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울릉도를 향해서
주문진항에 도착한 비너스호는 그곳에 미리 기다리고 있던 예비 선박 부품을 받을 수 있었다.
“전 먼저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거래에 감사드립니다.”
“서류야 이미 받았지만, 저희 변호사가 연락해 올 겁니다. 최대한 편의를 부탁드려요.”
“당연히 협조해 드려야지요. 세금도 최소한으로 맞춰보겠습니다. 선박은 제가 원래 세웠던 곳에 세우시면 됩니다.”
고개를 끄덕여 김주승의 말에 화답하고는 태월도 내릴 준비를 하였다.
자신의 직원에게 그곳의 위치를 안내하라고 시키고는 자리를 먼저 뜨는 김주승이다.
태월은 아직 정은희와의 약속이 반나절은 남았기에 주문진에서 그 시간을 채울 생각이었다.
태월은 장명진에게 연락하여 장덕진의 현재 상태를 물어보았다.
“그래서 어찌하고 있는데?”
“많이 미쳤습니다. 누굴 죽였다고 떠들다가 말고 엉엉 울다가 머리를 벽에 박기도 하고요.”
“그게 교도소보단 나으려나?”
“미친 게 더 힘들겠죠. 계획대로 정신병원에 넣을까요?”
“미쳤다며? 그럼 방법이 없잖아.”
장명진도 자세한 사항 전부를 알지 못하지만, 이번 일이 태월과 연관되었다는 건 알고 있다.
태월도 피해자인 정은희가 원했던 일이기에 그렇게 결론을 짓기로 했다.
갑판에 있던 주현지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통화를 마치자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걸 우연히 본 아루는 설희에게 그 내용을 전했고, 설희가 그녀를 찾아왔다.
“언니? 무슨 일 있어요?”
“아, 아냐. 별일은 무슨….”
“에이 표정이 평소랑 다른데 뭘. 내가 언니를 모를 리 없잖아. 편하게 말해봐. 우리 사이에 못 할 말이 어딨어?”
설희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통화내용을 밝혔다.
“에이, 난 또 집에 무슨 일이 생겼나 했네.”
“그래도 이것도 내 일 중 하나인데, 엄마 말대로 할 순 없잖아.”
“호호, 언니 마음은 이해해. 그런데 말이야. 언니도 내 무술 실력은 알지?”
“그럼, 나보다 더 고수라는 건 겪어 봤잖아. 그래서 내가 로드매니저도 겸하는 거고.”
“저기 내 오빠나 언니들은 최소한 나보단 고수야. 그러니 걱정 안 해도 돼! 언니도 이참에 휴가 얻었으니 편하게 즐겨.”
“헛, 저분들 전부가 그렇다고?”
설희의 말에 그녀의 눈이 커졌다.
주현지가 겪어본 설희는, 자신에게 무술을 가르쳤던 관장보다도 훨씬 더 강했기 때문이다.
“응, 그러니 언니도 가족들과 여행을 가도록 해. 부모님 환갑 효도 여행이잖아.”
“그래도 될까?”
“호호, 안 될 게 뭐가 있어? 다녀오면 또 그럴 시간 못 내잖아. 내 말대로 해줘, 언니!”
“고, 고마워!”
별거 아닌 일에 감동한 표정을 짓는 주현지를 설희는 살짝 안아줬다.
“그럼, 잘 다녀올게.”
“응, 지금 바로 가면 되겠다. 굳이 다른 일행에겐 인사 안 해도 돼. 내가 말 잘해줄게.”
“그, 그래. 다들 뭔가 준비한다고 바쁜 것 같긴 하더라. 그럼 진짜로 간다!”
“풉, 진짜로가 뭐야! 도착하면 전화를 줘!”
고개를 끄덕인 주현지는 갑판의 끝을 발로 차 오르더니 건너편으로 넘어갔다.
설희의 스승인 홍무경은 연예인이 된 제자가 염려되어, 인연이 있던 무술 도장의 관장을 통해 주현지를 데리고 온 것이다.
홍무경에게 몇 수 정도를 배운 게 다였지만, 그 관장은 그를 스승처럼 대했다.
어찌 보면 설희와 그 관장은 같은 배분이다.
처음엔 그 관계 때문에 주현지는 설희를 굉장히 어려워했었다.
그러나 그걸 푼 건 설희의 개방적 사고와 노력 때문이다.
“아, 뭐 그렇다면 그게 더 잘된 거네. 천도재를 태월이 진행하는 것도 설명하기 난감했잖아. 그리고 귀신과 대화하는 걸 모르게 하려는 것도 피곤한 일이고.”
