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야생동물 사냥
결국 태월이 받은 금액은 52실버 50쿠퍼였다.
그렇게 따지면 이곳 개척 마을이 더 비싼 거였다.
대도시는 보통 20% 이내로 세금을 붙인다.
“여기 달방은 없나요? 매일 계산하는 건 불편하기도 하고.”
“하하, 그렇긴 하지요. 달방을 쓰면 가격도 절반 값에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나마 이 마을에서 주민회관과 이곳 식당은 천막이 아니었다.
태월은 식당으로 가서 달방을 계약하고 3실버를 지불했다.
한 달간 이곳에서 에너지를 모아 공간 배낭을 열 정도는 만들 생각이다.
“여기 요괴들 말고 야생동물은 없습니까?”
“여기서 동쪽으로 5km 정도 가면 푸른 숲이 있는데, 그곳이 사냥터이긴 합니다. 그런데 꽤 강한 동물들이 많은지라, 만만히 보시면 큰일 납니다. 여기 자경대들도 종종 사냥을 가긴 하지만, 5명씩 짝을 지어도 반나절 동안 겨우 한두 마리 잡을 뿐이죠.”
“어떤 동물을 잡은 건가요?”
“멧돼지는 한 마리 잡기도 벅차고요. 보통 노루 두 마리 정도 잡아 옵니다.”
“토끼 같은 건 없나 보죠?”
“있긴 있습죠. 노루보다 더 빨라서 잡기가 힘이 들어요. 그럴 바엔 냄새가 조금 나지만 노루를 잡는 게 편합니다. 같은 고생이면, 덩치도 노루가 더 크잖아요?”
생각보다 소득이 적은 사냥이라, 태월은 갸웃거리기만 했다.
태월이 새로 얻은 방으로 들어오자. 아샤가 바짝 붙는다.
“오빠? 우리 맨날 빵만 먹고 살 순 없잖아. 내일은 동물 사냥하고 올까?”
“잡는 거야 어찌한다고 쳐도 가져오는 것도 문제네. 배낭을 사용 못 하니 아주 불편해.”
“달구지를 빌려 가면 어때? 끌고 오는 거야 아리랑이 하면 되지.”
“백호로 변신시키면, 요괴로 오해 안 받으려나?”
“아, 아까 오빠가 책임자란 사람과 상담하고 있을 때, 대원 하나가 아리랑한테 펫이냐고 묻긴 하던데요? 펫이란 게 애완 의미도 있지만, 사냥을 돕는 역할도 한다고.”
“그것에 대해 자세히 물어봐야겠네. 식당 주인이 잘 알겠군. 식사도 시킬 겸 다녀올 테니, 그동안 씻고 있도록 해.”
일행을 방에 두고 태월 홀로 식당으로 내려왔다.
“뭐,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식사 준비를 해주시고요. 흠, 뭐 물어볼 것도 있습니다.”
“어떤 건가요?”
“다른 나라도 가봤는데, 이곳엔 펫을 어떤 식으로 처우하는지 궁금해서요.”
“아, 그 고양이 말씀하시는 거군요. 뭐 사냥 같이 가는 걸 보면 펫이긴 한가 보네요.”
“펫 중에 특별한 펫도 있나요? 예를 들면 변신해서 강해진다든가 하는.”
“네? 펫이 변신할 정도로 특별하다면, 그건 수호 동물인데요? 수호 동물은 저희 왕국에도 세 마리밖에 없을 정도로 귀합니다.”
“수호 동물을 거느리려면 자격이 필요한가요?”
“그럴 리가요? 능력이 되면 펫처럼 데리고 다니는 건데요.”
“요괴로 오인 받을 수도 있지 않나요?”
“에이, 요괴들이야 사람 몸에 대가리가 짐승 아닙니까? 변해봤자 뻔하죠.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는?”
“사실 선조 때부터 내려오는 고양이긴 한데.”
“어? 저 고양이가 백 년 넘게 산다고요?”
“사실 고양이가 아니라 백호입니다. 그냥 같이 다니기 편하려고 고양이로 변신 중인 거고요.”
“오! 백호! 수호 동물이었군요. 어쩐지 품격이 있어 보이더라고요. 엄청난 가문의 후예셨군요. 영광입니다! 백호라면 카이샤 제국의 황제가 가지고 있는 아주 귀한 수호 동물인데. 그런데 혹시 성별이?”
“암컷입니다만?”
