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바이킹의 장명진
장명진은 이 동네에서 알아주는 호색한이었다.
유흥업소를 차린 이유의 절반이 자신의 맘에 드는 아가씨를 구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걸 잘 아는 웨이터 황병식은 당장 다른 룸에서 놀고 있는 사장의 일을 방해해야 했다.
“왜? 사장이 없나? 없으면 놔두고.”
“아, 아닙니다. 다른 룸에서 손님들과 대화 중이지요. 금방 모셔 오겠습니다.”
대화 중이긴 한데 아가씨와 몸으로 대화 중이었다.
다른 이에게 세팅을 맡기고 황병식은 사장이 놀고 있는 룸을 노크했다.
-똑똑!
“야! 누구야? 방해하지 말라 했는데?”
“병식입니다. 귀한 손님이 사장님을 찾고 있거든요.”
“에라이, 나에게 귀한 손님이 어디 있냐? 일단 들어와 봐! 헛소리이기만 해봐라!”
황병식이 살짝 문을 열고 고개만 들이밀었다.
사장이 변덕이 심해서 눈치 없이 바로 들어갔다간, 치도곤당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야! 그냥 들어와!”
몸을 완전히 밀어넣고 안으로 들어온다.
팬티만 입고 있는 사장과 옷으로 몸을 겨우 가린 아가씨 하나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래? 어떤 손님인데? 별 시시한 일을 가지고 흥을 깨버린 거면 너 이번 달 일주일 감봉이다.”
‘아, 시발놈 진짜 너무하네. 월급도 쥐꼬리만 하게 주면서 무슨 감봉 타령이야?’
속으로 구시렁대느라 반응이 늦어지자, 장명진의 눈꼬리가 올라간다.
“아쭈? 빨리 대답 안 해?”
“아! 네! 엄청난 미인 둘을 데리고 나타난 호구가 있습니다. 여행을 다니는지 배낭을 메고 있었고요. 양주를 시켰는데, 아가씨를 부를 이유가 없기에 미안해하면서 사장님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미인은 처음 봅니다.”
“오호? 그렇단 말이지? 여기 혜진이와 비교하면 어떤데?”
“그, 그...”
“야! 혼내지 않을 테니 솔직하게 불어!”
옷으로 몸을 가린 혜진이란 아가씨는 이 지역 유흥에서도 손꼽히는 미인이다.
“반딧불과 명월의 차이랄까요?”
아가씨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여는 황병식이다.
혜진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오! 주제에 고등학교 졸업했다고 문자쓰면서 티 내냐? 너 내가 중학교 중퇴했다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 아닙니다. 딱 떠오르는 게 그거였습니다.”
“그런데 명월이 뭐냐? 기생 이름 아니었어?”
“보름달처럼 큰 달을 뜻합니다.”
“흠흠, 그 정도 차이란 말이지? 좋았어! 진짜면 넌 이달 월급 30% 올려준다!”
‘아 이놈 또 구라치네? 월급날 되면 기억에 없다고 할 거면서.’
“월급 올리는 건 필요 없고요! 제 말이 사실이면 오늘 식당 외상값 좀 갚아 주십시오! 20만 원입니다.”
“소심하긴! 알았어. 딱 보고 괜찮으면 신호할 테니, 네가 작업 잘해놔! 바로 줄게!”
장명진이 말하는 작업이라는 것은 술에 수면제를 타는 일이다.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
“지랄하네! 김칫국부터 마시냐? 일단 가보자! 혜진아? 다녀올 테니, 넌 좀 기다리고 있어!”
여자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앞서서 나가는 장명진이다.
힐끗 자신을 쳐다보는 웨이터 황병식에게 중지를 쳐들어 보이는 그녀다.
뒤끝이 있는 그녀이기에 황병식은 후다닥 방을 나섰다.
‘저년도 미친년이네. 그렇게 싫다고 거부하더니, 다른 여자가 생기면 자신도 좋은 거 아닌가? 넌 장 사장과 더 붙어있다간, 약쟁이가 돼서 사창가로 팔려나갈 처지야. 벌써 6명이나 그리된 걸 알지 못하니 저러는 거겠지. 쯔쯔.’
태월은 파리를 웨이터에게 이미 붙여놨지만, 시각만 공유될 뿐 대화를 알아듣지 못했다.
-똑똑!
노크 소리에 이어 황병식이 들어서고 그 뒤를 사장 장명진이 따랐다.
“여기가 저희 사장님이십니다.”
장명진은 눈이 환해지는 경험을 처음 해보았는데, 가슴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와, 이거 미친 거 아냐? 미스 월드 출신들이라도 되나? 시부랄, 심장이 멈추질 않네.’
