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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재능을 삼켜라-139화 (139/250)

139화. 새로운 하급신 키쿠리히메

그날 오후 5시 일본의 뉴스 시간은, 일제히 전 총리 오부치 게이조의 기적을 전했다.

이미 의학적 사망을 몇 차례나 확인했던 사안인데, 그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일본 국민들의 지지가 높았던 총리였던 만큼, 그 반향은 상당히 커 일본의 정계를 뒤흔들었다.

신의 사도란 말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와 더불어 마지막 자리를 지켰다고 알려진, 무소속 출신의 사토 유마 중의원에 대해서도 재조명되었다.

신의 기적과 연관된 인물처럼 비쳐진 것이다.

또 그전까지 아무 접점도 없던 두 사람이, 함께 손을 잡고 단상에 함께 서기도 했다.

공식 인터뷰까지 마친 오부치 게이조는 사흘간 쉬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마스터! 이 몸에 맞는 역할을 잘 수행하겠습니다. 역사적 왜곡도 바로잡고, 화해의 길을 모색하겠습니다.”

“좋아요. 그게 서로를 위한 길입니다.”

태월은 서로의 나라가 굳이 일방적이어선 안 된다고 보았다.

과거의 반성과 보상은 당연한 거지만, 그것만 해결되면 양극으로 치닫는 건 두 나라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것이다.

각 나라가 번영을 위해 힘쓰는 시간에, 두 나라는 소비적 감정에 휩쓸려 더 큰 길을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이참에 일본에서 이런 공존을 방해하는 무리의 힘을 빼내려 마음먹은 태월이다.

“사토 유마를 제 후계자로 삼아 힘을 키워주겠습니다.”

“호, 그렇게 이야기가 된 것이군. 그 방법도 좋은 거 같군. 그럼 그런 식으로 하고. 내가 눈에 띄어서는 곤란하니, 둘이 잘 만들어 보게. 나에게 연락할 일이 있으면 사토 유마에게 말하게.”

“네, 마스터!”

“극우 세력 중에 문제의 인물도 적어주게. 그들을 회유할 방법이 있으니 말이야.”

“아, 그게 가능하다면 정말 국정 운영이 수월할 겁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태월이 말하는 회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문신으로 삼킨 후 소생시키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의 극우 세력은 급성장하고 있었는데, 기존의 극우 세력과는 궤를 달리했다.

증오범죄 형식으로 한국인이나 중국인들에게 인종 적대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다음 날 태월은 사토 유마가 가져온 보고서를 훑어보고 있었다.

“일본회의라. 결국 국민회의가 주력이네.”

일본회의는 1977년에 만들어지는데, 기존에 있던 ‘국민회의’와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 통합된 것이다.

‘국민회의’는 경제, 정계, 학계 등의 대표자 모임이지만, ‘일본을 지키는 모임’은 종교인과 문화인의 모임인데 사실 종교가 핵심이었다.

‘국민회의’의 핵심은 ‘생장의 집’이라는 신흥 종교와 신도다.

“생장의 집?”

“1930년에 다니구치 마사하루가 창설하였습니다. 데구치 나오가 만든 대본교의 영향을 받은 종교입니다.”

신도(神道)는 자연물에 대한 숭배가 종교로 발전한 것으로 애니미즘의 일종이다.

모든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것이 일본의 전통적인 자연 신앙이며, 이 신들을 모아 제사 지내는 곳이 신사이다.

천황의 신격화를 위해 국민들을 정신적으로 통일시키려 했는데, 전사한 군인들을 위해 지은 신사가 한국에서 많이 알려진 야스쿠니 신사다.

“그 종교의 본질은 뭔데?”

“일종의 복합신앙입니다. 그들이 신도와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의 가르침에 심리학과 철학 등을 더하여 이들을 융합한 거죠. 즉 모든 종교의 진리를 하나로 인식하고 있으며 종교법 인격을 인가받았습니다.”

“그 ‘생장의 집’ 신도가 많아?”

“공식 집계로는 신자 수가 212만 명, 일본 내에서만 85만 명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81세의 다나구치 신쵸가 총재로 있고, 그 사위인 다나구치 마사노부가 후계자입니다.”

“다른 내용을 살펴보니, 천황 절대화와 군국주의 파시즘의 선두 역할을 맡고 있네.”

