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개미 요괴 사냥
목책의 밤샘 경계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한스는, 태월의 일행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아니! 저 자식은 뭘 했기에, 저 여신들의 눈이 충혈돼 있어? 무슨 짓을 시킨 거야? 채찍이라도 때리는 변태 아니야? 에라이, 나가서 너만 먹혀라. 여신님들! 부디 무사하세요! 저는 과부도 감사하게 여깁니다.’
또, 한 번 태월에게 저주를 내리는 한스다.
그러면서도 천연덕스럽게 아샤와 아진에게만 고개 인사를 하고는 떠나갔다.
“그런데 저 자식은 왜 어제부터 나를 째려보냐? 좀 이상한 놈인데?”
“아까 아주머니 이야기론 저 사람이 노총각이래요. 개척 마을엔 처녀가 드물다고 하던데요? 그나마 있던 신부 후보감은 대장장이 아들하고 결혼했대요.”
“흠, 질투란 소린가? 하긴 둘이나 데리고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네. 개척 마을은 자경 대원보다 대장장이가 더 끗발이 높겠군.”
태월 일행은 마을 밖으로 나와 숲 쪽으로 길을 틀었다.
“이쪽의 요괴들 수준부터 파악하자고!”
“그런데 여기 요괴들은 변신술을 못 하나 봐요? 인간처럼 변신할 수 있었다면, 우리도 의심받았을 텐데.”
“그러게. 그런 것도 못 하는데 왜 요괴라고 하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구별법이 따로 있나?”
아샤와 태월의 이야기를 들으며 걷던 아진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머, 오빠랑 아샤는 도감을 끝까지 읽지 않았구나?”
“상급 이상 몬스터에 대해선 당장 필요하지 않잖아. 그래서 그냥 넘겼지.”
“언니? 뒤에 뭐가 있었어?”
“아주 옛날엔 여기 요괴들도 변신술을 다 썼대. 그런데 주신이 보기에 그 변신술 하나로 인해, 인간종족이 말살당하는 일이 벌어지잖아. 공평치 못하다고 여겨 그 변신술을 불완전하게 해놨다고 해. 특급 정도는 그 금제를 뛰어넘어 아직도 완전 변신까지가 가능한데, 그렇게 변신하고 나면 힘을 절반도 못 쓴대.”
“언니? 그런 내용이 후편에 나와 있었다고?”
아샤도 태월이 읽었던 만큼만 본 것이다.
“응, 특급 요괴에 대한 부연 설명에 그 글이 있더라.”
“하긴 이런 개척 마을에 특급 요괴가 뭣 하러 오겠어. 거의 왕족급인데.”
이곳 요괴들이란 게 몸체들은 거의 사람이다.
요력이란 걸 쓴다는 게, 지구의 요괴랑 비슷하기도 했다.
“이 개척 마을 인근의 최하급 요괴가 개미 요괴였지? 개미가 귀가 있나?”
“곤충들은 거의 더듬이로 소리를 감지한다잖아. 그러니까 더듬이를 잘라 오란 소리인 거고.”
“에이, 나도 언니처럼 끝까지 다 읽을걸.”
“이건 책에 나온 게 아니라, 자경 대장 아내란 분이 해준 말인데?”
아샤는 그 당시 태월과 노닥거리느라 그 이야길 듣지 못했었다.
“하여간 귀에 해당하는 부위를 가져오란 거네. 내가 많이 잡아야지. 우린 당분간 거지잖아. 이게 다 신랑이 무능해서 그래.”
“컥!”
태월을 향해 혀를 쏙 내밀며 장난치는 아샤다.
그렇게 잡담을 나누는 사이에 숲의 초입을 지나게 되었다.
“쉿! 저기 오른쪽으로 요기가 느껴져!”
태월의 말과 동시에 아리랑과 루루가 제일 먼저 움직였다.
아리랑은 숲의 초입부터 백호로 돌아온 상태였고, 루루도 독수리 크기로 바뀌어있었다.
-끼익! 끽!
순식간에 소음이 사라졌다.
태월이 그곳엘 가보니 책에서 보던 개미 요괴 둘이 바닥에 누워있다.
머리와 얼굴이 개미 모양이고 몸은 인간체였다.
“흠, 최하급은 허약하군. 방어구도 허술하고. 무기도 찌르기용 창이 전부고. 흠, 이건가 더듬이가?”
“한 쌍의 더듬이 중에 왼쪽 더듬이만 잘라내면 그게 증거가 된대요.”
아진의 설명에 태월은 도끼로 더듬이만 잘라내, 자루에 넣었다.
