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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재능을 삼켜라-180화 (180/250)

180화. 새로운 세계

태월은 에너지가 비틀린 곳을 발견해서 그곳에 힘을 가한 것이다.

의도대로 새로운 공간이 나타났다.

“여긴 좀 위험한 느낌이 들어. 단순하게 에너지가 응축된 곳이어야 하는데….”

지진 M9에 도달하려면 천년의 에너지가 모여야 한다는 말을 태월은 아직 실감하진 못했다.

일행들이 공간 안으로 들어서니 장막이 걷히며 새로운 장소가 나타났다.

“어, 저게 뭐야?”

빛의 기둥이 꿈틀거리며 알 수 없는 곳에서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이 산 밖에서는 에너지 흡수 현상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어디서 받아들이는 걸까요?”

아진의 말에 태월도 제대로 된 답을 해주지 못했다.

“오빠? 그런데 저 기둥 점점 흔들림이 심해지는데? 우리가 들어와서 저렇게 된 걸까?”

아샤의 물음에 태월 자신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기에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어 난감했다.

그리고 아샤의 추측은 사실이었다.

닫혀 있던 공간 너머가 새로 생겨나면서 압력의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인간보다 더 민감한 것이 동물이다.

아리랑과 루루가 잘게 몸을 떨고 있었다.

“마스터! 뇌리에 경고음이 계속 울리고 있어.”

“저, 저도 그래요.”

태월의 왼손 문신도 계속해서 꿈틀거렸다.

“본능적으로 뭔가 틀어진 것 같아. 불길한 느낌이 문신을 타고 엄습하고 있어. 이 에너지가 폭발하면 우리가 달아나더라도 이미 늦었어. 아무래도 우리가 화약고에 연결된 심지에 불을 붙인 것 같아.”

“오, 오빠! 어떡해?”

“휴, 내가 너무 안일했었어! 더 조사했어야 했는데. 일단 나에게 다들 달라붙어! 중급신인 문신이 감당할 수 있길 바라야지! 다들 미안해!”

“아, 아녀요. 전 지금까지 살아온 추억만 해도 행복해요.”

“오빠, 나도 행복했어!”

-우우웅!

“약한 소리들 하지 말고 나에게 달라붙어!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내겐 아직 중급신의 권능이 남아 있어! 꽉 잡아!”

진동음까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아샤와 아진이 태월의 팔을, 아리랑과 루루가 양다리를 잡는다.

“오, 오빠! 붙잡기도 너무 힘들어요!”

“에잇, 그럼 전부 공간 배낭으로 넣어줄게. 입고되자마자, 비치된 공기 마스크로 호흡하도록 해!”

“오빠는요!”

“내가 살아야 너희도 살아! 난 쉽게 죽어줄 생각이 없어! 걱정하지 말아! 다들 정신 바짝 차려!”

“입고! 입고! 입고! 입고! 입고!”

전부 한 번에 입고시키면 될 일인데도, 각자 입고시키는 태월이다.

그만큼 그도 긴장한 것이다.

일행들이 전부 사라지자, 태월은 빛의 기둥을 노려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도깨비! 내가 죽으면 너도 소멸한다! 너도 최선을 다해줘!”

태월이 죽는다고 해서 팔찌였던 도깨비가 소멸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냥 도깨비가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길 바라서 엄포를 놓은 것이다.

“삼켜라!!!”

-쿠와왁!

태월이 왼손을 내밀었다.

평소와는 다른 울부짖음을 내며 문신이던 도깨비가 튀어 나갔다.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도깨비의 입이 커지며 빛의 기둥을 덥석 물었다.

그리고는 힘껏 삼키려 발버둥을 쳤다.

-콰콰콱! 콰콱!

기이한 소음들이 복합적으로 들리는 가운데 태월의 신체는 자생적으론 견디지 못했다.

빛의 기둥과 중급신의 도깨비가 부딪치며 공간이 비틀어졌다.

그리고 태월의 의식이 흐려져 갔다.

‘아, 안 돼….’

***

-뾰로롱! 뾰롱!

태월은 희미한 의식 속에서 새소리를 듣고 있었다.

‘어? 뭐지? 어디서 나는 소리야? 난 아직 살아 있는 건가? 아니면 죽은 건가?’

태월은 조금씩 정신이 들어오면서 신체의 움직임을 서서히 늘려나갔다.

눈꺼풀이 떨리며 위로 올라가자, 희미하게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점점 시야가 밝아져 온다.