“오! 돈복이 넘치시겠네요. 몇 년 전에 카이샤 제국에서 백호의 짝을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어요. 뭐 수호 동물도 귀했지만, 백호 자체로도 귀하잖습니까? 황호나 흑호는 있었지만, 격이 다르다고 판단해서 합방을 안 했다고 합니다. 그 카이샤 황제의 수호 동물이 수컷이거든요.”
식당 주인의 설명에 태월은 이곳 세상에서의 수호 동물은 전부 신수란 걸 알았다.
일반 동물이 변신술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당분간 비밀로 해주시겠습니까? 카이샤 제국에서 알면 이곳 마을도 부담이 될 겁니다.”
“하, 하긴, 그렇겠네요. 신나서 떠들었다간 저부터 세상과 이별하게 될 것 같네요. 제국의 행사에 저 같은 사람이 끼었다간 바로 바닷속에 수장되겠죠.”
태월은 영원한 비밀이란 게 없다는 걸 안다.
단지 힘을 어느 정도 되찾을 때까진 자신에게도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간단한 식사인지라 방으로 빵과 수프가 배달되었다.
“그런데, 엄마와 아빠가 많이 걱정하겠다.”
“그러게 말이다. 시간의 흐름을 모르니 이곳과 같으려나?”
“그 도깨비는 알지 않으려나? 명색이 중급신까지도 했었는데.”
“어쩔 수 없으니, 편하게 생각하자. 팔찌가 깨어나면 그때 물어봐야지.”
이곳 세상으로 왔을 때는, 아샤와 아진을 꺼내야 한다는 것에만 몰두해서 다른 내용을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급한 것부터 하느라 팔찌에게 지금의 상황을 자세히 묻지 못했다.
“아카와 아쿠 그리고 아루가 나와 연결되어 있으니, 살아 있다는 건 알고 있을 거야. 비록 다른 건 제대로 모르겠지만.”
영혼으로 연결된 정령들과는 누군가 소멸 시 상대가 알게 된다.
그녀들 또한 궁금은 하겠지만, 살아 있음은 알고 있으니 더는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곳에서의 생존도 시급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식당엔 태월 일행이 내려와 있다.
아침도 먹으면서 점심에 먹을 도시락까지 챙기고 있었다.
그래 봤자 빵과 수프 그리고 물통이 전부지만.
그리고 전날에 부탁했던 수레도 하나 빌릴 수 있었다.
“자자, 이제 출발할까?”
태월은 백호로 변한 아리랑의 몸에 수레를 연결하고, 그 수레 위에는 아샤와 아진을 태웠다.
“오, 진짜 수호 동물이었군요. 멋지십니다.”
식당 주인에게 흠모의 눈총을 받은 태월 일행은 마을을 가로질러 목책이 있는 곳까지 나왔다.
지나가던 마을 주민들도 백호의 등장에 다들 모여들었다.
“저게 그 하얀 고양이였었다며?”
“와, 저 사냥꾼팀에 수호 동물이 있었다니, 진짜 굉장한 분들이었네. 그런데 백호치곤 좀 작지 않아? 새끼인가?”
“크기로는 그래 보이네. 난 백호를 첨 봐!”
“저 두 분 여신님은 오늘 어딜 가시는 거지?”
“사냥 간다던데? 우리도 고깃국 좀 얻어먹을 수 있으려나?”
“야 이, 바랄 걸 바라. 여기 인구가 몇인데 그게 너한테 돌아오길 바라냐?”
“그런데, 저 남자분 너무한 거 아니야? 한스가 억울하다고 할 만해.”
식당 주인을 통해 들었는지, 태월 일행의 오늘 목적지까지 알고 있는 개척 마을 주민들이다.
목책을 벗어나 태월 일행은 동쪽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 식당 아저씨가 이렇게 입이 싼 줄 생각도 못 했네.”
“그러게, 비밀을 지킨다더니 역시나 개뿔이야. 앞으론 조언 같은 걸 구하지 말아야겠다. 그런데 그 한스란 놈도 헛소릴 하고 다니나 보네.”
“그러게요. 억울하다는 게 이런 데 쓰는 말이었나 봐요.”
푸른 숲이란 곳은 그리 멀진 않았다.
한 시간 정도를 가니 나왔는데, 조금 지형이 험해 보일 뿐 흔히 보는 숲이었다.
“어? 오빠? 방금 지나간 토끼 봤지?”
“하하, 토끼가 왜 저리 크지? 그런데 우리가 알던 토끼보단 굉장히 날렵하네?”
지구의 토끼보다 두 배는 커 보였다.
그리고 그 후에 알게 된 것인데, 다른 야생동물들도 크기가 지구와는 달랐다.
“노루가 별 게 아닌 게 아니었네. 크기가 지구의 두 배쯤이야.”
