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새로운 황소파 보스
놀란 목소리를 내뱉는 황중호를 보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태월이다.
“최근 통화목록의 상대에게 그전에 보낸 문자를 참고해서 보냈거든?”
“앞 첫 문장이 암호입니다. 순서마다 바뀌거든요. 아마 그걸 모르셨을 겁니다.”
“헐, 무슨 조폭들이 그런 걸 쓰냐? CIA라도 되냐?”
“죄송합니다. 어쨌든 연락받은 건 제 직계가 아니라, 그 황중식의 측근입니다. 우리로서는 벅찰 거 같아 그놈에게 연락한 거거든요. 이 일이 어긋나 최악의 경우 120억까지도 날리면, 진짜 황중식에게 죽을 수도 있어서요. 그래서 이 몸의 놈이 그리했습니다.”
“그런데 황중호가 악질인데, 왜 그리 사촌 동생인 황중식에게 쩔쩔매지?”
“약점을 잡혔습니다. 약에 취해 보스의 여자를 손댔거든요.”
“헐, 그 몸도 진짜 구제 불능이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건 황중식이 짜놓은 함정이었습니다. 비록 그 황중식의 오른팔인 김석주의 솜씨지만요.”
“지금 위기를 벗어난다고 해도 황중식은 본인을 그대로 두진 않겠네?”
“당장은 별일이 없겠지만 결국은 토사구팽당할 것입니다. 그나마 목숨을 건지게 된다면 다행일 정도로요.”
기껏 살려놨더니 죽을 목숨일지도 모르게 돼버린 황중호란 소리다.
태월로서는 다 같은 악질들이지만, 이제 영혼이 정화된 황중호가 필요악 같은 조직을 맡는 게 낫다고 봤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역으로 치도록 하지. 너도 새로운 몸에 정착했는데, 소멸하고 싶지는 않지?”
“네 마스터!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기억 속에 있는 친위대가 몇 명쯤 되지? 그 외에 너를 도울 세력은?”
“황중호도 살려고 준비를 해뒀습니다. 좀 이른 감에 있지만 끌어모은다면, 삼분의 일 전력은 황중호를 따를 것입니다.”
“그럼 전화로 그들을 집합시켜. 그리고 곧 들이닥칠 황중식의 친위대를 쳐버리고 그들의 영혼을 바꾸자고!”
“아, 그게 가능하다면 역습 시 굉장한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주변에 있는 힘부터 바로 모으겠습니다.”
“혹시 이곳에도 그들의 끄나풀이 있을지 모르니, 진짜 믿을 만한 자들만 움직여!”
“네, 저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여준 태월은 전화기를 황중호에게 내밀었다.
기억 속에 있던 자신의 전화였고. 황중호는 전화를 이곳저곳으로 바쁘게 돌렸다.
그 사이 태월은 황지명 부부를 다시 찾아가, 그들을 귀가시켰다.
“그냥 이대로 가면 된다고?”
“네, 여기 부동산은 제가 찾아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 아, 괜히 자네에게 폐만 끼쳤군. 하여간 고맙네. 바쁜 일이 있는 듯하니 우린 이만 가도록 하지.”
“네, 나중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도련님! 고맙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그럼 편안히 가십시오.”
그들 부부의 일은 이곳 도박장과 관련된 일이기에, 황중식도 모르는지라 안심하고 내보낸 것이다.
황중호는 일반 손님들도 일이 있어 영업을 마친다는 통보를 하고는 귀가 조처했다.
준비를 어느 정도 마치고 기다리고 있던 차에, 봉고차 두 대가 주택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두 대의 차가 정차하고 그 안에서 야구 배트를 손에 든 20명의 장정이 내렸다.
앞장선 자는 김석주로 육체적 능력보다는 권모술수에 능해, 황중식의 총애를 받는 자다.
오늘 이곳에 굳이 오지 않아도 됐음에도 이렇게 온 것은, 자신의 사욕 때문이었다.
‘좋았어! 이곳에서 결정적인 증거만 잡아낸다면, 이곳을 내가 차지할 수 있겠군. 우리에겐 30억이라고 했지만, 내부 첩자에 의하면 50억이었단 말이지! 20억을 꿀꺽하려던 거 같은데?’
현관문이 열리고 직원 하나가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그들을 맞이했다.
“안에 그 연놈들은 그대로 있나?”
