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400년 전 거북선
구미호가 알려준 곳은 칠전도와 한산도 중간쯤에 위치한 견내량 바닷속이다.
“그런데 여우가 바닷속에서 어떻게 들어갔었어?”
“내가 전에 그놈을 구해준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보은으로 구슬을 하나 얻었는데, 입에 물고 있으면 물에서도 숨을 쉴 수 있었어요.”
“오, 그런데 그 구슬이 지금은 없잖아?”
“제 몸에야 없죠. 그 당시는 제가 살아 있었을 때였거든요. 그 폐가 알죠? 거기 돌담 아래에 내가 묻어놨어요.”
“그럼 지금 그 몸으로 어떻게 찾아오나?”
“에이, 제가 구미호예요. 인간의 몸으로 됐긴 해도, 저도 도력이 있거든요? 이 정도면 자고 일어나면 다 회복되죠.”
태월의 말에 구미호가 상황설명을 했다.
“뭐야! 원래부터 병원 갈 필요도 없었잖아. 의사도 필요 없는 건데.”
“제가 받은 것만 있어서, 뭐라도 보답하고 싶어서 이러는 거죠. 다 아시면서….”
“알긴 뭘 알아? 아유 막내가 인제 보니 뺀질이네. 능구렁이야.”
전체로는 아웬이 막내지만, 여자로서는 구미호가 막내가 된 것이다.
아루가 구미호에게 통박을 주고 있었다.
“아루 언니? 왜 이러세요? 저 이리 보여도 한 순진 하거든요?”
“음, 그 얼굴이 순진한 얼굴이긴 해. 어떻게 얻어도 저 몸을 얻었을까? 다들 겉만 보고 깜빡 속겠어.”
아루의 말처럼 성연희의 얼굴은 청순한 미인형에 속했다.
태월 일행에 비하면 미모가 떨어지긴 해도, 일반인과 비교하면 연예인급은 되었다.
“그런데 그 구슬이 꼭 필요해? 잠수 장비를 입으면 되잖아. 구슬이야 다음에 가져오면 되는 거고.”
“네, 꼭 필요해요. 그 동굴에 그 거북이가 결계를 쳤어요. 그래서 그 구슬이 있어야만, 결계가 해제되거든요.”
“흠, 그래서 그 동굴이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단 소리도 되네?”
“맞아요. 그냥 바위처럼 보일 뿐이거든요. 그리고 그 결계 때문에 그 배가 잘 보존된 거고요.”
“배만 있나?”
“제가 본 건 거북선이었지만, 그 안쪽에 뭐가 있긴 할 거예요. 그 요괴가 전리품을 좋아했거든요. 저도 그때는 재물에 그리 관심이 없어서 신경 안 썼지만요.”
“호호, 그게 무슨 전리품이야? 전리품이란 건 누군가와 싸워서 뺏어온 거잖아.”
“어머, 그게 그렇긴 하네요. 그런데 그 거북이는 늘 그 용어를 썼어요. 저도 따라 하다 보니 그만….”
일행들도 정확히는 모르는 일이다.
실제로 그 요괴가 다른 존재들과 다퉈서 뺏어왔을 수도 있는 일이고.
그날 밤은 거북선을 타고 바다를 누비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었을 때 구미호의 말대로 그녀는 멀쩡히 걸어 다녔다.
“그럼 잘 다녀오고, 그동안 우린 식사 준비를 해놓자.”
구미호와 함께 구슬을 가져올 자는 아웬이 자원했다.
같은 막내끼리 호흡을 맞춘다나 어쩐다나 하면서 손을 번쩍 든 것이다.
“미호 누나! 갈까요?”
“야! 이젠 이 몸의 이름으로 불러야지.”
“알았어요. 연희 누나!”
“내 발목뼈가 붙긴 했어도 오늘은 조심해야 하는데?”
“아, 그래요? 그럼 제게 업히세요.”
아웬의 등에 업힌 연희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일행들에게 손을 흔들어 준다.
둘이 떠나가자 아루가 고개 흔들었다.
“아유 진짜 구미호네. 내가 아침에 뛰어다니는 걸 봤거든?”
“호호, 그래도 둘이 잘 지내니 흐뭇하잖아.”
“천년 묵은 구미호를 동생으로 둔 우리의 업보지. 자 이제 식사 준비를 해야지? 오늘 당번이?”
“나하고 아샤!”
설희가 나서서 아샤를 데리고 주방으로 사라졌다.
태월은 방파제로 낚싯대를 들고 나갔다.
한 시간 정도는 시간 여유가 되기에 손맛을 즐기려는 것이다.
