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쿠사나기노츠루기
태월이 관심을 보인 건 보자기였다.
아니, 보자기에 싸인 물건에서 푸른색의 빛이 스며 나왔기 때문이다.
태월이 좌판에 쪼그려 앉아 보자기를 살핀다.
“이 안의 물건은 왜 안 꺼내 놓은 거죠?”
“보실래요? 여기 분위기와 잘 맞지 않아서 망설이던 중이었습니다. 오늘이 이곳 벼룩시장이 생긴 이래 좌판들이 최대로 나왔거든요? 벚꽃 행사의 독려가 있었는데, 일종의 특별전 첫날이에요. 그래서 저도 안 팔려던 거까지 가지고 나왔죠.”
키쿠리도 그 보자기 속 물건에 관심이 있는지, 눈을 빛내고 있다.
그녀의 복장이나 외모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자 관광객이 태월 쪽으로 몰렸다.
“음, 풀지 않고 그냥 사도록 할게요. 운을 시험해 봐야겠네요. 얼마면 되나요?”
“네? 특이한 손님이시군요. 3만 엔 주세요.”
태월은 깎을 생각도 하지 않고 3만 엔을 꺼내 좌판 주인인 아주머니에게 주었다.
“호호, 흥정도 하지 않으시네요?”
“뭐 그만한 값어치가 있으니 부르셨겠죠. 그런데 이거 출처가 궁금하긴 하네요.”
태월은 보자기도 풀지 않은 상태서 한 손에 들며 일어났다.
“시아버지가 가지고 계셨던 건데, 일종의 유산 중 하나죠. 집에선 장식용으로 놔뒀던 거예요. 신랑의 증조할아버지께서 어떤 동굴에서 발견했다는데, 그걸 쓸 일도 없었어요.”
70cm*70cm 크기 정도는 되어 보이는 물건이 보자기에 싸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 물건이 궁금했는지 힐끗 보고 있었지만, 태월은 굳이 개봉하지 않았다.
다른 물건들을 더 살폈지만, 그 좌판에선 흥미를 줄만 한 건 없었다.
다른 좌판들도 구경하면서 다니다가 사게 된 건, 손바닥만 한 청동거울과 좌판이 전부였다.
“어, 그 거울에 뭔가가 있는 거 같은데?”
“나도 이게 정확히 어떤 용도인지 모르지만, 단순한 거울은 아닌 거 같아서 샀지.”
“그런데 파는 사람은 거울로만 알면서 왜 그리 비싸게 불러요?”
흥정은 없다며 10만 엔을 부르는 영감이었다.
“세월의 흔적으로 보면 골동품은 맞잖아. 그 의미겠지. 뭐 귀신이 붙은 거울이라고도 하긴 했지만.”
“오래된 거면 다 비싸요?”
“보통은 그렇지. 그런데 그런 것도 몰라?”
“산에만 주로 있다 보니. 그리고 내 주변 물건들도 몇백 년은 다 넘은 건데요. 가끔 버리기도 하고요.”
“버릴 게 있으면 모아서 토리에게 보내. 러시아에서 박물관도 운영 중이거든.”
“토리가 누군데요?”
“아, 너 옆에 있는 사토 유마.”
“아하,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그 좌판 사는 거 보고 영감이 놀라던데.”
“그 좌판 좀 수상해요. 제가 옆에 가니 오싹한 느낌이 들던데.”
토리의 말대로 좌판은 좀 수상했다.
사실 좌판이라고 부르긴 애매한 물건이다.
“골동품을 좌판으로 쓰는 영감도 웃기긴 하잖아. 나도 정확한 용도는 모르겠지만, 붕어빵 굽는 기계도 아니고 특이해.”
태월의 말대로 구멍이 5개나 뚫려있고 그 속에 뭔가를 넣어야 할 거 같은 물건이었다.
“그 영감이 거울을 흥정 없이 산 걸 보고 욕심부린 거 아닐까요? 좌판을 15만 엔에 팔다니, 너무 황당했다니까요. 찔러나 보잔 식으로 부르던데. 뭐 문양들이 특이했지만요.”
“토리도 느꼈다니깐 하는 말이지만, 이건 요괴와 연관된 거야. 딱히 이유는 모르겠고 직감이 그래. 뭐 당장 알 수 있는 건 아니니, 식사나 하러 가자고.”
좌판을 접으려다 혹시나 해서 영혼 에너지를 넣어보니 오각형의 별 모양으로 변한다.
별 모양의 가운데에 지름 10cm의 구멍이 나있다.
