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사냥대 발족
에도르는 옷의 탄력성에 놀란 것이다.
게다가 가볍고, 과격한 몸짓에도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다.
“이런 원단이 존재하나요?”
“흠, 이게 사실은 이곳의 옷감과는 꽤 다를 것입니다. 공정 과정이 복잡해서 재단사가 세상을 떠난 후엔 아무도 만들지 못합니다. 참고를 하시라고 두 벌 중 한 벌은 선물로 드리도록 하지요.”
“이게 가격으로 따지면?”
“글쎄요. 원단도 그렇지만 디자인과 품격의 비용이 합쳐져서 두벌에 1골드 정도는 합니다.”
1골드면 한국의 돈으로 천만 원 정도다.
“헉! 1골드! 역시나 그 정도의 값은 되어 보입니다. 한 벌에 50실버!”
이곳 세상은 인건비가 많이 들기에 물가가 비쌌다.
옷을 만드는 것도 일일이 손으로 다 해야 하다 보니,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유통비란 게 물건값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유지되는 이유는 평민에 해당하는 여인들이, 집안에서 바느질로 옷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가족의 옷이지만, 부업으로 만들어 내다 파는 사람들도 상당했다.
그리고 의상실 같은 곳도 있어서, 전문적으로 옷을 수제하는 곳도 있다.
“다른 종류의 옷도 있습니까?”
“네, 그 재단사가 예술적 감각이 워낙 탁월한 분이라 꽤 종류가 되지요.”
“허업, 놀, 놀랍습니다. 볼 수 있을까요?”
결국, 태월은 다시 2층으로 올라가 배낭에서 이십여 벌에 해당하는 옷을 꺼내게 되었다.
그런데 그게 과했는지 에도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짐이라고는 그 배낭밖에 없으셨는데, 이런 건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혹시 그 배낭이 법술 아이템인가요?”
아니라고 했다간 더 의심받을 듯해서, 고개를 끄덕여 줄 수밖에 없었다.
“가문의 보물 중 하나입니다. 많이는 안 들어가고 마차 한 대분 정도 들어갑니다.”
이곳의 짐마차 수준으로 보면 최소 4대 분량이지만, 곧이곧대로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오, 그 정도면 굉장히 귀한 거네요. 상급이 2대 분량이고 최상급은 4대 분량이거든요. 뭐 그 위에 20대 분량이 들어가는 신화급도 있다는데, 말로만 들었습니다.”
“허, 그럼 법술가가 그걸 만드나요?”
“최상급까지는 만든다고 하는데, 혼자서는 벅차고 여럿이 힘을 합쳐 만든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화급은 신의 유물이란 이야기가 돌고 있지요.”
인간의 한계는 마차 4대 분량이란 소리고, 이곳 세상에서는 태월이 가진 배낭 용량도 제작이 가능하단 소리다.
‘지구보다 우월한 게 이거로구나. 가볍게 볼 법술이 아니네? 지구에서는 신의 유물급인데, 이곳에선 인간이 만들 수 있다니. 정말 놀랍네. 그런데 얼마나 비싸길래 그걸 상행에 안 써먹지?’
“인간이 제작할 수 있는데, 그걸 왜 에도르씨는 사용하지 않지요?”
“헐, 그 가격이면 사람을 쓰는 게 훨씬 쌉니다. 하급만 해도 가격이 100골드입니다. 그런데 기껏 마차 절반의 양만 들어갑니다. 그리고 중급이 마차 한 대분인데, 500골드입니다.”
500골드면 50억이다.
“대형 상단에선 중급을 쓰기도 하지만, 저희 같은 상단에는 과한 것이죠.”
“상급은 가격이?”
“필요에 따라 부르는 게 값이긴 한대, 시세로 따지면 2천 골드 정도입니다. 그 정도는 최상급 요괴 둘은 잡아야 생길 돈이죠.”
“최상급은요?”
“5만 골드에 경매 낙찰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상급보다 겨우 두 배 크기인데? 가격 차이는 굉장하네요?”
“일종의 희소성이죠. 그리고 최상급부터는 분실의 위험이 없어집니다. 인식된 자 외에는 열 수가 없거든요.”
태월이 가진 배낭의 가치가 이곳에선 최상급이고, 한국 돈으론 5천억이란 소리였다.
그리고 대마왕 정도는 되는 하급신 수준의 특급 요괴를 다섯이나 잡아야 한다는데, 현실성이 좀 부족했다.
