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보리스와 알렉세이
태월은 알렉세이의 피하란 말에 고개를 저었다.
변신 스카프를 방탄복으로 하면 개인화기는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얼굴 또한 변신 가면을 이용하여 다른 인물로 바꿨다.
“괜찮아. 내가 위험해질 경우는 없을 거야.”
알렉세이의 눈앞에서 얼굴이 변하고 일체형 방탄복까지 생겨나니 그는 많이 놀란 얼굴이다.
더불어 흠모의 눈초리를 태월에게 보내고 있는 알렉세이다.
태월의 옆으로 아리랑이 백호의 모습으로 그리고 아루가 불덩이의 모습으로 몸을 드러냈다.
“좀 꼬이긴 했지만, 가능하면 살상은 피하는 쪽으로 하자!”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루가 그들을 정탐해봐. 왜 보리스가 자기 아버지를 이곳까지 데려왔는지도 알아보고!”
“오케이!”
아루의 몸을 이루던 불덩이가 앞으로 나아가며 점차 희미해진다.
정령 본체에선 자신의 의지로 모습을 감추거나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태월의 눈에는 여전히 보이지만 말이다.
“보리스가 저러는 거 짐작 가는 건 없고?”
“예전부터 보스 자리를 빨리 받으려고 용쓰는 건 있었어요. 한 해 빠르게 가려고 무리하는 거라면 조금 이해가 안 갑니다. 그 외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어차피 물려받는 걸로 알려진 상태인데, 도박을 할 리가 없긴 하네.”
“저는 부하들을 준비시키고 다시 오겠습니다.”
태월이 고개를 끄덕이자 알렉세이는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나자 알렉세이가 돌아왔고, 조금 후에는 아루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보리스인지 뭔지 하는 놈이 자기 측근 하나와 이야길 하는 걸 들을 수 있었어. 보리스가 누군지 알아내는 데만 20분 날려 먹었다니까. 알렉세이랑 닮은 사람을 찾으려 했는데, 전혀 다르게 생겼더라.”
자기가 고생한 걸 알아달라는 의미로 장황하게 떠드는 아루다.
“오, 역시 아루가 대단하단 말이야. 그래서 어떤 일인데?”
“호호호, 뭐 이 정도 일쯤이야. 그 보스란 남자가 더 살아보려고 기를 쓰나 봐. 중국의 저명한 중의사와 미국의 심장병 권위자를 초대했다더라고.”
“그렇다고 지금 말기인데 그게 나을 수 있겠어? 체력도 못 버틸 텐데.”
“그래서 중의사가 오는 거라더라. 진귀한 명약으로 몸을 버티게 하는 역할이라는데? 그 후 체력이 보강되면 미국 의사가 이식 수술할 거래. 그 중국 의사 역할이 아주 중요한가 봐.”
태월이 한의학을 배우진 않았지만, 기를 다루고 음양오행을 배우면서 원리는 아는 상태다.
몸만 버틴다면 태월도 그 시도가 불가능하진 않을 거라 봤다.
기존의 서양의학에서 냉대하는 기라는 것을 믿는 태월이다.
음양오행 때 배운 능력으로 한의학에도 도전해볼까 생각했던 그다.
비록 그 보스의 몸 상태에 대한 전문 자료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말이다.
“그거랑 이 위험한 사냥터에 오는 거랑 무슨 관련이 있어?”
“중의사가 가지고 온다는 게 산삼인가 보던데, 조금 부족한가 보더라. 그래서 자신이 귀하게 구해온 이백 년 된 삼을 이 사냥터에 몰래 심었어. 가진 돈을 다 털어 넣을 정도라던데.”
“오, 그래서 이 사냥터가 명약이 있다고 알린 후 그걸 보리스 아버지가 직접 캐게 한다?”
“응.”
“아니 그걸 보리스나 측근이 캐오게 하면 되지. 왜 그걸 자신이 직접 와?”
“서로 의심이 많은 부자잖아. 보리스 옆에 참모 하나가 똑똑한가 보더라. 보리스도 모르는 명약이라고 다른 루트를 통해 슬쩍 흘렸나 봐. 평소라면 한 번쯤 의심했을 텐데, 자기 목숨이 달린 일이라서 어설프게 걸려든 거 같아.”
“참 나 원, 자기 아들이 그걸 가로챌까 봐, 본인이 직접 나섰다는 거네? 저러다 그들끼리 다투겠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둘은 부자지간이긴 해도 서로를 완전히 믿지 않거든요. 잘하면 저들끼리 총질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옆에 서 있던 알렉세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태월의 의견에 동조했다.
