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요괴의 합체
태월은 그 금속판 가까이 다가가 글자들을 살폈다.
‘글자 자체에 의미를 담아 그 기운을 부리는 형식이네. 그럼, 저 세 개의 글자가 육류의 신선도를 유지시키는 기운을 만들고 있단 소리군.’
괴황지나 경면주사를 사용한 부적도 아니었고, 하얀 가루 같은 게 글자를 이루고 있었다.
“하얀 가루로 글을 만들었는데, 비싼 재료인가 보죠?”
“아, 법술 가루를 말씀하시는군요. 특별한 광석에서 나온 물질인데, 에너지를 담고 있다고 해요. 저도 상인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같은 무게의 금과 같은 가격이라고 했습니다.”
이곳의 금 가치는 태월이 모르지만, 그냥 생각해도 비쌀 거로 보였다.
“그 가루를 사서 가져가면 누가 그런 물품을 만들어주나요?”
“그렇게는 하지 않고요. 법술가들이 제작해서 팔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흔하지 않아서 대도시나 가야 한두 분 있을 정도죠. 그리고 가격도 법술 가루를 사용해서 물품을 만들면, 들어간 재료비의 10배 정도로 뜁니다. 기술의 난이도에 따라 30배가 되는 것도 있고요.”
주문 제작 방식이 아니라, 제작된 것 중 용도에 맞게 필요한 사람이 사 간다는 의미였다.
“법술가들은 어디서 배우나요?”
“그들은 도제 형식이고, 기초적인 건 아카데미에서 가르치기도 합니다. 단지 딱 기초만요.”
“기초만 배우는 거면 학년이 2년제인가요?”
“뭐 그렇긴 합니다만, 천재는 1년 안에 마치기도 합니다. 입학은 가능하지만, 졸업이 쉽지 않다고 해요. 논문처럼 특별한 법술을 하나 제출해서, 그게 통과되어야 졸업할 수 있다고 합니다. 뭐 졸업만 하면 유명한 법술사의 아래로 들어가, 도제 형식으로 몇 년 심도 있게 배웁니다. 그것까지 통과하면 대박이죠. 혼처가 줄을 섭니다.”
태월이 흥미를 보이자 신이 난 식당 주인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기초 정도는 태월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자신이 가진 모산파의 술법에 법술을 더하고, 스승에게 배운 부적을 활용하면 뭐든 가능할 듯싶었다.
특히나 그 법술 가루라는 것에 흥미가 솟았다.
“그것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상인은 언제쯤 옵니까?”
“매달 두 번의 정기 방문이 있으니, 닷새 후에는 그들이 오겠네요. 그들이 돌아갈 때는 저희 자경 대원과 함께 움직입니다. 사냥꾼들이 잡은 요괴의 증거품을 영주가 있는 도시로 가져가거든요.”
“오, 그럼 이참에 저희도 도시 구경을 가볼 수 있겠네요?”
“가게 되면 자경 대원들도 하루는 묵고 오니까 시간은 넉넉할 겁니다.”
도시를 볼 수 있다면 가야 하는 태월이다.
그리고 이곳과 비교해서, 에너지를 충당해줄 요괴가 많은 곳이 앞으로 지낼 동네가 될 것이다.
태월은 다음 날 아침을 고기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식당 주인이 싸준 도시락까지 지참했다.
“오늘도 야생 동물 사냥 가시나요?”
“하하, 아닙니다. 요괴를 잡아야지요.”
사실, 태월의 입장에선 돈을 벌려면 야생 동물을 잡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최종 목적이 에너지 충당이기에 요괴를 잡는 게 우선이다.
“실력을 보니 요괴보단 야생 동물이 낫지 않나요?”
“글쎄요. 그건 그렇고 혹시 요괴 증거품이 좀 그을려도 상관없나요?”
“그거야 확인만 되면 문제없는지라, 그런데 왜요?”
“하하, 아닙니다. 문득 궁금해서요.”
갸웃거리는 식당 주인과 헤어진 태월 일행은 전에 갔던 그 개미 요새로 향했다.
저번엔 없던 달구지까지 끌고 가느라 시간은 더 걸렸다.
그리고 태월의 새로운 무기는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의 청룡언월도 형태였다.
실제론 그 무기가 아니었지만, 태월이 대장간에 들렀을 때 검이 아닌 도가 한 자루 있었다.
그 손잡이를 자른 후에 창에 단단히 이어 붙인 것이다.
“어라, 전보다 더 많은 것 같은데?”
“오빠! 정찰병들이 죽은 걸 알고 더 강화한 거 아닐까요?”