‘지구에 가져가면 몇 배는 더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물건들이긴 해.’
“그럼 제 배낭은 중급이군요.”
“아, 최상급이 인식자를 가리는 것은, 그것에 사용되는 법술 가루가 푸른색이기 때문입니다. 원리는 저도 잘 모릅니다.”
태월의 배낭도 영혼이 이어진 자 외에는 열 수가 없었다.
물론 영혼 에너지를 다뤄야 가능하지만.
‘이곳 법술가도 혹시 영혼 에너지를 다루는 게 아닐까? 아카데미라는 곳을 가봐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네.’
태월이 법술가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에도르는 옷을 하나하나 펼쳐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태월의 눈치를 보고 있다.
“저기, 이 디자인들을 제작하고 싶습니다. 지분은 어느 정도로 잡아야 할까요?”
“글쎄요, 생각해 보진 않아서요.”
“그럼, 디자인 값으로 30%, 로얄티로 5%!”
태월이 들어갈 돈은 없기에 그 정도만 해도 넘친다.
“좋습니다. 더 많은 샘플도 제공해보겠습니다. 저도 많이 팔리면 좋지 않겠습니까? 상류층 전문으로 가실 거죠?”
“그렇죠.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는 명품 전략이 최고입니다. 이 세상의 최상위 명품 브랜드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브랜드 이름을 그대로 쓰려고요?”
“아, 아니죠! 라온님의 이름에 제 이름을 더하여, 라도르! 어떻습니까?”
‘음, 이 사람도 작명 실력이 나랑 비슷하구나. 뭐 상관없겠지.’
에도르가 꺼내는 계약서라는 것을 보던 태월은 그 속에 깃든 기운을 느꼈다.
“하하, 이런 계약서는 처음 접하는 것인가 봅니다. 이것도 법술가가 만들거든요. 비용이 무려 10실버지만, 위조나 변조가 안 됩니다. 이 서류 자체가 증인을 대신합니다.”
정식 계약서를 작성하고 나서, 태월은 배낭에 있는 여유분의 의류를 꺼냈다.
속옷까지도 줬는데, 처음엔 신기했는지 하도 만져서 변태처럼 보일 정도였다.
특히나 그에게는 여성 속옷이 신기할 수밖에 없다.
‘다른 잡화는 당장은 필요 없겠지.’
이 세상에서 지구의 가방 디자인이 쓸모가 어느 정도일지 모르기에 일단은 꺼내지 않았다.
다만 등산배낭만 3개를 꺼냈다.
여행이나 이동이 많은 곳이라 쓰임새가 좋을 듯해서다.
태월 일행은 티타임을 한 번 더 가지고는 2층으로 올라가 하루의 마무리를 했다.
“잘 주무셨습니까? 증명패부터 만들러 가야지요. 서둘러야 합니다. 이 사람들은 늦게 오면 자꾸 자리를 비워서, 괜한 시간 낭비가 생기게 됩니다.”
“저희는 이대로 가면 됩니다. 바로 출발하죠!”
“네? 식사는 안 하고요?”
“에이, 나중에 먹죠. 에도르씨가 먹어야 한다면 기다리죠.”
“아, 아닙니다. 상행하다 보면 식사 때를 놓치는 일이 허다합니다. 바로 가죠.”
태월이 서두르자 에도르도 그게 편했다.
해야 할 일이 앞으론 태산인데, 이 일만 처리하면 자신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도시는 타라한 왕국의 12번째 도시인 쿠자하다.
인구가 10만 정도인 중급도시이며, 자바르 자작이 다스리고 있다.
쿠자하의 등록청은 에도르의 상점에서 마차로 20분 정도를 가야 했다.
등록청은 신분을 등록하는 부서와 부동산을 등록하는 부서로 나뉘어 있다.
“수호 동물도 등록해야 하나 보네요?”
“네, 사냥꾼 등록할 때 같이 하면 됩니다. 그런데 각자 등록하실 건 아니죠?”
“어떤 게 낫습니까?”
태월은 에도르가 알 수 없는 이야길 꺼내기에 말을 슬쩍 돌렸다.
“사냥꾼 개인으로 세 분이 각자 하면, 돈이야 당장 안 듭니다. 신분패 개념이 되어 소정의 등록비만 내면 됩니다. 그런데 사냥대로 등록하면 비용이 꽤 나가지만, 혜택이 큽니다.”
