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도박장으로
태월이 전화를 걸었는데, 신호가 한참 가다 말고 끊어진다.
그 후 다시 거니 수신자의 핸드폰이 꺼져있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냐?”
“아, 아무래도 황지명 아저씨에게 일이 생긴 거 같아요.”
“음, 무슨 일이길래?”
“그 아내분 있잖아요. 그분이 지인들과 어울려 재미로 치다가 사기도박에 걸려든 거 같아요.”
“사기 도박꾼은 돈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녔어?”
“거기 재개발로 인해 땅값이 많이 폭등했잖아요. 두 집의 땅이 결혼 후 합쳐져 재건축했었으니, 대지 면적 지분이 꽤 되거든요. 그걸 노렸나 보네요. 아직 시간 여유가 있다고 하시길래 약속을 여유 있게 잡았더니 이런 일이 생겼네요.”
“뭐, 방법은 있고?”
“네, 그 정도는 지금까지의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오늘은 이만 일어서야겠어요. 한동안 시간이 남으니, 곧 기회 만들어서 여유 있게 올게요.”
“그래, 그래도 모르니 몸조심하고. 결과는 나에게 알려줘야 한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태월이 일어서자, 아진과 아샤도 따라 일어서며 노스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다시 오겠습니다.”
“스님 할아버지! 또 올게요.”
“그래, 잘 다녀들 오너라.”
서적이 들어있는 궤짝을 차 트렁크에 실은 태월은, 건곤암을 나서며 아카에게 연락하였다.
아카가 인공위성 중 하나를 움직여, 태월이 지목한 곳을 훑으며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시간이 걸릴 테고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어. 둘은 홍대로 가는 게 어때?”
그 말에 아샤는 아진과 눈을 맞추더니 고개를 내젓는다.
“오빠? 우리 둘 다 웬만한 조폭쯤은 간단히 해결할 정도는 되잖아. 더구나 대한민국은 총기 소지도 하지 못해. 도박단을 비호 하는 조폭이라 해도 총을 가지고 있겠어? 기껏해야 칼이지.”
“오빠가 우리 둘 옆에 항상 있을 순 없잖아. 차라리 우리가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게 낫다고 봐.”
아샤에 이어 차분했던 아진까지 그렇게 말하자 태월은 말릴 수 없었다.
이젠 어린애가 아니니 과잉보호는 하지 말아달란 소리다.
태월이 보기에도 이제 둘은 꽤 무술로도 강한 고수 반열에 들어서 있다.
무술 재능과 신체 재능이 부여되고, 그걸 꾸준히 늑대 호흡법을 통해 더 높은 경지에 이른 두 사람이다.
“그래도 긴장의 끈은 놓지 말도록 해.”
“걱정하지 마시라고요.”
그 후 셋은 목표지점의 잠입에 대해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아루 언니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뭐 어설프지만 다른 걸 시도해봐야지 어쩌겠어. 성공할지는 모르지만.”
태월은 관악구 봉천동의 허름한 단독 주택으로 향했다.
이곳이 황지명이 말했던 그 비밀 사설도박장이다.
저소득층이 대부분인 이곳은 공권력이 주시하지 않고, 불법적인 일에 대해 신고 자체도 미흡했다.
자신들 사는 것에도 버거운 사람들이 남들에게 신경을 쓰는 건 드문 일이다.
도착 후 주변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는 도중에 아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핸드폰 전원이 꺼지기 직전의 위치가 그 도박장이라고?”
“그 시간 이후로는 대문 밖으로 황지명이란 사람이 나선 적이 없어. 후진 동네라서 CCTV가 거의 없어, 어려움이 있었지만 말이야.”
“차량에 실려 나갈 수도 있었잖아?”
“그러니까. 들어온 차량은 있어도 나간 차량이 없단 소리야.”
“그럼, 계속 지켜봐 줘!”
“알았어. 내가 더는 지켜보지 못하겠지만, 인공지능 슈퍼컴이 작동 중이니 실수는 없을 거야. 그럼 수고해.”
아카와 통화를 종료한 태월은 아진과 아샤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 거 같아.”
“응, 우린 상관없어요.”
태월은 품에서 변신 가면을 꺼내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바꿨다.
그리고는 변신 스카프를 꺼내 아샤에게 건넸다.
아샤는 차량 안으로 들어가 화장을 야하게 바꾸고 옷도 변신 스카프를 이용해 탈바꿈했다.
