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의 재능을 삼켜라-177화 (177/250)

177화. 일본 도쿄로

태월의 행동에 궁금해진 일행은 모여든다.

“야, 이 물건들 정체가 쓰여있어. 거북이가 바다에 침몰한 선박들에서 이걸 다 가져온 거네. 서양의 것도 있지만, 대부분 한국, 중국, 일본 거야.”

“그럼, 전리품이 아니라 주은 거잖아.”

“거북이가 으스대고 싶었나 보네.”

“한국에서도 박물관을 만들면 어떨까? 오빠는 돈은 그리 안 필요하잖아?”

“공짜로 생긴 건데 그게 낫겠다. 여기 물건들은 배낭으로 몇 번 옮기면 다 되겠네. TW 박물관을 짓고 러시아의 BATR 박물관과 교류전도 해도 될 거고. 여러모로 괜찮은 생각 같네.”

“거북선은 이 주변을 매입한 후에 작업하는 게 낫겠지?”

“뭐, 그래야 뒤탈이 없을 거 같긴 해.”

태월은 공간 배낭을 열어 최대한 입고를 시켰다.

그리고는 일행과 함께 요트로 향했다.

서울의 TW에 연락하는 것은 태월이 해야 할 일이었다.

다음 날 서울에서 내려온 법무팀 소속 변호사가 움직였다.

다행히 정부의 땅 쪽이 아니라 개인 땅들에 속한 위치 쪽이라 매입은 쉬웠다.

더불어 해양 자원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개발허가까지 진행시켰다.

잘나가는 기업답게 일사천리로 일은 진행되었다.

TW가 움직이니 언론에서도 호기심을 가졌으나. 잠깐 떠들고 마는 그런 소재였을 뿐이다.

그리고 일주일 후 언론들이 난리가 났다.

“400년 전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이라니? 이게 사실입니까?”

“동위원소 연대 측정법을 통해서도 확인된 사항입니다. 자세한 건 전문가들에게 문의 바랍니다.”

TW에서는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해저에서 올라오는 거북선이 그대로 TV 카메라에 노출되는 건 허용했다.

그동안 태월은 잠수정이 보석동굴로 이동하는 방법을 마련해놨다.

원래는 가족들의 비밀 공간으로 쓰려 했지만, 이곳에 자주 내려올 일도 없었기에 개방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역사적 보물과 골동품들이 사라진 동굴이 되었지만, 보석 해저 동굴이라는 그 하나만으로도 관광사업의 가치는 차고 넘쳤다.

결계를 허물고 그걸 대체하는 최첨단 신기술을 도입했는데, 미국 RAON의 도움이 컸다.

“웃기는 일이 많이 생겼어.”

“무슨 일이길래?”

“기존에 있던 거북선 선박들이나 모형들을 새로 만들게 되었잖아. 그런데 그게 TW에 수주가 들어왔다고 하네.”

“하긴 조선업도 진출한 상황인데 나쁘진 않네. 관광사업 쪽으로도 도움이 될 거고.”

“남해안도 다 돌았고 이젠 서해를 거쳐 인천까지 왔잖아. 벌써 20일째야. 나도 이제 복귀해야 할 거 같고.”

설희의 말처럼 한 달 가까이 걸린 여행이 되었다.

“연희를 너희 집에 머무르게 해도 되겠어?”

“한국에서 살고 싶어 하니 이게 최선이잖아. 오빠가 한국에 얼마나 있을지도 모르는데. 또 연기 재능이 있으니 그쪽으로 키우는 것도 나쁘진 않지.”

구미호인 성연희의 거처까지 정해지자, 태월은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태월은 여행을 마친 후 홍대 쪽에서 보름을 더 머무르다 압구정으로 넘어갔다.

그곳에서 한 달을 더 보낸 후 9월 의사면허 자격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또한 아샤도 외국인으로서 약사 국가시험에 응시했다.

“이제 러시아로 갔다가 언제 올 거냐? 둘은 대학도 졸업했고, 한국서 자격시험도 통과했잖아. 결혼은 언제 하려고?”

“세상을 돌아보고 올게요. 그리고 결혼은 너무 빠르잖아요. 요즘 누가 20대 초중반에 해요?”

“그 애들이야 학교도 졸업 못 했고, 사회기반도 없으니 그런 거고.”