“그래서 중의원의 꽤 많은 수가 ‘생장의 집’과 연관이 있습니다. 활동 자금으로는 그와 연관된 서적들을 출판하여 그 자본으로 움직이는 겁니다. 뭐 신도 수가 많으니 당연히 잘 팔리고 있는 것이고요.”

‘생장의 집’ 종교의 경전으로 ‘생명의 실상’, ‘감로의 법우’, ‘일곱 개 등대 점등자의 신시’ 등이 있다.

“결국 일본회의나 국민회의나 그 중심이 ‘생장의 집’이라는 종교네. 그럼 중심을 흔들어야겠군. 본산이 어디지?”

“나가사키현 사이카이시에 총본산인 류규스미요시 본궁이 있습니다. 요즘 총재도 그곳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고요.”

“혹시 그동안 잡신이나 하급신이 등장하진 않았어? 중급신도 상관없고!”

“하쿠산(白山) 신사에 있는 키쿠리히메라는 부활과 은혜의 여신인데, 치유가 전문입니다. 잡신은 아니고 하급신 중에 상급은 되어 보였습니다. 그 외 하급신이나 잡신 몇이 얼쩡거리긴 했는데 그보단 약했습니다.”

“뭐 부활과 은혜면 악신은 아니겠네. 더구나 내 문신과도 동질감이 있어서 좋고. 목표는 그 여신으로 하지!”

태월의 문신도 소생과 영혼의 정화 능력이고 이제는 육체의 질병 치유에도 관여하고 있다.

그러니 그 여신과는 공통점이 큰 것이다.

“네? 갑자기 생장의 집에서 하쿠산의 여신이라뇨?”

“생장의 집은 실제 신이 없는 거잖아. 그러니 떡 하니 대체할 신을 만들어서 거기에 넣어야지. 하쿠산 여신과 ‘생장의 집’ 종교가 통합되는 거야. 물론 주체는 하쿠산 여신으로 하고, 이적을 보여주면 되는 거 아냐?”

“아, 그건 그렇네요.”

태월은 수국의 명소라 불리는 하쿠산 신사로 오후에 출발하였다.

하쿠산 신사는 도쿄도 분쿄구에 자리 잡고 있다.

태월의 수행 가이드는 사토 유마가 맡았다.

“국정 때문에 바쁜데, 나로 인해 너무 시간 뺏기는 거 아냐?”

“아, 아닙니다. 급한 건 미리 처리했기에 하루 이틀은 시간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시는 게 제겐 더 가치가 있고요.”

“하하,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군.”

“지금 이곳은 볼 게 그리 없지만, 6월엔 수국 축제를 하기에 관광객이 상당합니다.”

“아직 그 여신은 중급신이 되지 못해서 치유 능력이 미약하겠군. 다른 하급신이나 잡귀를 모아서 기운을 흡수시켜야겠어.”

하쿠산의 신사에 도착한 태월은, 신도들이 활동하지 않는 새벽 시간을 기다렸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식도락도 즐겼고, 주변 관광도 겸하면서 말이다.

자정이 넘자 사토 유마의 안내에 따라, 키쿠리히메라는 여신이 머무는 곳으로 갔다.

“일본에서 알려진 이 여신은 뱀이나 여우와 연관이 있다고 퍼져있습니다.”

“네가 보기엔 어떤데?”

“여우였습니다. 신사와는 거리가 있는 곳에 굴을 파고 주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우연히 호족하고도 연계돼버리는군. 태생을 버리지 못하고 여우굴에서 사나 보군. 대화는 길게 할 이유가 없겠지?”

“네 악신이 아니라고는 하나, 굳이 번잡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봅니다.”

태월이 하려는 것은 인간의 소생이 아닌 신의 소생이다.

그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이지만, 문신이 중급신 중 상급에 도달했기에 될 거라 여겼다.

또 안 되면 그 신의 영혼을 거둔 후, 다른 존재에 집어넣을 생각도 하고 있었다.

‘뭐, 격에 따라 하급신을 거느린 중, 상급신도 있지 않은가?’

신사와 조금 떨어진 하쿠산 외진 곳의 문 앞에 다가선 사토 유마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긴장을 나타냈다.

‘토리? 그냥 편하게 유인만 하면 돼! 부담 가질 필요는 없다!’

‘네! 마스터!’

태월이 사토 유마의 어깨를 톡톡 쳐주며 텔레파시를 보내주자 용기를 얻는 그다.

문을 슬쩍 훑어보고는 태월 자신도 기운을 숨겼다.