“나중 생각하면 사냥대로 등록하는 게 낫단 거죠?”
“거둬가는 세금도 적어지고요. 개인 사냥꾼에 비해 사회적 혜택이 커집니다. 예를 들어 사냥대 이름으로 부동산을 사면, 면세혜택을 줍니다. 또 요괴 사냥 시 기여도에 따라 추가 포상이 따라옵니다.”
“아, 그거 좋네요. 그럼 사냥대로 하겠습니다.”
“사냥대 이름을 미리 생각해놓으세요. 보통은 리더의 이름을 쓰긴 합니다만.”
“오빠! 그럼 라온 사냥대로 해. 짧고 좋네.”
결국 이름 짓기 귀찮아진 태월 일행에 의해 라온 사냥대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등록비용으로 5골드를 납부했다.
또한 팀원에게도 패가 지급되는데, 그 비용은 10실버다.
한국 돈으로 5골드는 5천만 원이다.
“담당자가 우릴 왜 그렇게 힐끗댄 거죠?”
“뭐,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거 같네요. 첫 번째는 보통 사냥대가 최소 100명 정도입니다. 그런데 딸랑 3명이잖습니까?”
“그거에 에도르씨가 장점을 열거하니 덥석 그렇게 하겠다고 한 거고요.”
“그거야 저는 세 분의 실력을 알고 있으니, 그런 추천도 드린 거죠. 그리고 두 번째는 팀원이라고는 레이디 두 분인데, 그 미모가 보통입니까?”
이곳 신분패를 만들 때 본얼굴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신분패 자체에 얼굴까지 인식되게 만들어야 했다.
얼굴을 그 패에다 새기진 않지만, 특수한 아이템에선 그 얼굴이 나타난다고 했다.
패에다가 법술로 신체를 각인했다는 의미인데, 개인 정보의 보안에 대한 인식이 없는 세상이라 이런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신분에 대해 에도르가 보증인이 되었다.
“오빠! 오빠 패는 금패고 우린 은패야. 등록비가 비싼 이유도 이 재료가 한몫했을 거 같네.”
“네, 맞습니다. 또 법술 가루도 비싸고요.”
“우리 아지트는 안 만드나? 아까 담당자가 장소 추천을 해줬잖아.”
에도르에게 신세를 지는 것은 태월도 부담이다.
이젠 동업자가 된 상태인데, 굳이 끼어 지낼 수는 없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사실 아까 담당자가 추천한 곳은 가격만 비싼 매물입니다. 아마 외지에서 왔다고 여겨 의도적으로 그런 곳만 말한 듯합니다.”
“흠, 매물 내놓은 사람이 소개료를 듬뿍 주나 보네요? 100골드, 200골드 그러던데.”
“아마도요. 어쨌든 이곳에 아시는 분이 없으니, 제 근처로 오십시오. 딱 적당한 매물이 있습니다. 200골드입니다.”
“네? 담당자가 부른 비싼 곳과 같잖아요.”
“하하, 가격만 보면 그렇지요. 땅도 세배나 되고 훨씬 멋지게 지어져 있습니다. 더구나 제 주변이라, 보안을 확대하면 비용도 절감되고요.”
태월이 요괴들을 잡고 난 돈과 야생동물의 고기를 판 값이 있기에 현재는 여유가 있었다.
에도르는 의심을 받고 싶지 않았기에, 담당자가 권한 200골드짜리 집부터 보여줬다.
그리고 자신이 권한 곳으로 태월 일행을 안내했다.
“야, 그 담당자 너무하네. 이곳은 척 봐도 그 집의 5배 가치는 되겠다.”
“흠흠, 뭐 세상일이 다 그렇지요. 그리고 실은 이곳도 원래는 싸지 않았습니다. 이곳 주인이 도박을 하는 바람에 급매로 거의 반값에 넘어온 거죠.”
“오빠! 난 이곳이 마음에 들어! 언니는 어때?”
“나도 여기가 좋아.”
둘이 좋다고 하니 태월도 수긍했다.
그래서 결국 이곳을 계약하게 되었고 200골드를 지급했다.
당연히 등록청을 다시 한번 방문하였지만, 태월도 흡족한 거래라 여겼다.
“어? 이 쓰레기들은 뭡니까?”
겉으로 보면 3층짜리 건물이었다.
그런데 지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하실엔 쓰레기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