“헉! 그럼 멧돼지가 우리가 알던 황소만 하단 거잖아!”
“이곳의 기운이 지구보단 훨씬 순도가 높아. 그래서 이곳 동물들의 신체가 큰 것 같네.”
백호로 돌아온 아리랑의 몸은 황소보단 작았는데, 이것도 최근에 조금 더 성장해서 이 정도다.
“아리랑보다 더 큰 멧돼지라니.”
태월이 아리랑을 돌아보며 하는 말이다.
“에이, 그만 해요. 저도 크는 중이거든요? 그리고 원래 제 크기가 지구에선 정상이에요.”
마을 사람들에게까지 새끼라고 듣고 있으니, 아리랑은 기분이 별로였다.
태월은 수레와 연결된 아리랑을 풀어주었다.
“풉, 그런데 사람의 몸집은 지구랑 같잖아요. 두 배쯤 컸으면 황당했을 거 같아요.”
“뭐, 거인국에 온 걸리버 여행기를 한 번 더 찍는 거지.”
“오, 오빠! 저기 왼쪽 봐봐!”
아진의 다급한 말에 태월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어쭈? 한번 해보겠단 건가?”
성체로 여겨지는 멧돼지 한 쌍이 태월 일행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이들은 백호의 기운을 아직 읽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면 몸집이 작아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라면 이곳 숲엔 호랑이가 없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백호 또한 자신의 기운을 숨기고 있기에 착각하고 저렇게 달려오거나.
태월이 멧돼지들에게 손을 쓸 사이도 없이, 아리랑은 벼락같이 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콰쾅! 꾸에엑!
두 멧돼지 중 젤 선두에서 달려오던 놈과 아리랑이 정면으로 부딪친 것이다.
기분이 울적했던 아리랑의 분노가 그놈에게 터진 것이다.
멧돼지 한 마리가 공중에 떠오르다 곧장 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뒤따라오다가 급정거 중인 다른 멧돼지도 들이받는 아리랑이다.
-쾅! 꾸엑!
비틀거리는 멧돼지에게 다가간 아리랑은 그놈의 목덜미를 물어 유도를 하듯이 땅에 패대기쳤다.
“그것참, 인정사정없네.”
“호호, 우리가 할 게 없는데요?”
멧돼지의 마지막 숨까지도 아리랑이 마감했다.
그리고 그 사냥물들을 질질 끌어와 수레 옆에 쌓아두었다.
“오빠! 여기서 도축할 거야?”
“에이, 그건 마을 가서 하자. 물도 부족한데 도축까지 어떻게 해.”
“그럼, 이제부터 맘껏 잡아볼까? 언니랑 나 그리고 아리랑이 한팀! 오빠는 루루랑 한팀! 딱 균형이 맞지? 내기를 하는 거야. 진 팀이 오늘 밤 안마해주기!”
“헐, 그게 왜 균형이 맞는 거냐? 황당하네.”
“에이, 오빠가 최소 2인분은 하잖아! 그럼 된 거지. 남자가 소심하게 일일이 따져!”
“참나, 알았다. 하자고, 해!”
그렇게 일행의 사냥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루루가 제일 먼저 사냥감을 찾아내서 발톱과 부리로 공격한다.
순간 휘청이는 그 동물의 마감은 태월이 하고 있다.
두 시간가량을 사냥하고 나니, 주변에 있던 동물들이 알아서 다 피해 버렸다.
“이놈들 다 멀리 튄 거 같은데? 오늘 사냥은 이걸로 끝났군.”
“호호, 그럼 우리가 이겼네?”
아샤의 말대로 태월 팀보단 아샤 팀의 수확물이 더 많았다.
“에구, 그래, 너희가 이겼다. 보자, 멧돼지가 5마리에 노루가 3마리, 곰 1마리 그리고 토끼 6마리에 여우 3마리. 늑대도 4마리. 흠, 꿩은 7마리인데 이건 우리만 잡은 거군. 그런데 이걸 다 실을 수 있으려나?”
하늘로 도망가는 놈이기에 루루가 특화될 수밖에 없었다.
태월 일행은 힘을 합쳐 사냥물을 수레 위에 올렸다.
버리고 가기 아깝다는 이유로, 수레 위는 탑처럼 쌓는 방식이 되었다.
이곳 야생동물들도 크기에 사냥 가게 된 태월 일행을 위해, 식당 주인도 그 무게를 감당할 수레를 구해주긴 했다.
“수레가 아주 튼실하긴 하네. 그런데 바퀴가 굴러는 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