기운까지 사용하면서 낚은 결과, 참돔 한 마리와 농어 두 마리를 건지게 되었다.
“뭐, 이 정도면 아침 횟감으로는 딱 적당하네. 욕심은 여기까지.”
태월이 배로 돌아와 회를 뜨고 있는데, 아웬과 연희가 돌아왔다.
“오빠! 웬 횟감이에요?”
“아침에 시간 나기에 낚아 온 거야. 갔던 일은 잘되었어?”
“호호, 그럼요. 짠! 이거거든요.”
연희가 품에서 꺼내 든 건 포도알만 한 푸른빛 구슬이었다.
겉보기엔 그냥 청옥으로 만든 한복 액세서리로 보였다.
“식사 끝나면 바로 가보도록 하자.”
“수심은 얼마나 될까? 수심에 따라 바닷물 온도가 달라지잖아.”
“남해 평균 70m니까 그쯤은 생각해야지.”
“정확히 재보진 않았지만, 70m는 바닥 수심일 뿐이야. 우리가 가려는 그 해저 동굴은 위로 상당히 올라와 있어. 30m 정도만 내려가면 될 거야.”
연희의 부연 설명에 다소 안심을 하는 일행들이다.
30m라고 해도 얕은 게 아니다.
서해의 바닥 수심이 50m 깊이였다.
식사를 하면서도 대화는 이어졌다.
“그런데 거북선! 그거 어떻게 가져올 건데요?”
“호호, 아직 연희는 오빠가 가진 가방을 잘 모르는구나. 공간을 확장한 배낭이 있는데, 일본에서 얻은 신의 유물 중 하나야. 크기는 컨테이너 두 개 정도의 크기. 헉!”
아샤가 말을 하다가 놀란 이유는, 거북선의 크기가 그것을 한참 초과하기 때문이다.
거북선의 길이가 25m 정도고 판옥선의 길이는 32m였다.
그런데도 조선 주력선인 판옥선엔 125명의 인원이 필요하지만, 거북선은 오히려 많은 148명이었다.
그래서 거북선은 전쟁에 쓰긴 좋으나 효율성이 떨어져, 각 군영마다 한 척씩만 배치하고 더는 만들지 않았었다.
“오빠? 20ft 컨테이너 길이가? 6m지?”
“응 그렇지. 40ft가 12.192m니까. 그리고 내 배낭은 거북선을 넣진 못해. 길이도 문제지만 높이가 5m가 넘으면 안 되거든. 내가 알기론 거북선의 높이가 6m는 넘잖아.”
“태월? 그런데 거북선을 어떻게 가져오려고 천하태평이야?”
“가서 직접 확인하고 정부에 알려서 인양시키려고 한 건데?”
“악, 그런 게 어딨어? 우리가 직접 탐험해서 얻은 획득물인데. 그런 건 의논해야지. 혼자 결정하는 게 어딨냐?”
태월은 그걸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지라, 결국 다수결에 따르기로 했다.
투표에선 정부 인양을 반대하는 쪽으로 결정이 났다.
특히나 연희가 결정적이었는데, 태월에게 주는 선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뭐 다수가 그렇다니까. 그렇게 하지 뭐. 그런데 그게 물에 뜰 수 있긴 한 거야? 띄우기만 하면 우리 요트에 연결해서 끌고 가면 되긴 한데.”
태월은 연희를 돌아보며 상황을 물었다.
“그 거북이 요괴가 물에 관해선 박사잖아. 그리고 그 애는 완성품으로 놔두지, 장식용으로 두진 않는 성격이야.”
“음, 끌어 올리는 게 문제군. 수압도 생각해야 하고. 이럴 때 아쿠가 있으면 간단한데. 내가 가능하려나?”
태월은 영혼 에너지로 거북선의 겉을 보호해볼 생각이다.
문신의 격이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아져 중급신 격이 되었지만, 이런 식으로 활용해 본 적이 없어서 장담하지 못했다.
식사를 마치자 태월 일행은, 요트를 몰아 견내량 쪽으로 향했다.
앞뒤 섬의 지형을 살펴보며 장소를 확인하고 있는 연희다.
“저쪽 절벽처럼 보이는 곳 보이죠? 그 앞에서 20m 거리를 벌리고 내려가면 돼요!”
“정박하기도 적당한 곳이네. 자 다들 잠수 준비해. 그리고 아샤와 아진이는 옷을 제대로 입도록 해. 여긴 사람들이 꽤 있잖아.”
둘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태월은 연희가 찍어준 그곳으로 가서 요트를 정박시켰다.