“안, 안녕하십니까? 오늘 처음 뵙는 분이군요. 이곳의 주인이 되는 장명진이오.”
“뭐 통성명은 안 중요하잖소? 난 이곳 동해를 여행 중이고 여긴 내 일행이오. 남자 혼자 먹기가 뭐 해서 일단 불렀소이다. 이쪽에 앉으시오.”
태월이 권한 곳은 맞은편 소파였다.
그러면서도 그의 손은 여전히 아진과 아샤의 허벅지를 쓰다듬는다.
그사이 세팅해놨던 양주 2병 중 한 병은 이미 셋이서 마신 상태였다.
그것도 이 가게에서 상등급에 해당하는 로얄샬루트 21년산이었다.
‘하, 돈은 좀 있나 보네? 그런데 쩨쩨하게 혼자 끼고 놀아? 넌 오늘 나한테 찍혔어!’
장명진이 들어올 때부터 그의 진한 회색 영혼을 감상하던 태월이기에, 속으로 그의 처리를 마음으로 정한 상태였다.
“자! 한 잔 받으시오!”
태월이 술병을 들어 한 잔을 따라주자, 장명진도 병을 들어 권하려 했지만 태월이 거절했다.
“뭐, 술은 여자가 따라줘야 제맛 아니겠소?”
옆에 있던 아샤가 병을 들어 태월의 잔을 채워주었다.
장명진은 어이없었는지, 코를 실룩였다.
‘그렇게 잘 아는 놈이 내 잔은 니가 따라주냐? 조금만 기다려라, 이 애송아!’
“자자, 잔도 채워졌으니 건배를 합시다!”
태월이 잔을 앞으로 내밀자, 장명진이 자신의 잔을 부딪쳤다.
“하하, 좋지요. 건배!”
그렇게 몇 번의 잔을 부딪치고 나니, 1병은 금방 사라졌다.
“아 이런, 술, 술이 비어버렸네. 그런데 38년산은 없, 없는 거요?”
“오빠? 오빠 주량은 1병도 안 되잖아. 그런데 뭘 또 먹어? 이제부터 내가 대신 먹을게.”
“나, 날 뭘로 보는 거야? 한, 한 잔쯤은 더 할 수 있어!”
“아유, 오빠 또 말 더듬는 거 보니 취한 거 맞네. 고집부리기는. 알았어! 그럼 한 잔만 먹고 나머진 우리가 먹을게.”
“와, 화끈하군요. 금방 가져오게 하겠습니다.”
벨을 누르니 황병식이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 손님이 이거 38년산 시켰으니, 새끈한 놈으로 가져와라!”
“네, 사장님!”
웨이터 황병식은 밖으로 나가 술 창고로 갔다.
그리고는 구석에 숨겨둔 약통을 꺼냈다.
사실 이 주점에는 그 술이 없다.
지금 보이는 로열 살루트 38년은, 21년짜리를 다른 거와 살짝 섞어 제조한 짝퉁이다.
거기다가 수면제를 첨가해 종종 허세 부리는 뜨내기에게 써먹는 술이다.
개봉한 뒤, 한 봉지의 수면제를 털어 넣었다.
그리고 닫은 후에 겉을 새로 씌우고 드라이기로 열을 가해 밀착시켰다.
세밀히 보면 표가 나지만, 흔히 손님이 많이 취했을 때나 내오는 것이기에 들킨 적이 없었다.
웨이터의 옆 목에 붙은, 파리의 눈을 통해 그 장면이 태월에게 전달되었다.
‘오, 약을 타는군.’
황병식이 희희낙락하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능숙하게 마개를 따려 했다.
“그거 제가 따면 안 돼요? 요즘 가짜 술도 많다던데.”
“가, 가짜라뇨! 먹는 것에 그런 짓을 하면 천벌을 받지요!”
“흠, 그래요? 그런데 왜 말을 더듬어요?”
아샤의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에 황병식은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아이고 식겁했네? 사장이 나중에 트집 잡기 전에 얼른 따야지.’
태월 일행이 더 말 시키기 전에 잽싸게 따고 보는 황병식이다.
“너! 왜 손님이 개봉하겠다는데 오버해서 따고 난리야? 아 그놈 참 성질 급하네.”
장명진이 먼저 나서서 웨이터를 나무라는 모양새를 갖췄다.
‘아이고 놀고들 있네.’
태월은 그 둘의 만담쇼가 어이없지만 모르는 척해줬다.
