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숨겨진 풍혈을 찾아서
태월 일행은 아루와 아웬이 떠나간 후, 남는 시간에 바다를 체험하고 있었다.
산소통을 멘 상태로 스쿠버다이버를 즐기는 중이다.
울릉도와 제주도는 화산섬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두 섬은 모든 점에서 서로 다르다.
제주도가 완만하게 퍼졌다면 울릉도는 치밀하게 꽉 조여있다.
나리분지를 제외하면 평지가 없고, 해변은 급하게 흘러내린 용암이 빠르게 식어 온통 절벽을 이루고 있다.
깎아지른 해안절벽이 50km나 되는 곳이다.
나리분지라는 곳도 성인봉(984m)이 폭발할 때 생겨난 화산분화구로, 험한 산자락 가운데에 올라서야 나오는 장소다.
수심이 2,000m의 깊은 바다에서 여러 차례 용암이 분출하여, 해발 984m까지 솟은 큰 화산섬이 바로 울릉도였다.
화산체인 이 섬은 중앙에 칼데라가 있고, 그 안에 알봉이라는 또 하나의 화산이 형성된 특이한 이중화산이다.
게다가 근해는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조경 수역으로 인해 오징어와 명태 등이 많이 잡힌다.
태월이 텔레파시로 신호를 보내자, 전부 물 위로 올라왔다.
“좀 쉬도록 해. 아래 경관은 정말 멋지긴 하네. 어류 떼도 상당하고.”
“우와, 여긴 정말로 깊다. 바이칼호만큼이나 깊은데?”
“더 깊어! 바이칼호는 1,742m의 호수로는 가장 깊지만, 여긴 2,000m야. 동해의 평균수심이 바이칼호랑 비슷하긴 하지만.”
한국의 서해가 평균수심이 약 44m, 남해가 약 100m이고 동해는 1,700m다.
“너무 깊이 들어갈 생각들은 하지 말아. 아직 아무도 그 끝에 내려가 제대로 조사해보지 않은 상태야. 어떤 위험이 존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이야기지.”
“어차피 잠수정 없이는 갈 수도 없잖아. 지하자원도 풍부해 보이는데 말이야.”
“그런데 아진과 아샤는 그렇게 입고 잠수하면 좋아? 사람들 있으면 어쩌려고 그래?”
설희가 말한 아진과 아샤는 알몸이었다.
그래서 괜히 오빠 보기가 민망해서 이런 소릴 하는 것이다.
“어머, 우리 강릉에서도 이렇게 잠수하고 놀았는데? 그런데 여긴 거기보다 더 사람이 없잖아. 지금 스쿠버 팀은 우리 외엔 안 보이던데? 더구나 쉴 때도 이렇게 보트 위에 올라와서 쉬는데 뭘.”
아샤가 말한 보트라는 건 미국에서 구입했던 그 고무보트였다.
태월과 설희만 정상적인 잠수 복장을 갖추고 있었다.
뭐 비록 단출한 래시가드 같은 옷이지만.
“오빠? 얘들 이렇게 해도 되는 거야?”
“어휴, 말려봤는데 답답하다고 자꾸 벗는 걸 어쩌냐. 나도 가끔 민망하기도 해.”
“어? 설희 언니? 나 오빠랑 결혼할 사이인데 얘라고 하며 막 어린애 취급하면 어떡해? 엄마가 그러지 말라고 했던 거 같은데?”
자신들의 겉모습에 대해 자꾸 언질 주자, 아샤가 장난을 가장해서 설희에게 딴지를 걸었다.
“으이그, 알았어. 올케! 됐지?”
“호호호, 네! 시누이!”
혀를 쏙 내밀며 장난을 즐기는 아샤다.
설희는 그런 아샤를 보며 풉하고 웃음을 내뿜었다.
“오, 한국 사람이 다 되었네? 그런 호칭도 다 알고. 다른 호칭도 다 공부한 거야?”
“응, 어렵진 않던데?”
“하긴, 언어 재능이야 오빠에게 받았을 테니, 문제가 없긴 하겠다.”
“그런데, 우리가 벗고 있으니 몸이 흉해?”
“아, 아니야 아주 이뻐! 그런데 사람은 원래 타인의 시선에 대해 예의가 필요하다는 걸 배우잖아. 그런 습관이 있어서 그래.”
아샤는 설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자신의 옆을 쳐다본다.
“아진 언니? 왜 가만히 있어?”
수다를 떠는 중에 아진만 조용히 어떤 생각에 잠겨있었다.