아루의 말에 설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긴 하지. 어쨌든 좋은 일로 간 거니까. 남은 우리들이나 열심히 놉시다!”
“오케이!”
오후가 되자 약속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빠르게 정은희가 나타났다.
“벌써 하늘로 가려고 하나?”
“네, 이미 한은 풀었는걸요.”
“이복 오빠는?”
“아빠 생각이 나서 그냥 참기로 했어요. 장덕진이 하는 헛소리 중에 알게 된 건데요. 그 자식도 장덕진의 농간에 놀아났더라고요. 가져간 돈뿐만 아니라 재산까지도 깡그리 날렸대요.”
악인끼리 붙어서 강한 자가 결국 잡아먹은 것이다.
그렇게까지 되었다고 하니 태월은 그 이복형제를 신경 쓰지 않는 거로 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킬 필요가 없기에 천도재는 비너스호에서 거행되었다.
태월은 그녀에게 광명진언을 읊으며, 빛으로 사라지는 영혼을 배웅하였다.
한 줄기 빛이 태월에게 들어왔지만, 태월에게 이미 있는 요리 재능과 겹쳐졌다.
그런데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태월의 몸에서 빛이 뿜어진 것이다.
“어? 이건 뭐야?”
태월이 놀란 건 요리 재능이 과하게 많아져서인지, 하나로 합쳐지더니 승급이 되는 것이다.
폴더 자체가 태월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은빛을 내고 있었다.
다른 폴더들은 여전히 밝은 회색이었다.
“오빠? 무슨 일인데 그래?”
아샤가 궁금해서 물어온 것이지만, 태월의 몸에서 뿜어졌던 빛의 정체가 궁금하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태월은 그에 대해 자신의 상황을 설명해줬다.
“그거 혹시? 다음 단계가 금빛일까?”
“글쎄, 나도 처음 겪는 거라서. 요리 재능이 원래는 60개는 넘었었는데 지금은 6개로 줄어들었어!”
“회색 은색 금색 뭐 그렇게 단계가 있을 거 같은데? 그런데 사람들의 재능 중에 요리가 제일 많은가 보네? 언어도 많았잖아?”
“죽은 사람 중에 특별한 재능 자체가 거의 없는 경우엔 그 사람이 쓰는 언어가 재능으로 오더라.”
“언어의 폴더는 그대로라며?”
“재능이 하나라도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란 소리지. 그게 잠재적 재능일지라도 말이야.”
폴더는 아카의 조언에 따라 만들었을 뿐인데, 그 방식에 맞춰 조화를 부린 건 태월의 도깨비 문신 팔찌다.
“오빠? 혹시 우리 요리 재능을 다시 가져가고, 그 업그레이드 된 요리 재능을 다시 부여받으면 어찌 될까?”
아진의 말에 궁금증이 올라가는 일행들이다.
“오, 그럼 테스트 삼아 해볼까? 실패하면 손해가 클 텐데?”
“폴더가 사라질 리는 없고, 테스트받는 사람이 망하는 거잖아. 내가 지원할게. 실패하면 난 음식 당번을 빼줘!”
아루가 테스터를 자원했다.
요리보단 다른 데에 더 관심이 많던 아루였고, 인간과는 다르게 요리 재능에 큰 미련이 없는 것이다.
태월은 그녀에게 넘겨줬던 요리 재능을 회수하였다.
회수했을 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은빛 폴더에서 요리 재능을 하나를 꺼내 아루에게 전했다.
보통 재능이 부여되었을 때는 흰빛이 뿜어졌는데, 이번엔 빛나는 은빛이었다.
“오, 성공인가 보네? 그런데 이걸 뭐로 확인하지? 요리 하나만 해봐!”
“으윽, 당번 안 하려고 한 건데 또 하게 되었잖아! 분하다. 난 남이 해준 게 더 좋았는데.”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아루는 선박의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의 냉장고와 식재료 창고엔 태월이 공간 가방에서 꺼내놓은 물품이 꽤 많았다.
30분 정도가 흘렀을 때 아루가 가져온 것은 초코케이크였다.
“오, 겉모양도 예술적인데? 데코레이션은 합격! 그럼 맛은 어떨까?”
태월과 그 일행들이 케이크를 조각내서 맛을 보았다.
“와, 이거 미슐랭 스타들 뺨칠 거 같은데? 진짜 30분 만에 이런 맛을 낸다고? 이렇게 말해줄까 싶은데.”
“우와, 이거 맛이 장난이 아니잖아. 맛의 깊이가 굉장해, 라고 하고 싶지만. 음, 전보단 훨씬 좋긴 해. 그런데 뭔가 좀 아쉬운?”