“그래도 너무 일러요. 하고 싶은 일도 좀 더 하고요.”

“당신! 아들한테 왜 그리 닦달해? 혹시 어머님이 증손자 타령하셔?”

“아, 아니야. 그냥 손이 귀하다고만 했어.”

-짝!

“아, 따거! 손이 왜 이리 매워!”

“그게 같은 말이잖아. 그리고 아샤도 이제 의사 생활해야 하는데, 벌써 애 엄마 만들면 어떡해? 생각 좀 하고 말해.”

“에이, 양쪽에서 나만 가지고 뭐라 하네.”

조민희의 면박에 박승철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그 해저 동굴에서 가져온 것들로 박물관을 꾸미는 데는 문제 없게 했지만, 거북선에 대해 국립박물관에서 자꾸 입맛을 다시네.”

“뭐 한국의 역사적 상징 같은 것이기도 하니까요.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중앙청에 있던 국립중앙박물관을 용산에 새롭게 짓고 있잖니.”

1997년 10월 31일에 용산 새 국립중앙박물관 기공식이 있었다.

그리고 2005년에 준공이 될 계획이었다.

“네, 그렇다고는 들었어요.”

“그 땅 일부를 우리에게 불하해 주겠다더라. 그래서 TW박물관을 협력 박물관으로 특별히 수용할 생각이라고 제의하던데?”

“거북선의 힘이 그 정도네요.”

“단순한 거북선이 아니잖아. 그 안에 그 당시 사용된 조선의 무기들과 대포들도 있잖니. 해방 전에 20만 권의 역사 서적을 일본이 다 태워 남은 게 없잖아. 그러니 우리가 보유한 자료가 그런 쪽에선 대단한 거지.”

해저 동굴에 있던 고서적들엔 그 잃어버린 역사적 사실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국립중앙박물관 부지에 TW 박물관을 유치하려는 것이다.

민간기업보다야 국가 차원에서 유물들을 보호하는 게 더 안전하다고 여기는 정부다.

그리고 그렇게라도 해야 역사를 제대로 세우지 못한 국가로서도 체면이 서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친일파나 친중파들이 바쁘겠네요?”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제대로 일침을 가하는 거지. 시기적으로 현재 대통령이 레임덕 상태긴 해도, 의지는 꽤 강하잖니. 뭐, 서로 윈윈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 우리도 경호 인력을 꽉 채우면 낫지 않을까.”

“그럼, 그 일은 엄마가 진행해주세요. 이참에 역사 교과서에도 많은 변화가 생기겠네요.”

“아직 우리가 밝히지 않아서 쉬쉬하는 거지만, 박물관 개관하면 난리도 아닐 거야. 그리고 그동안 뜻있는 역사학자들도 초빙해놨어. 자료가 많으니 체계적 정리 후에 제대로 터트려야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동시 발표할 생각이야.”

“한, 중, 일 역사 관련 책들이 꽤 있으니 교차입증도 쉽겠네요.”

“해외에 밀반출된 한국 문화재들이 전부 그들 국가의 정부 소유가 된 건 아니야. 그것들을 사들이는 게 어떨까? 민간기업이나 개인 소장품들도 상당하거든.”

“쉽게 팔려고 할까요? 음, 그럼 그걸 제가 맡아 볼게요. 어차피 세상을 돌아볼 생각이니까요.”

“그래 주면 고맙지. 그래도 늘 안전을 먼저 생각해라.”

그로부터 일주일 후 거북선은 TW의 이름으로 정부에 기증이 되었다.

그리고 한 달 후엔 국립중앙박물관의 부지가 늘어나고, 그곳에 TW 박물관이 협력 박물관으로서 기공식을 가질 예정이다.

태월은 기공식을 보지도 않고 아샤와 아진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동물 반입 절차가 쉽지 않은 터라, 공간 배낭의 수면 캡슐에 아리랑과 루루를 재운 상태다.

“안녕하십니까? 사토 유마 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토리의 일본 이름이 사토 유마다.

마음을 읽는 요괴인 사토리가 고베 대지진 때 화재로 사망한, 젊은 변호사 사토 유마로 살아가고 있었다.

지금은 너무나 정치가로서도 유명해져서 이렇게 직접 마중을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비서관으로 보이는 남자의 차를 타고 태월 일행은 이동하였다.

