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셋의 대학 졸업식
태월은 황당한 표정으로 아이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곧바로 키쿠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 제가 가르친 건 아니에요.”
“그럼 얘는 왜 나에게 아빠라고 하는 거야?”
“제일 처음 봤던 남자여서 그러는 거 같은데요?”
처음 봤던 여자인 키쿠리를 엄마라고 불렀던 거 보면 이해는 할 만했다.
“그런데 얘는 다른 말은 못 하나 봐?”
“제가 말을 시켜보니 말을 알아듣긴 해요. 그런데 언어는 아직 미습득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름은 안 지어주나요?”
“그러고 보니 새로 생긴 요괴 셋 다 이름을 짓지 않은 상태였네. 흠 이름이라...”
결국 태월의 무데뽀 이름 짓기가 시작되었다.
“백마는 화이트! 두더지는 더지! 아이는 키토!”
키쿠리가 너무 성의 없는 이름들 같아서 막아서려는데 그사이 세 요괴의 몸에서 빛이 반짝였다.
“앗! 너무해! 다른 요괴야 그렇다 쳐도 아기 이름이 키토가 뭐예요?”
“키쿠리를 엄마라고 부르니 키토로 한 건데?”
“혹시? 제가 아는 그 키토가 아니죠? 키토산!”
“아,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키쿠리의 지적에 뜨끔한 태월이다.
키 자를 앞에 두고 생각하다 보니 키토산이 떠오른 거긴 했다.
어찌 되었든 셋은 전부 아카식 레코드에 이름이 등록되었다.
화이트(합성요괴), 더지(합성요괴), 키토(합성요괴)로 말이다.
요괴들이라서 그런지 키토를 제외하곤 둘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화이트는 20살 정도의 백인 남성 모습으로, 더지는 20살 정도의 황인 남성으로 그리고 키토는 태어난 지 백일 정도 되어 보이는 아기로.
“그런데 키토는 성별이 뭐야?”
“여자아이던데요?”
“그런데 얘도 요괴인데 왜 변신이 안 되지? 그냥 꼬리 달린 아기인데?”
“그,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요괴 도감에 나오는 애가 아니잖아요? 새로 합성된 거라서 어떤 특성이 있고 또 어찌 될지 예측이 안 돼요.”
“키쿠리는 이제 완전한 중급신이 된 건가?”
“네, 번개 하급신을 흡수했더니 중급신의 격에 도달했네요.”
“그 정도면 일본에서는 밀릴 일이 없겠네?”
“네, 현재 활동하는 중급신이 없다 보니, 걸리적거릴 존재는 없는 상황이죠.”
“신도를 많이 늘려서 극우 세력을 와해시키도록 해. 교리는 알아서 정하고 말이야.”
고개를 끄덕이는 키쿠리를 뒤로하고 두 요괴를 쳐다봤다.
“너희는 키쿠리를 돕도록 해.”
“네, 마스터!”
“네, 알겠습니다. 마스터!”
“자 이제 식사하러 나가 볼까?”
태월을 선두로 해서 아기를 안은 키쿠리, 토리 그리고 화이트와 더지가 뒤를 따랐다.
다음 날 태월은 오부치 게이조를 한 번 더 만나본 후 러시아로 떠났다.
학교 출석 일수를 보충하게 된 태월이지만, 졸업식은 정상적으로 치르게 되었다.
“하하, 내가 모스크바에 다 오게 되다니! 당신도 기쁘지?”
“전 이미 한 번 다녀왔었거든요?”
“아, 그렇네. 하여간 미인들이 많긴 많군!”
-찰싹!
조민희의 등짝 스매싱이 박승철을 강타했다.
“우리 아들 창피하게 만들지 말고 그만 두리번거려요!”
“으, 무슨 손맛이 이렇게 매워?”
“당신이 매운맛 좋아하길래 특별히 인심 쓴 거예요. 추가해드릴까요?”
“헉! 돼, 됐어!”
손사래를 치며 조민희와 거리를 벌리는 박승철이다.
태월과 아샤 그리고 아진의 졸업식 축하를 위해, 한국에서는 조민희 박승철 그리고 홍미연과 홍설희가 왔다.
그리고 미국의 아카도 넘어왔고.
아쿠와 아루도 참석 중이다.
일본에서도 오려는 걸 태월이 말렸다.
한창 정계의 일에 바쁜 사토 유마와 교세 확장에 정신없는 키쿠리를 오지 못하게 한 것이다.
“오, 진짜 둘이 군계이학이군.”
“처형? 군계일학 아니었어요?”
-찰싹!
