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도시 구경
태월은 아샤가 가리킨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걸어가는 동안에 주변에 있는 요괴들의 귀를 자르는 것은 작은 일일 뿐이다.
요새 옆의 건물에서 나는 빛이었는데, 푸른빛이라서 태월이 관심을 가진 것이다.
“요괴들의 영혼 에너지가 아닌데?”
건물 안에서 느낀 것은 사람의 영혼 에너지였다.
태월은 이곳에 와서 귀신을 본 적이 없었다.
하루하루 인간과 요괴가 전쟁 치르는 이곳에, 귀신이 없다는 게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요괴와 야생동물을 사냥하러 다니느라, 잠시 잊고 있었다.
“왜 여기에 이런 게 있지?”
건물 안으로 들어간 태월은 정제를 거친 푸른빛 에너지 구슬을 보며 갸웃거렸다.
구슬들이 꽤 많이 허공에 떠 있었는데, 태월이 알던 그 구슬들이다.
요괴들을 다 죽여버려 그에 대한 답을 해줄 존재도 없었다.
태월은 공간 배낭에서 영혼 수집기를 꺼내 그 구슬을 다 담아 버렸다.
그리고 일행들에게 돌아갔을 땐 요괴 증거품들이 마무리되어 있었다.
“오빠? 우린 다 끝났는데, 그 빛은 뭐야?”
“사람들 영혼 같더라. 확실한 건 좀 더 알아봐야겠어.”
태월 일행은 요괴의 시신들을 모아서 통째로 태워버렸다.
영혼은 이미 흡수되었기에 큰 의미가 없는 행위다.
증거품들을 전부 공간 배낭에 담고서 주변을 수색해 나갔다.
그리고 보이는 보급 물품들은 전부 공간 배낭에 담는 태월이다.
값나가는 것만 담다 보니 절반 이상은 회수를 하지 못했다.
공간 부족으로 남은 건 마을을 다녀온 후에 다시 담아서 이동했다.
그렇게 개미 요괴 요새의 일은 이틀에 걸쳐서야 끝이 났다.
다른 요괴들을 잡으러 가려 했지만, 왕복 거리가 꽤 걸릴 듯해서 다음으로 미뤘다.
“480골드에 세금 떼고 나니, 336골드네.”
“세금이 너무 센 거 아니에요?”
“룰이 그렇다는데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최하급 요괴와 하급 요괴 그리고 상급 요괴 1마리를 더하니 그런 가격이 나왔다.
“이제 배낭을 열 수 있으니 돈은 금방 벌 수 있어. 그것에 만족하자.”
아샤를 다독인 태월은 다음 날 푸른 숲의 안쪽으로 전진해서, 대량의 야생동물을 사냥할 수 있었다.
수레까지 끌고 간 덕에 수레에 실은 사냥감들은, 다시 한번 마을에 절반을 선물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식당에 팔아버렸고.
그래도 공간 배낭에는 사냥물이 한가득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상인들이 개척마을에 도착을 하였다.
“상거래가 끝나면 그 상인과 인사시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도시 구경을 가신다니 저희 대원들과 함께 움직이면 될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자경대 대장 벡터가 장터가 생긴 곳에 서 있는 태월에게 하는 말이다.
아샤와 아진은 그곳에서 액세서리를 고르고 있다.
상인들은 총 3명이 왔는데, 그중 잡화 상인은 아샤와 아진 옆에서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그 목걸이는 귀걸이와 한 세트입니다. 엘프와 드워프가 합작해서 만든 귀한 것이랍니다.”
“엑? 여기에 엘프와 드워프가 있나요?”
지구에서도 종종 입에 오르내리는 허상의 존재들이다.
뭐 소설 속에서야 흔히 등장했지만.
“그런데 그게 놀랄 일인가요? 제가 보기엔 제 앞의 분도 엘프로 보이는데요? 그리고 이쪽 분도 하프 같기도 하신데?”
“아 저희는 먼 나라의 왔기에 그곳엔 엘프나 드워프가 없었거든요. 그리고 저희는 인간인데요?”
“허, 그게 바뀐 지 오래전인데요? 너무 모르신다. 엘프나 드워프가 과거엔 유사 인종으로 구별됐지만, 지금은 그냥 인간종족으로 편입된 상태입니다. 요괴와의 전쟁에서 구별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본 거죠! 그렇게 정해진 지가 이백 년 전인데요?”