“아웬은 아리랑과 루루를 데리고 배를 지키고 있도록 해. 누가 다가와도 가능하면 다투지 말고. 관심 몰리는 일은 하지 말아라.”
“네, 삼촌!”
“그리고 밧줄을 걸고 내려갈 테니 신호를 보내면 크레인으로 끌어올려.”
비너스 호에는 크레인 기능도 추가되어 있는지라, 150t 이하로 추정되는 거북선을 끌어 올릴 정도는 되었다.
요트에서 줄 사다리가 내려지고, 성연희를 필두로 태월 일행은 곧바로 잠수를 시작했다.
태월은 와이어에 밧줄을 연결한 후 그걸 길게 풀어나갔다.
목적지가 다 왔는지, 연희의 수신호가 이어졌다.
젤 후미에 있던 태월까지 합류하게 되자, 연희가 암벽 면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슈아아!
암벽 면을 통과하자 거세지 않은 와류가 일긴 했지만,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엔 문제가 없었다.
동굴 속의 첫 입구는 수심 7m 정도의 바닷물이 50m가량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 거북선이 떡하니 몸체를 자랑하며 물 위에 있는 것이다.
“푸하, 오, 이게 그 거북선이구나.”
“푸, 헉? 깜짝 놀랐네. 배를 아예 띄워놓았네요? 컴컴하니 귀선 느낌이 나네요.”
“여긴 공기가 통하는 걸 보면, 어디론가 풍혈로 이어진 듯해.
“묵은 공기가 아니라 상쾌한 기분이 드는 걸 보면 그럴 거 같아요. 그런데 공간이 상당히 넓은데요?”
“거북선은 일단 조금 후에 살피고 저 뒤쪽으로 가보자.”
태월이 앞장서서 수영하며 땅 쪽으로 일행을 이끌었다.
일행들이 전부 땅 위로 올라오자, 태월은 공간 배낭에서 횃불을 5개 꺼내 나눠주었다.
횃불이 밝혀지자 주변을 둘러보느라 다들 바쁘다.
연희가 그들을 지나쳐 동굴 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행 또한 그녀를 따라 그리로 가게 되었다.
“와, 이거 보물 동굴이네? 동굴 벽 자체가 보석광산이잖아!”
횃불의 빛에 반사되며 환상적인 공간을 만들어냈다.
“오빠! 차라리 여길 매입해서 거북선을 이 자리에 그대로 둘까?”
“글쎄, 거북선이 결국 목선인데 수명에 한계가 있을 거야. 차라리 밖으로 가져가는 게 나을 거 같다. 수리할 부분이 있으면 해야 하지 않겠어?”
태월의 설명에 아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른 조건을 붙였다.
“그럼 이 보석 동굴이라도 매입하자. 우리의 판타지 공간을 만드는 거야.”
“그것도 좋네. 그런데 이 동굴의 소유권이 애매하네.”
설희가 껴들며 현실적인 이야길 했다.
“뭘 어렵게 생각해. 이곳 절벽 쪽부터 사서 여기까지 개발 허가를 받으면 되는 거지.”
섬을 사본 경험이 있는 태월답게 별거 아니란 식으로 덤덤히 결론을 내주었다.
“다들 이쪽으로 와봐!”
제일 선두에 서서 전진하고 있던 연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 새로운 게 있나 싶은 일행은 서둘러 그녀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빨리했다.
“거북 요괴가 진짜 재물에 욕심이 많았구나. 대체 이게 얼마나 되는 거야?”
“오오, 해적선의 보물창고야!”
“거북선이거든?”
일행의 눈 앞에 펼쳐진 건 보물 산이 아니었다.
그냥 쌓아둔 게 아니라 진열을 해놓은 것이다.
“이 정도면 콜렉터네. 제대로 된 수집가란 소리지. 아마 물건들도 단순한 귀금속은 아닐 거야. 역사적 물건들도 있겠어.”
“어, 맞네. 여기 그림과 서책들 그리고 도자기들도 있어. 골동품이 상당히 많아.”
서책 쪽에서 연희가 한 권을 골라내서 태월에게 가져왔다.
“이거 여기 있는 물건들의 목록서야. 거북이가 직접 쓴 걸 거야.”
“어머, 거북이가 손이 어딨다고 글을 써?”
“단순한 거북이라면 없겠지. 얘는 요괴였잖아. 사람으로 변신했을 때 쓴 거지.”
태월이 책을 펼쳐보니 한문으로 글이 쓰여있었다.
서문을 읽던 태월이 풉하고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