“네, 대치 중입니다. 실력이 상당하여 쉽게 제압을 못 하고 있습니다.”
“하핫, 이곳이 엉망이군. 남녀가 섞인 셋을 해결 못 한다니! 너희는 황소파의 수치야.”
김석주는 뒤에 있던 사내들에게 오른손을 들어 앞으로 내뻗었다.
그러자 사내들이 안내하던 직원을 옆으로 안으로 빠르게 진입하였다.
몇몇 직원이 저항했지만, 그들을 밀쳐버리며 그대로 VIP룸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20명 전원이 들어갔을 때, 누군가 튀어 나가 그 문을 밖에서 잠가버렸다.
“어? 이게 무슨 짓이지?”
문이 잠김과 동시에 어딘가에서 물건이 던져지는 소리가 나더니 순식간에 희뿌연 안개가 그들을 휘감았다.
“콜록! 콜록!”
“케엑! 콜록!”
“뭐. 뭐야? 이거 연막탄에 최루탄까지 동시에 터트렸어! 다들 주변을 살피고 수상한 놈이 보이면 바로 찍어버려! 야, 이 황중호! 네가 판 함정이냐?”
김석주는 눈을 최대한 감고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황중호? 이야 이놈 봐라. 살모사 같은 놈이 입을 함부로 놀리네. 쳐라!”
황중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저쪽이다! 다들 그대로 달려!”
김석주의 지시에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간 그들은, 허공에서 떨어지는 그물을 알아채지 못했다.
“헉!”
-퍽! 퍽! 퍽! 컥! 큭! 아악!
방독면을 쓴 10여 명이 그물을 뒤집어쓴 김석주의 일행에게 무차별 몽둥이찜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만! 이제 다들 나가 있도록 해!”
“네!”
방독면 사내들이 나가자 태월이 밀실에서 나와 공간 배낭을 열었다.
그리고 쓰려져 있는 20명을 그물째로 배낭 공간 속으로 입고시켰다.
황중호는 VIP룸의 문과 창문을 활짝 열고 방 안 공기를 순환시켰다.
“이곳 말고 다른 곳으로 가지!”
“네! 마스터!”
환기를 시키고는 있지만, 최루탄의 매운맛이 한순간에 사라질 리가 없었다.
태월은 황중호를 따라 비어있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일은 잘 치러진 거 같은데?”
“네, 아주 잘되었습니다. 눈엣가시 같던 김석주를 잡지 않았습니까? 설마 같이 올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오, 그 앞에서 설치던 놈이 김석주였군. 의외의 인물이 걸려들었군. 제대로 된 비수로 쓸 수 있겠어.”
“맞습니다. 황중식이 다른 놈은 못 믿어도, 자신의 충견인 이놈은 믿거든요.”
시간이 지나 태월은 공간 배낭에서 20명의 사내를 꺼냈다.
“아이고, 아예 다져놨네? 당장 고쳐쓰기도 힘들게 해놨잖아?”
“죄, 죄송합니다. 잘 보이지 않아서 부하들이 과했나 봅니다.”
“휴게실에 있는 내 일행을 데려와 줘.”
“네, 마스터!”
황중호가 아진과 아샤를 데려오자, 태월은 공간 배낭에서 의료상자를 꺼냈다.
절반은 꿰매거나 부목을 대어줬다.
놀라는 황중호를 보며 태월은 피식 웃었다.
“나 의사이기도 하거든? 그리고 이쪽도 같은 의사고.”
“아, 그, 그러시군요. 경호원이 아니었군요. 두 분 다 나이로 보면 젊은 의사 축에 끼이긴 하네요.”
나이 이야기에 태월은 아차 싶었다.
그리고 변신 가면을 벗어 본 얼굴을 드러냈다.
“헉! 그건 무슨 조화입니까?”
“놀랄 건 없어. 변장했던 거니까. 실제로 보니 어때, 감쪽같지?”
“그, 그런데 나이가 상당히 젊으신데요? 인턴 정도 될 거 같은데. 오늘 하루 쉬시는 날인가 보죠?”
“인턴도 아닐뿐더러, 이미 의사 면허증은 가지고 있어.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고, 손 씻을 물이나 가져와.”
“네, 마스터!”
태월은 20개의 영혼 구슬을 문신이 삼키게 하였다.
10분 정도가 지나, 문신이 뱉어진 영혼 구슬을 각자의 입에 물려주었다.
