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의 재능을 삼켜라-174화 (174/250)

174화. 구미호의 소원

아루의 뽐내기 자랑이 끝나고도 한참이나 수다는 이어졌다.

그런 후에야 셋에게 풍혈에 있었던 일을 소상히 알려주는 아루다.

“울릉도 여행은 이 정도로 하고 이제 독도로 넘어가자고. 아쉬운 사람?”

“난 만족! 드디어 독도로 가는구나.”

설희에 이어 다른 일행들도 찬성을 표했다.

비너스호는 울릉도를 떠나 독도로 향했다.

1시간 20분 정도를 나아가자 멀리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독도는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는데, 동도는 유인 등대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해양수산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서도는 험준한 원추형을 이루는 정상부가 있으며 주요시설물로 주민 숙소가 있다.

동도의 높이는 98.6m, 둘레 2.8km, 면적 73,297㎡다.

서도는 높이 168.5m, 둘레 2.6km, 면적 88,639㎡다.

“그런데 국제해양법상 독도가 섬이 아니라 암초로 분류된다며?”

“국제법상으로, 독자적인 경제활동을 유지할 수 없으면 암석이라고 규정하고는 있어.”

섬의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섬에서 마실 물과 식량이 있는지와 자체적 생존이 가능한 환경인가를 따진다.

물론 암초도 주권이 미치는 육지라는 것은 다르지 않으므로, 12해리의 영해와 영공은 인정된다.

단지 EEZ나 대륙붕을 인정받을 수 없다.

“독도는 입도 후에 선착장밖에 못 들어간다니 너무한 거 아니야?”

“그 정도만 해도 다행이라고 하잖아. 원래 정기 여객선 외엔 다른 목적의 배는 전부 입도 신청서를 작성해서, 희망일 7일 전까지 울릉군에 제출해야 한다며?”

“뭐 TW의 이름으로 긴급히 해결했으니 다행이라 여기자.”

태월도 이 부분에선 일행들에게 할 말이 없었다.

단순하게 선착장에 입항하여 독도를 둘러볼 수 있다고만 여긴 것이다.

그나마 일일 입도 제한 인원 1,880명을 넘지 않은 상황에 만족해야 했다.

TW그룹의 해양자원 조사 차원 방문이라는 명목이 없었다면 이것도 불가능했다.

이것도 특수 목적 입도 절차가 존재했으나, 그 과정을 생략 받을 수 있는 것도 TW의 뒷배 덕택이다.

“독도 경비대에 꾸준히 물자지원을 해준 덕을 이제야 보는 거네? 다 작은 엄마 덕분이야.”

설희가 아쉬움을 가진 일행들에게 어깨를 으쓱이며 하는 말이다.

실제로 TW에서는 독도 해양자원을 일찍이 눈여겨보았기에, 연구원도 이곳에 파견해 놓고 있었다.

반나절 동안 독도의 땅을 밟고, 주변 해양 생물을 구경하고 나서 남해 방향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포항에 들러, 죽도시장의 어시장을 방문한 것은 단순한 여행의 재미였다.

남해안은 서해안과 마찬가지로 해안선의 출입이 복잡하다.

바다 쪽으로 많은 섬들이 분포하는 전형적인 다도해를 이루고 있다.

“반도와 만이 연속으로 이어져 진짜 많기는 하네?”

지도를 보고 있던 아루는 하나하나 짚어가며 아웬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해남반도, 장흥반도, 고흥반도, 여수반도, 고성반도 그리고.”

“도암만, 보성만, 득량만, 순천만, 여자만. 광양만, 여수만, 진주만, 사천만, 고성만, 통영만, 당동만, 진해만….”

“얘, 넌 왜 내가 설명 중인데 먼저 앞서가냐?”

“아니, 여기 다 쓰여 있는데, 뭘 그걸 설명해주려 해요?”

“하루 만에 불쑥 크더니 지가 어른인 줄 아네? 넌 아직 아기거든?”

“누님! 같이 큰 처지에 그러지 맙시다. 왜 자꾸 인간도 아니면서 기준을 인간에 둡니까?”

티격태격하는 아루와 아웬의 만담도 이번 여행에 새로 생겨난 여흥이었다.

“여기가 한산도라는 곳이야.”

“에이, 저도 지도 볼 줄 알거든요?”