“헉! 여긴 어디지?”

고개를 좌우로 움직여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는 팔을 움직여보며, 몸을 일으켰다.

다리로 땅을 버티고 일어나서야 모든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꼈다.

“나 살아 있긴 한 건가? 아차! 배낭!”

다행히도 배낭은 몇 발자국 밖에 떨어져 나뭇가지에 걸려있었다.

황급히 배낭부터 회수한 태월은 일행들의 안위부터 살폈다.

“출고!”

-슈~

“어? 이거 왜 진행이 되다 말아?”

“출고!”

-슈~

“헉, 왜 이래? 에너지가 잘 모이질 않네!”

당황한 태월은 몸에 흩어져 있던 모든 에너지를 한곳에 모았다.

조금씩 에너지가 모이는 걸 느꼈다.

일행의 모습을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배낭에 손까지 얹어서는 외친다!

“출고!”

-슈슉! 투툭! 투투툭!

4개의 물체가 태월의 앞에 나동그라졌다.

“푸헉! 아, 아파!”

“컥! 나 왜 땅에 처박힌 거야? 어? 오빠는 괜찮은 거야?”

“쿠앙!”

“삐삐삑!”

“아, 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태월은 땅에 처박힌 아샤와 아진을 무릎 꿇고 꽉 안아주었다.

그리고는 등에 달라붙는 아리랑과 루루를 토닥였다.

“다들 무사해서 천만다행이야!”

“오빠, 우리 숨쉬기 힘들어!”

“하하, 미안! 내가 급했네.”

태월은 아샤와 아진을 품에서 풀어주고는, 그녀들을 일으켜 세웠다.

“오빠? 여긴 어디야?”

“그,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왼손을 들어 머리를 긁적이는 태월을 보던 아샤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어? 오빠! 문신이 왜 그래?”

목소리 톤이 높아진 아샤의 지적에 태월은 그제야 자신의 팔을 확인했다.

중급신이던 도깨비 문신은 초창기 크기로 줄어들어 있었다.

“아, 문신에 문제가 생겼나 보네. 어쩐지 영혼 에너지가 소량밖에 없더라고. 이걸 어쩐다냐?”

“그런데 이빨의 색은 더 선명해졌는데?”

“진짜 그러네? 대체 뭐지? 그런데 이제 영혼 에너지도 얼마 되지 않는데, 무슨 중급신이 이리 허접하냐?”

태월의 구박을 듣기나 한 것인지, 팔에서 갑자기 문신이 사라지며 팔찌로 변했다.

그리고는 인간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허접? 햐 이 시끼 보게나! 널 살리려고 내가 중급신의 격을 날려 먹었잖아! 너무한 거 아니야?”

“헉! 팔찌로 바뀌었네?”

예전에 잠깐 팔찌를 본 적은 있으나, 이렇게 대놓고 드러난 적은 없었다.

“뭐로 바뀌든 무슨 상관이야? 기껏 희생했더니 허접이라고 한 주제에! 이제 어떻게 보상할 거야?”

“살려준 건 고마운데 대체 네 정체가 뭐지? 왜 내 팔에 있었던 거야?”

“아, 몰라 시끼야! 네 팔에 내가 왜 있는지 그걸 내가 어찌 아냐? 나도 눈 떠보니 네 팔에 귀속돼버렸던데!”

“귀속? 귀속된 존재가 그 주인에게 이렇게 막말하나?”

“아, 몰라 이판사판이야! 격을 얻은 자가 그걸 잃었을 때의 기분을 네가 아냐?”

“넌 처음부터 격이 없었잖아. 그리고 격은 다시 쌓으면 되는 거 아냐? 방법도 이제 다 아는데! 짜증 나는데 확 소멸시킬까 보다.”

“헙!”

귀속된 존재를 소멸시키는 방법을 모르면서, 밀어붙이는 태월이다.

“이제 네 존재와 여기가 어딘지 말해봐! 중급신까지 해봤으니, 어느 정도는 알 거 아니냐?”

“아, 알겠네요.”

“너 말투가 더 이상해. 말은 편하게 하되 호칭만 마스터라고 불러!”

“음, 알았다 마스터!”

“이제 아는 걸 다 말해봐!”

그날 팔찌의 정체를 태월은 처음 듣게 되었다.