“아루, 저들의 인원은 어떻게 되는데?”
“보스 쪽 인원이 40명에 보리스 인원이 50명 정도야.”
“마스터? 저희가 100명입니다. 약간 더 많은 상황이네요.”
보스나 보리스는 일부 인원만 데려왔기에 숫자가 적은 것이다.
사냥하러 오는 길에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그런 약초가 날 땅이긴 해?”
“여기가 아주 깊은 산골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뒤쪽 산은 인적이 드문 곳이라, 과거엔 약초가 많이 났다고 합니다.”
“좋아, 그럼 우리가 슬쩍 선수 쳐서 자기들끼리 의심하도록 만들까?”
“호호호, 그거 재미있겠다. 나 그 약초 심은 곳 주변도 알거든? 거기엔 두 명이 숨어있었어. 그냥 잠재우면 될 거 같아.”
아루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던 태월은 공간 배낭에서 마취총을 꺼냈다.
과거 알렉세이 일당이 쓰던 그 물건이다.
“그냥 내가 해도 되는데?”
“아니야, 이렇게 마취총에 의해 당해야, 보리스가 들통난 줄 알고 더 서두르게 될 거야.”
“음, 알았어. 그런데 그 삼이 두 뿌리더라.”
“오호, 제대로 불로소득을 챙기겠군. 알렉세이? 들었지? 난 그리로 가서 챙겨올 테니, 너희는 일단 먼저 나서지 말고 상황을 지켜보도록 해.”
“네, 마스터!”
태월은 아루를 따라 삼이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방탄복은 어둠 속에서는 더욱 짙게 변하여, 멀리서 보면 태월의 몸은 주변 색이 비슷해 식별하기 어려웠다.
30분쯤 빠르게 산을 탔을 때, 아루의 몸은 나가는 것을 멈췄다.
‘저기 정상 왼쪽 20m쯤에 소나무 옆 큰 바위 보이지?’
‘어, 거기에 숨어있단 거야?’
‘응, 위장 상태더라. 전직 군인 느낌이던데?’
‘아루는 그들 앞쪽으로 가서 소리를 조금 내도록 해. 신경이 분산되면 쉽게 처리될 거야.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도 살짝 불빛이 보이게 해봐.’
태월의 말에 아루는 빠르게 사라졌다.
별로 긴장감도 느끼지 못한 태월은 발소리를 죽여가며 조금씩 전진했다.
10m 가까이 접근한 태월은 엎드려서 총을 겨눴다.
명중률이 떨어지는 권총이긴 해도, 태월의 재능이 그것을 보완해 줄 것이다.
앞쪽으로 불빛이 미약하게 생기며 소리까지 나자, 은닉해있던 한 명이 고개를 조금 내밀었다.
-피융! 크!
소음총 발사 소리와 동시에 작은 신음이 들렸다.
다른 한 놈이 들켰다고 여겼는지, 몸을 땅에 바짝 붙이며 위치를 이동시키고 있었다.
태월은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마취총을 새로 꺼내 연속 발사를 했다.
-피융! 피융!
바람도 불고 표적도 움직이는 중이라 첫 번째는 마취탄은 실패했지만 두 번째는 명중했다.
‘태월? 성공이야. 꿈틀대긴 하는데 금방 잠들 거 같아.’
“둘 다 뻗었어? 보스가 하마터면 당할 뻔했어. 이야, 이런 장난을 치다니, 보리스가 보기보단 간이 크네! 제보자에게 보너스가 두둑하겠는데?”
태월은 텔레파시도 아닌 조금 변조한 목소리를 직접 뱉었다.
죽은 것이 아니기에 그들 중 하나쯤은 태월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 후 그들은 깨어나서 보리스에게 이 사실을 전할 것이고.
태월이 그들에게 다가갔을 때는 이미 마취되어 자고 있었다.
“여기야!”
아루가 20m 반대쪽에서 몸을 흔들고 있었다.
태월은 그곳으로 이동하여 고개를 숙여 살펴보니, 아루의 말대로 오래 묵어 보이는 삼 두 뿌리가 심겨 있다.
“하하, 이놈들 머리를 좀 썼는데?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원래 이 자리에서 자란 줄 알겠어.”
배낭에서 단검을 꺼내 조심히 주변 땅을 파헤치고 파냈다.
