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울릉도 성인봉에서
회를 뜨다 말고 손을 멈춘 태월은, 급히 낚싯대를 놔둔 곳으로 이동했다.
아루의 말처럼 루루가 두 발과 부리를 이용하여 낚싯대를 건져 올리고 있었다.
“루루, 힘내!”
아샤가 루루를 응원했다.
그냥 낚싯대만 떠내려갔다면 루루가 저리 퍼덕댈 일은 없었다.
낚싯바늘에 뭔가가 걸려 있기에 저리 힘을 쓴 것이다.
그리고 낚싯대의 휘는 각도로 볼 때 작은놈은 아니었다.
루루가 단순한 새가 아니라서인지, 그 몇 번의 시도 속에서 릴을 푸는 법을 배운 듯했다.
“와, 루루도 낚시꾼 재능이 넘치는군. 고마워 루루!”
낚싯줄을 풀고는 힘의 저항 없는 상태로 태월에게 낚싯대를 건네준 것이다.
“이제 손맛 좀 제대로 봐 볼까? 확인 챔질을 한 번 더 해주고 시작하지 뭐.”
태월은 챔질 후 낚싯대를 일자로 세웠다.
낚싯대의 목줄에 가해지는 힘을 최대한 줄이려는 이유다.
이제부터는 낚싯대의 탄력으로 물고기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저항이 심할 때는 뒷줄을 풀어줬다.
브레이크 레버를 놓아주거나 드랙을 조절해 줄을 풀어준 후 다시 낚싯대를 세웠다.
태월은 낚싯줄이 전해 주는 감각으로 6자 이상의 대물이란 걸 알아챘다.
흔히 몸의 자세를 낮춰서 최대한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해야 하고, 그걸 위해 무릎을 굽혀주거나 앉아야 한다.
그리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여 힘이 받는 지점에 변화를 주면 물고기의 힘이 빠지게 된다.
“아쭈? 머리를 돌리네?”
태월이 재빨리 확보된 뒷줄을 감아 들였다.
그러다 또다시 치고 나가자, 낚싯대를 세워 뒷줄을 확보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자, 수면 위로 물고기가 몸체를 드러냈다.
“우와, 커, 크다!”
옆에 뜰채를 들고 서 있는 아루가 고기를 보더니, 흥분해서 소릴 치고 있다.
“뜰채는 필요할 때 말할 테니, 성급하게 들이밀진 말아! 이유가 있어.”
자신도 모르게 뜰채를 앞에 내밀려던 아루의 동작이 정지되었다.
“마지막 저항을 할 거야. 죽기 아니면 살기로 온 힘을 쏟기에. 그때의 힘은 초반의 힘과 맞먹어. 저놈에게 공기를 더 먹여서 기진맥진하게 만들어야 해. 그게 아주 중요한 포인트야.”
“아, 알았어! 나도 그 내용은 기억한다고!”
“기억하면 뭐 해? 필요할 때 그걸 실천해야 자기 기술이 되는 거지.”
이미 간파된 대물 물고기는 섣부른 욕심을 앞세우지만 않으면 잡을 수가 있다.
몇 번에 걸쳐 공기 먹이기를 하고 나자, 기운이 다 빠진 대물 물고기를 아루의 뜰채에 무사히 넣어 건졌다.
“거의 7자는 넘겠는데?”
“하하, 일단 재보자. 사진도 찍고.”
태월이 자를 가져와 길이를 재니 72.5cm였고 무게는 4.5kg였다.
“오빠? 몇 호 바늘 쓴 거야?”
“응, 8호! 굳이 10호 같은 걸 쓸 필요는 없어. 잘못하면 이물감을 느껴서 이놈이 뱉어내거든.”
“오빠, 들고 서봐! 내가 찍어줄게.”
태월이 사진까지 찍고 나자, 그녀들도 추억 삼아 감성돔을 들고서 사진에 남겼다.
“이건 먹지 말고 나중에 쓰면 어때?”
“감성돔이야 저기도 잔뜩 있으니, 그리하지 뭐. 공간 배낭에 넣어둘게.”
비닐을 하나 가져와 아직도 살아 있는 대물을 넣고는, 그걸 통째로 배낭에 입고시켰다.
숨을 더는 쉬지 못하겠지만, 싱싱함은 유지될 것이다.
사실 태월은 더 쉽게 잡을 수도 있었다.
목줄이 터질 염려 없이 그 부위에 영혼 에너지를 둘러 단단하게 강화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편법을 쓰면 손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기에 수고스럽게 잡은 것이다.
“자자, 이제 다시 파티 시작이다!”
“먹자! 먹자! 나도 한 잔 줘!”
