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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재능을 삼켜라-137화 (137/250)

137화. 새천년으로

태월은 귓가에 순간 포착되는 미세음에, 황급히 변신 스카프를 넓게 펼쳤다.

-틱! 틱! 틱!

“헉! 누가 맞은 거야?”

놀라 소리친 태월은 둘을 감싸 안고, 급히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넓게 폈음에도 한 발을 막지 못한 것이다.

4발 중 두 발은 태월에게 향한 것이다.

총알 발사의 순간 속도에 반응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막은 건, 십여 개의 육체 능력으로 인한 태월의 순발력이 일반인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아, 아샤가 맞았어요!”

“따, 따끔했어요.”

아진의 말에 태월은 아샤의 몸을 살폈다.

오른쪽 허벅지에, 작은 침이 달린 초미니 앰플이 주사기처럼 박혀 있었다.

“이런, 미친놈들 아냐? 야쿠자가 총까지 가지고 다니나?”

태월은 그걸 제거한 후 바늘 끝에 혀를 대보니 짜릿했다.

“다행히 독이 없는 단순한 마취제야. 저놈들을 그냥 둬서는 안 되겠어.”

아진의 팔에 안겨 있던 아리랑이 상황을 파악하고는 가볍게 내려섰다.

“아리랑? 함부로 나설 일이 아니야.”

“예전에 저거 맞아 봤는데, 나에겐 큰 영향이 없었어요! 그냥 조금 술 먹은 기분 정도?”

“그래도 다른 총탄이 있을 수 있잖아.”

“지그재그로 달리면 절 맞추진 못해요. 그리고 지금은 나무를 타고 이동할 거예요. 제가 오늘 몸 좀 써 볼게요.”

“음, 그럼 몸조심하고!”

태월 일행이 숨은 나무 뒤에서, 백호로 바뀐 아리랑이 나무를 타고 위로 올랐다.

그리고는 그다음 나무로 점프하는 식으로 반복하였는데, 10초도 안 돼 알렉세이 일행의 근처에 도달했다.

-피용! 피용! 피용!

“저, 저기다!”

“헉! 저, 저거 뭐야? 호, 호랑이가 나무를 타고 다니잖아! 빨리 맞춰서 떨어뜨려! 뭐 해! 빨리! 쏘라고 쏴!”

알렉세이는 기겁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피용! 피용!

아리랑을 목표로 한 발사는 마취탄이 아니라,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에 의해 발사되는 살상용 실탄이었다.

근거리가 되었을 땐 아리랑 또한 위험하다.

그러나 워낙 몸이 빨라, 쐈을 땐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태월은 아리랑에 시선이 집중되자, 그들의 눈을 피해 우회해서 접근해나갔다.

복장은 이미 변신 스카프에 의해 방탄복이 되어 있었다.

등에 메고 있던 공간 배낭을 앞으로 메고는, 맨 뒤로 쳐져 눈치를 보던 미하엘의 뒤에 다가섰다.

그리고 그를 지정하자 배낭 속으로 사라졌다.

알렉세이는 위기 감각이 발달했는지, 뒤가 허전해 오자마자 본능적으로 몸을 땅으로 굴렸다.

“헉! 너, 뭐! 뭐야! 언제 여기까지….”

-퍽!

태월은 알렉세이의 말을 더 들을 필요가 없기에, 일어나려던 알렉세이를 쫓아 그의 턱을 발로 차버렸다.

-쉬 익!

알렉세이도 배낭 속으로 집어 넣어버렸다.

동생들과 함께 아리랑을 상대하던 데니스는, 알렉세이의 음성이 들리자 총구를 그쪽으로 돌렸다.

-피용! 폭!

사격 실력이 좋았던 데니스의 총알은 태월의 가슴 언저리에 박혔다.

그런데 오히려 실력이 좋았기에 태월은 무사할 수 있었다.

팔이나 다리였다면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몸통 자체는 이미 방탄복으로 말미암아, 권총에 의한 관통은 되지 않았다.

방탄복에 의해 총알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중간에 끼어버렸다.

태월은 몸의 충격을 느끼면서도, 가까이 접근해 데니스마저 배낭 속에 처박아버렸다.

-크흐헝!

백호의 나지막한 피어에 남자 셋의 몸이 순간 경직되었다.

그 틈에 아리랑은 데니스의 부하 둘을 앞발로 후려쳐 쓰러뜨렸다.

남은 하나가 아리랑을 피하려다, 태월에게 뒤를 잡혀 결국 사라졌다.

“오! 아리랑 수고했다. 이놈 둘은 깨끗하게 기절시켜놨네?”

