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의 재능을 삼켜라-168화 (168/250)

168화. 슈퍼요트 비너스

황석태는 동생이 친구들과 여신 어쩌고 하면서 그곳을 간 지 시간이 꽤 지났기에 찾아 나선 것이다.

관광객 중에 가끔은 연예인들도 섞여 있기에 그런가보다 여긴 것이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호준이란 놈이 자기 동생을 굴리고 있는 걸 보니 눈에 불이 켜졌다.

그래서 소리를 냅다 치며 앞으로 나선 것이다.

“석태 형? 호준이가 저에게 이렇게 했었다니까요? 그래서 지금 똑같이 장난하고 있는 거예요.”

“뭐? 장난? 그런데 얼굴들은 왜 그래?”

“아, 우리끼리 씨름을 하다가 이렇게 되었어요. 별일은 없으니 걱정 마세요.”

그제야 자신의 동생과 주변 사람들을 살피고 있는 최석태다.

‘그러고 보니 기태 놈이 성질을 안 부리고 구박을 감수하고 있네? 내가 잘못 안 건가? 그런데 저 여자들은 뭐지? 뭐가 저렇게 이뻐? 그런데 저기 모자를 쓴 여자는 낯익은데?’

군대까지 다녀와 정동진에서 3년째 식당을 하고 있는 황석태였다.

“형! 호준이 말이 맞아요. 에이, 이런 장난이야 형도 다 하셨잖아요.”

정학진의 말에 그제야 자신이 오버했다는 생각이 든 황석태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괜히 밤늦게 소란을 피웠네요.”

“하하, 아닙니다.”

태월도 이제는 일행과 있을 시간이 필요하기에, 굳이 그를 테이블로 초대를 하지 않았다.

“오늘 술자리는 이걸로 마치도록 하죠. 다들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태월의 의도를 간파한 아진은 테이블에 있던 동네 청년 셋에게 안녕을 고했다.

황기태는 자신의 형이 나타나는 바람에 행복한 시간이 깨진 것이, 친구들에게 미안했는지 눈치를 본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잊지 못할 추억이 생겼습니다. 고맙습니다.”

정학진과 최호준은 태월 일행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저, 저기 사인 한 장만 해주시면….”

황기태는 인사 대신 설희에게 사인을 부탁하고 있었다.

설희에게는 흔히 있던 일이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다 해드릴까요?”

막상 설희가 사인 요청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자, 사인지를 준비하지 못했던 기태는 입고 있던 흰색 티를 가리켰다.

“좀 얼룩이 묻어서 그렇긴 하지만, 여기다 해주시면 평생 가보로 삼겠습니다.”

“에이, 종이에 해드릴게요?”

“아, 아닙니다. 여기에 해주시면 더 영광이겠습니다.”

종이보단 천에 하는 것이 더 오래 갈 거라 여기는 황기태다.

땀 냄새가 좀 나긴 했지만, 설희는 그의 등에 자신의 사인을 그리고 작은 덕담 글도 써줬다.

“저, 저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도요….”

인사까지 마쳤던 정학진과 최호준도 눈치를 보며, 머리를 긁적인다.

“대신 이틀은 소문 안 나게 해주세요. 제 휴가를 방해받고 싶진 않아요.”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태월 일행은 이곳을 떠나기에 그 후는 상관이 없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당연하고 말고요!”

그들의 확답을 받고 난 후에야 설희는 그들에게도 사인을 해줬다.

돌아서서 가는 그들은 얼마 걸어가지 않아 상의를 벗어 챙긴다.

뒤늦게 사인을 해준 여자가 스노우였다는 걸 알게 된 황석태는 동생의 사인을 뺏으려 했다.

눈치챈 황기태는 바람같이 먼저 뛰어 달아났다.

다른 표적이 될까 불안해진 정학진과 최호준도 황기태의 뒤를 따라 냅다 뛰어갔다.

‘으아, 나도 해달라 할걸. 가게에 걸어만 놔도 홍보용으론 끝내줄 건데. 용돈 좀 올려주고 뺏어 버릴까?’

미리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눈을 탓하며, 못내 아쉬운 마음을 달래보는 황석태다.

“아유, 이제야 불청객들이 다 사라졌네. 또 찾아오진 않겠지?”

그들이 떠나가자 아샤가 셋의 자리를 치우면서 하는 말이다.

“낼은 우리가 바다에서 온종일 지낼 거라 마주칠 일은 없을 거야.”