20대 중반의 눈이 번쩍 뜨일만한 화려한 미인을 콘셉트로 잡았다.
그리고 아카가 벗어 놓은 옷은 아진이 입었다.
조금의 빈틈이라도 드러나지 않기 위해서다.
또 설혹 그런 면이 생겼다 해도, 알아낸 자들도 사람이 바뀌어 오히려 헷갈릴 것이다.
아진도 화장해서 최대한 다른 이미지를 만들었고, 태월은 30대 초반의 재벌가 망나니 3세쯤으로 변모했다.
그래도 아샤와 아진은 원래 그녀들 모습보다는 미모를 의도적으로 다운그레이드한 것이다.
“호호, 오빠가 완전히 난봉꾼이네? 나 어때?”
“에고, 이거 작전이긴 한데, 너무 노출이 심한 거 아냐?”
“오빠만 만질 건데, 뭐 어때? 오히려 스릴 넘치고 재밌어.”
태월이 아진을 쳐다보자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도 아니잖아요. 저도 상관없는 거 알면서 그래요.”
아진의 말에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한 태월은, 주변에 돌아다니던 파리 한 마리를 손으로 잡아챘다.
그리고 필름 통에 넣고 뚜껑을 단단히 닫아버렸다.
10분쯤 지나서 뚜껑을 열어보니, 질식사로 죽어있는 파리가 몸을 드러냈다.
조심스레 왼손을 움직여, 파리 근처에서 허둥대는 쌀알만 한 파리의 영혼을 문신이 삼키게 했다.
너무 작고 생소해서인지 아니면 문신의 식성에 안 맞았는지 거부를 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시도에 문신도 결국 가까스로 응했다.
‘아, 필요해서 하려는 건데, 왜 자꾸 거부해? 결국 해줄 거면서 말이야.’
속으로 중얼거리며 문신을 타박한 태월은, 곧이어 뱉어내는 파리의 정화된 영혼을 파리의 입 쪽에 갔다 대었다.
처음 하는 시도라서 자연스럽진 못했어도, 결국은 태월의 의도대로 파리가 소생했다.
“와, 오빠 이거 숨 쉬는 거 맞지?”
“그래 더듬이가 조금 흔들리고 있잖아. 어릴 때 하는 미니 비행기 모형 조립하는 기분이네. 입이 여기가 맞긴 하나 봐.”
몇 분도 안 돼 정신을 차린 파리에게, 태월은 자신의 의지를 반복해서 전했다.
십여 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의도를 알게 되었는지 눈을 깜빡인다.
파리의 눈은 머리의 가운데 부분에 작은 눈이 3개가 있고, 더듬이 양옆에 큰 눈 한 쌍이 있다.
3개의 단안과 2개의 복안이 있는 것이다.
단안과 달리 복안은, 가느다란 낱눈들이 벌집 모양으로 모여서 형성된다.
색채와 형태와 움직임을 이 겹눈으로 분간할 수 있는 것이다.
“오, 이놈 눈으로 날 보는데, 흐릿하긴 하지만 눈에 영혼 에너지를 두르니 생각보단 쓸 만해지네.”
태월이 파리에게 시도한 것은 뜻을 전해서 태월이 원하는 곳을 보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 시야를 태월이 다시 공유하는 방식이다.
익숙해지게 하기 위해 연습을 하던 중에, 머리가 어지러워짐을 태월은 느꼈다.
조금 쉰 후에 다시 반복해도 한계가 보였다.
“이거 장시간 사용하면 현기증이 나서 안 되겠어. 10분 정도 했다가 다시 3분 쉬고 다시 10분 하는 식으로 해야 해.”
“호호, 아진 언니의 새로운 발상이 성공했네.”
“하하, 막상 성공하고 나니 나도 신기하다. 잘만 이용하면 꽤 괜찮은 학문적 성과도 거두겠어.”
“생물학자가 될 것도 아니면서 뭘 그렇게까지 하려고 해?”
의사가 되기 위해 소모한 시간만 해도 아샤는 아까웠다.
그런데 또 생물학 연구원이 될 것 같은 말을 내뱉는 태월에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아니, 이건 단순한 생물학 측면의 발견이 아니야. 의학이나 과학기술에도 사용이 가능해져. 당장 떠오르는 건 얼마 안 되지만, 굉장하다는 촉이 느껴져.”