신 도쿄 국제공항에서 도교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아직은 도쿄 공항이 국제선보단 국내선 공항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그래서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면 도쿄에 있는 도쿄 공항이 아닌, 혼슈 지바현에 있는 신도쿄 국제공항으로 와야 한다.

인천공항도 2001년 3월 29일에 개항했기에 불과 반년밖에 되지 않은 신공항이다.

도쿄 외곽의 저택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사토 유마가 마중을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마스터! 정말 오랜만입니다.”

“하하, 오랜만이긴 하네. 그런데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

“다들 동안이라고 좋게 생각하긴 하지만, 조금씩 나이에 맞게 바꿀 생각입니다. 두 분 아가씨들도 오랜만입니다.”

아샤도 RAON의 인공위성을 이용한 화상회의를 통해 사토 유마와 얼굴을 익힌 사이다.

“네, 직접 보니 더 반갑네요.”

“건강해 보이네?”

“네 저도 반갑고 좋습니다.”

“모모코는 잘 있지?”

“만나보시겠습니까? 장로파가 신녀파를 복속시켜 합친 후에는 조용해졌습니다.”

“아냐, 훗날 따로 시간을 내어 만나도록 하지.”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거실 소파에 앉아 담소를 나누다가 저녁쯤이 되었다.

식솔인 듯한 사람들이 태월 일행을 저녁 테이블로 안내했다.

태월을 신경 써서인지 음식들이 주로 한식이었고, 간간이 일본식이 섞여 있었다.

식사는 이어졌고 못다 한 이야기들도 꺼내게 되었다.

“문화재 반환이나 매입이라. 뭐 해보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일 협력 및 화해 차원에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여기 명단이 있어. 한국에서 조사한 내용도 있고, 아카의 정보에 의해 미 정보부에서 알고 있는 소유자들도 적어놨지.”

태월이 내민 서류를 공손히 받아 그 내용을 훑어보고 있는 사토 유마다.

“거기에 꽤 많은 부장품 소유자가 이토 타쿠야던데, 안중근 의사에게 죽은 그 히로부미의 후손인가?”

“하하, 조사해봐야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습니다. 일본은 성이 굉장히 많습니다.”

“한국엔 약 300개의 성이 있다던데, 일본은 500개쯤 되나?”

“약 30만입니다. 중국이 3,000개인 것에 비해 굉장한 숫자죠. 그렇기에 일본은 흔하게 성을 이름처럼 부릅니다. 아주 친한 경우에만 이름을 부르고요.”

“성이 그렇게 많으면 이토란 성은 그만큼 희소한 거 아닌가?”

“희소한 건 귀족들에게나 있었고요. 이토 히로부미는 평민 출신입니다. 평민들은 성을 쉽게 바꿨거든요. 결혼 후에 처가 성을 따기도 하고 스스로 성을 쉽게 바꾸기도 합니다. 범죄자들이 보통 흔하게 하지요.”

한국은 ‘김, 이, 박, 최, 정’의 5대 성씨가 인구의 54%를 차지하고 있다.

대신 일본은 상위 10개의 성씨가 인구의 약 10%만 차지할 뿐이다.

“있는 곳도 도쿄와 멀진 않으니, 이자부터 알아봐 줘.”

“그럼 도쿄와 가까운 곳 연관자들을 조사해보겠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그곳에서 태월 일행은 이틀간 머물렀다.

도쿄 관광도 다니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소장품이 많은 순서로 하면 일단 근처는 3명입니다. 이토 타쿠야, 야마다 히야사스, 사이토 스미히라입니다.”

“음, 이토부터 시작하지!”

30분에 걸쳐 셋의 인적 사항 및 개인 정보를 확인한 태월은 일행과 함께 가나가와 현의 가마쿠라로 향했다.

가마쿠라시는 중세의 군사, 정치 도시로서 유명한데, 800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로 12세기 말부터 150년간 일본 정치의 중심지였다.

1966년에는 ‘고도에 있어서의 역사적 풍토보존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었을 정도다.

프랑스의 니스 중국의 둔황과 자매도시 협정도 맺어져 있다.

문화시설로는 일본 최초의 근대적 미술관인 시립미술관을 비롯하여 시립국보관 등이 있다.

“마스터! 저깁니다.”

사토 유마가 보내준 안내인은, 고베 대지진 당시 태월에 의해 소생된 사람 중 하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