“가문이 은둔한 지가 이백 년 전이었을 거예요.”
어느새 아샤도 태월을 닮아가는지 뻥을 치고 있었다.
정보를 알기 위해 할 수 없이 굴리는 잔머리지만 말이다.
“하긴 수호 동물로 백호를 뒀다는 게 알려지지 않은 거 보면, 은둔한 거 같긴 하네요. 그러니 제국에서도 몰랐겠죠.”
“호호, 뭐 그렇게 되긴 하네요.”
“그런데 두 분은 정말로 저분 아내가 된 겁니까? 진작 알려졌다면 태자비나 왕세자비 정도는 꿰찼을 건데요.”
“우린 이렇게 사는 게 더 재미있어요! 남의 눈치 보면서 살고 싶진 않아요.”
아샤의 말에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고 있는 잡화 상인이다.
이렇게 전국을 돌면서 상인 일을 하다 보면, 진흙에 묻힌 진주를 발견하게 된다.
그때마다 권력자에게 소개하여 꽤 짭짭할 부수입도 건지던 그였다.
그런데 이 개척마을에 처음 와서는, 어제 먹은 술이 깨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이런 정도의 미모를 자신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엘프를 본 적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심심할 뿐 아샤나 아진과 같은 몸매의 볼륨이 없었다.
또한 미모도 이 두 여자가 엘프를 뛰어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군께서 도시로 가보고 싶다는 거군요?”
촌장을 통해 이 미녀들의 부군이 고대 시대의 왕손이라고 듣기는 했다.
그래서 더는 욕심 부리지 않고 있었다.
단순한 은둔 가문이라면, 이 정도의 신붓감을 둘씩이나 데리고 살지 못할 거라 본 것이다.
“네, 요괴 사냥도 할 겸 여행도 하는지라, 다양한 곳을 가보고 싶은 거죠.”
이 생존의 시대에 여자라고 요괴 사냥꾼이 되지 말란 법은 없었다.
다만 잡화 상인인 그가 보기엔, 이 정도의 외모를 그 험난한 일에 힘쓴다는 건 낭비 같아 보일 뿐이다.
세 시간 정도가 더 지나자 장터의 철수 시간이 다가왔다.
해도 저물어 가고 있기에 조명이 부족한 이곳에선, 더 이상의 장을 펼치기 어려웠다.
“에도르? 자네에게 소개할 분이 있네.”
“아, 어느 분이시죠?”
“아까 자네가 한참 입을 털던 그 두 레이디의 부군이지.”
“아! 저도 대충을 들었습니다. 도시로 가는데 저와 동행을 하려나 보더라고요.”
“뭐, 엄밀히 말하면 자네 동행이 아니라, 우리 자경대와의 동행이지. 따라오게!”
벡터는 에도르를 데리고 식당으로 갔다.
이곳에서 술 한잔 마실 곳이야 여러 곳이 있지만, 그나마 이곳이 제대로 된 건물이다.
그리고 태월도 이곳에서 숙박하고 있었고.
“반갑습니다. 라온입니다.”
“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대단한 요괴 사냥꾼이시라고!”
“글쎄요, 이곳에 와서 두 번 사냥한 게 전부입니다만?”
“에이, 무려 삼천 마리 이상을 잡았고, 거기에 한술 더 떠 상급 요괴까지 해치웠으면서 너무 겸손하시네요.”
에도르의 말대로 저 정도의 숫자와 상급 요괴를 처치하는 사냥꾼은 거의 없다.
1천여 명이 기본인 대형 사냥대에서나 가능한 솜씨다.
그것도 S급 사냥꾼이 끼어있어야 가능하다.
고로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남자를 S급 사냥꾼이라고 믿는 에도르다.
‘그런데 이 인원으로 그게 가능한 것도 황당하지만, 수호 동물까지 있으니 가능하려나?’
태월이 주인에게 술을 내오게 하여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법술 가루와 아카데미요?”
“우린 가문의 비전 무술과 수호 동물의 조합으로 요괴를 처치합니다. 그래서 그런 걸 써본 적이 없지요. 기초도 모른다고 여기시면 됩니다.”
“그럼, 어디까지 알고 계신지는 모르지만, 그냥 제가 아는 걸 쭉 나열해보겠습니다.”
상인 에도르가 설명하는 걸 태월은 머리에 담았다.
법술 가루는 흔히 흰색이지만, 그 색이 제일 많고 그나마 저렴해서다.
