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의 재능을 삼켜라-179화 (179/250)

179화. 요괴의 천년 무덤

아샤가 눈빛을 반짝이며 태월을 부추겼다.

“뭐, 문화재나 골동품 찾는 일이 시각을 다투는 일까진 아니긴 하지. 요괴 무덤을 찾기 전에 여기 물건부터 처리해야 할 거야. 다른 골동품 회수 때도 배낭은 미리 비워야 하는 일이니.”

“그럼 어떻게 할 거야?”

“이 상태로 한국으로의 반입은 기록을 남기게 될 거야. 나 혼자 다녀오면 될듯한데. 하루면 다녀오잖아?”

한국과 일본은 그만큼 가깝기에 멀다고 느끼진 않는 태월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아샤와 아진은 태월의 서적과 서류정리를 도왔다.

그 와중에 요괴 무덤과 관련된 기록도 한 장 발견해서 지도의 내용을 재검토할 수 있었다.

태월은 다음 날 아침 인천 공항까지 다녀왔다.

공항에서 미리 대기 중이던 컨테이너 화물차에, 배낭 속 물건을 대부분 풀어내고는 일본으로 다시 넘어왔다.

“뭐 서울에서 부산 다녀온 느낌이네.”

“그래도 오빠가 없으니 불안했어. 둘이 온종일 TV만 봤다니까.”

“이토 타쿠야가 신고는 안 했나 보네?”

“안내인의 말로는 그 보안회사가 총력적으로 움직였나 봐.”

“그거야 신경 쓸 일도 아니고, 그 이토는 어떡하고 있다던?”

“탐정 사무실에도 의뢰했는데, 처음부터 난항에 빠졌다는데? 그 많은 물건을 빼내려면 대형차량이 동원되어야 했는데, CCTV상으로도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잖아. 그리고 바퀴 자국도 깊이 파여야 하는데, 길바닥도 큰 차이가 없고.”

금괴와 대형금고가 통째로 사라졌다.

그와 더불어 두 컨테이너 분량의 골동품 무게도 상당할 터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알게 되긴 할 거야. 한국의 박물관에 익명으로 기증된 걸로 하지 뭐. 이토도 자신의 것이란 걸 합법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없잖아?”

결국 태월의 말대로 귀신이 곡할 희한한 사건으로 마무리될 터이다.

“번호판도 미리 바꿔치기해서 다닌지라, 우리가 드러날 일이 없긴 하다며?”

“그러니까 뉴스를 뭐 하러 자꾸 본 거야?”

“할 일이 없었다니까. 그런데 사토 유마는 그 요괴 무덤을 잘 모른대?”

“자신도 얼핏 듣기만 했지, 그 실체를 확인해보진 못했다고 하더라. 부풀린 소문쯤으로 생각하던데.”

“오빠가 없는 동안 아카 언니에게 연락해서 과거 지명을 확보했어.”

“오, 나도 낼쯤 전화해보려 했는데, 수고들 했어. 그럼 장소도 나왔겠네?”

온종일 안가에 있었다면서, 어디서 지도를 구했는지 테이블 위에 펼치는 아샤다.

“여기야!”

“흠, 여긴 시코쿠?”

시코쿠는 일본 열도를 구성하는 4개의 주요 섬 중 가장 작은 섬이다.

섬 크기에 비해 절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시코쿠는 네 개의 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가와현, 도쿠시마현, 고치현, 에히메현이다.

“보내온 자료에 따르면 몇십 년이 지나지 않아, 이곳에 어마어마한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나 봐. 그게 난카이 해곡에 의해서라는데, 연구에 따르면 해곡의 움직임이 급해지고 있대.”

“어마어마? 그럼 규모가 최소 9만큼은 된다는 소리네? 진도 9 정도의 에너지가 모이려면, 무려 천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던데.”

“바로 그거야. 시코쿠에서 1천 년 전에 요괴들의 대단위 전쟁이 있었나 봐. 양패구상으로 땅이 갈라졌었는데, 그 속에서 무덤이 형성된 거지.”

“그런 기록이 있어?”

“아니, 그 당시엔 결계가 워낙 광범위해서 인간들은 몰랐다고 해.”

그 당시는 헤이안 시대(794년~1185년)였다.

일본 헤이안 시대 고대국가의 중심은 교토였다.

“오히려 이 일로 인해 에너지가 뭉쳤고, 헤이안 시대의 중심이던 교토는 지금까지도 지진 발생이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어. 교토로 힘이 뻗치는 게 사라진 셈이지. 그 요괴 전쟁이 있었을 때가 이치조 천왕이 등극하던 시기야.”