“나도 설희 언니의 말에 동감!”
셋의 비교만 듣고 아루가 자진해서 자백했다.
“실은 대충한 거긴 한데, 막 머릿속으로 맛을 떠올릴 수 있더라. 그런데 손이 그걸 못 따라가. 이건 이 재능을 받아도 익숙해지는 연습이 좀 필요한 것 같더라.”
“어쨌든 과거보단 훨씬 낫단 소리는 맞네?”
태월의 말에 케이크 맛을 본 일행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업그레이드를 원하는 사람만 하는 거로 하자! 자, 지원자 손!”
손은 전부 다 올라갔다.
아샤와 아진 그리고 설희까지 셋.
조금 후에 결국 셋은 전부 은빛을 뿜어내었다.
“우리 입맛이 점점 미식가가 되겠네.”
“그럼, 보통 식당에서 밥 먹기 힘들어진 거잖아! 이것도 문제네.”
“도시락 싸서 다니게 생겼네. 뭐.”
그래도 부여된 재능에 더 기분이 좋은 일행들이다.
비너스호는 주문진항을 떠나 동쪽으로 향했다.
동해에서 남해를 거쳐 서해의 인천항이 이번 여행의 일정으로 정해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들를 곳이 있었다.
“우리 울릉도와 독도도 첨 가는 거지?”
“가는 길이니 들러야지. 이때 아니면 언제 또 우리만의 여유 시간을 내겠어?”
그래서 남쪽이 아닌 동쪽으로 비너스호가 향한 것이다.
다들 밤이 되니 옷을 껴입고 갑판 위에서 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태월이 배를 직접 몰기에 그녀들도 그 근처에서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한 시간 정도를 달렸을 때, 태월은 배를 세웠다.
“호호, 밤낚시가 이런 재미구나.”
“양성 주광성을 가진 물고기는 다 덤비는 거지. 빛을 보면 환장하잖아. 오징어처럼.”
주광성 물고기는 빛을 따라 움직이는 습성을 지닌 물고기를 말하는데, 멸치 고등어 갈치 정어리 꽁치 전생이 복어 등이 이에 속한다.
“호호호, 우리 루루가 이럴 때 한 몫을 단단히 하네.”
“고등어가 여기에 많은가 봐!”
고등어 미끼로는 크릴새우를 쓰는 중이었다.
그리고 오징어잡이 배의 집어등 역할을 루루가 하는 중이다.
고등어는 한국에선 2~3월경에 제주 성산포 근해에 몰려와 차차 북으로 올라간다.
그중 한 무리는 동해로, 다른 한 무리는 서해로 이동한다.
9월이 지나면 다음 해 1월경까지, 다시 남으로 내려가기 시작한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 태월이 잡고 있는 고등어들은 동해에서 놀고 있는 무리다.
그리고 4월과 5월은 오징어와 고등어가 산란기라서 이들을 잡지 않는 금어기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기를 지났기에 신이 나서 잡는 것이다.
“우와, 이거 50cm는 나가겠는데? 원래 이렇게 큰가?”
“그러게, 어시장에선 보통 30cm인데 말이야.”
“고등어 회가 그렇게 별미라는데, 오늘 제맛을 실컷 보겠어!”
아루가 벌써 회칼을 들고 설치고 있다.
태월은 그녀들과 달리 크릴새우와 압맥 그리고 밑밥 파우더를 조합하여 감성돔 낚시를 하고 있었다.
미끼로는 손가락 길이만 한 작은 개불을 통째로 사용 중이다.
태월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낚시 재능을 일행들에게도 부여했지만, 그래도 본인이 재능 겹침이 젤 커서 이런 낚시엔 더욱 유리했다.
“크크, 난 벌써 10마리 넘겼거든?”
“어머, 겨우 그거 가지고! 우린 고등어를 각자 그 정도는 잡았어! 그리고 그 고기는 30cm 될까 말까 같은데?”
낚시 재능만 알 뿐 가치를 잘 모르는 아루의 당당함이다.
20마리를 잡았을 때 더는 필요 없을 듯하여, 태월은 낚싯대를 그냥 두고 일행의 회 뜨기에 합류한다.
그리고 별미 고등어회 파티에 슬그머니 감성돔이 껴들었다.
“그래 이 맛이야! 감성돔과는 또 다른데?”
회를 뜨다 말고 한 점의 고등어회를 맛보는 태월이다.
그런데 아루의 눈이 깜빡거린다.
“태월! 낚싯대 떠내려간다. 루루가 건지려고 파닥대잖아!”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