사라진 주신의 신물 중 하나였는데, 우연히 저승의 사자에게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게 승차를 위한 뇌물로 작용해, 어떤 이에게 상납된 것이다.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물건이었으나, 예사롭지 않았기에 일종의 수집품으로 취급된 것이다.

그러다 영혼과 관련된 신물임을 알게 된 자가 생겨났는데, 그게 원광법사였다.

원광법사는 작게나마 도를 얻어 승천한 상태였고, 저승의 주요 업무를 담당하는 책무까지도 맡았다.

그러다 팔찌를 발견하고는 죽기 전에 약속한 생생상제(生生相濟)를 지키기 위해 현세로 내보낸 것이다.

“아, 그 생생상제! 엄마에게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게 나에게 이어진 거군! 그럼, 왜 이제 말을 하는 거야?”

“격은 얻었으나, 주신의 격에는 못 미치지. 세 번째 내 존재의 효능이 이거야! 소통이 가능하다는 거지! 이제 금제는 다 풀렸어.”

“마지막 금제가 풀리는 조건이?”

“그 축적된 에너지와 내 중급신의 격이 충돌하면서, 원래보다 몇 배 더 강한 파괴력이 생겨난 거지. 오죽하면 공간까지 비틀려 이곳까지 이동되었을까? 아마 그걸로 인해 마지막 금제가 날아간 것 같아.”

“어? 여기가 어딘지 아나 보네?”

“충돌하면서 격은 잃었지만, 그 에너지에 붙어 있던 정보 일부를 해석할 수 있었어.”

“야! 잡설 좀 그만하고 어딘지나 말해봐! 속이 터지네!”

“이딴 마스터가 다 있어? 아는 것 다 말하라며? 그래서 한 거잖아! 전 주인은 주신이라, 이런 천박한 말투는 안 했는데. 참 내 삶이 말년에 이렇게 꼬이는구나.”

“아휴, 진짜! 확 소멸시킬까 보다!”

“에이씨! 여긴 원래 있던 곳과는 다른 세상이야. 요괴들도 있고, 인간들도 사는 곳이지.”

“헉! 그럼 우린 어떻게 돌아가?”

“날 다시 중급신으로 만들어주면 가능해!”

“음, 가능한 일이었군!”

“뭘 그리 쉽게 생각해? 난 지금 하급신도 아니거든? 신 자체의 격이 다 날아갔어! 이제 처음부터 해야 한다니까!”

“헐! 미쳐. 처음부터? 그게 되려나?”

“안 되면 못 가는 거지. 지금은 그 공간 배낭도 열기 힘들지?”

“그, 그러게. 그럼 이 세상은 누가 지배하는데? 우리 세상과 비슷하겠지?”

괜히 불안해진 태월은 팔찌를 닦달했다.

“아까 얻은 정보로는 요괴와 인간이 서로 대치 관계야. 그리고 그걸 깨려고, 인간종족의 성산인 이곳에서 에너지를 빼내, 공간을 비틀어 우리가 있던 곳으로 보내고 있었던 거야. 이젠 그 통로가 막혀 지구에 위험이 조금은 줄었지만.”

“지구를 이 세상 요괴들이 어떻게 알아?”

“지구의 1천 년 전 전쟁 참여자 중, 차원 이동이 가능한 특이 요괴가 하나 있었거든? 그놈의 걸작이지. 하급 신격은 되는 놈이었나 봐.”

차원 이동이라는 말에 눈을 번뜩이는 태월이다.

“그런 눈으로는 보지 말라고! 그 요괴는 이곳으로 넘어온 후 부상이 심해, 이미 소멸하였으니.”

추가로 다른 설명도 이어졌지만, 팔찌에게 들은 이곳에 대한 정보는 너무 부족했다.

“일단 가까운 마을로 이동하자!”

“그런데 우리가 말이 통할까? 외계어일 거 아냐?”

“에잇, 언어 재능도 많으면서 이곳 언어도 못 하나? 바보 같은 주인이네.”

“헐, 내가 재능을 부여받는 방식인데, 지구에 이곳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딴 소릴 해?”

“에이, 알았어. 나도 에너지가 매우 부족해. 이 능력을 주고 나면 한동안 난 쉬어야 해.”

팔찌가 투덜거리면서도 태월 일행 전체에게 통역 재능을 부여해주었다.

빛무리가 팔찌에서 나와 일행을 감쌌다.

“흠, 이제 그 마을을 찾아야 하네? 이쪽 편으로 가면 된다고 했나?”

태월의 물음에도 팔찌는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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