술자리를 겸한 생선회 파티는 4시간 동안 이어졌고, 그 후에 정박 상태서 잠을 잤다.
이미 일기예보를 통해 기상이변이 없는 걸 확인해서다.
아리랑과 불새가 술 취한 사람들 대신 보초를 교대로 섰기에 안심을 했던 탓도 있었다.
다음 날 아침 9시가 되자, 생선 매운탕으로 해장을 한 뒤에 울릉도를 향해 출발했다.
“우와, 해장국 솜씨가 끝내줘요!”
“아, 그만해. 본인이 끓여놓고, 30분째 감탄사야.”
“호호호, 그만큼 이 아루 님의 손맛에 대단하단 것이지.”
당번을 싫어한다고 한 게 전날인데, 벌써 잊어먹고 아침 해장국을 준비해 놓은 아루다.
칭송 한마디를 받고 싶어서 저러는 그녀다.
***
저녁 7시에 출발한 배는 보통 3시간 만에 울릉도 저동항에 도착한다.
그러나 태월 일행은 딴짓한 덕에 다음 날 오전 11시에 도착하고 있었다.
묵호항이나 후포항, 포항항에서 출발했다면, 저동항이 아닌 사동항이나 도동항으로 입항했을 것이다.
저동항은 울릉도 오징어의 대부분이 취급되는 항구로, 오징어 성어기인 9월에서 11월까지는 부산한 부둣가가 된다.
항구 방파제 바로 옆에 서 있는 촛대바위의 일출이 이곳 저동항의 제1 명소였다.
“오, 저게 바로 효녀바위라고 부르는 촛대바위구나.”
“고기 잡으러 나간 아버지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딸이,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라며?”
방파제에 붙어 있는 이 촛대바위는 원래 섬이었으나, 방파제 공사를 하면서 조형물 같은 모습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읽었어. 그럼 저동리의 봉래폭포와 풍혈을 봐야겠네?”
봉래폭포는 높이 약 30m의 3단 폭포로 울릉도 내륙 최고의 명승지다.
울릉도의 최고봉인 성인봉(984m)으로 오르는 길목인 주삿골 안쪽에 있으며, 저동항으로부터 2km 떨어진 곳이다.
이 폭포의 물이 울릉도 남부의 식수원을 맡고 있기도 하다.
태월의 배가 선착장에 도착하고 주변을 돌아봤지만, 이곳은 오징어 철이 아닌지라 한가해 보였다.
“이곳은 언제부터 한반도에 소속된 거야?”
아루가 설희를 돌아보며 묻는다.
“노래에 나오잖아? 신라 장군 이사부.”
“어, 그거 독도 노래에 나오는 거 아녔어?”
“여기 울릉도가 원래는 우산국이라 불렸고, 우해왕이 통치하고 있었대. 그러다 신라 장수 이사부가 이 작은 섬을 정벌했었어. 저항도 심했다는데, 불을 뿜는 사자상으로 위협하였는데 그게 통해서 항복했다더라.”
“엥? 그런 것에 놀라서 항복을?”
“이곳 울릉도엔 맹수가 없었으니, 처음 본 사자인데다가 불까지 뿜으니 기겁을 한 거지.”
“음, 그 당시 내가 태어났다면 불 뿜는 건 해줄 수 있었는데. 그럼 역사에 나도 기록되었을 거 아냐. 이곳에 나를 모시는 사당이 생겼을 수도 있고.”
“이곳이 아니라 전국에 알려졌을 거야. 포스터에 등장도 했을 거고.”
“오, 설희가 뭘 좀 아네? 그런데 포스터에다 내 미모를 모델료 없이 막 실어도 되나?”
“불조심 포스터에 무슨 모델료 타령이야?”
“헐, 자나 깨나 불조심? 그딴 거?”
“호호호, 그런 건 잘 아네?”
설희가 봉래폭포가 있는 성인봉 방향으로 뛰어가자, 아루는 코에 콧김을 내뿜으며 주먹을 들고 쫓아갔다.
설희의 말처럼 이곳은 오랜 역사 때부터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다 조선 시대 태종의 공도정책으로 주민들이 살지 않으니, 그를 틈 타 1693년 일본이 울릉도를 죽도라고 부르며 자기네 땅이라 주장하였다.
이에 1696년 울산에 살던 어부 안용복 등의 눈부신 활약으로 울릉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이 막을 내렸었다.
그 후부터 조정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순찰을 돌게 하였다.
몇 번의 마찰이 있었으며 공식적으로 주민이 살게 된 것은, 고종 황제의 명을 받은 김옥균의 공로였다.
최근 2000년 4월 7일 독도의 주소를,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를 신설하였다.