“죽이면 안 될 거 같아서요.”

“하하, 아주 많이 잘했어! 이제 몸을 변신해. 사람들 눈에 띄어선 곤란하잖아.”

“네!”

아리랑이 다시 고양이로 돌아가자, 태월은 쓰러져 있는 둘도 배낭에 집어넣었다.

‘오빠! 이제 다 끝난 거지?’

아진이 나무 뒤에 숨은 상태서 텔레파시를 보내왔다.

‘그래! 그리로 갈 테니 그냥 있도록 해!’

태월은 아진과 대화를 마치고, 주변에 떨어진 물건들을 전부 수거해 배낭에 입고시켰다.

운이 좋았는지 그 시간에 산책 나온 사람들이 없어서 문제가 복잡해지진 않았다.

“에고, 아샤는 잠들어버렸네?”

“네, 방금 자더라고요. 오빠는 다친 데 없어요?”

“뭐, 스카프가 방탄복 역할을 해줘서 다행히 부상은 없었다.”

태월이 방탄복을 스카프로 다시 변신시키자, 찌그러진 총알 하나가 바닥에 뚝 떨어졌다.

아진은 그걸 보고 놀랐는지, 총탄을 주워들고 살폈다.

“하하! 괜찮아. 그냥 잠시 뻐근한 정도였어.”

“아, 다행이네요. 그런데 그 배낭 활용법은 처음 보네요?”

“하하하, 순간 그렇게 하면 되겠더라고. 굳이 질식시키려고 힘들게 할 필요가 없단 생각이 들었어. 앞으론 자주 써먹을 거 같아.”

아진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준 태월은 아샤를 등에 업었다.

앞엔 배낭을 메고 뒤엔 여자를 업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아진은 고양이를 안은 채 태월을 뒤를 따랐다.

집으로 돌아온 태월은 가방에서 알렉세이 일행을 전부 끄집어내었다.

그리고 문신을 이용해 그 영혼들을 삼키게 한 후, 소생을 시켰다.

소생 후 재교육은 늘 전과 같은 구라였고.

태월은 다시 반복되는 이들의 행위를, 보복 걱정 없이 완전히 없애는 데는 소생이 최선이라고 여겼다.

‘개과천선시킬 일도 아니고 말이야.’

“너희는 이제 새사람으로 태어났으니, 평소대로 살아가면 될 거야.”

“네! 마스터!”

씩씩하게 대답하는 알렉세이다.

“너에 대해서 그리고 너의 집안에 대해서 소상히 설명해봐!”

“네! 이 몸의 주인이던 놈은 알렉세이입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영혼인 줄 알고, 알렉세이에게 남겨진 기억을 토대로 자아비판 중이다.

한참을 듣던 태월은, 악의 소굴 마피아도 러시아에선 필요악이란 걸 느꼈다.

“그럼 알렉세이는 현재 형의 그늘에 가려 보스가 되려는 생각을 완전히 접은 건가?”

“아, 아닙니다. 알렉세이는 학교 졸업 후 움직이려 했습니다. 그래서 형 몰래 친위대를 따로 숨겨두고 있었고요. 뭐, 주로 형에게 직언하다가 한직으로 밀려난 부류들이지만요.”

“모스크바 대학을 다닐 정도면 알렉세이도 머리는 좋았나 봐?”

“그 정도로 좋은 건 아니었고요. 재수해서 턱걸이로 붙은 겁니다. 그리고 집안의 눈을 피하려 개망나니 짓을 했던 거고요. 그런데 실제로 그 이유도 있지만, 지금 보니 진짜 인간말종인 건 사실입니다. 질 나쁜 놈이었네요.”

알렉세이와 사귀었던 여자들은, 싫증이 나면 전부 사창가로 보냈다고 한다. 이박삼일 간 패주고 싶었지만, 영혼이 다른 거라고 이미 말했던지라 참을 수밖에 없는 태월이다.

“이제부터 제대로 살면 되는 거고! 그 여자들에겐 보상해주고, 자립할 수 있게 돕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넌 내가 뒤에서 도울 테니, 보스가 되는 계획을 앞당기도록 해! 디데이는 내가 졸업한 날로부터 일주일 뒤다! 너도 그때 졸업하지?”

“네, 같은 날입니다! 그렇게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알렉세이 외에도 미하엘과 데니스에게도 그들에 맞는 역할을 정해줬다.

그들을 돌려보낸 후 이제 막 깨어난 아샤를 데리고 저녁을 먹었다.

“어머! 그럼 이제 오빠에게 마피아 꼬봉들이 생기네요?”