“배를 구했어?”

“알아봐 준다 했으니 생기겠지. 그런데 오늘 설희는 어디서 자려고? 우리야 이 캠핑카에서 잘 거지만.”

“나도 자면 안 돼?”

“이거 6인승이긴 한데, 불편하지 않겠어? 2인용 침대가 3개야.”

“호텔에 들어가면 또 남들 눈에 띄어서 피곤하거든. 그냥 약간의 불편함은 이쪽이 낫지. 그럼 내가 현지 언니랑 같이 잘게.”

태월도 하루 이틀 정도는 상관없을 듯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씻는 데 순서가 필요하긴 했지만, 그날 밤은 별 무리 없이 순탄하게 잠을 이뤘다.

“오, 하늘색 요트네? 이쁘다!”

“우리 인원에 비해 너무 큰 거 아냐?”

아샤와 설희가 기분 좋은 미소를 보내며 다가오고 있는 요트를 구경하고 있었다.

장명진이 구해서 보낸 20인승 요트였는데, 보기엔 그보다 훨씬 컸다.

비록 하루 임대를 해온 것이지만, 이 근처에서는 보기 드물게 꽤 고급스럽다.

“아는 고객이 많다고 하더니, 그 사람들 것 중 하나를 빌린 건가 보네.”

태월에게도 보트가 있긴 하지만, 하루를 보내기엔 부적당했다.

“그쪽 분이 운전하실 건가요?”

“하하, 네 맞습니다.”

남자라고는 태월밖에 보이지 않아서 김주승이 꺼낸 말이다.

김주승은 강릉 근방에서 큰 기업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요트를 대신 관리해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라이센스는 있으시죠?”

“네, 미국에서 딴 게 있네요. 그리고 보조 항해사도 있지요.”

태월이 면허 카드를 보여주자 그걸 살펴본 김주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샤도 다가와 면허증을 보여준다.

원래는 한국에서 다시 발급받아야 하지만, 그걸 굳이 따지진 않았다.

‘그런데 웬 여자들이 몸매가 이렇게 훌륭하냐? 여배우들이라도 이 정도는 아닐 건데. 얼굴도 상당할 듯한데? 이 자식은 뭐 하는 한량이야? 재벌 2세면 쓰는 요트가 따로 있을 텐데 말이야. 팔자 한번 부럽네.’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까지 다 끼고 있는 덕에 얼굴은 절반 이상 가려져 있었다.

김주승은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태월에게 건넸다.

“여기 제 명함입니다. 혹여나 배에 이상이 있으면 꼭 연락하세요. 원래 대여용 요트는 아닌데, 빌려주라는 연락이 와서 이렇게 해드리는 겁니다.”

“네, 그러죠. 요트가 보기 드물게 좋아 보이네요?”

“그럼요, 이 배는 유럽에서 건조되었고 가격도 강남 아파트 두 채 값은 호가하지요. 뭐 임자 만나면 더 받을 수도 있으나, 지금은 산 값에 팔려고 해도 살 사람도 드뭅니다. 더구나 이 배는 차량 승선까지 가능하고요.”

“팔 생각을 하고 있나 보죠?”

“네, 사신 분이 최근에 이 배에 신경을 아예 못 쓰고 있거든요. 비서에게서 팔아보란 연락이 왔었는데, 이 시국에 그게 쉽나요?”

“그런데 새것도 아닌데 비싸게 받으려니 안 팔리는 거 아닌가요?”

“이 배는 그렇지 않습니다. 산 가격과 맞먹을 정도로 내부 치장을 추가로 많이 했거든요. 상당히 돈을 많이 먹었습니다. 배 자체 가격만 따져서 팔려 한 거니 거의 반값이 되잖아요. 이거 때문에 구설에 올라서 처리할 생각도 한 거지만요. 안으로 들어가면 더 놀라실 겁니다. 제가 관리하는 배 중에 최고거든요. 한국에서도 이 정도는 보기 어려울 겁니다.”

태월은 어느 정도기에 이렇게 칭찬할까 싶어서 내부로 들어가 둘러보았다.

“하하, 그냥 돈을 발랐네.”

“오빠! 이건 그냥 호화판인데? 이 배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어도 멋지겠어.”

설희도 감탄하고 있었다.

