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입고 작전
아진과 아샤는 태월의 공간 배낭에서 꺼낸 채찍을 들었다.
설희도 채찍을 다뤘었는데, 아진과 아샤도 육체적 재능이 넘쳐 그걸 주무기로 쓰고 있다.
요괴 중에 채찍을 다루는 부류들이 있었는데, 그 재능을 받은 태월이 둘에게 넘겨준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에 왔을 때 서로의 채찍술을 교환한 적도 있었다.
태월은 그녀들이 채찍을 휘두르는 걸 구경하다가 봉변을 당할 뻔했었다.
마루타가 될 뻔했던지라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촤아악! 아악! 타탕!
아래층이 시끄러워지자 후다닥 튀어나온 사내들에게 아진의 채찍이 날아갔다.
야구 배트를 든 사내의 손이 터지며, 비명을 질러댔다.
배트가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이, 이년들이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촤아악! 크악!
“한 번에 달려들어! 야 이 멍청이들아 피하지 말고 파고들라니까!”
아샤의 채찍은 3m 정도에 불과하지만, 아진의 채찍은 5m가량이나 되었다.
아진의 몸을 구성하는 신체 중에 그 재능과 연관된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배우는 속도가 아샤에 비해 남달랐었다.
아샤도 아진이 처리하지 못한 사내가 튀어나오면, 뒷마무리로 공간을 점유해 바로바로 처리했다.
2층의 인원이 다 쏟아져 나왔는데, 거기엔 4개 파의 보스들도 함께 있었다.
태월은 미리 꺼내 놓은 봉을 휘두르며, 개 패듯이 조직원들이 후려갈기고 있었다.
영화를 찍는 것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한 방에 한 대씩으로 때려눕히고 있었다.
상당한 고수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헉! 저놈 뭐야? 투객? 쌍둥이였어?”
도지파의 최도지는 태월을 보곤 깜짝 놀라 자신의 옆을 쳐다봤다.
놀라기는 김상태도 마찬가지였다.
태월과 김상태가 다른 게 있다면, 왼쪽 귀밑에 큰 점이 하나가 있다는 차이다.
그리고 손에 검정 가죽장갑을 낀 게 다를 뿐이다.
“아, 아닙니다. 그런 이야긴 어머니에게서 들은 적이 없거든요.”
평소 말투보다 길어진 김상태의 해명이다.
최도지가 보기에 둘은 너무 닮았다.
김상태로 인해 자신들의 조직이 위명을 날리고는 있지만, 마음속 한편으로는 오히려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조직원들이 존경하는 게 보스보다 투객이니, 늘 질투와 경계심으로 살아온 최도지다.
그래서 최도지는 자신도 모르게 김상태와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보스들도 한 발짝 거리를 둔다.
그걸 느낀 김상태는 씁쓸한 표정을 한 번 짓고는 앞으로 나섰다.
“다들 멈춰! 내가 상대한다.”
“누굴? 나?”
정신없던 사내들이 그제서야 그 둘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급박한 상황이라 한가하게 태월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는 사람들은 그리 없었다.
더군다나 같은 조직도 아니었기에, 김상태의 얼굴이 눈에 익지 않은 탓도 있다.
“헉! 형제인가?”
“형제인데 쌍둥이겠지. 똑같잖아! 아니, 귀 아래 점이 다르네!”
“이게 무슨 개우라질이야. 우리가 무슨 드라마 찍나?”
시끄러운 소란 속에서도 김상태가 길을 내며 앞으로 나섰다.
자신으로 인해 분란이 생기는 걸, 일단락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래, 너! 넌 대체 누구지?”
“나? 내 별명은 원객이지! 이름만 들어봐도 내가 형이겠지?”
투객의 투는 싸움 투자의 의미인데, 태월은 one, two란 의미로 말장난하는 중이다.
인상을 찡그린 김상태는 한 발을 내디뎠다.
“때려눕히고 나면 알게 되겠지. 덤벼라!”
“이 자식! 형에게 싸가지 없는 말뽄새 하고는, 너 그딴 걸 어디서 배웠냐?”
태월은 협객 영화를 찍는 것도 아닌데, 이 와중에 김상태와 한가하게 노닥거리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보스들은 불리하면 제일 먼저 피하려고, 인의 장막을 구성하고 있었다.
‘오? 이거 오히려 좋은데?’