사토 유마가 문을 슬쩍 밀고 들어가니 여자의 목소리가 태월에게도 들렸다.

“넌, 누구냐? 어? 요괴잖아!”

“너도 요괴가 아닌가?”

“호호. 감히 격을 얻어 신이 된 나에게 요괴라니! 이놈이 겁이 없구나!”

“좀 더 큰 곳으로 나갈 생각은 없나? 산에 처박혀 답답하진 않아?”

“아니 이놈이 뭐라고 씨부렁거리느냐? 일단 넌 몇 대 패주고 이야길 들어봐야겠어. 한낱 요괴 주제에 눈빛이 건방져!”

“대화할 마음이 당장 없나 보네. 그럼 나중에 올게. 이만 간다!”

사토 유마가 밖으로 나가버리자 황당해진 키쿠리히메다.

“야! 너 거기 안 서?”

여우 한 마리가 사토 유마의 뒤를 잡으러 급하게 문밖으로 뛰쳐나왔다.

-슈 아악! 헉! 깨갱! 꿀꺽!

뛰쳐나온 여우를 기다린 건 커다랗게 입을 벌린 도깨비였다.

“어? 마스터! 굉장한데요? 귀신도 아닌 하급신을 한 번에 처리하시네요?”

“하하, 여우가 생각이 없었던 거지. 문밖이 바로 도깨비 입 앞인 줄 어찌 알았겠어. 내가 굴 안으로 들어가 있을 테니, 망을 보도록 해.”

태월이 생각해도 너무 허망하게 끝나 버렸다.

이제는 문신이 삼킨 하급신을 정화해 다시 소생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지라, 조용한 곳이 필요했다.

태월은 정좌하여 호흡법을 통해 운기를 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문신에 자신의 의지를 담아 생각을 전했다.

인간이 아닌 신의 소생이라 그런지 생각보단 오래 걸렸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그 결과가 나왔다.

-우웨엑! 털썩!

갈색 여우가 삼켜졌는데, 나온 건 백여우였다.

그리고 떠 있는 굉장히 밝은 푸른색의 영혼 구슬을 그 여우의 입에 물려주었다.

사람의 영혼과 다른 게 있었는데, 수십 가지 다양한 색깔을 띠며 강렬한 빛을 낸다는 것이다.

“뭐 소생의 방식은 같은 거겠지. 그게 아니면 문신에서 다른 반응이 있었을 거고. 이게 안 되면 다른 최후의 방법도 있으니.”

10분 정도가 지나자, 여우가 눈을 떴다.

“어? 나 왜 누워있지?”

“어라? 인간하고 반응이 다르네?”

태월도 처음 시도해보는 하급신의 소생이지만, 자신을 기억하는 상황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키쿠리히메는 눈앞에 서 있는 인간 남자가 보이자, 노기가 솟구쳤다.

‘감히 신은 누워있는데, 시건방지게 나를 쳐다봐? 아 이놈도 혼나야겠네.’

몸을 일으켜 신의 기운을 써서 그를 짓눌렀다.

-컥! 캥!

그런데 그 순간 그 역장은 오히려 반발을 일으켰고, 충격은 키쿠리히메 자신에게 돌아왔다.

여우의 하는 짓을 빤히 쳐다보던 태월은 피식 웃었다.

“아, 하급신을 소생시키면 이런 식이 되는구나. 참고해야겠네. 그건 그렇고 나를 공격하려 했다 이거지?”

태월은 공간 배낭 속에서 몽둥이 하나를 꺼내 여우를 두들겨줬다.

처음엔 눈에 반항기가 돌았지만, 5분간 더 두들겼더니 눈에서 힘이 빠지는 게 보였다.

“아 악! 아파! 아프단 말이야!”

“존댓말을 해라!”

“아, 알았어요. 그만 때려요! 그, 그런데 누구세요?”

“신이라도 본체일 때는 통증을 느끼나 보네. 잘 생각해봐. 왜 본인의 공격이 반사되는지.”

한참을 생각하며 자신을 살피던 키쿠리히메는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으엑, 내가 귀속되었잖아요!”

“오! 완전 바보는 아니네. 맞아 이제 넌 내 거야! 내 왼팔이 중급신 중에 상급에 해당하거든.”

“어머, 나 방금 프러포즈 받은?”

“헐!”

좀 이상한 하급신을 만났다는 생각이 든 태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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