그리고 창이라고 하긴 민망한 쇠꼬챙이 두 개를 등에 메었다.
개척 마을에선 철을 구하기 어려워, 이렇게 최하급 요괴를 잡아야 무기를 만들 수 있었다.
태월은 요괴를 잡고 나서 생긴 붉은빛의 기운에 손을 내밀었다.
“흠, 그래도 다행히 기운 흡수는 되네? 문신이 알아서 푸른 기운으로 바꿔놓겠지.”
“아싸! 이제 2실버다!”
“그런데 실버가 얼마의 가치일까? 그 아래의 화폐단위도 있을 듯한데. 또 골드란 것도 있고. 100실버가 1골드쯤 되려나?”
태월은 식당 주인이나 자경 대장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정체를 의심받기에 묻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 이곳 세상의 화폐란 걸 직접 본 적도 없다.
“가져가 보면 알겠죠. 오빠! 빨리 잡기나 해요. 우와, 내 빵들!”
아리랑과 루루에게 뒤질세라 아샤와 아진도 움직이고 있었다.
사실 최하급 요괴라고 해도, 이렇게 쉽게 잡지 못한다.
한스 같은 자경 대원 둘이 붙어야, 최하급 요괴 하나를 처치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병사 한 명과 최하급 요괴는 거의 동급이었다.
혼자라면 거의 목숨을 걸어야 1실버를 번다는 것이다.
아리랑과 루루는 신수이기에 이 정도는 쉽다.
다섯이서 거의 50마리 정도의 개미 요괴를 처지하고 나니, 주변에 더는 요괴가 보이지 않았다.
개미 요괴가 한곳에 모여있지 않고 2~3마리씩 떨어져 있었기에, 50마리를 찾아다니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오빠! 저기 요새 같은 게 있는데?”
숲 안쪽으로 깊이 들어오다 보니, 인간의 마을을 흉내 낸 곳이 나타났다.
루루가 태월과 시야 공유를 하면서, 그 요새를 돌아다니며 정찰을 시작했다.
“음, 최소 천 마리 이상이군. 게다가 방어구를 제대로 갖춘 놈들도 좀 되는데? 여기가 개미 요괴들 병영인가 보군.”
“그럼, 여기 군단장 하나쯤 있겠네요?”
“글쎄, 군단장이라.”
개미 요새에는 개미 군단장이 있었는데, 요괴 등급으로 보면 중상급이다.
“숫자가 너무 많아요. 잡다가 우리가 지치겠어요. 아직 점심도 못 먹고 지금까지 돌아다녔는데. 어떡할래요?”
“오늘은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 나온 것이니, 이만 돌아가자. 며칠 간의 숙박비는 충분하겠지.”
태월 일행은 요새를 뒤로하고 마을로 돌아왔다.
양쪽에 자루를 들쳐메고 목책으로 돌아오니, 자경 대원이 태월 일행을 알아보곤 문을 열어줬다.
“호, 혹시 그 자루 전부가 증거물인가요? 개미 요괴들을 잡으러 가셨나 봐요?”
그때 태월의 뒤로 쇠꼬챙이 수십 개를 나눠 들은 여인 둘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 진짜 사냥꾼들이셨구나. 저 많은 걸 잡았다고요?”
자경대의 인원이 100명가량이다.
그들 전부가 출동해야 저 정도의 성과를 올릴 수 있다.
3교대 근무를 해야 하고, 실제로 출동한다면 30명만 가능했다.
그것도 수비를 포기하고 전부 나갔을 때 이야기다.
“아, 무거우니 그만 말 시키세요. 마을 회관으로 곧바로 가면 되나요?”
“아유, 무슨 그런 노고를 하시려고요? 제가 담당자를 이리로 불러오겠습니다. 나르는 건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사냥꾼에 대한 이야기가 마을에 이미 퍼졌다.
더구나 두 미인의 출현은 이곳 개척 마을의 남정네들에겐 한줄기 활력이었다.
지금도 자경 대원들 몇몇이 아샤와 아진의 쇠꼬챙이를 서로 들어주려고 하고 있잖은가.
“여성분이 이렇게 무거운 걸 어찌 드세요? 사냥꾼도 요기를 다룬다니 그 비술인가요?”
그 말을 하는 자경 대원도 아진의 쇠꼬챙이 중 10개를 겨우 들 뿐이다.
떠드는 말에도 태월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그에겐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사냥꾼들이 요기를 다룰 줄 안다고? 나야 에너지를 다루는 거지만, 같은 방식일까?’
자경 대원 다섯 명이나 붙어서서, 아샤와 아진의 쇠꼬챙이를 받아드는 상황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연락을 받은 책임자가 나타났다.
