 돼. 왜냐면 이분들은 나와 동업자거든.”

“안녕? 난 아샤란다. 여긴 내 언니 아진! 그리고 태월 오빠! 우리 셋은 가족이란다.”

“언니! 그냥 가족이 아니고 부부래.”

천진스런 모습의 동생의 말에 살짝 미소를 지어주고는, 태월 일행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는 쥬리아다.

“감사합니다. 저는 첫째 딸 쥬리아라고 해요. 쥴리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쥴리 또한 엘리처럼 치마 끝을 붙잡고 인사를 한다.

상인인 에도르가 묘한 눈빛으로 쥴리와 엘리를 보고 있다.

“일단 지하엔 가지 말고 1층으로 올라가도록 해. 지하 입구엔 상점 직원 하나를 보초로 세워둘 테니, 부모님이 오시면 1층으로 오라고 하면 될 거야.”

낯익은 에도르의 말에 자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자신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아는 것이다.

에도르는 점원과 집사 그리고 하녀 셋을 데리고 와서 1층과 2층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1시간 반 정도가 되자 빈집 느낌은 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집사와 하녀가 챙겨온 음식들을 먹으며 자매의 부모를 기다렸다.

“흠흠, 저기 아이들이 이곳에 있다고 해서요.”

“일단 들어오시게.”

에도르의 말에 자매의 부모인 마틴과 에디나가 눈치를 보며 들어섰다.

소파에서 아이들이 뭔가를 먹고 있다가, 자신들의 부모를 보자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낯선 이들을 발견한 마틴과 에디나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인사들 하게. 이 집의 새로운 주인일세.”

“아, 안녕하세요.”

“처, 처음 뵙겠습니다.”

지하에 몰래 살고 있다는 걸 들켰기에 에디나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자자, 이리로 앉으세요. 좋은 일이니 불안해하지 마시고.”

자매의 부모는 낯선 이들을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 않은 채, 얼떨결에 아이들 옆에 앉았다.

그러다 맞은 편에 앉은 이들을 쳐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저녁 거실 조명에 그녀들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이야기부터 들으세요. 저는 아나스타샤입니다. 여긴 제 언니인 아진이고요. 제 옆에 있는 분은 저와 언니의 부군이 되는 분입니다. 이 집의 새로운 주인이기도 하고요.”

평소에 발랄하던 아샤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차분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마틴과 에디나가 고개를 다시 숙여 인사를 표하자 아샤는 말을 이었다.

“두 분을 다시 이 집에 고용하려 하는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저, 정말입니까?”

“낯선 초면에 거짓말할 이유가 있나요?”

“가,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자매의 엄마의 에디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아이들에게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이방인에겐 이곳 도시가 만만치 않았다.

힘들어서 다시 고향으로 갈 생각까지도 해본 그녀다.

“내일부터 집안일이 가능하겠습니까? 하던 일도 있을 터인데.”

“지금부터라도 할 수 있습니다! 일용직이라서 정해진 일은 없었거든요.”

마틴이 목소리에 힘을 주며 아내를 대신해서 대답했다.

“두 사람은 아직 식사 전일 테니 식당에서 식사부터 하세요. 그리도 너희도 가서 부모님과 함께 먹도록 해.”

“어? 저희는 좀 전에 먹었잖아요.”

“한창 클 때인데 더 먹도록 해.”

“네!”

막내인 엘리가 제일 씩씩하게 대답하며, 부모의 손을 잡고 식당 테이블로 향했다.

그곳엔 미리 준비한 음식들이 차려져 있다.

쥴리도 조금 눈치를 보더니, 가족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5분 정도가 지나자 식당 쪽에서 도란도란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그들의 심적 부담이 줄어들었단 의미다.

그리고 간간이 우는 소리도 들렸지만, 태월 일행은 모른척했다.

에도르와 그의 일행들은 돌아갔다.

식사를 다 한 마틴 가족에게 1층을 내어주곤, 태월은 아샤와 아진을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방이 5개였고, 그들은 2개만 썼다.

그걸로도 그들은 충분히 만족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에도르가 보낸 식자재가 마차를 통해 배달되었다.

마틴과 에디나는 그걸 받아서 창고와 주방으로 열심히 날랐다.

식자재가 아예 없다가 다시 채우려니 생각보다 양은 많았다.

그러나 부부의 얼굴은 미소가 가득했다.

이제 행복을 다시 찾은 기분이 든 것이다.

“어!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아침부터 갑자기 주방이 소란스러워졌다.

두 자매의 엄마 에디나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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