눈을 잠시 빛낸 태월은 뒤로 몇 걸음 물러서며 거리를 벌렸다.
물러선 자리가 옆의 복도로 이어진 길이다.
“나 신발 끈이 풀렸거든? 잠깐만 끈 좀 매고 올게.”
태월이 옆길로 물러서자, 부아가 치민 김상태가 득달같이 뛰어들었다.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야에서 둘이 사라졌다.
그런데 뛰어든 김상태는 황당한 상황에 놓여버렸다.
“아니, 여기가 대체 어디야? 왜 이리 컴컴해? 내 장갑은 또 어디로 사라진 거야?”
김상태가 뛰어든 장소는 태월의 공간 배낭 속이었다.
맨손을 만지작거리며 주변을 더듬고 있는 그는 투객 김상태였다.
그러다 몸에 이상이 오고 있음을 느꼈다.
‘숨, 숨이 쉬어지지 않아. 큭!’
태월은 공간 배낭을 닫고는 피식 웃었다.
‘짜식이 보기보단 성격 급한데? 아니면 내가 너무 약 올렸나?’
머릿속으로 김상태의 목소리를 몇 번 연습해보고는, 변신 가면을 이용해 왼쪽 귀 아래에 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가죽장갑을 소환해서 손에 끼었다.
‘이거면 완벽하겠지? 너희는 이제 죽었다고 복창해라.’
태월이 옆 복도로 사라진 지 1분도 걸리지 않은 일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도 아진과 아샤는 채찍을 휘둘러 접근을 방해했고, 황중호도 부하들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태월의 텔레파시를 들은 터라 시간을 끌어주려는 의도다.
그리고는 1분 정도가 지나자 살짝 한쪽 길을 터주었다.
그 사이로 몇 명의 인원이 파고들었고, 그들은 옆 복도에서 유유히 걸어 나오는 태월을 발견하였다.
왼쪽 귀 아래 점과 검은 장갑을 낀 걸 확인한 사내는 소리를 쳤다.
“투객님! 무사하셨군요! 그런데 그놈은?”
“몇 대 얻어터지더니 도망치더라. 일단, 여기 잔당들부터 때려잡아!”
사실 잔당이랄 게 없는 게 숫자는 서로 비슷했다.
태월은 그대로 걸음을 옮겨 최도지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오, 역시 겉모습만 같을 뿐! 역시나 투객이야! 도지파의 자랑이라 할 만하군.”
주변의 보스들도 칭찬을 해왔다.
최도지도 겉으로는 표정을 온화하게 지으며, 투객을 맞이하고 있다.
“잠시 네 분은 저와 이야길 하죠. 도망친 놈이 떨어뜨린 지갑에서 각 조직의 스파이로 보이는 명단이 나왔습니다. 이 인원이면 바로 뚫리진 않을 겁니다. 3분이면 됩니다.”
“뭐? 어디 어디에 있나?”
“헉, 어쩐지 여길 당당히 온 게 이상했는데.”
태월은 자신의 지갑을 슬쩍 꺼내 흔들어 보이며, 바로 옆의 빈방으로 들어갔다.
보스들은 자기의 측근 하나씩만 데리고 태월을 따라왔다.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확인해 볼까요?”
지갑을 열어 보이는 태월의 옆으로 보스들이 바짝 붙었다.
“입고!”
“입고?”
최도지가 입을 열어 태월이 말한 단어를 되뇌었다.
그런데 자신의 눈앞이 깜깜해지더니 암흑으로 변했다.
“헉! 뭐야?”
“엇? 최도지? 자넨 내가 보이나?”
“누, 누구?”
“나야, 김창수!”
“아, 에이스파 김형이군요!”
“나, 나도 여기 있네! 그런데 호흡이 힘들어지네. 여기 대체 어디지?”
“파라오파 최형?”
자신들의 보스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3명의 사내가 눈을 껌뻑였다.
당황해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다.
“주인이 떠났는데, 너희 개들도 따라가야지? 입고!”
“뭐, 뭐?”
“어, 어어.”
자신들의 몸이 어느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걸 느낀 것이다.
“참 아쉽네. 사람은 한 번에 입고 가능한 숫자가 5명 정도가 전부군. 게다가 반경 1m는 되어야 가능하고. 이거 늘릴 수는 없으려나? 물건이랑 많이 다르네.”
과한 욕심을 부리는 태월이다.