웨이터가 밖으로 나가고, 아진은 태월의 잔에 술을 따랐고, 태월도 그 둘에게 따라줬다.
장명진은 셋이서 서로 잔을 따르는 걸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리던 손님이 있어서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편하게 들고 계십시오.”
“뭐, 바쁘면 할 수 없지. 다녀오시오.”
“네, 금방 오겠습니다.”
“아, 참!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홍콩서 지인에게 줄 명품 선물을 몇 개 샀어요. 마음에 들면 하나 고르시구려.”
태월이 배낭 가방을 열어두자, 호기심이 동한 장명진은 가방 가까이 얼굴을 들이민다.
“좋지요?”
“네? 잘 안 보이는데요?”
“그럼 안에 들어가서 보면 되겠네요. 입고!”
-슈우욱! 헉!
“풉, 그 안에 들어가면 컴컴해서 더 안 보일 건데.”
“그러게, 조명시설이라도 안에 해놔야 하려나?”
태월은 배낭 속에서 빈 물병을 꺼내 술병의 술을 반쯤 담고 다시 넣는다.
“웨이터 저놈은 영혼이 그리 악질은 아닌 듯해서 봐주는 걸로 하지 뭐.”
10분 후에 배낭에서 장명진을 꺼냈다.
영혼까지 삼키게 한 후 소생을 시키자, 5분 정도 후에 눈을 껌뻑이며 깨어났다.
“난 네 영혼의 마스터다. 급하게 몸을 구해 넣긴 했는데, 어떠냐 새로운 몸이?”
“아, 마스터! 귀속된 느낌이 듭니다. 이게 새로운 몸인가 보네요. 음, 그런데….”
“왜? 좀 별로야?”
“이놈 기억을 슬쩍 보니 악령에 가까운데요?”
“그거야 과거인 거고, 이제부터 제대로 살면 되지 않겠어? 노인의 몸이 아닌 것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해.”
“감사합니다. 마스터!”
“그 몸에 새겨져 있는 기억을 있는 대로 말해봐.”
“네! 이름은 장명진. 결혼은 하지 않고 애인만 둘이네요. 과거부터 성폭행 경력이 5번에 최근엔 여종업원들을 여섯이나 팔아먹었습니다.”
사설이 길어질 거 같아 태월은 중간에 끊었다.
“그놈 사촌 중에 장덕진이라고 있지? 그놈하고의 관계를 말해봐!”
“장명진이 나쁜 놈이긴 해도 사람을 죽이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촌 장덕진은 여자 한 명을 직접 살해했고, 세 번은 살인 교사를 했네요. 그 외에도 십여 건의 악행 범죄가 있었고요.”
“그리고?”
“장명진이 이 지역에 아직 팔지 못한 은닉재산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소문과 달리 부산으로 가져간 건 30%도 안 되네요.”
“그놈 이곳에 다시 오게 할 수 있나?”
태월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장명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스터! 부동산을 통으로 제값에 살 사람이 있다고 하면 얼른 올 겁니다.”
“그럼, 그렇게 해봐! 그런데 그놈 재산이 많아?”
“부산으로 갈 땐 현금이 되는 것만 가져갔습니다. 이곳의 땅값이 오를 기미가 보이자, 팔지는 않고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지금 시세로는 한 30억쯤은 호가할 겁니다.”
“허, 꽤 되는데? 어디 쪽에 있는데?”
“경포대 쪽인데 꽤 땅이 크고 현재는 단층 상가들이 줄지어 장사하고 있습니다. 전부 조립식 건물이고 임시상가일 뿐이죠. 그래도 임대료 수익이 꽤 됩니다.”
“왜 그 땅을 애매하게 놔둔 건데?”
“거기에 레저타운을 건설하려는 대기업에 팔려 했는데, 가격을 후려치니 발을 빼버렸습니다.”
“그곳에 그렇게 큰 땅이 있어? 레저타운이라니?”
“그냥 호텔과 레저시설 조금 들어오는 것이죠. 그래도 땅은 1만 평가량 됩니다. 그놈 아버지가 사기도박을 해서 일가친척 없는 노인네 땅을 꿀꺽해버린 곳이죠. 그 일로 그 노인네는 화병으로 세상을 떠났고요. 그걸 장덕진이 유산으로 물려받은 겁니다.”
“부자가 악질이네. 그럼 그걸 우리가 먹으면 되겠네. 그놈도 도박하나?”
“그 핏줄이 어디 가겠습니까? 부산에서도 그 짓을 하며 세월 죽이고 있을 겁니다.”
“올라오라 해! 알거지로 만들자!”
“네, 마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