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동해안으로
아진의 행동에 깜짝 놀란 아샤는 2층 입구를 지키던 둘 중 하나에게 손짓을 했다.
“잠깐. 한 명만 여길 지켜요!”
“네! 알았습니다. 둘째 아가씨!”
아진와 아샤를 보스인 황중호가 깍듯이 모시며 아가씨라고 부른다.
그래서 이들도 그리 부르는 것이다.
아샤는 자리를 넘기고 급하게 아진이 달려간 방으로 뛰어들었다.
“어? 웬 여자야? 어머 어머, 하혈하잖아.”
아샤의 눈에 비친 여자는, 20대 중반의 여자였으며 만삭이었다.
“아이가 나올 것 같아. 오빠에게 말해서 의료품을 가져오도록 해.”
“알았어. 언니!”
아샤는 부리나케 달려 태월에게 갔다.
사정을 간단히 설명한 아샤에게 필요한 의약 도구와 약품들이 주어졌다.
아진은 학교에서 배운 실기 때 유사한 경험이 있긴 하지만, 정상분만 때의 경험이었다.
생각을 차분히 돌리며 그에 필요한 지식들을 머릿속으로 모았다.
“아, 어떡해? 애가 거꾸로 있잖아. 산모도 맥이 가늘어지며 위험해.”
아샤가 기를 운용해 산모의 자궁을 체크해 본 것이다.
이대로라면 아이와 산모 둘 다 위험했다.
“휴, 너하고 내가 손발이 맞아야 해. 영혼 공유를 할 테니 받도록 해.”
두 번째 해 보는 시도지만, 생명의 안전을 위해 아샤는 받아들였다.
아진의 의학지식이 아샤의 의학지식과 합쳐지며 방대하게 넓어졌다.
배운 학과가 다르다 보니, 유사한 부분도 있었지만 아샤에게는 없는 지식이 상당했다.
그리고 그 후 그녀들은 한 몸 같이 움직였다.
자연분만의 시기를 지나버렸기에, 아진은 제왕절개수술을 택했다.
모스크바 의학과에서도 태월과 아진의 실습 실력은 출중했다.
일부 분야에서는 교수들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터다.
그만큼 재능의 힘이 컸단 의미이기도 했다.
아샤가 마취액을 산모에게 주사했다.
산소호흡기를 통해 호흡을 유지 중이다.
“매스!”
시간이 급했다.
아진은 자신의 장점인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빠르게 손을 놀렸다.
절개한 상황에서 급히 아이의 숨이 돌게 했다.
수술이 절반쯤 진행되었을 때 태월이 급히 들어왔다.
두 사람 중 하나가 보조를 해야 했지만, 태월과 아진에겐 그게 필요 없었다.
영혼 관련해서 이미 이어진 사이기에 둘은 한 몸처럼 움직였고, 손이 4개인 의사가 되어 있었다.
탯줄을 끊자, 아샤가 아기의 엉덩이를 때렸다.
사실 양의에서는 쓰지 않는 방법이지만, 민간요법일지라도 빠르게 가는 게 그들에게 중요했다.
아이가 울어 젖히자, 아샤의 입가에 비로소 미소가 맺힌다.
삼십 분 정도가 흘렀을 땐, 수술이 끝나있었다.
진피, 내피, 외피의 봉합마저 완료한 것이다.
1시간 가까이 걸린 수술이었다.
아마 경험이 더 쌓인다면 시간은 줄어들 것이다.
“수고했어. 아진, 아샤!”
“헤헤, 그래도 잠든 아기를 보니 너무 기분 좋아요.”
“산모가 깨어나면 초유를 먹이도록 하자. 내가 지킬 테니 둘은 나가서 좀 쉬어.”
“에이, 아니에요. 저희 체력이 보통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산모가 깨어나서 남자 의사가 수술한 줄 알면 불안해할 수 있으니 제가 있을게요. 산모는 심적 안정이 제일 중요하다고요.”
뭐 정답은 아니지만, 틀린 말도 아니기에 태월은 끄덕였다.
자신은 이것 외에도 할 일이 오늘 많았다.
태월은 이미 변신을 풀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보스들하고 이야긴 잘 되었나?”
“네, 이미 마스터에게 귀속된 상태라, 그 전의 욕심 같은 건 없잖습니까? 자기 역할에 충실할 겁니다.”
다른 영혼이라고 생각하기에, 다들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태월은 보스들의 접견을 받으면서 궁금했던 걸 물었다.