“둘이니 군계이학이지!”
“앗 따거! 기어이 매운맛 보너스를 날리네!”
태월 가족들의 말대로 졸업식장에서 아샤와 아진의 미모는 눈에 띄었다.
눈에 띌 정도를 넘어서 웬만한 러시아 미녀들을 오징어로 만들어버렸다.
“호호! 어때요, 저 둘의 화장이? 제 담당 메이크업하시는 분을 데리고 왔는데 그분 솜씨예요.”
“와 저게 말로만 듣던 그 연예인 풀메이크업이구나. 너무 힘준 거 아니야? 다른 사람들이 거리를 두잖니.”
비교당하기 싫어서인지 여성 졸업생들이 옆으로 오질 않았다.
“난 아샤가 너무 웃기는 거 같아. 쟤는 자기 학과에 있을 것이지, 왜 저기에 앉은 거야?”
홍미연의 말에 다들 공감을 하는지 웃으며 키득거렸다.
태월의 의자 양쪽으로 아진과 아샤과 앉아 있는 상황이었다.
교직원들이 처음에는 제지하려 했지만, 학과장이 그들에게 귓속말로 몇 마디를 속삭이자 그대로 돌아갔다.
가족들은 졸업식이 진행되는 동안,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총장과 각계 인사의 축하 인사 연설에 이어 졸업생 대표와 재학생 대표의 인사도 끝이 났다.
-짝짝짝짝짝!
졸업식이 끝났음을 알리는 축하객들의 박수가 운동장을 메아리쳤다.
태월과 아진 그리고 아샤도 가족들에게 돌아오고 있었다.
“아들! 졸업 축하해! 그리고 아샤와 아진도 축하한다!”
“호호! 우리 아들 축하해! 그리고 너희도 졸업 축하! 아유 어쩜 이리들 이쁠까?”
“흠흠, 역시 우리 아들이야! 훤칠하구먼! 와, 우리 집안에 의사가 둘에 약사가 하나 생겼어!”
“오빠! 졸업을 축하! 그리고 아샤 아진도 축하 축하해!”
“다들 고맙습니다!”
“흑, 너무 감사합니다.”
아진의 답례 인사에 이어 아샤가 별안간 눈물을 글썽였다.
“에고, 할머니가 생각나서구나?”
“네, 갑자기….”
홍미연이 가만히 아샤를 껴안아 준다.
힘들었던 어린 시절 할머니와의 추억 그리고 지금 당당히 졸업하는 모습을 할머니에게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너에겐 이렇게 많은 가족이 있잖니. 오늘은 기쁜 날이야! 화장 번지게 해선 안 되겠지? 사진도 찍어야 하는데?”
설희가 손짓으로 메이크업 담당에게 신호를 주자, 그녀가 달려와 아샤의 눈 아래 화장을 보충해줬다.
한 시간 정도를 교내를 돌며 가족과 함께 졸업사진을 찍느라 열심이었다.
“여보! 당신은 그 옷 입지 말라니까! 그냥 모자만 쓰면 되잖아?”
“아 괜찮다니까! 숨 안 쉴 거야!”
박승철의 몸은 박태월의 체격과 비교하면 한 체급 더 크다.
위로 큰 게 아니라 옆으로.
“당신은 투엑스라지잖아. 그러다 옷이 뜯어져! 아유, 숨만 쉬기만 해봐!”
결국 박승철은 졸업복을 입고 사진 한 장을 찍는 데는 성공했는데, 진짜로 숨을 쉬지 않았는지 촬영 후 컥컥거렸다.
“오, 우리 딸이 그걸 입으니 딱 여기 졸업생인데? 너무 잘 어울린다.”
“호호, 반년 후에 나 진짜 졸업하는데, 예행 연습하는 기분이야.”
중간에 1년을 휴학했기도 했었고, 모스크바의 가을학기와 달리 한국은 2월 졸업이다.
홍미연과 조민희도 아샤와 아진의 졸업복을 입고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다.
“어머, 두 분 어머님도 잘 어울리시네요. 어쩜 피부도 이리들 좋으신지.”
설희의 담당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호들갑을 떨며 화장을 고쳐주고 있었다.
사실 조민희도 미인의 축에 속하긴 하지만, 홍미연의 미모와 비교하면 격차가 있긴 하다.
그래도 피부로만 본다면 비슷한 면도 있었다.
조민희는 아직도 아이를 낳지 않았기에, 아줌마들과는 몸 자체가 다르다.
또 사업을 하다 보니 대외적으로 내보여야 해서, 그만큼 피부관리도 많이 해 온 것이다.