“어 여기 초등학교가 다 있네? 저동초등학교?”
“여기 말고도 울릉도엔 초등학교 4개와 분교들도 2곳이 더 있어.”
“인구가 되나?”
“주민 인구는 만 명쯤 될 거야. 그리고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서 인원이 학년 구성만 되면 세워지는 거니까. 뭐, 분교야 몰아서 하는 거지만.”
“여기서 근무하면 딱 섬마을 선생님 노래 주인공이 되네? 노래 불러주면 안 돼? 그럼 아까 나 놀린 거 용서해줄게.”
“뭘 용서하고 말고를 해? 혼자 심각한 거지.”
“나 그럼 밤에 잘 때 밤새 간지럽힌다?”
손톱을 세우며 고양이처럼 장난을 해온다.
아루가 우연히 알게 된 설희의 약점이었다.
“아, 알았어. 하면 되잖아!”
“오, 전국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가수 홍설희 양의 섬마을 선생님 노래가 있겠습니다. 박수! 마음 변하기 전에 얼른 박수들 쳐!”
-짝짝짝! 짝짝! 짝짝짝!
“땅 따단따 따~ 따라라라라~”
아루가 악단 흉내를 내고 있다.
“해 에에 당화 피고 지이느은 서 엄 마으을에 철새 따아라 찾아 온 총가악 선 새앵님~ 여얼 아홉 살 새색시가 순정을 바쳐~”
뒤이어 설희의 트로트가 애절하게 흘러나왔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비련의 로맨스 노래가 산길을 따라 울려 퍼졌다.
지고지순한 사랑의 향기도 짙게 풍기는 그런 노래잖는가.
비단결 같은 목소리, 감칠맛 나는 꺾기, 애간장을 녹이는 가락이 일행들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원래 섬마을 선생님의 배경은 인천 옹진군 대이작도의 자월초등학교 계남분교다.
“짝짝짝! 와 노래 엄청나게 잘하시네요? 이미자 선생님과는 느낌과 좀 다른데, 그게 오히려 가슴을 더 훑어 버리네요?”
아직 방학 전이라 학교에 사람이 있긴 했었지만, 운동장엔 아무도 없기에 설희가 산 쪽으로 걸으며 부른 것이다.
말을 건 사람은 등산객 차림의 60 초반의 아저씨였다.
“하하, 제가 이 학교 교장질을 하고 있는 곽규석입니다. 나이 들었다고 칠판 앞에 못 서게 말리니, 이렇게 약초하고 나물 캐러 다니지요.”
곽규석은 손에 든 망태기를 흔들어 보였다.
더덕과 버섯 몇 가지와 나물들이 눈에 띈다.
“네, 안녕하세요. 박태월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제 일행이자 가족들이고요.”
나이가 든 분이 먼저 인사를 해오니 예의를 차릴 수밖에 없는 태월 일행이다.
그래서 결국 쓰고 있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고 인사하게 되었다.
“아진이라고 합니다.”
‘허, 한국 최고 미인이겠군.’
“안녕하세요. 아나스타샤예요.”
‘이분은 뭐지? 세계 미인대회 우승자라도 되나? 한국말은 왜 이리 잘해?’
“아저씨 안녕? 아루라고 해요.”
‘오오오, 깜찍 귀염의 요정이네.’
“처음 뵙습니다. 홍설희입니다.”
‘컥, 이분은 여길 왜?’
여자 넷의 인사에 같이 고개를 숙여 가며 속으로 감상평을 하던 곽 교장은, 마지막 여자를 보곤 눈이 커졌다.
“헛, 인제 보니 노래 부른 분이 스노우셨네요? 와, 이런 행운이 다 있다니. 그런데 다른 분들은 영화배우셨나요? 혹시 여기 울릉도에 촬영이 있습니까?”
“하하, 아닙니다. 가족 여행을 다니는 중입니다.”
“이리로 가는 걸 보면 봉래폭포를 구경 가는 거군요. 맞나요?”
“네, 그렇습니다.”
“음,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폭포 근처에 풍혈이 하나 있거든요. 어제부터 느낌이 이상해서 학생들도 못 올라가게 하고 있습니다. 가지 않는 걸 권하고 싶네요.”
“네? 풍혈이란 게 그냥 지하에서 올라온 바람구멍 아닌가요? 그게 왜요?”
“어제 더위도 식힐 겸 올라갔다가 평소와 전혀 다른 괴이한 소리를 들었거든요. 순간 멍해지기도 했고요.”
“허, 대체 무슨 일이?”
곽 교장이 말렸지만, 오히려 태월의 호기심만 동하게 한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