야시히토 친왕이 986년 7월 6세의 나이로 이치조 천왕이 되었다.

“그래서 시코쿠의 어디인데?”

“에히메현이라는 곳인데, 난카이 해곡과도 멀지 않잖아. 그곳에서 이시즈치산 쪽이라는 것까지만 밝혀졌어.”

에히메현의 현청 소재지는 마쓰야마시다.

마쓰야마시의 남쪽 지역은 시코쿠 산지의 서부를 차지하여 전체적으로 험준한 산간지대를 이루고 있다.

그 중앙부에는 이시즈치산(1,982m)이 있는데, 이 산은 일본의 신성한 산 일곱 곳 중 하나다.

날카롭고 바위가 많은 정상 때문에 돌망치라는 이름이 붙은 산이다.

에히메현 사이조시와 구만타카하라쵸의 경계에 위치한다.

“밝혀진 곳까지만 일단 가야겠네. 그럼 바로 출발하지.”

“응, 우린 출발 준비 다 했어.”

아샤는 소풍 가는 기분을 느끼는지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태월 일행은 도쿄에서 출발하여 시즈오카, 나고야, 교토를 거쳐 오사카, 고베시를 통과해 시코쿠까지 가는 긴 육로 횡단을 하려 했었다.

그러나 사토 유마가 배를 준비해놨다는 말을 듣고는 곧바로 방향을 바꿨다.

도쿄 아래에 있는 요코하마에서 출발해 시코쿠로 바로 가는 해로를 택한 것이다.

시코쿠에 도착한 태월은 소생자인 안내인의 인도에 따라 이시즈치산의 기슭에 다다랐다.

“이곳 숙박업소에 머무르고 있겠습니다. 일을 마치면 곧바로 연락을 주십시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안내하느라 고생했어.”

“마스터! 아닙니다. 모시는 것 자체가 영광입니다. 캠핑 온 기분을 즐기고 싶으시다기에 좋은 곳으로 모시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30대 후반은 되었을 법한 그의 모습은 우직해 보였다.

“뭐, 늘 편안하게 지냈는데, 이러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이지. 그럼 우린 먼저 가겠네.”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그를 뒤로하고 태월 일행은 산 쪽으로 향했다.

삼십여 분을 더 간 후에 적당한 캠핑 장소를 찾아낸 태월은, 배낭에서 텐트를 꺼내 야영지를 만들었다.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 아침에는 루루가 이 산을 정찰하도록 해.”

아리랑과 놀고 있던 루루가 날개를 파닥댄다.

알아들었다는 루루만의 제스처다.

바베큐파티를 겸해 식사와 술을 즐기는 태월 일행이다.

그리고 셋은 새벽이 되어서야 잠을 청했다.

태월이 눈을 떴을 때는 점심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굳이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었기에, 아샤와 아진을 안고 꿈나라 여행을 갔다 온 것이다.

“어? 너희는 왜 이 텐트에 들어와 있냐?”

“우리는 이미 정찰을 끝냈거든요?”

“벌써?”

“벌써라뇨? 지금 오후인데. 우리 배고프다는.”

“헐!”

언제부턴가 아리랑은 태월이 주는 음식에 맛을 들였다.

엄연히 사료가 있음에도 말이다.

“네가 그렇게 행동하면 루루가 따라 해!”

“동물차별!”

새의 구강구조로 저런 말을 던지는 루루가 신기하긴 했다.

사람의 말을 구사하는 건 구관조나 앵무새도 가능하긴 하다.

물론 그 새들은 소통하는 언어가 아니라, 흉내 내는 것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우리라니? 정탐을 루루 혼자 한 게 아니야?”

“저도 했는데요?”

“그 몸으로?”

“에이, 고양이 몸체로 이 넓은 곳을 언제 다녀요. 본체로 좀 돌아봤죠.”

“헐, 너 그러다 사람들 눈에 띄면 어쩌려고 그랬어?”

“주변에 사람들이 있는지 없는지는 제가 먼저 알아차리거든요? 내가 일반 호랑이인가요? 명색이 요괴도 때려잡는 신수입니다만? 너무 한 거 아닌가요?”

“맞아, 마스터는 우릴 너무 무시해!”

루루까지 합세해서 태월에게 섭섭하다고 시위하고 있다.

“야야, 너희 공모하는 거 너무 표가 나! 섭섭하긴 개뿔이. 또 뭐 먹고픈 게 있어서 지금 이러는 거지?”