“와, 정말이었군요. 첫날부터 대단하십니다.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네요! 진짜시구나!”
“뭐, 우리 팀에선 이 정도는 흔한 일이죠.”
“찐찐찐찐 찐이야 완전 찐이야 진짜가 나타났다 지금~”
이상한 노래를 부르는 책임자였다.
‘이 사람 뭐지? 이 마을 개그맨이라도 되나?’
태월이 자신을 멀뚱히 쳐다보자, 겸연쩍어진 책임자가 머리를 긁적였다.
“진짜 사냥꾼이 나타나면 제가 불러주려고 직접 지은 노래입니다. 별로였나 보네요?”
“하하, 네, 목청은 좋으시네요. 못 부른 게 아니라 생소해서 바라본 겁니다.”
“아하하, 제 어릴 때 꿈이 음유시인이었거든요. 성인이 되면서 목소리가 좀 변해서 포기했지만요.”
가수 정도는 아니지만, 동네 노래 잘하는 형 정도는 되어 보이는 수준이었다.
태월도 이곳 개척 마을 사람들과 친해져야 하기에, 좋은 말로 그를 띄워준 것이다.
“매입관님! 이건 어디에 놓을까요?”
자경 대원 하나가 쇠꼬챙이를 짊어지고 그에게 묻고 있다.
“숫자 파악된 대원들은 곧바로 대장간으로 가져가! 뭘 새삼스럽게 묻고 지랄이야!”
좋은 분위기를 깬 대원이 얄미워 퉁명스러워진 매입관 젝키다.
“예썰! 전부 열 개씩 총 50개입니다.”
보고를 구두로 간단하게 한 대원들은 대장간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태월은 자루를 풀자, 젝키가 와서 일일이 숫자를 세고 있다.
“흠, 증거품도 총 50개네요? 운이 좋은 편입니다. 개미 요괴라고 전부 창을 들고 있진 않거든요.”
“창도 가격을 쳐주나요? 저야 녹여서 검이라도 만들까 하고 들고 왔지만요.”
“아하, 녹여서 직접 주문 제작하는 것보단, 이걸 팔고 기존에 있는 걸 사는 게 더 편리합니다. 특히나 검은 만드는 데 시간이 꽤 걸리거든요.”
“그럼 이 창은 얼마씩에 매입하시는지?”
“한 자루당 50쿠퍼입니다. 50자루니까, 2,500쿠퍼네요. 25실버입니다.”
태월은 젝키를 통해 100쿠퍼가 1실버인 것을 알게 되었다.
화폐단위를 머리에 담느라 태월이 대답이 없자, 젝키가 지레짐작한 말을 해온다.
“가격에 좀 놀라셨나 보네요. 사실 이 부분은 저희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대도시에 가면 1실버 쳐줄 것을 반값에 저희가 사려는 거잖아요? 그렇지만 이곳을 유지하려니, 그 돈을 다 주고는 힘들거든요.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증거품 가격은 동일하게 드립니다!”
“아, 이해합니다. 그럼 총 75실버네요?”
“이 요괴들 잡을 때 투구를 쓴 장교들은 못 잡았나 보네요? 그놈의 귀는 10실버고, 하얀 털이 귀에 붙어 있지요. 그리고 그 투구는 좋은 금속이 붙어 있어서 10실버를 쳐줍니다. 한두 마리만 잡았다면 1골드는 넘기는 건데 아깝습니다.”
‘아, 내 추측이 맞았네? 100실버가 1골드였군. 참 계산하기 쉽네. 100쿠퍼는 1실버. 그런데 1쿠퍼는 얼마의 가치지?’
“여기 식당에 파는 빵이 얼만가요? 동네마다 다르잖아요? 어젠 그냥 주길래 물어보진 못했습니다. 숙박비는 어찌 되죠?”
“하하, 당연히 마을과 대도시마다 수급 상황에 따라 다르지요. 여긴 대도시 가격만 받는 양심적인 곳입니다. 딱 5쿠퍼입니다. 당연히 수프 포함 가격입니다. 그리고 숙박비는 방당 하루 20쿠퍼입니다. 씻는 물 포함입니다.”
‘우리 셋이서 하루에 65쿠퍼가 있어야 하는군. 대략 석 달 먹고살 걸 오늘 벌어온 거군.’
“아! 간혹 모르는 분이 있으신데, 세금도 내야 하는 건 아시죠?”
“세금요?”
“매입 때 차감해서 드립니다. 기본 30%는 떼거든요. 참 싸지요?”
‘싸기는 개뿔?’
갑자기 힘이 빠지는 태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