“흠, 진품이군. 한국에서 구하려 해도 한 뿌리당 1억은 넘겠어.”
기절한 두 놈이 숨어있던 바위 아래서 이끼들을 캐내 삼을 감쌌다.
그걸 배낭 속에 넣은 태월은 아루와 함께 산 아래로 이동을 했다.
알렉세이가 있는 곳으로 오니, 주변에 숨은 인기척들이 꽤 많이 감지되었다.
그의 부하들이 모여서 대기 중인 것이다.
“아직 사달이 나진 않았나 보네?”
“20분 전에 보리스 측 몇 명이 움직이긴 했습니다.”
“음, 그들도 아루의 불빛을 보았을 테니, 뭔가 이상함을 느꼈을 거야.”
그들은 태월과 반대편에 자리 잡고 있기에, 하산하면서 마주칠 일은 없었다.
“아루? 가서 그들 상황을 살펴줘!”
아루의 몸은 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태월 일행의 맞은편 쪽에서 조금 소란들이 생겨났다.
십여 분이 더 지난 후에는 태월의 예민한 귀에 소음총의 발사음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알렉세이? 그들 간의 총질이 시작되었어. 그냥 막 쏠 줄 알았는데 그 정도로 무식하진 않네?”
“과거엔 신경 안 쓰고 넘어갔지만, 지금 정부는 민감하거든요. 그래서 다들 소음기를 장착했습니다.”
“아쉽게도 결국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겠군.”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아루가 돌아왔다.
“난리도 아니야! 보리스 쪽에서 보스부터 암살해버렸어!”
“헐, 심장병 고치려다가 더 빨리 하늘로 가버렸군.”
“저대로 두다간 양쪽 사상자만 잔뜩 늘어나겠어. 비겁한 행위에 대해 보스 쪽 친위대들이 강하게 반격하고 있어.”
태월은 알렉세이에게 고개를 돌리더니, 손짓을 했다.
“사상자가 더 많아져선 너희도 곤란하잖아. 보리스 쪽을 뒤에서 공격해서 항복을 받아내! 뭐 보리스는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네, 마스터!”
알렉세이가 손뼉을 두 번 치더니 전진 지시를 내렸다.
“지금부터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 보리스를 잡아들인다. 보리스와 그 일당을 포위해서 생포해. 가능하면 죽이진 말고 부상 정도는 괜찮아.”
대답 대신 행동을 보이며, 알렉세이의 부하들은 빠르게 숲을 질러 나아갔다.
뒤편에서 갑자기 공격을 받게 된 보리스 일당은 허둥거리며 쓰러져갔다.
양쪽에서 쏟아지는 공격으로 피할 곳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푸숑! 푸숑! 푸숑! 큭! 컥! 윽!
“패륜아 보리스! 항복해라! 목숨은 살려주마! 그 외에도 항복하기만 하면 살려준다! 이미 너희는 이번 전투에서 패했다. 우리 패밀리가 서로 상잔해서, 쪼그라드는 걸 원하지 않겠지? 생각이 있는 놈이라면 항복해라!”
보리스 측의 강골 친위대 빼고는 전부 몸을 빼내 항복 요청을 해왔다.
이에 분노한 보리스 친위대 한 명이 같은 편에게 총질해댔다.
-푸숑! 푸숑! 푸숑! 푸숑! 컥! 커억!
알렉세이 쪽에서 그 친위대의 몸에 총알을 무자비하게 박아 넣었다.
아루는 그 틈에 보리스의 입에 불의 막을 치고 산소를 태워버렸다.
결국 보리스는 총알이 아닌 질식사를 하게 되었다.
“보리스가 쓰려졌다. 다들 총을 내려놔!”
그걸 빠르게 파악한 알렉세이 쪽 행동대장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게 된 보리스 측 친위대들은 허탈함에 사로잡혀 무릎을 꿇었다.
“의사분이 오셨다. 다들 자리를 비켜!”
태월의 변신 스카프는 어느새 의사 복장으로 바뀌어있었다.
“흠, 위험한 상태입니다만, 최선을 다해보죠. 둘을 저기 막사로 옮겨주세요.”
알렉세이의 명에 의해 보리스 측의 막사가 있는 곳으로, 보스와 보리스의 몸은 옮겨졌다.
태월은 소생해도 결국 버티지 못할 보스는 살리지 않았고, 보리스만 소생시키기로 했다.
일단 총에 맞은 부상 부위부터 치료해야 했다.
“헐! 얘는 왜 또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