“2층에 산모가 왜 있는 거지?”
에이스 파의 보스였던 김창수가 손을 든다.
“이곳 요정의 아가씨인데, 손님의 아이를 밴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누군지 끝까지 말을 안 했습니다. 불미스럽지만 제 부하 중 한 놈이 자백을 시키려 데려다 놓았습니다.
김창수란 놈도 알고는 있었지만. 그게 만삭인지는 몰랐습니다. 알았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지만요. 이놈이 꽤 악질이잖습니까?”
김창수는 자신이 진짜 김창수인지 모르고 있어서 저런 말을 하는 것이다.
“아니, 굳이 애 아버지를 알아서 뭘 하려고?”
“저 정도로 밝히지 않는다는 것은 그 상대가 꽤 거물이란 뜻이거든요. 자신의 영화를 위해 숨길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상대가 무서운 사람이란 의미도 되거든요.”
“그래서 김창수도 그 거물의 약점을 알아내서 써먹으려 했단 거네?”
“네, 머릿속 기억으론 그렇습니다.”
“에이, 진짜 인간미들이 없네. 그렇게 쭉 살아서 뭐 해?”
“그러게, 말입니다.”
“마스터! 그런 놈들을 그냥 둬선 안 됩니다.”
“헐. 저 산모는 황중호가 알아서 잘 보살피도록 해. 아이 엄마가 되었으니, 이곳 일에선 손 떼게 하고.”
자신이 아닌 다른 영혼이라고 알고 있는 자들에게 욕해봤자, 태월의 입만 아플 뿐이다.
“네, 마스터! 책임지고 처리하겠습니다.”
“앞으로 조직들은 통합시킨다. 너희 5개 조직이 합쳐지면 서울 일통도 쉽겠군. 황소파보단 다른 이름을 쓰는 게 났겠어. 그리고 음지에서의 일은 줄이고 양지로 나서봐! 필요하면 자금도 대어줄 테니.”
“마스터!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름은 뭐로 할까요?”
“글쎄, 너희가 의견을 모아서 결정해.”
“저기, 마스터의 그 팔에 있는 문신이 도깨비 아닙니까? 그럼 도깨비를 한문으로….”
“안 돼! 도깨비는 한문으로 망량이라고 적어. 그게 뭐야? 을씨년스럽게.”
도깨비 이야기를 들은 황충호가 나섰다.
“도깨비 문신 중에 제일 유명한 것이 치우천황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치우파가 어떻습니까?”
“그건 좀 발음이 애매한데? 치우천황이 배달한국의 14대 천황이니, 차라리 배달파로 하자. 배달의 민족 기상을 잇는 의미도 되고.”
“음, 좋은 것 같습니다. 뭔가 숙연해지는 느낌입니다.”
“그래 이제 조직은 나쁜 일 그만하고 좋은 일 좀 하자! 그럼 서울 일통은 문제없겠네?”
어차피 이들 조직이 필요악이기에, 서울만이라도 다툼이 없는 게 한국 사회를 위해 좋다고 여겼다.
“네, 마스터! 언제든 지시만 하십시오.”
“됐어! 앞으론 황중호가 보스로서 그와 논의해서 알아서 해! 날 또 귀찮게 하지 말고.”
“이야긴 들었습니다. 저희가 머리를 맞대보겠습니다.”
“각 조직원 단속도 철저히 해서 불협화음 없이 조직을 융화시켜. 난 인제 그만 간다.”
태월에게 삼켜진 4개 파의 보스와 조직원들이, 저택을 나서는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호호, 오빠! 완전 영화에 나오는 마피아 보스 같아. 카메라가 없어서 아깝네.”
“으이그, 밤도 늦었으니 이만 집에 가서 쉬자. 내일은 진짜 여행 가야지!”
“산모는 잘살게 되겠죠?”
“황중호가 그리한다 했으니 하겠지. 왜?”
“아기가 너무 귀여워서요.”
실제로 갓 태어난 아기는 양수에 몸이 불어 있고, 나오는 과정에서도 압박을 받기에 외모상 귀엽게 보이긴 힘들다.
그러나 그 천진난만한 눈망울과 꼼지락대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귀엽다고 느낄 수 있다.
“둘은 후유증이 없어? 또 영혼 공유를 했잖아.”
“처음엔 조금 어지러웠는데, 그 후엔 괜찮았어요. 오히려 더 애틋한 기분?”
“오빠, 저도 그랬어요.”
아진과 아샤가 같은 대답을 하면서 서로를 쳐다보곤 씩 웃는다.