“또 연구원인가 하려는 거 아냐?”
“엥? 연구팀을 꾸려도 팀장은 방향 제시만 하는 거고, 연구는 연구원들이 하는 건데? 뭐, 결과 취합은 팀장이 하긴 해야지만, 이 정도로 결과를 미리 안다면 답은 뻔하잖아.”
연구에 파묻혀 있지 않을 거란 소리기에, 그나마 안심을 하는 아샤다.
공간 배낭에서 양주 한 병을 꺼내 뚜껑을 연 후 입과 옷의 일부에 술을 발랐다.
그 후 태월은 아샤와 아진을 양옆에 끼고 대문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걸 위장하기 위해서인지 그 단독 주택의 1층은 술을 마실 수 있는 카페였다.
그리고 2층은 불법도박장이다.
“아 여긴 아무나 오는 곳이 아닙니다.”
한눈에 보아도 나 깍두기요 하는 얼굴과 복장을 지닌, 회색빛 영혼의 20대 후반 남자였다.
“아무나 오다니? 내가 아무나로 보이나?”
태월은 고개를 까딱거리며 옆에 낀 아샤의 엉덩이를 더듬었다.
그리고 대문 앞에서 제지하던 남자에게 시비성 어투로 말을 받아쳤다.
오늘 제비뽑기에서 져, 경비를 서게 된 김상국은 눈앞의 남자가 어이없었다.
‘이 자식 뭐야? 술 냄새 팍팍 풍기는 거 보니 어디서 한 잔 빨고 온 거 같은데. 번듯한 술집 놔두고 여긴 왜 기어들어 온 거야? 허, 가만 보니 이 여자들도 굉장하네? 강남에서 삐끼할 때도 보지 못했던 미인들인데? 재벌 3세쯤 되는 건가? 하나는 러시아 여자 같은데?’
그래도 자신이 맡은 역할은 해야 하기에 설득해서 보내려는 김상국이다.
“여긴, 예약제입니다만? 혹시 예약되어 있나요? 성함이?”
“음, 그 친구 이름이 뭐더라? 예나? 아까 너도 들었지?”
조금 비틀거리며 아진의 귓불을 살짝 깨물어주며 묻고 있는 태월이다.
“Я сказал, что это Тхэхо.”
“아, 맞다 맞아! 태호! 권태호! 그 녀석이 여기에 맛있는 술과 돈지랄을 하면 왕처럼 대해준다고 했었어.”
권태호는 황지명의 아내를 낚은 주동자였다.
김상국은 권태호라는 사람을 알긴 알았다.
그와는 대화를 나눠본 적이 한 번 있었고, 호구를 데려오는 역할을 맡은 사람 중 중견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당시 눈치 없다고 김상국을 개망신 줬던 존재였다.
‘그 녀석은 항상 직접 데려오는데. 아까 하나 데려온 게 오늘의 전부가 아니었나? 근데 이 자식은 영어도 아닌 말을 잘도 알아듣네? 유학이라도 갔다 와서 허세 좀 떨려 온 건가?’
고개를 갸웃거린 김상국은 사실 확인을 위해 말을 건네보았다.
“그 사람은 일이 있어서 두 시간 전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안 들어올 겁니다만.”
“아, 알아! 내일 보기로 했는데, 술을 먹다 보니 충동이 생겨서 말이야. 왜 남자는 그런 거 있잖아!”
‘아니, 있긴 뭐가 있다는 거야? 그런데 손이 가만있지도 않네. 크, 아이고 부럽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양쪽을 오가며 진한 스킨십하는 태월이 김상국에겐 난감한 상대다.
힘들게 작전 짠 진짜 호구인데, 그냥 보냈다간 위에서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권태호에게 연락하여 사실확인을 하기엔 걸리는 게 많았다.
연락처도 몰랐고 알아낸다 해도 손님을 불편하게 했다는 이유로 몰아붙일 게 뻔했다.
“야! 너, 너! 여자들 앞에서 망신 계속 줄 거야? 이게 뭐야? 입구에서! 더 인상 구기기 전에 안내해라?”
태월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김상국을 살짝 밀었다.
무의식적으로 밀리지 않으려고 힘을 과하게 주던 그였다,
그 힘에 태월은 비틀거리며 옆으로 넘어간다.
태월을 잡으려고 김상국을 손을 뻗었고, 그와 동시에 아진이 태월을 부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