이야기를 듣게 된 아샤는 손뼉을 치며 신이 나 있다.

이제 그들이 아샤 본인을 귀찮게 하지 않게 된 기쁨도 포함돼 있었다.

“대학 생활 추억이 적었는데 하나 만들어준 거지 뭐.”

아진이 시크하게 아샤의 말에 대신 대답해 준다.

셋의 대학 생활은 그날 이후부터는 좀 더 편하게 이어졌다.

알렉세이 쪽에서 아진과 아샤의 주변에 얼쩡거리던 승냥이들을 정리해 버렸기 때문이다.

***

1999년 12월이 되자 전 세계가 새천년 준비로 들썩였다.

12월 22일 대한항공 8509편이 런던에서 이륙 후 추락했지만, 태월은 움직이지 않았다.

여객기였다면 가봤겠지만, 보잉 747-2B5F 기종인 화물기였다.

다음 날 전해 들은 소식으론 4명의 탑승원이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소수의 인원이 문제 될 때마다, 세상에 관여하다가는 태월의 인생도 꼬일 것이다.

12월 31일이 되자, 아카가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퇴임한 것이다.

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블라디미르 푸틴이 취임하였다.

그는 제2대 연방 대통령이 취임하는 2000년 5월 6일까지, 러시아의 수장을 맡게 된 것이다.

그 전에 아쿠와 아카는 그와 몇 번의 교류가 더 있었다.

태월은 짧은 겨울 방학을 맞아 다시 한국에 와 있었다.

새천년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서다.

이번은 아진과 아샤 둘만 데리고 왔다.

1월 1일 자정을 기해 가족들이 다 함께했다.

홍미연과 홍설희 그리고 박승태와 조민희.

“어머, 아샤는 점점 더 이뻐지네? 또 무슨 일일까? 사랑이라도 하나?”

조민희의 말에 아샤와 태월이 움찔거렸다.

홍미연은 딸 설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던 일이라, 그냥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고.

그 둘의 반응에 조민희는 눈매를 좁혔다.

“아들? 수상한데? 털어놔 봐!”

“뭘, 뭘 털어놔요!”

“어머, 그냥 찔러본 건데 말을 더듬네? 언니 혹시 아는 거 없어요?”

아들 태월의 반응이 너무 수상한 조민희는 홍미연을 쳐다봤다.

홍미연은 이일이 굳이 숨길 일도 아니고, 결국 나중에 알게 될 일이기에 조민희의 궁금증을 해결해줬다.

“맞아. 둘이 사귀는 중이야.”

“어머머! 결국 그렇게 됐구나! 여보, 들었지? 내가 이겼네! 아자자!”

조민희는 격앙된 말에 이번엔 박승태가 움찔했다.

“어? 동생? 무슨 내기를 했길래 신나 해?”

“호호! 태월이 결혼한다면 아샤일 거라 했고, 아빠는 아진일 거라 했거든요!”

“어머, 별걸 다 했네. 그런데 동생 그거 알아?”

“네? 뭘요?”

“동생이 아직 이긴 게 아니잖아? 이건 사귀는 거지 결혼은 아니라고!”

“거, 거봐! 처형 말이 맞아! 내가 아직 진 게 아니라니까!”

박승태가 눈을 반짝이며 끼어들었다.

“작은 아빠? 작은 엄마? 너무한 거 아니에요? 아진과 아샤가 있는데 그렇게 편을 갈라 버리면, 당사자들 입장에선 얼마나 무안하겠어요.”

설희의 말에 그제야 아차 하는 조민희다.

“아, 미안해. 아진! 아샤! 내기가 너무 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생각이 없었네.”

“괜찮아요. 저희 둘은 영혼의 동반자거든요.”

“응? 그건 배우자 간에 쓰는 말 아니니?”

조민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명하기엔 난처한 일이라, 태월을 보며 머뭇거리는 아진이다.

결국 태월이 나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누구랑 결혼하든 같이 지내게 될 거라는 그런 포괄적 의미예요.”

“아, 난 또 러시아의 결혼법이 그런 줄 알았네. 뭐 아샤와 사귀게 되었다고 하니 축하한다. 아들!”

태월의 두리뭉실한 대답에 조민희는 엉뚱하게 생각하며 넘겼다.

또 자기 아들이 너무 이성에 관심 없어 하기에 한편으론 걱정도 했었던 조민희다.

“그럼 손만 잡는 사이쯤이겠네? 에이, 별거 아니잖아.”

박승태의 말에 홍미연이 짓궂은 웃음을 흘리며 나섰다.

“제부! 둘이 3달간 동침도 했어!”

“헉!”

“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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