태월은 문밖으로 나와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1층을 정리한 황소파 조직원들이 2층으로 합류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황소파가 오히려 인원수는 두 배가 넘게 된 것이다.
“투객님! 저희 보스는 왜 안 나오십니까?”
“아, 너희 다섯씩 따라 들어오도록 해. 그렇게 전하라고 하던데?”
각파의 친위대들은 머리를 갸웃거렸지만, 지시라고 하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태월을 따라 들어간 그들은 곧바로 사라졌다.
그리고 고개를 내민 태월이 다른 이들을 또 불렀다.
10분 정도가 지나자 일선에 있던 10명을 제외하곤 아무도 남은 사내가 없게 되었다.
그런 분위기도 그들도 인지했는지 싸움을 멈췄다.
황소파와 여자 둘도 더는 공격하지 않았다.
그제야 그 다섯은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알아챈 것이다.
“야 거기 열 명! 너희 이리로 와봐!”
“왜, 왜요?”
“너희 보스들이 탈출 중이야. 너희만 남을래?”
“이들은요?”
“휴전이야. 일단 후퇴하기로 했어. 너희가 열심히 싸워준 덕에 시간을 벌 수 있었거든!”
“아, 그, 그렇군요. 그런데 투객님은?”
“나? 나는 이번 휴전의 증인으로 남을 거야. 일대일에선 우리가 이겼고, 다수에선 우리가 졌잖아. 그러니 무승부지! 뭐, 문제 있어?”
“아, 아닙니다.”
냉정히 생각하면 좀 말이 안 되지만, 급박한 이 상황에선 그렇게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는 그들이다.
대답을 한 사내가 재빨리 태월을 따르자 나머지도 덩달아 걸음을 옮겼다.
“탈출구가 좁으니 5명씩만 들어와!”
고개를 끄덕인 10명은 자기들끼리 눈짓을 보내더니 알아서 두 부류로 나눴다.
‘척 보니 서열순서네. 그래 순서대로 가야지.’
방에 들어선 1차 5명이 암흑 속에 갇혔다.
그리고 뒤이어 나머지 5명도 처리되었고.
태월은 방 밖으로 나와 황중호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그런데 방 밖으로 나온 태월에겐 장갑도 사라졌고, 귀밑의 점도 없어졌다.
“어? 원객님이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하, 내가 투객을 때려눕혀서 방에 가둬놨어. 지금 기절한 상태로 뻗어있지.”
“우와! 투객을 잡다니!”
“어때? 내 변신, 기가 막히지?”
“저, 저기 그런데 두 분은 진짜 형제신가요?”
“글쎄. 그게 뭐 중요한가?”
태월의 말에 황중호가 나섰다.
“오늘 우리가 이겼다는 게 중요하지. 지금 저쪽 보스들도 다 뻗었어. 황소들의 승리다!”
“와아아! 황소파 만세!”
“와아! 우리가 이겼다! 4:1이야!”
“자자, 이제 1층으로 내려가서 쓰러진 잔당들을 묶어놔! 이제 이곳을 정리해야지? 보스들은 우리가 항복을 받아낼 테니, 빨리들 움직여!”
황중호의 말에 새로 측근이 된 김석주가 고개를 숙여 대답한다.
“네, 알겠습니다. 자, 여긴 둘만 남으면 되고 나머진 다 내려가! 형석이! 진웅이! 너희 둘은 남아!”
“네!”
김석주의 지시에 나머지 황소파의 조직원들은 아래로 내려갔다.
태월은 방으로 다시 들어가 소생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옆에서는 황중호와 김석주가, 소생해서 깨어나는 사내들의 새 인생 맞이 준비를 했다.
방문 밖에서는 아진과 아샤가 경계를 서며, 잡담을 나눴다.
“에이, 초반에만 힘쓰다 말았네. 이번 기회에 연습을 많이 해 볼 생각이었는데 아쉽다.”
“그래도 다치지 않은 걸로 만족해야지. 그래도 하늘을 날아봤잖아?”
“호호, 아진 언니 말이 맞아. 그건 그래. 너무 짜릿하던데? 다음에는 산에서 길게 날아보고 싶어.”
“그런데 이거 오빠 때문에 싸움의 의미가 없어지네. 도망가다 휙 하고 집어넣으면 끝이잖아? 너무 낭만이 없어요. 낭만이.”
아샤의 말에 피식 웃던 아진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리고 10m 떨어진 방으로 급하게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