아샤의 부르는 소리에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어?”
“왜 조용하냐고 물은 건데?”
아진이 손을 들어 무언가를 가리키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저쪽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아서.”
아진이 가리킨 곳은 독도 방향이다.
아샤와 설희가 태월을 쳐다보자. 태월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진 말이 맞아. 그래서 내가 올라와서 쉬라고 한 거야.”
아샤와 설희와는 달리 아진은 요괴에 의해 탄생한 몸이다.
그러다 보니 요괴의 인자도 가진 것이라 감각이 둘보단 더 예민했다.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 깊은 수심에서 그런 게 감지되었을 뿐이야. 현재의 우리 몸 상태로는 들어가기 벅찬 곳이지.”
“얼마나 깊은 곳인데?”
“대략 수심 1,000m는 더 들어가야 가능할걸? 거기서도 그 존재를 파악할 수 있을지는 장담 못 하지만. 아마 더 깊이 있는 것 같아.”
물기둥 10m는 1기압이다.
1,000m인 101기압은 우리 몸을 누르는 힘이 보통의 100배를 넘는다는 의미가 된다.
잠수복과 산소통을 갖추지 않고 잠수한, 최고의 맨몸기록은 100m가 기네스 기록이었다.
“심해 물고기는 3,000m 그 아래에도 살고 있잖아. 10km에도 사는 물고기도 있잖아. 그러고 보니 그 물고기는 참 대단해. 왜 몸이 안 터지지? 단단해 보이지도 않는데 말이야.”
아샤의 말에 설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태월을 돌아본다.
“내가 배운 바로는 그들이 다른 생물과 좀 다른 게 있어. 보통 물고기는 부레나 다른 기관에 공기가 들어있거든? 그런데 심해 물고기는 그런 기체 대신에 액체가 들어있어. 즉 체액으로 채워졌단 소리지.”
“액체가 기체보다 압력에 따른 변화가 적긴 해. 그리고 외부 물의 압력과 몸속의 체액 압력을 같게 하면, 몸에 문제가 없단 논리가 되네?”
“그런데 그것도 절반만 밝혀진 거야. 수심 1,000m의 심해 물고기를 대상으로 연구한 것일 뿐, 수심 3,000m의 물고기를 채집해 연구한 사례가 전혀 없어. 더구나 1만 미터의 물고기는 더더욱 알 수가 없지.”
“오빠? 혹시! 오빠가 심해 물고기를 잡으면, 그 재능을 얻지 못할까? 일시적으로 몸속 공기를 체액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재능 같은 식으로.”
“헐, 그게 웬 황당한 궤변이냐?”
“진짜 궤변이야?”
동물도 영혼이 있으니 아샤의 말이 틀렸다고 말하긴 어렵다.
단지 태월이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해보지 못해서, 순간적이지만 아샤의 말을 궤변처럼 생각했을 뿐이다.
“글, 글쎄.”
“그 정도의 깊이에서 살면 뭔가 다를 거 같은데? 그린란드 상어만 봐도 수명이 500년이야. 추측이긴 하지만 심해로 가면 수천 년 이상도 사는 생명체가 있다고 하잖아.”
“활동을 최대한 줄이고 필요한 경우에만 움직이는 식이라고는 하더라. 그리고 몸이 기괴하게 생긴 이유도, 필요 없는 부분이 모두 퇴화하고 필요한 부분만 진화했기 때문이겠지.”
“헉, 혹시 우리가 그 재능을 받게 되면 몸이 변하는 거 아닐까?”
“긴 세월 진화나 퇴화에 의해 그런 몸이 생긴 것이라, 우리 몸에는 일시적으로 변화가 생길 뿐일 거야. 다른 요괴의 재능도 그랬잖아.”
“휴, 다행이다. 진짜 괴상하게 못생겼던데.”
“육지에서 그 정도 세월을 산다면 내단 같은 것도 생기는 영물이 되는데, 그 심해어들은 어떨지 모르겠네?”
“아, 진짜 그런 내단이 있으면 오빠에게 도움이 되겠다.”
“어찌 되었든 이제 식사 준비를 하자. 꽤 배고픈데?”
물속에서 무려 4시간 가까이 있었던 것이라 다들 출출하던 참이다.
보트를 몰아서 요트를 정박해놓은 곳으로 이동하는 태월이다.
설희에게 한마디 들은 게 부담되었는지, 아진과 아샤는 비키니 수영복을 걸치고 식사 준비를 했다.