한산도는 한산면의 본섬으로, 면을 이루는 29개 유·무인도 가운데 가장 크다. 통영시 남동쪽에 있으며, 시에서 뱃길로 2km 정도 떨어져 있다. 한산도는 경남 통영에서 바라보았을 때 미륵도 왼쪽에 있는 자그마한 섬일 뿐이지만, 이 섬은 한산면의 주도이자 한려해상공원의 출발점이다. 즉 행정, 관광 등 여러 분야에서 꽤 중시되는 섬이다. 인구는 17개 마을 615가구 1,079명이다.

“넌 이순신 장군이 왜군 함대를 때려잡은 한산도 대첩의 역사적 장소인 건 모르잖아!”

“뭐, 그게 뭔데요?”

“뭐긴? 세계 4대 해전 중 하나로 손꼽히는 역사적 전투였지. 그게 어찌 된 거냐 하면….”

하루 전날에 이곳 한산도에 올 예정인 걸 안 아루가, 벼락치기로 공부한 걸 아웬에게 쏟아내고 있다.

다행히 기억력은 좋은 아루인지라, 책에 나온 그대로 떠벌리고 있었다.

“오빠? 이쪽이 망산 등산로인가 보네?”

“산행코스는 3구간이야. 제1구간이 제승당에서 망산 정상을 거쳐 진두마을까지고 2시간은 걸릴 거야. 다른 두 구간도 여기서 출발하는데, 목적지가 야소마을이거나 장작지 마을이야.”

“그럼 우린 1구간으로? 야소마을 쪽으로 가면 안 돼?”

“안 될 거야 없지. 그런데 왜 야소마을로?”

“여기 책자에 보면 등산코스가 제일 짧은 3.9km인데 우리 걸음으론 1시간 반이면 넉넉하잖아. 그리고 야소의 유래가 야시, 즉 여우잖아. 여우가 많이 살았다는데 우리가 호족이잖아? 그러니 관심이 더 가지!”

설희의 말처럼 야소(冶所)마을의 지명 유래가 여우였긴 했으나, 또 다른 유래로는 풀무간(대장간)과 관련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서 쇠를 녹여 병장기를 제조하고 수리했던 곳이라, 풀무란 뜻의 한자인 ‘冶’를 따서 ‘야소’라고 불린 것이다.

“뭐 그럼 그러자. 다른 사람들 의견은?”

“우린 찬성! 빠른 게 난 좋아.”

고개를 끄덕인 태월은 일행들과 함께 유적을 둘러보았다.

제승당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이순신 장군의 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망산 정상엔 뭐가 있길래?”

“임진왜란 때 그곳에서 일본군의 동태를 살폈거든? 그래서 산의 이름이 망을 봤다고 해서 망산이야.”

제승당을 지나 망산까지 오른 일행은 야소마을로 향했다.

마을로 향하는 길엔 좌우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태월? 저 집 보여?”

아루가 가리킨 곳을 쳐다본 태월의 눈이 순간 빛을 내었다.

“어? 뭔가 있네?”

태월은 가던 길을 멈추고 그곳으로 향했는데, 아루가 말한 그 집은 오래된 폐가였다.

“저, 저거 구미호지?”

“구미호의 혼령이 맞긴 하네. 왜 천도하지 않고 여기에 있을까?”

태월이 폐가로 다가오자, 그 혼령은 놀라서 숨으려고 했다.

설마하니 자신을 볼 영안을 지닌 자들이 있을 줄 몰랐던 것이다.

“어이, 널 해코지할 생각은 없어. 우린 전부 널 볼 수 있어. 굳이 도망가지 않아도 돼!”

“어? 너희는 뭐지? 사람도 있고 요괴도?”

“호호, 요괴라니? 난 엄연히 정령이고 얘도 정령이야. 그리고 나머진 신수들이거든?”

아진에게 요괴의 기운이 조금 남아 있긴 했다.

그리고 변신술 자체가 요괴의 재능이니 혼령의 말도 절반은 맞는 셈이다.

“특이한 일행들이네? 그런데 여긴 왜 왔어?”

“우린 여행 중이야. 그러다 널 보게 된 거고. 왜 천도를 하지 않았지?”

“난 사람이 돼보는 게 소원이었어. 그런데 마지막 날 땡중 하나가 그걸 방해한 거야. 너무 화가 나! 그래도 꾹 참고 다시 도전해 보려 했는데, 그놈이 자꾸 날 방해했어. 그리고는 이 섬에 나를 던져 놓고는 아직도 안 나타나더라.”

“넌 이미 죽었는데? 나타난다고 뭐가 달라져? 그리고 그게 언제적 일인데?”

“그 자식이 도술도 쓸 줄 안다니까! 날 되살릴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얼마 안 됐어. 한 이백 년?”