“톤수는 40톤, 길이는 19m에 너비가 5.5m입니다. 평속 25노트에 최대 속도 30노트 나옵니다. 이탈리아에서 재작년에 건조된 거지만, 유럽 기술자들이 달라붙어 만든 거란 이야기도 있습니다. 뭐, 그쪽의 허풍이 좀 들어가긴 했겠지만요. 배 이름도 비너스입니다.”

20인승 치고는 규모가 큰 것이다.

“이 모터 요트 규모면 슈퍼요트네요.”

10m~24m 크기의 요트를 슈퍼요트라고 부르며, 50m 이상은 메가요트고 91m 정도면 기가요트라고 부른다.

태월이 탄 이 요트는 바람의 이용한 돛을 쓰지 않고 오직 모터를 이용한 동력만 쓴다.

‘가격을 좀 후려쳐서 사서 여행 끝난 후에 WT의 VIP 관광 사업에 써도 되겠어. 일단 시운전부터 해볼까?’

10분 정도를 몰면서 엔진과 운항 능력을 테스트해보았다.

관리도 잘돼 있었고 운행도 매끄러웠다.

“뭐, 당장 필요한 건 아니지만, 나중에 살 생각도 하긴 했었죠. 얼마면 가능할까요? 중고를 비싸게 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신품의 첫 느낌을 단순히 돈으로만 따질 순 없잖아요?”

“길들이는 데도 그만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데요?”

“그럼 중고는 전부 신품보다 비싸야 하겠네요? 선수끼리 이러지 맙시다. 거간비나 잘 챙기면 되는 거 아닙니까?”

“하하, 뭐, 저로서는 거래 가격보다 그게 더 중요하긴 하죠.”

“화끈하게 갑시다. 나도 생각 안 하다가 꺼낸 말이기에 현금 여유는 그리 없습니다. 즉흥적인 게 제 성격이긴 하죠.”

바다를 즐기지도 못하면서 1시간이나 줄다리기를 한 덕에 일시불 조건으로 거의 반값에 살 수가 있었다.

김주승이 몇 번이나 서울에 연락하면서 조율한 덕이기도 했지만.

“인테리어까지 하면 거의 30% 수준에 사신 겁니다. 다 제 덕인 건 아시죠?”

“뱃값만 따져도 절반 값으로 산 것이니, 아주 만족합니다. 다 끝나서 하는 말인데, 진짜 급했나 보네요?”

“이사회에서 자꾸 제동을 건 게 이 호화 요트 때문이거든요. 이사회에 신고한 것도 인테리어값을 뺀 것이었음에도 말이죠. 저는 현금으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태월은 협상 중에 미리 준비해놨던 만 원권 10다발을 가방에 넣어 건네줬다.

“하핫, 딱 천만 원 맞네요. 감사합니다. 아 참고로 여벌 부속품들이 있는데, 그것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연락해 둘 테니, 주문진항으로 오셔서 제게 다시 전화를 주십시오.”

생각지도 못한 돈이 생겼기에 김주승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잠시 일행들과 일정에 대해 이야길 나눠 보겠습니다. 여기서 기다리세요.”

“네, 커피나 한잔하면서 있겠습니다.”

선상에 그를 두고 태월은 아래로 내려갔다.

“오빠? 어떻게 되었어?”

“하하, 돈은 치렀으니 이제 우리 배야. TW에는 연락해뒀으니, 위임받은 관리인과 처리를 하면 될 거야.”

“와우! 멋진 바다 생활이 되겠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캠핑카로 여행을 돌까? 아니면 이 배로 일주를 할까? 투표하자!”

“에이, 다들 바다를 원할걸? 난 찬성!”

아루가 제일 먼저 나서서 손을 들며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다들 신나게 손을 치켜들고 흔들어 댄다.

설희의 매니저인 주현지만 쭈뼛댈 뿐이다.

그녀의 행동에 설희가 팔꿈치로 툭 친다.

“언니도 휴가라고 생각하고 즐기도록 해. 나하고는 가족들인데 눈치 볼 필요는 없어.”

“으, 응 알았어. 고마워.”

일행의 만장일치 찬성에 태월은 위로 올라가 김주승을 대면했다.

“이 배로 여행을 떠날 생각입니다. 여벌 부속품은 바로 받을 수 있겠죠?”

“전화로 바로 준비시키겠습니다. 1시간 정도 후 주문진항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주문진항까지 같이 가시죠. 일단 캠핑카는 이 배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30분 정도가 더 걸려서 차량까지 싣고 나자, 요트는 전진을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