“아카와 아쿠 그리고 아루도 입어 봐!”
“호호, 아카 언니? 아쿠! 같이 찍자!”
아카는 태월의 헐렁한 옷을 입었고, 아루와 아쿠는 아샤와 아진의 졸업복을 걸쳤다.
그 후 몇 장의 가족 단체 사진을 찍고 난 일행은, 아들이 사는 집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온 사진작가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태월 가족과 떨어져 모스크바 여행을 떠났다.
사실 둘은 부부였는데, 이번 졸업식의 일을 대가로 여행경비를 지원받게 된 것이다.
“어? 저 말은 뭐니? 어제는 안 보였었는데?”
“하하, 제가 기르는 말이에요.”
“아, 그래서 이 집을 따로 산 거구나.”
태월이 있던 집은 아파트여서 마당이 없었다.
그래서 합성요괴인 백마를 인간화시켰었는데, 그 요괴 자신은 본체 상태가 편하기에 그걸 원했던 것이다.
또 합성요괴인 더지도 마당에 있는 걸 선호하기에 이런 단독주택을 구입했다.
“어머? 저 고양이는 왜 저러고 있니?”
방에 들어서니 아리랑이 아루가 두고 간 알을 품고 있었다.
‘아리랑도 관악산에서 불의 기운을 흡수했었는데, 서로 교감이라도 되는 건가?’
조민희가 가까이 다가가 알을 만져본다.
“어머! 따뜻해! 고양이가 따뜻한 걸 좋아한다더니, 그래서 이 알을 안고 있나 보네.”
조민희의 착각이긴 해도, 사연을 잘 모르는 박승철은 또 그걸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오, 무슨 알이 갓 삶은 계란처럼 따뜻하네. 타조 알인가? 이거 삶아 놓은 건 아니지?”
어제는 아루가 가지고 있었기에, 조민희와 박승철은 이 알을 처음 보는 것이다.
물론 홍미연과 홍설희도 처음 보고 아카도 실물은 처음 보는 것이지만, 태월에게 이야길 듣고 그 사연을 알고 있었다.
“크, 그거 살아있는 상태예요. 더는 손대지 않는 게 좋아요.”
“헐, 타조 알은 원래 이렇게 뜨거운 건가 보네.”
박승철이 갸웃거리고 있었지만, 태월은 다른 생각에 빠졌다.
‘처음 저 알은 안 뜨거웠는데? 아루 말로는 최근에 와서 뜨거워지고 있다 했었지. 물론 아루가 불의 정령인지라, 자주 품에 안고 자고 있어서 불의 기운이 전해진 탓도 있지만.’
홍미연과 조민희 그리고 아쿠가 나서고 그 뒤의 보조를 설희가 맡았다.
야샤와 아진이 나서려 했지만, 홍미연이 나서서 만류했다.
“너희 둘은 오늘의 주인공이야. 그래서 음식은 우리가 할 거야. 그리고 아카와 아루는 음식 상차림을 돕도록 해.”
“네, 어머니!”
“네, 알겠습니다.”
세 요정 중에서 아쿠가 음식 솜씨는 제일 나았다.
박승철은 여자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마당에 나와 있었다.
그리고는 백마 주위를 빙빙 돌며 호기심을 보였다.
박승철을 찾아 나선 태월은 그 모습을 발견하곤 피식 웃었다.
“아빠? 그거 타보고 싶으세요?”
“흐흐, 내가 어릴 적 꿈이 있었는데, 백마 탄 기사나 왕자쯤 되고 싶었다니까!”
“승마를 배운 적이 없으시잖아요? 타실 줄 아세요?”
“크, 탈 줄 모르니 이렇게 구경만 하는 거지.”
“이 말은 사람 말을 꽤 잘 알아듣거든요. 타보실래요? 처음 타는 거라도 가능해요.”
“헛! 진짜?”
태월은 화이트에게 텔레파시를 전한 후, 말 안장을 가지고 나왔다.
안장을 등에 설치하고 목재 디딤판을 땅에 놓고는 박승철과 눈을 맞췄다.
“이 디딤판에 올라서 말에 타보세요. 이 말 옆구리에 발을 끼우게 되어 있죠? 이걸 등자라고 해요.”
“시범을 먼저 보여줘.”
박승철은 자신이 없는지 태월에게 시범 요청을 해왔다.
고개를 끄덕인 태월은 왼쪽 등자에 왼발을 넣고는 말에 올라섰다.
그리고 승마법을 교육하려던 찰나에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오빠! 알이 벌겋게 달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