“그것들이 정찰병인진 모르겠지만, 경계병들이 늘어난 건 맞네. 전에는 2명이 있던 자리에 3명이 서 있어.”
“루루가 고생을 좀 더 하게 생겼군.”
“뭐, 맛있는 거나 많이 만들어줘요! 자 이제 막 퍼붓기만 하면 되는 거지?”
태월의 작전은 간단했다.
개미가 불에 약하니 사방으로 불덩이들을 던져 최대로 피해를 주려는 것이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 태월 일행이 돌진하여 무차별로 해치우는 게 이번 작전의 요지다.
-슈슈슉! 쾅쾅! 슈슉! 쾅쾅쾅!
개미 요괴의 요새가 루루에 의해 불바다로 변해가고 있었다.
“자! 인제 간다! 다들 눈먼 화살 조심하고!”
개미 요괴 중에는 활을 다루는 궁수들이 100여 명 있었다.
접전 상태에서 아군이 맞을지도 모를 활을 쏴대진 못하지만,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다.
요새의 분위기는 난리통이었기에, 태월 일행을 조직적으로 막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태월 일행이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들만 골라 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월, 아샤, 아진, 아리랑의 표적 공격에 다수의 개미 요괴 지휘관들이 쓰러졌다.
-우우우우우!
요새 안쪽에서 누군가 나오며 소리를 질렀다.
태월이 얼핏 보니 뿔이 두 개나 솟은 개미 요괴였는데, 중상급 요괴란 의미였다.
‘호, 저놈이 이곳 요새 최고 지휘관이군. 뿔이 두 개니 10골드짜리네.’
태월의 신호를 받은 아리랑이 태월 일행을 태우더니 돌진하기 시작했다.
아리랑의 몸집은 이미 최대 크기의 백호로 돌아온 상태고, 그 위에는 성인남녀 5명은 탈 수 있는 공간이 된다.
“달려! 웬만한 건 무시하고 돌진해!”
주변으로 달라붙으려는 개미 요괴들은 아샤와 아진의 채찍에 의해 튕겨 나갔다.
그리고 궁수들이 움직이기 시작해 적아를 구별하지 않고 날리는 화살은 너무 느렸다.
아리랑의 속도는 요괴들의 예측보단 빨랐고, 이미 빠져나간 자리에 화살에 꼿혔다.
그 덕분에 태월 일행 근처에 있던 요괴들만 죽어 나갔다.
뿔이 두 개나 달린 개미 요괴 30m 전방부터는, 첩첩이 둘러싸인 개미 요괴들이 가득했다.
“밟고 지나가!”
태월의 의도를 인지한 아리랑은, 개미 요괴들을 타 넘으며 발에 밟히는 대로 압사시키며 달렸다.
땅이 아니라 요괴들을 짓밟으며 가는 광경은, 보는 요괴들에게는 섬뜩한 장면이었다.
두개골이 부서지고 내장이 터지는 그런 장면의 연속이다.
“장군! 저희가 왔습니다.”
검은 표범 세 마리가 나타났고, 그 위에는 뿔 하나씩 솟은 개미 요괴 셋이 타고 있었다.
“오, 다행히 늦지 않았다. 어서 합체하자!”
세 요괴가 표범의 등을 박차고 솟구치더니, 장군이라 불리는 그 요괴의 몸에 달라붙었다.
그러더니 변화를 일으킨다.
“저게 뭐지? 뭘 하는 거야?”
“합체라고 했으니 넷이 힘을 모은다는 거 아닐까요?”
태월도 처음 보는 상황이라 약간 주춤했고, 태월 일행을 막아서던 개미 요괴들도 뒤로 물러났다.
자신의 지휘관이 하려는 행동을 다 알고 있다는 소리였다.
비릿한 미소를 태월 일행에게 보내는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4명의 몸이 하나로 합쳐지며 몸의 크기가 자라났다.
“오, 뿔이 커졌고 빛이 나는데? 그럼 상급 요괴잖아?”
“어머? 원래는 증거품이 뿔 5개라서 10골드였는데, 지금 100골드로 변한 거죠?”
“10배짜리가 되었어요! 목돈이에요!”
침착한 아진마저 흥분했다.
“마스터! 지금 돈이 문제예요? 방심하면 다쳐요! 우린 상급 요괴의 능력을 전혀 모르잖아요.”
루루가 어느새 태월 곁으로 날아와서는 조언이랍시고 하고 있었다.
상급이라고 해봤자 그 위에 최상급과 특급이 존재했다.
지구와 비교한다면 특급이 아마 하급신 수준일 것이다.
요괴 종족에도 신이 존재한다고 했으니, 그 시작점이 특급일 것이다.