광물의 색에 따라 그 효율성이 달랐다.
“푸른색이 제일 비싸다는 말이네요? 순금의 50배라니!”
“네! 황색 적색도 있지만 그게 제일 가치가 높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영혼 에너지도 푸른빛이다.
같은 크기의 광물보다는 순금 자체가 더 무겁기는 했다.
“아카데미는 매년 9월마다 신입생을 모집한다는 말이군요. 그럼 이제 두 달 남았나요?”
이곳 세상은 일 년이 열세 달이었다.
따지면 지금이 여름인 7월이다.
“도시로 가면 바로 접수하시고, 한 달 후에 입학시험을 치르시면 됩니다. 입학시험은 어렵지 않습니다. 졸업이 어려울 뿐이죠. 다 아시잖아요? 아카데미 돈벌이라는 걸.”
잘 모르지만, 아는 척 고개를 끄덕여주는 태월이다.
“입학금은 얼마입니까?”
“한 사람당 1년에 10골드입니다.”
이곳 화폐가치를 한국과 비교해 본 적이 있는 태월이다.
1쿠퍼가 천 원쯤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음식과 숙박비가 싼 편이었다.
달랑 싸구려 빵과 옥수수만 들어간 수프여서 그렇긴 했지만.
이곳이 개척마을이라서 그런지, 숙박도 씻는 물 외엔 특별한 서비스도 없고 침대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보면 1실버가 10만 원쯤 된다는 의미다.
주 소재가 은이라는 화폐를 볼 때 그 정도는 되어 보였다.
1골드도 동전의 크기가 올림픽 금메달 크기만 했었다.
1골드는 천만 원 정도란 이야긴데, 상급 요괴 잡아서 번 돈이 무려 10억이란 소리다.
1천 명 이상의 사냥대가 덤벼들어야 한다면, 그 정도는 되어야 수지가 맞을 듯했다.
‘헉, 그럼 1년 수업료가 1억 원? 다른 물가 가치로 보면 비교하기도 애매하긴 하네.’
태월이 다른 생각을 하느라 멍하니 있자, 에도르는 착각을 하곤 부연 설명을 했다.
“하하, 많이 놀랍지요? 다들 처음엔 어이없어 합니다. 일반 군사 아카데미나 행정 아카데미는 일 년 수업료가 1골드거든요! 그렇지만 법술 아카데미는 배울 때 들어가는 재료비만 해도 굉장합니다. 그리고 졸업 후에는 떵떵거리고 살지 않습니까? 그것에 대한 정산비라고 보시면 됩니다.”
“도시로 가면 숙박비는 어떻게 되지요? 또 입학 후에 기숙사 제도 같은 게?”
사실 태월이 기숙사로 갈 이유는 없다.
다만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알아야 하기에 묻는 것이다.
“거긴 숙박비가 하급이 1실버쯤 합니다. 그리고 중급 숙박지가 3실버 그리고 고급 숙박지는 10실버까지 합니다.”
고급호텔이니 100만 원 하는 건 이곳이라도 이상하진 않았다.
“거긴 요괴 사냥할 곳이 좀 되나요? 아니면 이곳이 더 나은가요?”
“개척마을보다야 그곳에 더 안전합니다. 그러나 그 도시의 전위 마을들은 군사마을입니다. 즉 요괴들과 대치 중인 곳이란 의미죠. 그러니 당연히 요괴들이 이곳보다야 많이 넘치지요.”
“개척마을은 그럼?”
“일종의 외지 마을이죠. 요괴나 인간이나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미개발지역입니다.”
“법술 아카데미가 도시 안에 있나 보죠?”
“네, 비싼 곳이니 안전이 우선이지요.”
태월은 술을 나누면서 세상에 대해서도 슬쩍슬쩍 물어봤다.
너무 모른다고 하면 이상하게 여기기에 어물쩍 넘기는 방식을 쓰는 식이다.
그렇게 그 밤은 지나갔고, 아침 일찍 태월 일행은 도시로 떠나는 이들과 동행을 했다.
그리고 온종일 이동하고 나서야 도시란 곳의 관문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성벽도 10m 정도로 높았고, 종탑도 보였다.
태월은 개척마을보다는 이곳이 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그런데 신분증은 있으시지요?”
성문에서 검문이란 걸 하고 있었다.
그제야 태월은 자신이 허당이란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