구미호 혼령의 말에 태월 일행은 황당해했다.

“이백 년이면 그 스님이 살아있겠냐? 그 스님 이름은 어떻게 돼?”

“나야 모르지. 안 물어봤거든! 그냥 백 살쯤 되어 보이는 땡중이었어. 그리고 도술도 쓰는데 이백 년을 못살까?”

“응, 못살아! 그리고 그 스님이 살아있다면 3백 살이잖아. 도술 부린다고 그 정도까지 사는 사람은 들은 적도 없거든?”

“에이쒸! 그럼 어쩌란 거야. 난 분해서 이대로는 승천 못 해!”

“너, 지은 죄가 많아 업보가 두려워서지?”

아루가 구미호의 염장을 질렀다.

“야! 난 사람을 해친 적도 없어. 내가 업보 때문이겠어? 사람 되려고 무려 5백 년을 공들였어. 천 년간 이게 무슨 짓이야! 난 억울해서 못 가! 차라리 도를 닦았다면, 내가 반신의 존재는 됐을 거야. 괜히 사람 되려고 이러다….”

태월이 살펴본 구미호의 영혼은 맑은 편에 속했다.

구미호의 말처럼 악행을 행하지 않고 지냈단 건 사실이었다.

꽤나 억울했는지 자신의 이야길 무려 한 시간이나 하고 있었다.

“오빠? 저 구미호 불쌍하다. 소원 들어주는 게 어떨까?”

“사람의 몸을 구해주잔 거잖아? 그게 어딨는데?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야.”

“영혼 수집기가 있잖아. 일단 담아놓고 죽은 사람이 생기면 그때 넣으면 되지 않나?”

설희의 말에 태월은 고개를 저었다.

“수집기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원래의 영혼과는 다른 형태가 되잖아. 그럼, 그게 저 구미호의 소원이 이뤄진 걸까?”

설희와 태월의 대화를 구미호도 들었는지 둘에게 다가왔다.

“너! 부활의 도력을 쓸 줄 아나 보네?”

“부활이 아니라 소생이야. 그리고 영혼이 정화되면서 다른 영혼처럼 바뀌게 돼!”

“기억도 다 사라져?”

“그 시신의 기억을 일부 가지게 되는데, 네 기억이 온전히 남을 확률은 희박해.”

“에이, 그럼 내가 아니잖아. 다른 방법은 진짜 없어?”

“이미 영혼이 떠나간 시신이라면 네 기억을 다 가질 수 있을 거야. 그런데 그런 육신을 어디서 구하겠어?”

잠시 생각을 해보던 구미호가 태월을 응시했다.

“꼭 시신이어야 해?”

“식물인간도 가능하긴 하잖아.”

아루가 옆에서 끼어들며 태월에게 던진 말이다.

“식물인간이 뭐야? 뿌리를 내리고 살 수도 있나?”

아루는 구미호가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식물인간에 대해 소상히 알려줬다.

“어? 비슷한 건 있어. 여기 야소마을 지나 10분 정도 걸으면 의암마을이라고 있거든? 거기에 방파제가 있어. 그곳에서 관광객이 실족해서 죽었는데,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하고 있어.”

“어머, 어떡해! 그래서 어찌 되는데?”

“난 그 시신이 떠내려간 곳을 가봤거든? 그런데 영혼이 이미 없었어. 이유는 모르지만 빈 몸이었다니까.”

태월의 생각엔 드문 경우긴 했지만, 아예 없는 일은 아니었다.

“육신의 상태가 망가지거나 그러면 소생시켜도 답이 없거든?”

“그냥 물에 빠져 익사했을 뿐이야. 더구나 떠내려가다가 암초에 걸려서, 물고기 밥 되는 건 면했어. 나 거기다 넣어주면 안 돼?”

“흠, 직접 보고 나서 결정하자. 문제없다면 그렇게 해줄게. 앞장 서봐.”

혼령이긴 했지만, 환히 웃는 모습을 보였다.

“응, 응, 따라와.”

구미호 혼령의 뒤를 따라 태월 일행은 빠르게 걸음을 디뎠다.

십 여분 정도가 지나 의암마을의 방파제에 도착한 태월은, 외진 곳으로 가서 배낭 속의 보트를 꺼냈다.

“우와, 신기한 도술이 또 있네?”

“글쎄, 하여간 안내를 시작해. 빠르게 수습해야 하잖아. 그리고 그곳은 나와 아진 그리고 아샤만 갈 테니, 다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시신 훼손 시 빠른 접합수술이 요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태월은 구미호를 태우고 보트를 출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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