“헤헤. 너무 티 나나요?”

“응, 어설퍼! 그런데 정찰한 소득은?”

“약해지긴 했지만 결계 흔적이 있었어요. 절벽 쪽인데 사람이 오가긴 힘든 위치였고요.”

“결계? 얼마나 약해졌길래?”

“힘 좀 쓰면 저 혼자서 뚫을 정도는 될걸요.”

지도 외의 다른 기록에 그 내용이 일부 나왔었다.

인간 세상에까지 피해가 가면 주신의 분노를 받기에, 두 세력이 힘을 합쳐 이 산 전체에 결계부터 치게 된 거라고.

그리고 그 후에 전쟁을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요괴들이 참여했는지에 대한 세세한 기록까진 아니었고, 그 수에 대한 것도 없었다.

“흠, 일단 나가 있어. 옷부터 입어야 하니까.”

“에이, 우린 이미 다 봤는데요 뭐.”

“나도 다 봤지롱!”

“보긴 뭘 봐! 얼른 안 나가?”

아샤와 아진이 알몸 상태로 자고 있었기에, 아리랑이 저런 소릴 하는 것이다.

비록 얇은 천을 이불 삼아 덮고는 있었지만.

루루까지 밖으로 나가자, 이미 깨어있었던 아샤와 아진이 몸을 일으켰다.

“쪽! 쟤들은 예전부터 우리 몸을 자주 봤는데요. 새삼스럽게 뭘 그래요.”

“쪽! 우린 상관없으니 오빠 편한 대로 하세요.”

아샤의 늦은 아침 인사에 이어 아진도 태월에게 짧은 입맞춤을 한다.

“그렇긴 하지만 오늘따라 능글맞더라고. 그래도 성과를 가져왔으니 원하는 걸 해줘야겠지.”

태월이 옷을 걸친 후 식재료들을 꺼내 놓으니, 아샤와 아진이 요리를 시작했다.

아리랑과 루루는 생선요리를 별미로 생각한다.

푸짐한 요리를 맛보고 나서야 일행은 자리를 정리했다.

“제가 앞장설게요!”

루루를 따라 일행들이 산으로 올랐다.

오후 4시경이지만, 해가 지더라도 달빛만으로 산행이 가능한 태월 일행이다.

두 시간 정도의 산을 오르는데, 등산로가 아닌 곳으로 가다 보니 난관이 곳곳에 있었다.

“저 위에 있는 바위틈에서 결계가 느껴지긴 하네. 암벽 등반가나 오를 위치군. 굳이 그들을 흉내 낼 필요는 없겠지?”

일행이 고개를 끄덕이자, 태월이 앞장을 서서 암벽을 타고 성큼성큼 올라간다.

아샤와 아진도 땀 하나 흘리지 않고 태월의 뒤를 따랐다.

갈라진 암벽의 틈 사이로는 뜨겁고 때론 차가운 기운이 교차하고 있었다.

태월은 양손에 영혼 에너지를 모은 뒤, 그 교차하는 순간에 맞춰 틈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쿠르릉! 쿠릉!

톱니바퀴가 멈추는 듯한 음향이 들리며 틈 사이로, 성인 하나가 들어갈 만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 이제 들어가 볼까?”

태월은 변신 스카프로 방어구 복장을 만든 후, 선두로 진입을 했다.

루루는 곧바로 뒤따르며 앞쪽으로 튀어 나가 횃불 역할을 대신했다.

땅 아래로 내려가는 지형이었고, 긴 회랑 같은 곳을 지나는 데만 1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그리고 드러난 곳은 사방 200m는 될 법한 공간이었다.

“에이, 난 무덤이라고 해서 진짜 묘라도 있는 줄 알았네.”

그 당시 죽은 상태로 여기저기 흔적이 남아 널려있는 그런 곳이다.

세월이 오래되다 보니 그 형체를 제대로 갖춘 건 없었다.

“오빠? 겉으로 보기엔 별거 없는데요? 묘지도 없고 말이죠.”

“흠, 글쎄 더 확인해봐야지. 여기선 기운이 좀 비틀린 것 같아.”

고개를 갸웃거린 태월은 십여 분 정도를 벽면을 더듬으며 다녔다.

그리고는 한 곳에 이르러 발을 멈췄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문신의 에너지까지 끌어들여 양손에 집중시켰다.

그리고는 힘차게 벽을 세 차례나 가격했다.

-쿠쿠쿵! 퍼걱!

굉음이 울리며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까지 일행에게 들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