“꼭 둘이 연인을 보는 듯한 눈빛이네?”
“어머, 우리는 한 몸인데 뭘 또 나누는 거예요? 그쵸, 언니?”
“응, 맞아.”
태월은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감을 못 잡는 중이다.
‘상관없으려나?’
아침 일찍 일어난 셋은 간단한 아침을 차려 먹고 차에 올라탔다.
운전석엔 아진이 앉았고 조수석엔 아리랑이 자리했다.
뒤편은 태월과 아샤가 있었고.
“내가 운전해도 되는데 왜 굳이 하려 해?”
“저도 한국 도로에 적응하는 운전 연습이 필요해서요. 그리고 교대로 하면 되잖아요. 여행길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요. 뭐.”
“그런데 어제 새벽에 보니 아샤가 옆에 없던데 산책하러 나갔었나?”
“아, 심심할까 봐. 언니랑 같이 잤어요. 왠지 어제는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서요.”
태월은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 의구심은 들지 않았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종종 그래왔었기 때문이다.
‘어제 영혼의 공유가 있어서 더 그랬나 보네.’
아진은 운전이 재미있는지 속도를 내는데 머뭇거림이 없었다.
“에고, 모스크바에서도 그렇게 운전 많이 했으면서 새삼스럽게.”
“뭐, 주변 경치가 다 다르잖아요.”
“이 속도에 무슨 주변 경치야? 휙휙 지나가는데.”
“오빠? 아진 언니, 운전하는 데 방해되잖아. 조용히 해.”
“얼씨구, 하루 같이 잤다고 더 친한 척하네. 처음 잔 것도 아니면서.”
“어제는 다르다니까요.”
태월은 아샤의 알 수 없는 말에 깊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벌써 점심때가 다 되어 간다. 다음 휴게소에서 밥을 먹자고!”
이렇게 밥 찾아 먹는 것에 열중인 태월이었다.
이들 여행의 첫날은 아진과 아샤의 스피드 스킬을 늘려주는 일정이 돼버렸다.
“아, 진짜 안전하게 갈 순 없냐? 왜 이리 쌩쌩 달려? 이러다 사고 나면 어쩌려 그래?”
“오빠가 다시 살려주면 되잖아요.”
“헐, 참 기가 막히다. 낼 일정부터는 내가 운전할 테니 그리 알아.”
태월의 훈계에 아샤가 입을 삐죽이 내민다.
차량이 멈춘 곳은 강릉의 주문진항이다.
“우와, 바다다!”
아샤는 혼자서 모래사장을 달려나갔다.
“역시 동해는 서해와는 냄새부터가 달라.”
“알혼섬이 생각나는 동해네요. 갈매기도 그렇고.”
알혼섬이 민물 호수임에도 갈매기가 있긴 했다.
아샤는 바닷물에 발을 담그는 사이, 아진은 갈매기에게 과자를 주고 있다.
아리랑은 갈매기들 사이로 들어가서 아진이 나눠주는 과자를 뺏어 먹느라 바빴다.
배고파서 저러는 것이 아니라,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갈매기들은 생존의 문제였다.
백호의 몸 상태라면 피해 볼 일은 없으나, 자신의 정체를 숨기며 고양이로 유희를 즐기는 아리랑이다.
그로 인해 흰 고양이 아리랑은, 사방에서 몰려든 갈매기의 부리 공격에 도망을 칠 수밖에 없었다.
“하하, 꽁지 빠지게 도망가는군. 참 신수인 백호치곤 허접하네.”
“쟤는 그걸 즐기는 거 같던데요?”
아진의 말에 태월도 공감했다.
도망가면서도 신이 난 아리랑이다.
더구나 도망친 곳도 아샤가 바닷물에서 나와 모래를 쌓아 성을 만드는 그곳이었다.
역시나 아리랑은 그 모래성을 앞발로 부숴버리고 아샤를 피해 또 도망친다.
“아리랑이 저렇게 신난 건 드문 일인데? 원래 고양잇과는 물을 무서워하지 않나?”
“그렇다고는 하는데 아리랑을 단순히 볼 순 없잖아요.”
“아리랑은 저러다 물속에서 수영까지 하는 거 아닐까? 생선도 잡으려나?”
아진의 말에 동감을 표하며 쓸데없는 상상을 해보는 태월이다.
그렇게 아리랑의 모습을 쫓다가 문득 아샤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아진이 먼저 튀어 나갔다.
“어? 쟤들은 또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