“어? 이거 진짜 요상하네. 뭐 하는 물건인고?”
“부적 느낌의 문양들이 새겨져 있네요?”
원래의 문양이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태월이 관찰하다 키쿠리에게 넘겨주니, 그녀도 열심히 살펴보고 있다.
“에구, 저도 전부는 모르지만 조금은 추측돼요. 아까 요괴 어쩌고 하길래 연관 지어보니, 요괴들을 잡아다가 뭔가로 변신? 그 이상은 잘….”
“천천히 연구해보자고. 자 이제 갈까?”
태월 일행은 벼룩시장을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방이 있는 일식집이었는데, 음식을 시킨 후 보자기를 풀었다.
납작한 박스가 눈에 들어오며, 그것을 여니 의외의 물건이 보였다.
“엥? 이거 부메랑 아냐? 고대 일본에서도 부메랑을 쓰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사토 유마의 물음에 태월은 고개를 젓는다.
“아니, 이건 사람이 쓰던 물건이 아니야. 부메랑에 영혼 에너지의 흔적이 남아있어.”
“맞아요. 보자기 밖으로 스며 나오긴 했지요. 신이 쓰던 무기예요. 최소 중급신은 될 듯해요. 맞죠?”
“지금까지 상대해본 신의 격으로 보면 그 정도는 될 거 같아. 어떤 동굴이길래 이런 게 남겨졌을까?”
태월이 영혼 에너지를 부메랑에 넣자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우웅! 우웅!
일종의 공명음이었다.
“거울과 마찬가지로 처음 팔러 나온 물건들이라, 나에게까지 운이 닿은 거 같네. 기운을 감지할 수 있는 무녀나 신녀가 있었으면, 바로 알아볼 수도 있었을 거야.”
“요즘 그런 신녀나 무녀는 흔치 않아요. 날 모시는 애들도 보면, 그냥 공부해서 들어온 애들이 태반이던데.”
“일본이 잡신과 요괴의 나라라고 불릴 만하네.
이런 물건들이 민가에서 튀어나오다니.”
태월은 부메랑을 다시 넣은 후, 이번엔 거울을 꺼냈다.
이것도 영혼 에너지의 흔적이 있기에 산 것이다.
태월이 영혼 에너지를 거울에 넣어보았다.
거울 표면이 일렁거릴 뿐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귀신도 없는데 뭐가 붙었단 거야.”
고개를 갸웃거린 태월은 문밖에서 인기척이 나자 품에 다시 넣었다.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야, 진짜 푸짐하네요.”
“왜? 신도들이 이런 건 안 해와?”
“네, 그냥 제사 음식 정도가 다예요. 자주 현신을 안 해서 내 취향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아요.”
“스시를 먹는 신이라 그것도 남다르긴 하네.”
맛깔스럽게 먹는 키쿠리를 잠시 보던 태월은, 자신도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즐겼다.
벚꽃 야경도 구경을 하고 다른 곳에서 열린 벼룩시장도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살만한 물건이 눈에 띄진 않았다.
“흠, 흔한 게 아니었네. 뭐 오늘 것만 해도 대박이긴 하지만 말야.”
“하긴 신인 저도 탐낼 만한 거였지요.”
“하하, 어느 게 제일 탐났는데?”
“그 거울요. 설마 달빛에 반응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키쿠리의 말대로 조명에는 반응이 없다가, 달빛에선 반응을 했다.
거울을 꺼내 입에 묻은 걸 떼어내려던 태월은, 느낌이 이상해서 영혼 에너지를 넣어보았다. 그리고 달빛에 반사된 거울 빛에 깜짝 놀랐다.
1초 정도의 순간이었지만 정신이 아늑했었다.
“선물로 줄게. 나야 무기로 쓸 게 다양하니 말이야.”
“아니에요. 공격용은 제 성향에도 맞지 않아요. 치유의 신인, 이 키쿠리가 파괴를 하는 게 어울리긴 하겠어요?”
“파괴라 보긴 어렵고. 그냥 순간 정신 못 차리게 하는 정도 같은데?”
“그거야 태월 님이 그만큼 강해서잖아요. 웬만한 요괴는 몇 초간 비틀댈걸요. 저기 토리에게 써봐요.”
“헉! 마스터, 전 빼주세요.”
“거봐요. 토리도 두려워하잖아요.”
태월은 일행과 함께 밤의 야경을 즐기다 야츠다 신궁으로 향했다.
“흠, 경비가 둘 있군.”
“제가 유인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태월은, 잠시 토리가 경비들의 시선을 끄는 사이에 키쿠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회랑이 나오고 목적지로 삼은 문 앞에도 경비가 있었다.