태월은 문신으로도 하급신을 처치한 적 있었다.
물론 방심을 유도하고 어리숙한 상대였기에 가능했지만.
중급신도 그런 방식으로 처리했었다.
그러나 그게 쉽게 통할지는 태월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눈앞에 있는 요괴는 그냥 상급일 뿐이다.
최상급이나 특급이 아닌, 그냥 상급 말이다.
“쿠오오오오! 쿠아아!”
상급으로 변신한 개미 요괴가 포효하고 있었다.
“되게 시끄럽네. 플랜 B로 간다!”
태월은 돌진했고, 그런 태월을 향해 양손을 펼치는 상급 요괴다.
그런 상황에서 아샤와 아진의 채찍이 쫙 늘어나며, 팔목 하나씩을 휘감았다.
태월의 언월도가 요괴의 면상을 찍어갔다.
순간 팔목이 잡힌 요괴는 즉각 방어를 못 하니, 가까스로 고개만 꺾어 간신히 피할 뿐이다.
그 때문에 왼쪽 귀 한 짝이 날아갔다.
그 와중에도 요괴는 이를 악물고 팔목의 채찍을 역으로 잡아당긴다.
아샤와 아진이 요괴의 힘에 끌려 날아가고 있었는데, 그녀들 사이에 아리랑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보다 먼저 요괴의 신체에 도달했고, 아리랑은 하체의 중심을 덥석 물어버렸다.
-컥! 끄아악! 으아악!
입을 벌려 괴성을 지르는 그 순간에 태월의 언월도가 움직였다.
벌려진 입속에 언월도를 쑤셔 박은 것이다.
-끄아아악!
태월은 첫 공격 이후에 땅으로 떨어졌어야 했지만, 몇 초 정도는 공중에 떠 있었다.
루루가 태월의 공간 배낭 어깨끈을, 두 발로 잡고 날갯짓을 해줬기 때문이다.
쓰러지는 상급 요괴의 뿔을 향해 태월의 언월도가 다시 빛을 뿌렸다.
-샥! 툭!
크고 빛나는 뿔이 잘리며 땅에 처박힌 요괴의 몸 위로 떨어졌다.
루루가 번개같이 움직여 뿔을 움켜쥐고 공중으로 날았다.
상급 요괴와의 전투가 2분도 안 걸려 금방 끝이 난 것이다.
자신들이 승리할 거라고 안심했던 개미 요괴들은 그 순간 멘붕이 와버렸다.
그 와중에 다시 한번 루루의 불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태월 일행은 더 날뛰기 시작했고.
“도망가는 놈들은 루루가 직격탄을 날려! 후방으로 빠지는 놈들은 아리랑이 이리로 몰아붙여! 아샤와 아진은 남은 지휘관부터 처치해!”
-끄아악! 꺄악! 끄억!
고위 지휘관들에 이어 하급 지휘관까지 무너지자, 전투가 아닌 학살이 되었다.
굳이 포로를 남길 이유가 없는 대상이기에 태월 일행은 손에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그리고 세 시간이나 지나서야 전투가 완전히 마무리되었다.
“우와! 너무 힘드네. 보약을 먹어야겠어요!”
아샤와 아진이 숨을 헐떡이며 쉬는 그 시간에도 태월은 쉬지 않았다.
사방에 퍼져있는 영혼 에너지를 흡수하느라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 시간이 더 걸려서야, 태월이 일행에게로 돌아왔다.
“오빠? 많이 모았어?”
“흐흐, 3천의 요괴에 상급 요괴가 합쳐지니, 공간 가방은 이제 열 수가 있게 되었어.”
“으아! 다행이다. 그럼 달구지가 필요 없겠네. 아리랑 오늘 수송작업 면제네.”
아샤의 말에 아리랑이 제일 기뻐하고 있다.
“이제 돈을 걷으러 다녀볼까? 다들 귀를 잘라 와!”
“윽, 나 이거 싫은데. 할 수 없지 뭐. 알았어!”
아샤는 몸을 털며 일어나서는 빠른 걸음으로 가며 채찍을 휘두른다.
신기하게도 칼을 쓰지 않았음에도 왼쪽 귀 하나씩이 떨어져 나갔다.
아샤에 이어 아진도 그런 식으로 움직였고, 그 뒤를 아리랑과 루루가 움직여 귀를 모았다.
아리랑과 루루의 목 쪽에는 자루가 하나씩 걸려있었다.
태월은 쉬고 싶었으나, 그녀들만 고생시킬 순 없는 일이다.
“오빠! 저기!”
작업 중이던 아샤가 가리킨 곳을 태월이 바라봤다.
“저기에 웬 빛이 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