보트와 달리 요트는 사람들의 눈에 확 띄는 배였다.
간간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몰래 찍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최소 그 정도의 옷은 걸쳐야 했다.
설희도 선박 위에서 비키니로 갈아입긴 했어도, 그 위에 비치가운까지 걸치고 선글라스도 낀 상태였다.
선박 식자재 창고에 있는 재료는 풍부했기에 그들의 식사 또한 푸짐했다.
“아리랑은 배를 지키느라 수고했어. 혼자 뭘 좀 꺼내 먹었나?”
“저기 구석 음식쓰레기 모아 놓은 곳에 생선 뼈가 좀 있긴 하더라. 많진 않았지만.”
아샤가 태월의 말에 답을 대신했다.
“허기만 면하고 있었어. 나도 줘요!”
복화술로 자신의 상황을 말하는 아리랑이다.
이젠 텔레파시보단 이렇게 복화술로 말하는 걸 더 활용하는 아리랑이다.
고양이나 백호의 구강구조로 이렇게 인간처럼 말하는 게 불가능한 거지만, 신수라서 그런지 그게 가능했다.
텔레파시를 인간 언어로 내뱉는 방식이었다.
식사하면서 수다를 떠는 와중에 아진과 아샤가 후식을 만들러 갔다.
그러자 설희가 태월에게 작게 말한다.
“그런데 아샤와 아진이 원래 저렇게 다정했어?”
“응? 원래 함께 살았는데 다정한 게 정상 아냐? 뭐가 이상해?”
“예전과 좀 다른 느낌인데? 꼭 연인 같잖아.”
“아, 그게…. 음.”
태월은 망설이다가 어차피 알게 될 거 같아서 설희에게 이야길 했다.
“엑? 영혼의 공유를 또 했다고? 그래서 저렇게 동반자 느낌?”
“그런 거 같더라. 아카에게 물으니 그렇게 될 가능성도 크긴 하다던데. 왜 반려자를 영혼의 동반자 어쩌고저쩌고하긴 하잖아.”
“흠, 오빠가 머리 좀 아프겠네?”
“글쎄? 첨엔 좀 갸웃거리긴 했지만, 지금은 부담되고 그러진 않아.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 무려 영혼이 관여된 일인데.”
태월의 말에 설희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흠, 저기 파파라치 놈 하나가 붙었는데 어찌할까?”
“찍는 방향을 보니 나를 찍긴 해도 주로 아샤하고 아진을 찍던데?”
“그거야 넌 몸을 많이 가렸고, 쟤들은 안 가렸으니 그런 거겠지. 그러고 보면 네 정체를 알아서 찍고 있는 건 아닌 거네.”
“그래도 유출되는 건 별로 좋진 않아.”
태월도 고개를 끄덕이곤 아리랑을 쳐다봤다.
뜻을 알아차린 아리랑은, 사각지대에서 요트를 뛰어넘어 파파라치에게로 접근했다.
그리고 빠르게 도촬 중인 카메라를 물어 채고는 내달렸다.
“헉, 저놈 뭐야? 야! 야! 이 도둑고양이!”
아리랑을 쫓느라 바빠진 파파라치 조상구다.
울릉도에 바다 여행 출사를 왔다가 이 요트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요트가 화려해서 그것만 찍던 중이었다.
그러다 배에 오르는 환상의 몸매를 지닌 여자 셋을 발견하고는 다른 일은 다 멈추고 카메라를 눌러대기 바빴다.
‘어디서 나온 여자들일까? 저 정도 몸매나 외모는 세계 정상급인데. 아니지! 민낯들인데 그 정도잖아? 이거 대박이다! 팔면 돈 좀 쥐겠는데?’
벌써 필름만 3통째 쓰는 중이었다.
아리랑을 쫓으러 조상구가 나간 사이에 태월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급한 나머지 가방을 챙길 시간도 없이 움직인 조상구인지라, 그의 가방엔 사용된 필름 2통도 함께 있었다.
“흠, 이것들이네. 뭐 없애버릴까 했지만, 내가 보관했다가 셀프로 현상까지 해봐야겠네.”
태월은 흔적을 지우고 자신의 배로 다시 돌아왔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떠났던 아루와 아웬이 돌아왔다.
“태월! 두 군데를 일단 찾았어! 그런데 한 군데에 오염된 정령이 하나가 자릴 잡고 있더라. 나랑 비슷한 수준 같던데?”
“헐, 그럼 세상 밖으로 나온 지 꽤 된 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