태월은 인기척을 죽이고 변신 가면과 변신 스카프를 꺼내 밖의 경비 하나로 변신했다.
얼굴은 가면으로 복장은 스카프로.
“어이! 마사이? 안으로는 웬일이야? 잘 오지도 않더니. 설마? 어제 술값 안 내고 갔다고 복수하러 온 건 아니지?”
태월은 손만 들어 화답 시늉만 하고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뒤통수를 쳐서 기절시켜버렸다.
-큭!
기절하는 중에 겨우 술값 때문에 이러냐는 눈빛을 보냈다.
태월의 뒤로 키쿠리가 따라붙었다.
문을 슬쩍 밀자 내부의 풍경이 드러났다.
제일 눈에 띄는 건 전면 석대 위에 장식된 검이었다.
‘전시가 끝나면 저렇게 해놓는가 보네.’
-우웅!
“오, 그래도 꽤 강한데?”
“어? 하급신이 아니네요? 최근에 중급신이 된 거 같아요.”
“제자리에 있는데도 그게 격이 오르나?”
“자신 스스로도 가능하지만, 믿는 신도가 많아지면 그것도 영향을 미치거든요. 추앙을 받을수록 격은 높아져요.”
“오호, 뭐 그래 봤자지! 도망치려 하면 싸우진 말고 방해만 해!”
“으캬캬 도망? 네깟 것들에게?”
“오, 말도 할 줄 아네? 에고 검인가? 아리랑이 쓰던 복화술 방식이군. 그런데 너 좀 건방져 보인다?”
“신기라도 가진 걸로 보이네? 그것도 내가 가져가 주마. 하급신에다 신기를 가진 인간 하나라. 오랜만에 즐거운 사냥이 되겠어!”
“사냥? 주제 파악을 못 하는군.”
태월은 검의 모습을 한 쿠사나기노츠루기를 향해 왼손을 쳐들었다.
입을 벌린 도깨비 문신이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헉! 이게 그 신기냐?”
검 주제에 넙죽 엎드리며 도깨비 입을 피해냈다.
그리곤 검집에서 검이 빠져나왔다.
뒤쪽에서 이어지는 도깨비의 공격을 다시 한번 회피하더니 칼질을 해댔다.
그러나 도깨비의 이빨에 번번이 막혀 칼질이 제대로 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음, 달빛이 이곳엔 스며들지 못하는군. 새로 얻은 신기를 테스트해볼 좋은 기회였는데.’
태월은 공간 배낭에서 칼을 꺼낸 후, 몸에는 스카프로 방검복을 만들었다.
돌격을 감행하여 무지막지하게 내려치기만 반복했다.
양쪽에서 공격을 당하는 상태가 된 쿠사나기노츠루기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와중에 키쿠리가 밧줄 하나를 공간 가방에서 꺼내더니 휙 하고 검을 향해 날렸다.
밧줄이 살아 있는 듯이 뻗어가더니 검의 손잡이를 휘감는다.
“으익! 이년이!”
칼질이 제대로 되지 못하자, 검 자체가 키쿠리를 향해 쏘아져 갔다.
이판사판이란 심정이었을 거다.
“으헥!”
오히려 놀란 건 키쿠리였고, 그녀는 뒷걸음을 쳤다.
태월과 도깨비에게 공격당하는 상태서 무리한 강행 돌파를 해보는 것이지만, 멀뚱히 있을 도깨비 입이 아니었다.
어차피 시간이 흐를수록 잡아 먹힐 수밖에 없는 쿠사나기노츠루기였다.
그런데 부상을 당하면서도 키쿠리 근처까지 도달한 쿠사나기노츠루기가, 반쯤 열린 방문 틈으로 별안간 도망일 친 것이다.
“쫓아! 저놈이 잔머리를 쓴 거네.”
태월은 키쿠리에게 경각심을 주고는 검을 쫓아 달렸다.
외부 문까지 통과한 쿠사나기노츠루기는 서쪽으로 달려나가고 있다.
태월이 그곳에 도달했을 때는 거리가 10m는 벌어졌다.
“아 놓쳐선 안 돼!”
태월은 순간 든 생각에 청동거울을 꺼내 달빛을 검을 향해 쏘아 보냈다.
“컥! 이, 이게...”
몸이 움찔하면서 2초 정도의 시간을 쿠사나기노츠루기에게서 뺏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도깨비 입이 검의 뒤까지 바로 쫓아와, 입을 쫙 벌리더니 그대로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