과거라면 헷갈렸을 수도 있으나, 지금은 영혼의 이어진 선을 볼 수가 있다.
30분 정도가 지나자, 하나씩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태월은 그들에게 또 한 번의 구라를 쳤고, 그들은 각자를 새로운 영혼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김석주! 오늘 이곳에 오게 된 이유가 뭐야?”
“음, 기억을 보면 자금 횡령에 대한 증거를 찾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횡령이라니?”
“여기에 저희 끄나풀이 있는데, 그를 통해 알아낸 정보가 30억이 50억으로 둔갑한 이야깁니다. 그래서 김석주가 그 증거를 확보해서 이곳을 접수하려 한 것입니다.”
“뭐 틀린 정보도 아니고 맞는 정보도 아니네. 그런데 횡령을 안다고 해서 이곳이 접수가 되나?”
“기존에 가지고 있던 약점으로는 황중식도 위험 요소가 크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약점을 잡아내어 이번 기회에 내치려 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바다에 수장하려 했지만요.”
“허, 기다리지 않고 바로 대응하길 잘했군. 그리고 이제부터 황중호가 황소파의 보스가 될 거야. 이제부터 너희 20명은 나를 대신할 황중호에게 충성을 하도록 해!”
“네, 마스터! 알겠습니다.”
김석주의 대답을 들은 태월은 황중호를 돌아봤다.
“이제부턴 유리한 국면이네. 내가 없어도 평정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이들 20개의 칼이 반대로 겨눠지면, 그들은 대비도 하지 못하고 끝날 것입니다. 측근 친위대에게 등을 찔리게 되니까요.”
“그럼 김석주는 황중호와 의논해서 마무리를 잘하도록 해. 죽여서는 안 되는 거 알지?”
“네, 마스터!”
“그럼 우린 이만 가도록 할게.”
“120억은 안 가져가십니까?”
“훗, 그거 가져가면 황소파도 휘청대지?”
“뭐, 그렇긴 합니다만….”
“됐어, 50억으로도 충분해. 완전히 일이 끝나면 보고를 하도록 해.”
“네, 마스터!”
“아, 생각났는데. 그 황진명 부부에 관련된 서류를 가져와!”
“네, 알겠습니다.”
10분 정도 후에 태월의 손에 몇 가지 문서가 쥐어졌다.
태월이 황소파를 접수해서 특별히 무언가를 도모하려는 생각은 없다.
다만,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정도만 가졌을 뿐이다.
태월 일행은 90도 인사를 하는 사내들을 뒤로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태월은 황진명 부부의 집 방향으로 차를 몰았는데, 아진과 아샤는 화장을 지우고 새로 하느라 바빴다.
“오늘 둘이 날 돕느라 수고했어.”
“뭐,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자주 애용해주세요. 재미있기도 했어요.”
“풉, 뭘 자주 애용해? 아진 언니 말솜씨가 점점 에로틱해지는데?”
“아샤? 너에게 배운 거거든? 이렇게 해야 남자들이 좋아한다며?”
“에구, 쯔쯔. 아진에게 이상한 걸 가르쳤네. 참 잘하고 있다.”
뒷자리에 앉은 아진의 말에 태월이 혀를 끌끌 찼다.
시인이라도 하는 듯 조수석의 아샤는 태월에게 혀를 쏙 내밀 뿐이다.
사흘 후 황중호에게서 연락이 왔다.
황중길과 황중식을 함께 태운 차량이 교통사고를 당했단다.
황소파의 보스인 황중길은 의식불명에 빠졌고, 황중식은 반신불수가 되었다고 했다.
태월은 더 도움을 주기로 마음을 먹고 황중길을 소생시켰다.
그리고 그에게서 황소파의 보스 자리를 황중호에게 넘긴다고 선언하게 했다.
그래서 일체의 저항 없이 황소파를 넘겨받게 된 황중호다.
“어휴, 쓸데없는 일에 휘말려서 일주일을 허비했네. 여행 갈 시간만 줄었어.”
“지금이라도 가면 되잖아요. 시간 여유도 많은데요, 뭘.”
“자, 그럼 이제 전국 일주를 시작해볼까?”
태월은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공간 배낭에 넣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따르릉! 따르릉!
한국에서 임시로 쓰고 있는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어? 황중호가 또 웬일이지?”
태월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뭐? 누가 어디를 쳐들어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